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발이 엄마 (어느 윤락녀 이야기)

은하철도 200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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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발이 엄마.(어느 윤락녀 이야기)


1.

허공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만 모인 강남의 고급아파트 단지다. 12동 805호......
오십 초반의 남자와 같이 밖으로 나와서 종합상가에 붙어 있는 조그만 커피숍에 들어섰다. 당황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마음으로 살아온 것 보다도 머리로 살아온 티가 한눈에 보이는 그는 영악한 미소 속에 태연함을 가장하여 내 앞에 앉았다.

"영선이가 선생님을 무척 보고 싶어하고 있어요." 나지막한 내 음성에도 그는 놀래는 듯 했다.
"네...... 벌써 이십 년을 넘은 세월이라......" 그는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럼...... 만나시겠어요?" 나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선이 아버지인 그는 나의 뜻하지 않은 방문에 당황을 하였던 것이다.
이 십여 년 전에 버린 자식의 소식을 들은 그의 얼굴에는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그가 무척 약싹 빠르게 처신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영선이 엄마와 헤어진 후에 곧바로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였다. 영선이 엄마하고는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던 동거생활 이였다.

당시에 영선이 엄마는 술집의 아가씨로 일하고 있었다. 서로가 눈이 맞아서 아이까지 가졌지만 막상 좋은 환경을 가진 영선이 아버지와의 결혼문제에 있어서는 난관에 봉착했다. 영선이 엄마가 자의로 헤어졌는지, 아니면 배신적인 영선이 아버지의 행위로 인하여 그랬는지는 모른다. 다만 헤어지는 마당에 영선이는 고아원에 맡겨졌고 십여 년 후에 영선이 엄마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던 것이다.

아내가 모르는 전처의 자식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고아원에 맡겨졌던......
그는 움추러 들었다. 만약에 이 사실을 지금의 아내와 자식이 알게 된다면 평온한 가정에 불화가 올 것이다. 본능적으로 가정을 방어하고 싶은 심정이 전처의 자식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아파트 앞에 줄줄이 서있는 고급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혈색이 좋다 못하여 몸이 비대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이 곳은 확실히 부촌의 티가 난다. 가난한 동네의 사창가에 자리잡은 내가 근무하는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부유한 그들의 얼굴 위로 겹친다.

나는 귀족의 논리를 안다.
자본주의 귀족들의 생리는 암세포의 끈질긴 탐욕과 강한 공격력을 방불케 한다.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의 뒤에 숨겨진 번쩍이는 칼날과 단호함은 그들에게 도원경같은 이런 환경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파괴하는 추호의 도전도 허용치 않는다.

나는 사방으로 높이 솟은 아파트 숲을 빠져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 십여 년을 그리워 하던 아버지이지만 막상 만나면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이미 다른 가정을 꾸려 안주하고 있는 아버지인데 그 옛날의 핏줄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버려진 자는 버린 자를 그리워하고 살지만 버린 자는 이미 멀리 떠나 있기 마련이다.

자식은 두 명의 애비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애비는 자식을 몇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먼저 이 세상에 온 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삼발이 엄마라는 영선이의 고운 눈매를 떠 올렸다. 간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찾아 달라고 애교를 떨던 영선이가 냉철하게 아파트 입구를 빠져 나오는 내 마음을 알면 얼마나 실망을 할까.......


2.

삼발이 엄마라고 내가 별명을 붙인 영선이는 창녀다. 길거리에 버려진 채로 방황하던 푸들 종류의 강아지를 데려다 키웠는데, 뒷다리 한 쪽이 부러져 쓰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걷는다. 오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렇게 된 모양이다.

내가 오 년째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병원에 단골손님으로 오는 영선이는 귀엽게 생긴 얼굴에 애교가 많았다. 항상 나는 영선이를 보고 "삼발이 엄마" 라고 불렀다.
영선이는 윤락녀들에게 잘 걸리는 성병을 치료하러 왔을 뿐만 아니라, 나를 잘 따랐기 때문에 심심하면 병원에 놀러 왔다. 물론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의 소개로 병원에 자주 왔으며 가끔은 저녁식사를 같이하며 농담도 주고 받기도 하였다. 일종의 영업상의 친목이라고 봐야겠다. 하여튼 나는 윤락녀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내 딸같은 이웃이며 고된 삶의 시련을 같이 겪는 같은 하늘아래의 우리들이다.

