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 9. <과거, 호스티스 시절>

스토커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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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호스티스 시절

  1년 전, 오승구와 관계를 갖기 전까지만 해도 이경아는 무교동에 있는 ‘별들의 고향’이라는 룸살롱에서 호스테스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입사해 3년을 넘게 근무하던 ‘은광 기획사’가 주거래처인 D그룹의 부도 영향으로 경영 위기에 몰려 허덕이다가 끝내 버텨내지 못하고 도산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실업자가 된 이경아는 반년 가까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경아는 아무리 우리나라의 실직자수가 위험 수위에 몰려 있다 하더라도 쉽게 새 직장을 구할 수 있겠지 했는데, 아깝게 반년이라는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머니의 위암 선고는 그녀를 벼랑끝으로 내몰기에 충분했고, 벼랑끝으로 내몰린 그녀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가기 싫다고, 쓸데없이 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그냥 습관성 소화불량이기 때문에 괜찮다면서 어머니는 주사 맞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처럼 한사코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그런 어머니를 이경아는 반강제로 병원으로 모셔갔다.

  어머니가 진찰을 받을 동안 이경아는 자꾸만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가 없어 양수가 터진 산모를 데리고 산부인과에 온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배를 움켜잡고서 먹은 음식을 토해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 번도 아니고 벌써 여러 번 목격한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내시경 검사를 끝낸 송희섭 박사가 이경아를 진료실로 불러들였다. 그는 손등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으며, 불행히도 그녀의 예감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경아 씨, 아무래도 어머니께서는 위암인 것 같습니다.”

  “위암이라고요?”

  이경아는 입을 딱 벌린 채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송 박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며칠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이경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겠다는 듯 송 박사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님, 그러면 암이 아닐 수도 있는 거죠?”

  이경아는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물었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말을 잇지 못하는 송 박사를 바라보면서 이경아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세상이 캄캄해지면서 온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머니는 학생으로 아버지는 교수로 학교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열 살이나 차이나는 나이를 극복하고 남의 눈을 피해 사랑의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경아를 임신한 어머니는 몇 달 동안 그녀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더구나 학생 신분이었기에, 상대 남자가 교수라는 신분이었기에 주위에서 찧어 대는 입방아를 못 견딜 것 같아 어머니는 낙태를 하기 위해 몇 번인가 혼자서 산부인과 앞을 서성거렸지만, 차마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되돌리곤 했다.

  “우리 결혼하자.”

  그렇게 망설이다 날짜를 놓친 어머니의 배가 남의 눈에 띨 정도로 불러오자 뱃속의 아이를 어머니의 판단에 맡겼던 아버지가 체념한 듯 말했다.

  아이를 들쳐업고 학교를 다닐 수 없어 결국 대학교를 중도에 하차하고 만 어머니는 열 살이나 차이나는 총각 교수였던 아버지와 결혼을 해서 이웃 주부처럼 평범한 아내로, 공부 잘하는 똑똑한 딸아이의 어머니로 남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나갔었다. 그런데 믿었던 아버지의 배신은 어머니를 한꺼번에 몇 십 년을 살아 버린 사람처럼 볼품 없이 늙게 만들었다.

  아무튼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났을 때처럼 열다섯 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푹 빠지면서 이래저래 가정을 위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못된 남편이요, 이경아에게는 불성실한 아버지였다. 그 후로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없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정밀검사를 받으면서부터 오히려 눈에 띄게 악화되어 갔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정맥주사로 영양을 섭취해야 했으며, 갑자기 토혈을 한 후부터는 통증을 호소하기까지 이르렀다. 처음엔 일반적인 진통제 두 알 정도로 통증을 멈추게 할 수 있었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많아지면서 어머니는 결국 마약성 몰핀을 맞고서야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암세포가 이미 간과 십이지장에까지 퍼져 있습니다.”

  어머니가 입원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 송 박사가 진료실로 이경아를 불러서 한 첫마디였다. 그러나 그녀의 심장을 멈추게 한 말은 다음에 이어진 말이었다.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남은 시간은 길어야 반년입니다.”

