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같은 아내 고쳐 주세요”…전신마비 장애인 이상호씨의 안타까운 호소
“천사의 날개를 고쳐 주세요.”
서울 방화동 11단지 영구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상호씨(45·에벤에셀교회)는 부인 김순덕씨(51)를 위해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10년동안 병수발하면서 병을 얻어 자칫하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지렁이 같은 나를 위해 온몸으로 희생하고 있는 집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병이 깊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나님,당신의 천사인 아내의 날개를 고쳐주세요” 하나님을 향한 이씨의 기도는 눈물겹다.
이씨와 김씨 부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들은 누가 봐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씨는 25세에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낙상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이씨는 활력이 넘치고 꿈이 많았던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방안 천장만 바라보며 누운채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씨의 모친은 그가 다친 3년 뒤에 사망하고 형들은 떠나갔다. 친구들과 이웃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하루하루 연명해갔다.
이씨에게 가족처럼 따뜻하게 다가온 것은 교회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애인교구에서 차량을 보내 교회로 인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와줬다.교회의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그를 돌보았다. 이씨는 그때 지금의 아내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35세때 장애인이던 남편을 사별하고 세 자녀를 어렵게 키우고 있었다. 김씨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며 가난과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신앙생활로 용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약한 자,없는 자들이 보이기 사작했어요.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김씨는 1993년 자원봉사자로 이씨를 만나 매일 병수발을 해줬다. 그러다 혼자 살 수 없는 그를 위해 아예 함께 살기로 하고 96년 화곡동 은성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당시 16세와 19세,20세가 된 세 자녀들에게 “엄마는 없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세 자녀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잘 성장해줬다.
정부보조금 33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김씨는 10년동안 이씨의 병수발로 목 뿐 아니라 허리 디스크에 걸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다.
이씨는 “나를 간병하느라 몸이 망가진 천사같은 아내를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으로 믿으며 오늘도 눈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017-750-1229).
국민일보 4월 1일자 신문 기사 내용중에서
“천사같은 아내 고쳐 주세요”…전신마비 장애인 이상호씨의 안타까운 호소
“천사의 날개를 고쳐 주세요.”
서울 방화동 11단지 영구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상호씨(45·에벤에셀교회)는 부인 김순덕씨(51)를 위해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10년동안 병수발하면서 병을 얻어 자칫하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지렁이 같은 나를 위해 온몸으로 희생하고 있는 집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병이 깊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나님,당신의 천사인 아내의 날개를 고쳐주세요” 하나님을 향한 이씨의 기도는 눈물겹다.
이씨와 김씨 부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들은 누가 봐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씨는 25세에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낙상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이씨는 활력이 넘치고 꿈이 많았던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방안 천장만 바라보며 누운채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씨의 모친은 그가 다친 3년 뒤에 사망하고 형들은 떠나갔다. 친구들과 이웃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하루하루 연명해갔다.
이씨에게 가족처럼 따뜻하게 다가온 것은 교회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애인교구에서 차량을 보내 교회로 인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와줬다.교회의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그를 돌보았다. 이씨는 그때 지금의 아내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35세때 장애인이던 남편을 사별하고 세 자녀를 어렵게 키우고 있었다. 김씨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며 가난과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신앙생활로 용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약한 자,없는 자들이 보이기 사작했어요.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김씨는 1993년 자원봉사자로 이씨를 만나 매일 병수발을 해줬다. 그러다 혼자 살 수 없는 그를 위해 아예 함께 살기로 하고 96년 화곡동 은성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당시 16세와 19세,20세가 된 세 자녀들에게 “엄마는 없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세 자녀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잘 성장해줬다.
정부보조금 33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김씨는 10년동안 이씨의 병수발로 목 뿐 아니라 허리 디스크에 걸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다.
이씨는 “나를 간병하느라 몸이 망가진 천사같은 아내를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으로 믿으며 오늘도 눈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017-750-1229).
이승한기자 s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