그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던가......
사무실에서 밤늦게 까지 어슬렁거리며 있던 나에게 술에 취한 삼발이 엄마가 찾아왔다. 품에는 강아지를 안고 손에는 캔맥주를 들었다.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서서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영선이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이 십대 후반의 청년 이였다, 작년에 단골손님으로 만나서 그렇게 정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또래의 젊은 남녀인데 정상적인 생활의 청년과 몸을 파는 창녀와의 차이가 그렇게 대단히 느껴 질리는 없을 것이다. 처음 그녀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아예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사랑에 대하여 회의감을 표하였지만 그렁저렁 잘 지내는 것을 보고는 대충 넘어갔다.

동로마 제국을 구한 테오도라 왕비가 생각났다.
적군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유스티아누스 황제에게 테오도라는 말했다.
"대로마의 위상을 버리고 비겁한 도망을 택하시지 마시고, 여기서 죽을 각오로 결전을 벌려서 적들을 물리치십시오. 어찌하여 황제는 겁 많은 대신들의 혀에 휘둘리십니까?"
일갈을 토하여 황제를 독려하였던 테오도라 왕비가 창녀 출신이 아니였던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영선이는 애인과 결혼을 하기로 하였는데 자신의 가족이 전혀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과거를 다 이야기 하였다.
나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이름과 나이를 대충 듣고는 아버지를 찾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입양아에 관한 테레비 프로를 본 일이 있다.
생후 다섯 달 만에 유럽으로 입양을 간 아기가 이 십대 처녀가 되어서 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다. 자신을 입양 보낸 기관의 도움으로 멀리 시골마을 까지 찾아간 그녀는 어머니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다시금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혼자서 쓸쓸히 공항을 빠져 나가는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사랑한다는 말을 울음으로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자식에게 용서를 받는 부모가 과연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원망하지 않는다는 자식의 말은 공허한 독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영선이의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 온 다음날에 나는 영선이 아버지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그녀에게 건너 주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런 언어로 말했다.
"너무 큰 기대감을 갖지 말아라. 그 분도 어려운 세상을 홀로 살기 힘들어 재혼을 하여 이미 다른 가정을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처신해라."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연락처를 받아 든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 동안에 얼마나 부모가 그리웠을까......



3.

형님으로부터 특별한 부탁을 받았다.
조카가 결혼을 하는데 여러 가지 잔 일을 도와 달라는 것이다. 조카인 선희는 성악을 전공하였다. 국내의 저명한 성악교수 밑에서 수습을 받고 외국에 유학까지 다녀온 선희의 결혼 상대방은 현재 사법연수원생으로서 사법시험을 통과한 엘리트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형님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형님이지만 서로의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고 또한 살아온 과정도 천지차이가 난다. 형님은 돈에 관한 면에 있어서는 타고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형수님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지금은 주위에서 부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와 땅투기가 성행할 때에 앞서서 뛰어다니던 형님은 길거리에서 돈을 주워 오듯이 재산을 모았다. 어눌한 계산에 항상 뒷전에서 서 있던 나에게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수환을 발휘하였다.
부자가 되려면 저렇게도 되는 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저기에 땅을 사고 그 주변이 개발되면 몇 배로 뛰어 오른 땅을 되파는 수법으로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드디어 서울 시내에 커다란 빌딩을 몇채 소유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나는 네 식구를 부양하는 것 조차 힘들어 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형님이 나를 도와준 것도 없었다. 나는 내 식대로 살고 형님은 그 나름대로 재주를 피우며 산 것이다.

예식장을 예약하고 같이 살 아파트를 구입하며 살림살이를 마련하는 것들을 조카와 같이 상의 하였다.
미래에 판검사를 사위로 맞이한다는 들뜬 기분에 형님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말 한마디면 뒤따라 돈이 술술 풀려 나왔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공부하나로 인생의 승부를 건 조카사위는 휘황한 결혼준비에 들떠 있었다. 이제는 돈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고시공부 하던 시절에 하숙비 조차 구하기 힘든 가난에 시달렸지만 돈 많은 집안의 딸을 아내로 삼았으니 팔자가 편 것이다.

권력과 명예가 필요한 형님과 돈이 필요한 조카사위의 묵시적인 계산법은 들어 맞았다. 그 매개체 역할을 조카가 한 것이다.
나는 조카사위가 될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총명한 눈매에 의젓한 모습으로 그는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앞으로 조카만 잘 다스리면 그에게는 풍족한 생활이 보장될 것이다. 자본주의 귀족의 참다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4.

나는 삼발이 엄마의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선이 아버지가 나를 불러내어 한가지 부탁을 한 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내도 전혀 모르는 전처의 자식이 있다는 것을 영원히 숨기고 싶어하였다. 그리하여 나에게 부탁한 일이라는 것이 바로 돈과 자식의 정체를 바꾸자는 것 이였다. 과거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할 테니 영선이로 하여금 자신을 잊어 버릴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구한 것이다.
나는 그 일에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일거에 거절하였다. 물론 영선이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였지만 핏줄의 가슴에 멍든 상처를 돈으로 쳐 발라서 해결 될 일은 아닌 것이다.