  입술을 깨물며 애써 냉정을 유지하고 있던 이경아는 더 이상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반년입니다’라는 송 박사의 말이 귓전에서 계속 메아리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어머니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경아에겐 그만한 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녀가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아버지였다. 비록 이혼해서 남남이 된 사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수술비를 거절할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요 희망이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한때 어머니의 남편이었으며, 딸의 아버지이며, 어머니는 딸의 어머니가 아닌가.

  그러나 너무 오랜 세월을 아무 연락 없이 남남처럼 지내온 터라 이경아는 아버지의 거처를 알 수 없었다. 궁리 끝에 그녀는 아버지가 예전에 교수로 있었던 대학교를 찾아가 수소문한 결과 아버지가 열다섯 살이나 어린 그 여자와 부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경아는 무거운 마음으로 부산행 KTX에 올라탔다. 어머니 홀로 병실에 남겨 두는 게 불안해 하루동안만이라도 간병인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긴 아버지는 부산 대연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학교로 찾아간 이경아에게 조교는 ‘오늘은 강의가 없으셔서 교수님은 집에 계실 거예요’하면서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위 아래로 쳐다보았다. 조교는 그녀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조교가 교수님하고 어떤 관계냐고 물었을 때 이경아가 서울에 살고 있는 딸이라니까, 조교는 처음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조교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그녀에게 아버지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면서, 그곳까지 가는 대중교통편까지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하지만 서둘러 서울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경아로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 집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만날 생각으로 그녀는 택시를 잡아탔다.

  이경아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아까 조교에게 딸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솔직히 밝힌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총각 교수시절 열 살이나 어린 제자인 여학생과 결혼해서 딸아이를 하나 둔 과거를 철저하게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렇다면, 내일 이맘때쯤 되면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퍼질게 뻔했다. 그 소문은 덧칠하고 또 덧칠해서 아버지를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아무리 마음에서 멀어진 아버지이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비난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 이게 핏줄인가보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그녀는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경아는 아버지가 잊고 있던 딸이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고 잠깐 생각해봤지만 아버지의 반응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아버지를 대할 것인가가 더 걱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코 웃는 얼굴로,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버지를 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어머니의 수술비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면 내키지 않더라도 웃어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어머니의 수술비를 위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연동 삼익아파트에 도착한 이경아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커피숍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직접 아파트로 찾아가 아버지를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은 배려에서였다.

  그때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피자가게에서 나오는 아버지가 이경아의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모습은 8년 전과 변한 게 없어 그녀는 단번에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뒤로 아버지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여자가,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엄마가 밝은 얼굴을 하고 뒤따라 나왔다. 매우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이다. 그녀의 온몸이 석고상처럼 굳어지면서 호흡은 물론 모든 움직임이 완전하게 정지되었다. 그 상태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어머니는 병원 침대에 누워 뼈를 깎는 고통과 씨름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이경아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그녀에게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주기에 한치의 모자람이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지척에 두고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었고,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서로 눈이 한동안 마주쳤으면서도 아버지는 처녀로 성숙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 엄마! 이제 어떡해……. 눈물이 이경아의 눈에 고이더니 주르르 그만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은 소나기 같은 눈물이었다.

  발뒤꿈치에 쇳덩어리가 달린 것처럼 천근 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이경아는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간곡히 사정을 하여 전세로 있는 집을 월세로 전환하고, 그 전세보증금으로 수술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의 생활이었다. 예금통장에는 이미 잔금이 거덜나고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아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생활하고 있는 이경아로서는 하루 하루가 불안하기만 했다.

