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21-

러브콜200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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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 서서

  점점 극심해지는 통증을 멎기 위해 진통제의 약을 두 배로 늘리고 매일 두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하는 양선아는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고통스럽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생명은 고작해야 삼 개월이었다.

  거실 소파에서 선잠을 자던 내가 숨이 끊어질 듯 뱉어내는 양선아의 신음 소리에 눈을 뜬것은 새벽 세 시경이었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후닥닥 그녀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가 침대에 앉아 고통을 참기 위해 몸을 숙인 채 가슴을 움켜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선아야!」

  통증으로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양선아의 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너무, 너무…… 아파요.」

  양선아가 이렇게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해줄 수 있는 게 그저 부둥켜안고 등을 쓰다듬어 주는 일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내 심정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차라리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녀의 체중은 초등학교 아이들 수준으로 줄어들어 잎 떨어진 나뭇가지 마냥 척추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선아야, 내가 네 고통을 대신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하늘이 저주스러웠다.

  나는 양선아를 병원에서 퇴원시킬 때 간호사에게 주사 놓는 법을 배웠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인형을 가지고 여러 번 실습까지 했었다. 먼저 주사액의 목 부분을 따서 주사액을 주사기에 삽입하고, 주사기를 위로 들어올려 손가락을「톡톡」퉁겨 피스톤 내부에 달라붙은 공기방울을 위로 보낸 후 피스톤을 조금 밀어 올려 주사기 속의 공기를 밀어 올리면 공기가 빠져나가고 몇 방울의 주사액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흩어진다. 그리고 나서 살이 많은 엉덩이 바깥쪽 부분에 주사를 놓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약의 효과가 떨어지면 참기 힘든 통증은 다시 고개를 뻣뻣이 치켜세우고 양선아를 괴롭혔다. 통증 억제 시간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여덟 시간 정도 약의 효과가 있었으나, 진통제를 맞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약의 효과가 다섯 시간 정도로 단축되었다.

  뿐만 아니라 진통제로 인한 부작용인지 아니면 암의 진행이 더 심화되었는지는 몰라도 양선아는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냄새까지 역겨워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정맥주사에만 의존하여 영양분을 섭취해야 했다. 그런데 정맥주사는 혈관을 가늘게 했으며, 가늘어진 혈관마저 나중에는 숨어 버려 그녀의 양쪽 팔은 주사를 놓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죽음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양선아는 온몸을 찢어발기듯 엄습하는 잦은 통증이 아니더라도 죽음의 그림자가 뒤에서 다가와 서서히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양선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가 맨 아래 서랍을 열고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서 여러 장의 명함을 꺼내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 명함들 뒷면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시가 적혀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명함 앞면에 인쇄된 이름, 최은수……. 친구 유진이와 같이 다녔던 룸살롱에서 만난 남자, 양선아는 한 번도 그가 잘 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뿌옇게 눈앞을 가린 눈물 사이로 지난날의 기억들이 영화 장면처럼 다가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스럽고 슬펐던 기억들, 그 속에서도 한 번쯤은 다시 돌아가도 좋을 즐겁고 아름다운 기억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최은수와의 만남이었다.

  최은수는 양선아를 감동시키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처럼 행동을 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핸드폰에다「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장미꽃 백 송이로 만든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했고, 그녀가 일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룸살롱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집까지 택시로 바래다주기도 했다. 또 헤어질 때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 한참 동안 서 있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끌어당겨 안고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서운해 하는 목소리로「내일 전화할게」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다음 날에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힘든 생활에 지쳐 있는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그 사람은 가끔이라도 옛 애인 생각하듯 날 생각했었을까?」

  그러나 양선아는 최은수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를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솟구치면서 그녀의 가슴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분명 그 사람은 나를 잊었을 거야.」

  양선아는 이혼을 하고 나서 생활의 여유를 찾았을 때, 그때서야 최은수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만나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할지, 아니면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이다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아니, 그녀는 그를 만날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양선아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 옆에 있는「갤러리」커피숍을 기억해 냈다. 그 커피숍이 아직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생각난 김에 당장 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커피숍 안은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사방 벽면에 그림들이 걸려 있는 것도 그대로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바뀌지 않았다.

  양선아는 오래 전에 최은수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살펴봤다. 그 당시「창」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던 곳에 지금은「꿈」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최은수를 기다리고 있는 듯 양선아는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문을 밀치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양선아는 종업원을 불러 커피를 주문했다. 그녀가 이곳에 온지 삼십 분이 지났지만 최은수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또 한 잔의 커피를 주문했다.

  양선아는 최은수의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그가 다니던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 받은 여직원은 그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입사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그녀가 그의 이름을 대자「그런 사람이 없으니, 잘못 전화를 했다」면서 쌀쌀맞게 말하고는 그녀가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후엔 전화를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양선아는 최은수와 만나 함께 했던 나날들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왔다.

