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19-

러브콜2007.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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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생일

  양선아는 병원에서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의사로부터 앞으로 생명이 길어야 반년 남았다는 사형선고만 받고 열흘 만에 퇴원을 했다. 내일은 음력으로 유월 칠일이고, 그녀의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생일만큼은 집에서 나와 함께 보내고 싶어 했다. 그녀를 부축하고 병원을 빠져나오는 내 마음은 슬픔과 괴로움으로 가슴속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는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 양선아가 좋아하는 베토벤의「비창」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처롭고 슬픔이 베어 있는 미소였다. 그러다가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려다 말았다. 나는 그녀의 야윈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내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

  양선아의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녀는 깨끗하게 잘 정돈된 집안을 보고 몹시 감탄하며 좋아했다. 오늘 그녀의 퇴원을 위해 나는 어제 저녁에 열흘 동안이나 집을 비웠던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해 둔 터였다. 나는 그녀의 침대 옆에 장미꽃 서른 송이를 꽂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미꽃이 너무 예뻐요.」

  양선아가 침대에 누운 채 나의 이러한 배려를 고마워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장미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직접 좋은 것으로만 골라서 꽂은 거야.」

  나는 꺼칠해진 양선아의 볼에 입술을 갖다 대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얼마 동안 장미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선아는 택시로 아파트까지 오는데도 힘이 들고 피곤했던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양선아가 잠들자 나는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차오르는 것 같은 답답함을 안은 채 밖으로 나와 놀이터 벤치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때 벌레 먹은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날아와 내 머리 위에 살짝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과연 결정을 잘 한 것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충분히 심사숙고한 끝에 내릴 결정이었지만, 항암 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더더욱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의 결정을 했더라도 후회는 마찬가지로 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침에 그토록 맑았던 하늘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이제 장마철로 들어서는 시기인 것이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가슴 속 깊이 들이마셨다 한숨과 함께 길게 내뿜고 나서 손가락을 오므리면서 여섯까지 세었다.

 「앞으로 육 개월…….」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될 만큼 양선아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이제 겨우 서른 살인데,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나는 새벽에 깨서 자고 있는 양선아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그녀의 생일 축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물은 그녀를 깜짝 놀래 주기 위해 그저께 저녁에 청소하러 올 때 갖다 놓은 것들이었다.

  먼저 거실 양쪽 벽면에다 생일 축하용 풍선을 달고, 그 가운데에다「Happy Birthday To 선아!」라는 문구를 은색 반짝이 종이 위에다 검은 글씨로 크게 써 붙였다. 그렇게 해 놓고 보니까 마치 유치원생들이 하는 생일잔치 같아 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을 느꼈다. 사실 이런 준비를 한 것은 재미있으라고 진주-내 딸의 이름이었다-의 일곱 번째 생일 때 했던 것을 흉내 낸 거였다.

  다음으로 나는 포장을 벗겨 내고 케이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세 개의 빨간 초를 꽂았다. 열 살 짜리 긴 초가 세 개였다. 순간 그녀의 이번 생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앞에 내 가슴속에서 슬픔이 덩어리가 되어 목구멍 밖으로 울컥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이시여, 제발 바라옵건대, 내년 이 날 이 시간에도 내가 그녀를 위해 열 살짜리 긴 초를 세 개, 한 살짜리 짧은 초를 한 개 꽂을 수 있도록 그녀를 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시여…….」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아 하나님을 찾으며-요즈음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았다-기도 드렸다. 그러는 내 모습을 꿈도 없는 깊은 잠에 평화롭게 빠져들었다가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온 양선아가 눈물을 흘리며 훔쳐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거실 가득 눈부신 햇살이 밀려들었다.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음식 준비를 모두 끝내고 양선아를 깨우자, 자는 척 하고 있었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는 냄새에 식욕이 마구 솟아요.」

 「그래야 겨우 미역국 냄새인데 뭐.」

 「내가 미역국을 얼마나 좋아하는 데요.」

  가끔 아내가 미역국을 끓일 때 중간중간 우연히 봤던 것을 그림 맞추기 하듯 조각조각 붙여 가며 세상에 태어나 처음 끓인 미역국이었지만 다행히 내가 내 자신을 대견스러워 할 정도로 냄새뿐만 아니라 맛도 좋았다.

  난 양선아를 위해「Happy Birthday To You」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줬고, 내 노래가 끝나자 그녀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으며 촛불을 껐다. 그녀의 웃음은 억지로 떠올린 쓴웃음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어쩌면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떨고 있었던 것이다.