그 당시에 영선이는 지독한 상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렵게 만난 아버지였지만 첫 눈에 자신을 이방인 취급하며 거북해 하는 것을 알았다. 이 십여 년간을 품어 왔던 그리움이 차가운 아버지의 눈길에 부셔져 나갔고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아버지를 부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챘다.
이것이 꿈에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 이였는가......

설상가상 영선이의 애인도 점점 멀어져 가기 시작하였다.
한꺼번에 의지하고 싶었던 아버지와 애인은 침묵으로 영선이의 외침을 외면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떠나면 잡기 힘들다. 그리움이 똘똘 뭉친 깊은 밤에 여자의 몸이 그리워 돈을 들고 찾아오는 남자 품에 안겨 자면서 영선이는 점점 미친 상태로 변하여 갔다.

어느 날 밤에 영선이는 삼발이를 품에 안고 나에게 왔다.
"히히~~~ 아저씨, 나를 보고 손가락질 하면서 욕했지?"
뒤에서 내 어깨를 툭 치며 던진 영선이의 흐물흐물한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랬다.
"아저씨, 정말 나를 욕하면 못써....... 알았지? 히히히~~~"
그리고 영선이는 획 하고는 뒤 돌아서더니 총총히 골목 안으로 사라진 것 이였다.

약물중독 이였다.
러미널이라든가 아니면 아티반을 다량 복용한 것이다. 휑한 눈동자에 맥이 풀린 목소리로 짐작하여 한 눈에 약물중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좇아 가서 영선이가 손님을 받는 이층의 방문을 열었다. 온통 술 냄새가 진동하는 방에는 삼발이가 침대 밑에서 쭈구리고 엎드려 있었고 영선이는 풀린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며 손을 휘젓고 있었다.

"히히~~ 아빠,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미안해요......."
"준호씨, 전화 한번만 줘 봐....... 정말 보고 싶어, 결혼하자는 말은 안 할께...... 전화 좀 해~"
나는 영선이의 처참한 모습에 가만히 문을 닫고 뒤 돌아섰다.

영선이는 무기력한 외로움에 깊게 빠져 들었다.
힐책하는 나를 멀리하기 시작한 영선이지만 나는 그녀를 알콜과 약물중독에서 끄집어 내려고 몇 번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둠이 창녀촌 골목에 내리면 으슥한 구석에서 그녀는 손님을 미친 듯이 불렀다. 너무도 외로웠던 것이다. 화대를 지불하고 여자의 몸을 품었던 남자는 새벽이면 떠났고 그 누군가 머물다가 간 빈자리는 깊은 슬픔과 적막으로 다가왔다.
한 병의 소주와 환각제가 그 자리를 채웠다. 삼발이를 품에 안고 영선이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하며 울었고 또한 웃기도 하였다. 수면위로 뜬 의식은 서서히 깊은 환각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그렇게 영선이는 미쳐 가고 있었던 것 이였다.



5.

나는 조카의 결혼식 때문에 무척 바빴다. 저녁에 병원에서 퇴근하자 마자 조카 결혼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몇 백억 대의 부자집에서 미래의 판검사를 사위로 맞이하는 준비는 꼼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38평 짜리 고급 아파트를 분양받고 거기에 꽉 차도록 살림살이를 들여 놓았다. 내 돈은 아니지만 남의 돈이라도 맘대로 쓰는 것은 재미있다. 안방에는 커다란 침대와 장롱이 들어섰다. 사위될 사람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여 최고급 외제 오디오를 들여놓고 따로 마련한 서재에는 한 쪽 벽이 책으로 꽉 찼다. 거실과 주방에 들여 놓은 가구들이 번쩍 거리며 돈 자랑을 하듯이 버티고 있었다.
고급 승용차도 새로 샀다. 이제는 호텔에서 있는 결혼식장을 예약만 하면 되는 것이다.

조카와 사위 될 청년은 내가 형님의 부탁에 따라서 마련한 모든 준비에 만족하였다.
단순히 돈만 많은 집안에서 이제는 명예와 권력도 함께 갖추어진 귀족으로 자리매김 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한 격식에 알맞은 준비를 한 나를 보고 조카와 사위 될 청년은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삶이란 겉으로 드러난 형체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만족과 즐거움으로 나머지 인생을 점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사인 것이다. 말쑥한 옷차림과 기쁨에 들뜬 선희를 보면서 말했다.
"결혼이란 시작에 불과할 뿐이야....."


6.