  양선아는 재떨이를 갖다 놓고 뒷면에 시가 적힌 최은수의 명함을 한 장씩 라이터 불로 태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뺨과 목을 타고 내려 브래지어 속으로 흘러 들어가 속옷을 적셨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양선아가 나에게 말했다. 그녀의 손등엔 정맥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오늘 출근하지 않으면 안돼요?」

 「바쁜 일만 얼른 처리하고 일찍 들어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나는 불안해하는 양선아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 위해 두 손을 부드럽게 잡고 정겨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일찍 들어오실 거죠?」

  양선아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꼭 일찍 들어올게.」

  나는 양선아의 손을 끌어다 내 얼굴에 갖다 대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서야 그녀의 얼굴에서 불안한 표정이 사라졌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려 왔다. 양선아를 간병하는 아주머니가 온 것이다.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더 불안해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밖의 외출은 물론 출판사 근무까지도 자제하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출판사의 일을 마무리해 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파트를 나서면서도 자꾸만 양선아의 불안해하는 얼굴이 떠올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파트를 나서면서 한참 동안 고개를 들어 천이백호를 쳐다보던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거의 일을 마무리할 때 내 책상 위의 전화가 벨소리를 요란스럽게 냈다.

 「여보세요?」

 「이 선생님이세요?」

 「예.」

 「여기 분당 정산 아파트예요.」

 「아, 아주머니!」

  양선아를 간병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전화였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매우 놀란 사람처럼 톤이 올라가 있었다. 순간 내 가슴은 밑으로 덜컥 내려앉았다. 분명 그녀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아가씨가 위독해져서…….」

 「아주머니, 침착하시고 일일구 구급대에 연락해서 빨리 병원으로 가세요. 나도 지금 갈 테니까. 알았어요?」

 「예. 알겠어요.」

  어느 때인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미처 몰랐던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바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 얼굴이 왜 그래?」

  넋을 잃은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을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윤덕재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아직까지 윤덕재는 나와 양선아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지금 위암으로 죽어 가고 있는 사실도 몰랐다. 그런 그에게 지금에 와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했지만 아파서 쉬고 싶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출판사를 빠져나와 그녀가 입원하고 있을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선아가 금방 죽지는 않겠지? 죽지 않을 거야. 선아야, 제발 죽지마…….」

  양선아의 죽음을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던 나였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 피가 맺힐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병원으로 전화를 해 응급실에 실려 들어간 양선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택시 기사의 핸드폰을 빌려 수첩에 적힌 대학병원 전화번호 숫자의 버튼을 눌렀다. 발신음이 울리자마자 교환수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응급실을 찾았고, 연결은 금방 이루어졌다.

 「조금 전에 일일구 구급대에 실려 들어온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 알 수 있을까요?」

 「환자의 이름이 뭐죠?」

  간호사의 목소리는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다.

 「양선아라고, 위암 환자예요.」

 「아, 양 선생님이요?」

  양선아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 보니 아마 전화 받는 간호사는 그녀의 펜인 것 같았다.

 「예. 지금 상태가 어떻습니까?」

 「지금 수혈 중에 있어요.」

 「그러면 괜찮아 졌다는 얘기인가요?」

 「예.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어요.」

  나는 핸드폰을 택시 기사에게 돌려주면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양선아는 산소 호흡기를 코에 끼고 응급실의 이동 침대에 누워 수혈을 받고 있었다. 응급실 안에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북적거렸다. 그녀의 옆 침대에서는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던 젊은 여자가 고무호스를 입 속에다 집어넣고 위 세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참으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살고 못 살고 또 행복하고 불행하고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살려고 발버둥쳐도 죽어 가고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죽으려고 약을 먹어도 살아날 수 있으니…….

  간호사가 양선아의 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낸 다음 대신 코에다 호스를 껴 물을 주입하고 호스의 다른 한쪽으로 위에서 나온 내용물을 받기 시작했다. 위의 상처가 아물었는지 검은색의 내용물이 호스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위 부위의 상처가 아물었다는 게 아닌가. 나는 어쩌면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응급실 담당 의사를 찾아갔다.

 「현재로서는 환자가 오늘 내일을 넘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의사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양선아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입원해야 했다. 넓은 병실에 혼자 외롭게 입원해야 하는 그녀를 면회 시간에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죽음을 눈앞에 둔 그녀를 혼자 있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카돌릭 병원에 말기 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실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말기암이란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돼 수술과 항암제 등 현대의학이 동원할 수 있는 어떤 수단으로도 생명 연장을 기대할 수 없는 위중한 상태를 말한다. 나는 양선아의 진료카드를 들고 카돌릭 병원으로 찾아가 의사를 면담했다.

 「양선아씨 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의사가 양선아의 진료카드와 CT 촬영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아, 네에……. 사촌 여동생입니다.」

  나는 처음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다른 가족은 없으신 가요?」

 「예. 고아로 자라나서 제가 돌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의사가 의심하지 않도록 그럴듯한 말로 나와 양선아의 관계를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호스피스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계시는지요?」

 「자세히는 모르고, 대강 알고 찾아 왔을 뿐입니다.」

  나는 호스피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면서도 양선아를 입원시키는 것이 잘못이라도 되는 양 미안해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호스피스 치료는 암을 치료해 주는 게 아니라 통증 관리와 심리치료 등을 통해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면 어떤 사람은 호스피스가 특별한 치료를 통해 암을 고쳐 주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나중에 항의를 해 오기 때문입니다.」

 「예. 그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환자를 모시고 오셔서 등록번호를 대면 호스피스 병실에 입원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겠습니다.」

  나는 카돌릭 병원을 나오면서 내가 양선아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