 「생일 축하해.」

 「고마워요.」

  양선아의 눈에 슬픈 빛이 잠시 일렁이다 사라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한숨만 들릴락말락하게 내쉬었을 뿐 뭐라고 위로의 말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무거운 쇳덩어리에 눌려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선아야, 잠깐 눈을 감아 봐.」

 「왜요?」

 「뽀뽀해 주려고.」

 「뽀뽀요?」

 「응.」

  양선아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수줍어하는 얼굴로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내 입술을 포갰다 떼며 주머니 속에 감추어 두었던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꺼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선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으로 하는 선물인 셈이었다. 예전에 몇 번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한사코 반대하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어, 비로소 오늘 처음으로 그녀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선물을 준비한 거였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움직일 때마다 색깔이 미묘하게 변하는 앙증맞은 스페이드 모양의 팬던트 목걸이였다.

  나는 양선아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걱정을 하며 조심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뭐예요?」

  양선아가 눈을 뜨며 물었다.

 「생일 선물이야.」

  선물을 받아 든 양선아는 내 걱정과는 달리 예상 못했던 내 선물에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선물을 무릎 위에다 얹어 놓고 꽃 그림이 그려져 있는 포장지를 뜯고서 작은 상자를 열었다. 

 「어때? 예쁘지?」

 「예. 예뻐요.」

  값나가는 건 아니었지만, 양선아의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서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케이크를 나중에 먹기로 하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을 차려 놓은 식탁에 가서 앉았다. 양선아가 먼저 내가 끓인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떠서 맛을 봤다.

 「맛이 괜찮아?」

  나는 면접시험을 치르는 신입사원 지망자 같은 표정을 하고 식탁 너머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예. 맛이 좋아요. 옛날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그 미역국 같아요.」

 「에이, 설마 그 맛을 따라갈 수 있겠어.」

 「정말 맛있어요. 미역국을 많이 끓여 본 솜씨예요.」

  양선아의 표정은 정말 맛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야. 오늘 처음 끓여 본 거야.」

 「정말이에요?」

  양선아의 커다란 눈이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깜박거렸다.

 「정말이야.」

 「믿을 수 없어요.」

 「정말이라니까.」

  그러나 양선아는 입이 소태처럼 써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아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한 숟가락이라도 더 그녀 입에 떠 넣어 주려고 숟가락을 들이대었지만,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한사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왜 그만 먹어? 미역국이 맛이 없었던 거지?」

  나는 양선아가 정말 미역국이 맛이 없어 안 먹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그녀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 위해 농담을 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소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아니에요. 너무 맛있어서 아껴 먹으려고 그래요.」

  내 마음을 눈치 챈 양선아가 나를 향해 웃어 보이며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 넘겼다. 그녀는 놀랍도록 침착해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양선아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그녀가 그곳에 간절히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아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야?」

  양선아가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지옥이든 천당이든 꼭 데려다주겠다는 뜻으로 나는 그녀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벽제 용미리 공원묘지예요.」

 「용미리 공원묘지? 거긴 왜?」

  양선아의 엉뚱한 말에 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곳에 우리 어머니가 계시거든요.」

 「아, 그래…… 그러면 지금 당장 가자.」

 「고마워요.」

  양선아가 금방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맙기는……」

  나는 괴롭고 슬픈 내색을 감추려고 양선아를 가슴에 안으며 가볍게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양선아는 창백하고 지친 모습으로 내 부축을 받으며 아파트를 나섰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오늘 날씨만큼이나 환하고 밝아 보였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나오던 택시 한 대가 눈치 빠르게 우리 앞에 와서 멈췄다.

 「벽제 용미리 공원묘지에 갈 수 있습니까?」

 「요금을 더 주셔야 하는데요?」

 「알았습니다.」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가 용미리에 도착할 때까지 양선아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금은 충분히 계산해 드릴 테니까는 한 시간 정도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나는 돌아갈 것을 대비해 운전기사에게 기다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죠.」

  나는 흔쾌히 승낙하는 운전기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나서 양선아를 등에 업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녀의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풀이 무성한 어머니의 묘소 앞에 앉은 양선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양선아의 어머니 산소 옆엔 아직 들어오지 않은 빈 산소 자리가 무성한 풀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 나 조금 있으면 엄마한테 가게 될 것 같아. 그때 우리 만나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실컨 나누자.」

  양선아는 울음을 삼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차마 그런 그녀를 바라볼 수 없어 올라왔던 길을 뒤돌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