정신없이 지내던 날 중의 하루였다.
아침에 병원에 출근하여서 근무일지를 체크하던 나는 깜짝 놀랬다. 어젯밤에 야근을 하였던 의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영선이가 사망했다는 어젯밤 기록은 무슨 말이예요?"

당직 의사의 말로는 어젯밤 두 시 경에 영선이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것 이였다.
영선이가 이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술 취한 손님하고 사소한 말다툼을 벌렸는데 손님이 영선이에게 손찌검을 하자 옆에 있던 삼발이가 으르렁 거리며 달려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손님은 발길질을 하였고 걷어 채인 삼발이는 벽에 나가 떨어졌다. 영선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던 삼발이가 죽는 시늉을 하며 깨갱 거리자 손님의 멱살을 붙잡고 밀치고 당기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영선이는 이층의 계단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던 것 이였다.

응급실에 실려 온 영선이를 본 당직의사는 직감하였다.
피에 범벅이 된 머리를 슬쩍 들어 본 의사는 두개골이 파열 되었음을 알았다. 이미 살 가망은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파르르 떨던 영선이의 손끝이 순간에 정지 되었다.
27년 간을 살아온 그의 삶이 마감하는 순간 이였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애인에 대한 열정도......
순간의 정지에 모두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나는 영안실로 내려와 영선이의 시신을 확인 하였다.
생기가 빠진 하얀 얼굴의 눈가에는 검은 죽음이 깃 들었고 다문 입술에는 고요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7.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영선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영선이의 죽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는 비정한 인간의 심성에 눈을 감았다.
멈짓하는 영선이 아버지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들렸지만 그 목소리 뒤로 안도의 한숨이 흐르고 있었다.
영원히 전처의 자식을 숨길 수 있는 확실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더 이상 평온한 가정이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일이 바로 조카의 결혼식이다.
더 이상 영선이의 일에 매달릴 수 없어서 이틀간의 휴가를 내고 병원에서 일찍 퇴근하였다. 그 동안에 수고가 많았다고 조카와 사위될 청년이 저녁식사에 초대를 하였던 것이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영선이의 눈물인가.......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쪽 구석에서 조카가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태연한 자세로 테이블에 앉아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창 밖을 보았다. 영선이는 계속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셨다. 조카는 화장실을 간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었다.

조카 사위가 될 청년과 단 둘이서 마주 앉아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맨 단정한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는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박준호씨....."
나의 나지막한 음성 이였다.
청년의 어깨가 움찔 거리며 떨리는 듯 하였다. 순간적으로 나의 눈을 쳐다보더니 이내 눈길을 테이블 바닥에 깔아 버렸다.

"영선이가....... 준호씨를 그렇게 기다리던 영선이가...... 이제 준호씨를 아주 떠났습니다."
싸늘한 분위기가 얼음장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를 쨍쨍 하고 내는 것 같았다. 청년은 눈길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 꼼짝도 안하고 있다.

"어젯밤에 영선이는 사고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이제 준호씨는 마음놓고 조카와 결혼하여도 됩니다. 물론 준호씨의 비밀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조카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의 약속을 드리겠어요...... 나는 준호씨를 사창가에서 본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8.

영선이의 아버지는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가지의 행정절차를 거쳐서 서울시에서 영선이의 시신을 인수하여 갔다는 것이다. 홀로 화장터의 재로 변하여 세상을 떠난 그의 영혼 앞에는 꽃 한 다발도 없이 그렇게 쓸쓸했다는 것 이였다.

안개꽃을 좋아 하였던가......
나는 안개꽃을 한 아름 사서 영선이가 손님을 부르던 골목의 한 구석을 찾아갔다.
너무도 슬프게 세상을 살았던 그녀의 영혼에 경의를 표하고 싸늘한 세상이지만 꽃 한 다발 정도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아쉬운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

어제의 어둠처럼 오늘도 어둠이 내리지만 찬 바람부는 이 골목에는 더 이상 영선이의 손님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록 알콜과 약물에 중독된 그녀였지만 그래도 죽기 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더 낳지 않았는가 말이다.

삼발이는 영선이가 죽은 후에 영선이의 집 앞을 뒤뚱거리며 끝없이 맴돌았다는 것이다.
밥도 먹지 않고 끙끙 거리며 집 앞에서 영선이를 한없이 기다렸는데,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눈곱이 잔뜩 끼고 털이 숭숭 빠진 삼발이는 동네 사람들에게 몇 번을 목격 되었다고 한다. 오라고 하여도 오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그냥 뒤뚱대며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아무도 그 강아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영선이가 서 있던 골목에 홀로 서 있었다.
나는 영선이와 삼발이를 신이 데려 갔다고 확신한다.
만약에 신이 그들을 데려 가지 않았다면 나는 더 이상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