수레국화 +5

수레국화200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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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국화 +5

 

# 선혜‘s

출입국에 가는 수요일이라 휘진을 볼 것이란 기대로 평소보다 한시간 이나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휘진은 셔틀버스에 보이지 않는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바로 퇴근할 양으로 서류를 챙겨들고 갔더니 휘진은 보이지 않고, 영석씨가 나를 반긴다.

“아니어도 민과장님 회의 들어가시면서 정선생 오면 나보고 같이 가라고 했거든.”

서운함이 가슴 속에 쫘하게 퍼지는 것 같았다.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지..영석의 차를 타고 출입국으로 향했다. 영석은 발령 동기인 셈이다. 같이 연수원에도 있었고, 나보다 세 살이나 많지만 자상한 성격에 가끔 마주치기 라도 하면 아주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정선생 데이트있나? 신경 좀 썼는걸..”

그러게나 말이다. 신경쓴 거 다 헛수고로 돌아갔는걸 뭐. 한시간이나 화장을 했는데..

“데이트는 무슨. 나 혼자 가도 되는데 괜히 곽 샘 바쁜데 온거 아녀요?”

“바쁘긴.. 쫄따구가 심부름만 하다가 이렇게 벗어나니 속이 다 시원하구만. 요새 우리 총무과는 총장협의회 행사 준비 때문에 날마다 야근이야. 다행히 오늘은 난 구세주를 만났네그려. 민과장님 덕분이지. 젊은 사람이 센스가 있단 말이야 .”

하긴 휘진과 영석은 동갑인 서른 살이니까 자주 술자리를 한단 얘기를 영석에게서 들었었다. 내친 김에 휘진에 대해 좀 물어볼까..아니다..그럼 속이 다 보일거야..참아야지..참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날마다 문혁은 6시 정각에 맞춰 어학당 앞으로 왔다. 매일 어떤 핑계로 그를 돌려보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혜영언니가 일부러 소개시켜 준 것이라 언니 눈치도 보이고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강사채용으로 야근한다는 핑계를 대려니 이미 채용을 다 해서 서류작업만 남은 상태라 그 핑계도 못 대겠고, 주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희는 사정을 다 알고 있는지라 학원마치고 학교로 와달라는 문자만 받고도 이미 상황파악하고 내게 먼저 전화했다.

“가시내야, 그렇게 핑계가 없냐? 그럼 그냥 만나던지. 오늘 나 청바지나 하나 사러 가자.”

“어. 주희니? 그래. 오늘 옷사러 가야한다고 했지? 미안미안 잊어버렸다.”

혜영언니에게도 들리게 난 일부러 하이톤으로 이야기했다. 언니는 남친과 저녁 약속 있다며 6시 땡하자 나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그냥 갔다. 이제 어학당 앞에 있는 문혁만 돌려보내면 된다.

역시나 그는 날씨도 추운데 차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죄송해요. 친구랑 옷사러 가기로 했는데 제가 잊어버렸네요.”

“그래요? 그럼 같이 가죠뭐. 백화점갈거죠? 가서 옷사고 저녁도 먹으면 되겠네.”

한사코 둘이 가도 된다고 했지만, 그는 주희가 오자 차에 타라며 먼저 타버렸다. 나의 용병 주희는 적이 되어 그의 차에 냅따 올라탔다.

“저는 선혜 이야기만 듣고 사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뵈니 미남이시고 친절하시네요.”

“어떤 선입견 말씀인가요?”

“바람둥이라는....하하하 말 그대로 선입견이예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도 그럴줄 알았다는 듯 웃어버렸다. 주희의 저 입을 내가 어찌 말리리오.

주희는 청바지 하나 산다더니 온 백화점을 휘젓고 다녔다. 문혁과 주희의 뒤를 따라다니는데 주희가 원피스를 고를 사이, 문혁이 니트를 하나 가지고 왔다.

“입어봐요. 55사이즈 하면 될 것 같은데”

“어머~ 예쁘다. 입어봐.”

주희는 원피스를 고르다 말고 달려와서는 입어보라고 난리다. 내가 아무래도 지원군을 한참 잘못 요청한 것이 틀림없다.

“저기..난 니트 많은데...”

“야, 누군 옷 없어서 사냐, 입어봐. 너 이런 스타일 좋아하잖아.”

결국 난 안 입었지만, 문혁은 계산해버렸다.

식당에 가서 피자를 먹는데 문혁은 한 조각 밖에 먹지 않고 주희와 둘이서 한 판을 다 먹었다.

“피자 싫어하세요? ”

“느끼해서..아무래도 전 입이 토종인가봅니다. 된장찌개가 더 좋으니까요.”

의외의 모습이다.

“미국서 오래 계셨다고 들었는데 느끼한걸 잘 못 드신다니 의외네요.”

주희 역시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문득 조문혁이라는 남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지극 정성인 이 사람을 난 내 삶에서 완전히 떼어놓고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휘진‘s

전국 대학 총장 협의회가 있어서 날마다 12시를 넘어 퇴근했더니 행사가 끝나자마자 한달간의 영국 연수에 참가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선혜와 지난 한달 간 데이트도 못했는데 2주 밖에 시간이 안 남았으니 바쁘겠군.

퇴근시간에 되어 어학당 앞으로 갔더니 선혜가 주차장에서 낯선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곤란한 상황 같다. 도와주러 나갈까.

창문을 내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남의 이야기나 훔쳐듣는 생쥐같은 놈이 되었을까. 분명 선혜 때문이다.

선혜가 한사코 거절해도 그 남자는 차에 타라고 막무가내다. 뒤이어 달려온 선혜의 친구 주희가 오자 선혜도 할 수 없이 주희를 따라 그의 차를 타고 갔다.

내가 그녀에게 소홀한 사이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접근하다니. 그 놈은 누구지.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갔다. 백화점으로 들어간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내가 뭐하는 짓인지. 남의 뒤나 캐고 다니는 할 짓 없는 놈이었나.


 아침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찬바람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붉은색 망토를 입은 그녀가 잔뜩 움츠리고 걸어왔다. 그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형식적인 목례만 하고 줄을 섰다.

그녀는 버스에 오르자 내 옆을 지나 뒷자리로 가버렸다. 그녀 역시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느껴서 믿고 소홀했더니 눈빛이 너무 차갑다. 분명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화가 났겠지. 그녀는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쫓기듯 후다닥 내려서 어학당으로 걸어가버렸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늘따라 왜 결재할 것들이 이리도 많은지. 4시다. 조금있으면 퇴근시간이다. 어학당으로 전화를 했다.

“감사합니다, 어학당 정선혭니다.”

다행히 그녀가 받았다.

“총무과 민휘진입니다. 오늘 바쁘지 않다면 외국인 학생 건에 대해 물어볼게 있는데요.”

“지금요?”

난처한 듯 했지만 그녀는 수락했다. 외국인 학생 재정보증에 대한 서류를 가지고 갔다. 차실장이 먼저 나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