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의 영원한 지병- 짝사랑

김정미200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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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마음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지?"

"이 외로움을 어찌할거나"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니...남편이 없냐 자식이 없냐"

엄마랑 둘이 살 때를 생각하면 대식구가 되었으니...

감히 외로움이란 단어를 세상에 내 놓아 설득력이 있어질 리가 없다

주위로 부터 어떠한 답을 기대하고 내 놓은 이야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시작도 끝도 있을 수 없는 독백이었으니까

문제는 나의 지병이 죄인이지

상사병- 짝사랑에 목말라 생기는 병

내가 이 병을 앓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고 지금도 치유할 마땅한 약을 찾지 못하고

매일 매일 이병원 저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백약이 무효임도 일찌기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살아생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노력해볼 생각이다

누군가 병은 자랑을 하라고 했으니

오늘은 지면을 통하여 사정없이 자랑을 해 보고자 한다

혹시나 아는가...일생을 괴롭히던 이 지병에 묘약이라도 처방해 줄 지

 

그러니까...내 짝사랑의 기원은 아주 어릴때 부터로 거슬러 내려가야 한다

아마 서너살 적이었으리라

나이가 짐작 가능함은 다섯살 이전에 고향을 떠나왔다고 엄마에게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시절...발명의 원인은 역시 식구가 많은 집에 대한 부럼이었으니

그 애들은 다른 애들이 않 놀아줘도 별 아쉬움이 없다

문밖을 기웃거리며 방안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엿들어본다

한바탕의 웃음소리...소곤 소곤 정다운 대화들...다시 웃음소리

방안엔 무슨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무슨 놀이들을 하고 있을까

얼마나 신이 날까

그 대가족집의 모든것이 부럽기 그지없다

김치에 깡보리밥...때에 절은 두꺼운 이불...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문풍지까지도

그 식구많은 집에 나 하나쯤 끼워준다고 그리 손해날 것도 없을텐데 말이다

아 인정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세상 사람들이여

어느해 가을이었다

엄마는 텃밭에 농사를 지어 제법 많은 양의 고구마를 수확하셨다

기억으로 헛간에 두가마니의 고구마가 나란히 놓여있었던 것 같으니까

난 생각해 낸 것이 고구마를 이용한 접근방법이었다

역시 머리는 그때부터 비상함이 남달랐던 것 같다

고구마는 참 용도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다른 곡식에 비하면...

화롯불에 구우면 노릿 노릿한 군고구마가 되고

가마솥 밥위에 얹어 찌면 말랑 말랑한 찐 고구마가 되며

겨울밤 껍질을 벗겨 날것으로만 먹어도 당분이 밤 못지 않으니

이런 완벽한 가치를 인정받을 곡식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후 엄마의 눈을 피해 고구마 서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가슴 조마 조마해가며 치마 가득히 고구마를 주워담았다

누가 볼 새라 부리나케 친구집으로 달려가 자신있는 목소리로 나의 존재를 알린다

"나 고구마 가져왔다"  끝은 자랑스럽게 올리면서 의기양양한 표정까지 지어보인다

우린 고구마를 불에 구우면서 서로의 까만 얼굴을 바라보며 많이도 웃었다

달콤한 고구마의 단 맛보다 더 더욱 좋은게 함께 함의 순간들임을 그 아이들은 모르리라

그후에도 나의 고구마 행렬은 멈출 수가 없었다

심심해서 좀이 쑤시는 날엔...엄마에게 야단맞고 울적한 날엔...이유없이 허전한 날엔

어김없이 고구마가 정미의 희생양이 되어주어야 했다

고구마는 더 이상의 고구마가 아니었다

고구마여/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너는 단지 고구마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 너는 비로서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의미가 되었으니...

김춘수님~죄송하옵니다

나와 아랫동네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수단으로 완벽한 자리매김을 하고있던 어느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어지는 법

어느날 엄마가 고구마를 꺼내시려고 가마니속에 손을 집어넣기에 이르렀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도 그럴것이 가마니속이 텅 비어 있는게 아닌가

이상도 하여 가마니를 들어보니 빈 가마니가 아주 가볍게 들리는게 아닌가

이 고구마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늘도 솟았나..땅으로 꺼졌나..쥐가 이 많은 고구마를 다 먹었을리는 만무하고

엄마로 부터 그 간의 기뻤던 날들을 한 순간에 다 보상받을 혼이 났으니

이로써 죄 사함을 받은 셈치고 고구마의 기억도 희미해 져 갈 즈음 그 마을을 떠나왔다

장소와 사람이 바뀜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자라면서 이런 종류의 짝사랑이야 어디 한두가지의 기억 뿐이었겠는가

눈깔 사탕에서부터 예쁜 핀...딱지, 구슬, 심지어는 정성스레 그린 인형그림까지

짝사랑과 바꾸려는 안간힘이 눈물나도록 절실했었으니

그러나 참 이상하다

여름날 갈증으로 한 모금 마신 물처럼 돌아서면 다시 더한 갈증에 시달리는...그런것이 바로...

 

지금은 어떤가

조금 나아졌음면 이런 고백까지는 없었으리라

그래도 그 시절엔 달콤한 고구마 몇개로, 눈깔 사탕 몇알로 가능한 짝사랑의 흔들림이

이젠 더 큰 무엇에도 요동치 않으니 이를 어쩌리

짝사랑의 대가 김정미는 어딘가에 있을 이루어질 사랑을 찾아 길 떠나보지만

번번히 눈물만 짓고 돌아오게 된다

물질에도...건강에도...명예에도...인간관계에도...심지어는 마음의 평화에도

역시...한치의 이룸을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은 목말라 하는 나를 내려다 보기만 하며 언제까지나 침묵만 하고 있다

역시 아무도 놀아 주지 않는다

문앞에서 서성이다 풀 죽어 돌아오는 그간의 세월이 슬퍼 새삼 가슴에 강물이 흐른다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세살적 짝사랑 여든까지...속담을 핑게로 웃자고 하는건 아니다

오늘 아침 지병이랍시고 우스개 비슷하게 세상에 내 놓으면서

다시 마음을 다져보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

그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했건만 다시 일어나 길을 떠나보려고 한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딘가에 있을 꼭 이루어질 사랑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