  오랜 갈등 속에 망설이다 이경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선택한 직업은 그런 대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호스티스였다. 한두 푼이 아닌 어머니의 입원비와 월세로 전환한 집세를 지불하려면 일반 직장의 월급 가지고는 어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지금 실업자였으며, 많지는 않지만 은행에 빛까지 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사랑은커녕 정도 들지 않은 수많은 남자들에게 억지 웃음을 지으며 술을 따르고 부둥켜안고 춤을 춘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지만 벼랑 끝에 몰린 이경아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일은 이경아와 같은 처지에 있는, 병원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친구가 룸살롱에 다니고 있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녀는 호스티스가 자신의 운명 중 일부분이라면 순순히 받아들이자고 스스로 마음을 위로하며 그 친구와 함께 룸살롱에 나갔다.

  룸살롱에 나간 이경아는 처음 한동안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오직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짓을 하더라도 아무 상관없었다.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호스테스면 어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죽으면 썩어 뭉그러질 자신의 몸뚱이가 아니고 어머니와 함께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뿐이었다.

  비록 룸살롱에 다니지만 이경아는 다른 호스티스처럼 사타구니를 벌리면서까지 몸을 팔아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자신을 아니꼽게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을 무시한 채, 그녀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유혹을 뿌리쳤던가.

  그런데 생각지 않던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경아가 손님과의 외박을 계속 거부하자 그녀를 찾는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급기야 웨이터들에게도 눈밖에 난 그녀는 공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는 차츰차츰 어머니의 입원비와 집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돈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뛰어든 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타구니를 벌리는 짓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호스티스를 하면서 처음으로 남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날, 이경아는 정신을 완전히 잃을 정도로 술을 퍼마셔 댔다.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맨 정신으로 낯선 남자에게 사타구니를 벌릴 수 있겠는가.

  술에 잔뜩 취해 이름은커녕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남자에게 아랫도리를 벌려주고, 그날 아침에 깨어나 알몸으로 침대에 누운 채 이경아가 제일 먼저 생각한 사람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임형석이었다. 스물한 해를 고이 간직했던 순결을 바쳤던 남자를……. 그녀는 정말 자살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침대에 엎드려 분수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경아를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이경아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임형석이 미소를 머금고 달콤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고 나서 손을 뻗쳐 그녀의 턱과 목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이경아가 임형석을 처음 만난 곳은 대학교 신입생일 때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모임인 콩나물 동아리에서였다. 당시 그는 군복무를 마친 3학년 복학생이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크게 반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선후배 이상의 감정이 절로 싹트면서 사랑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임형석은 설렘과 긴장으로 몸을 떨면서 눈을 감은 채 서 있는 이경아의 옷을 벗겼다. 하늘색 원피스를 벗기고, 속옷과 브래지어와 팬티가 차례로 바닥에 떨어졌다. 알몸이 된 그녀를 안아들어 침대 위에 눕히고 나서 자신도 금방 알몸이 된 그는 침대에 올라가 천천히 꽃잎 같은 그녀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이경아가 임형석을 만난지 꼭 1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그렇게 이경아는 스물한 해를 간직해왔던 순결을 임형석에게 바쳤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얀 시트에 얼룩진 붉은 핏방울을 바라보면서도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를 너무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의 이경아는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돈이라는 존재 앞에서 무기력한 여자가 되어 여러 남자와 섹스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섹스 상대만큼은 아무 남자하고는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에 적합한 남자하고만 섹스를 했다. 주위에서 건방지게 생각하든 말든, 그건 그녀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경아가 학교에 다녀간 것을 알면서도 무정한 아버지에게서는 연락 한번 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간호와 룸살롱 출근으로 밤낮이 없던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할 겨를이 없었다.

  수술날 아침, 바퀴침대에 누워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던 어머니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이경아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다 마는 것 같았다.

  “왜요? 걱정이 돼서 그래요? 이제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는 얼굴로 짐짓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 이경아였지만, 그녀의 가슴은 불안감으로 심하게 떨고 있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이경아는 보호자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하느님을 찾았다. 제발 우리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그러나 그녀로부터 등을 돌린 하느님은 결코 그녀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

  “도저히 수술할 수 없어……, 그냥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을 준비하셔야할 겁니다.”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의 말에 이경아의 간절한 소망은 여지없이 깨진 유리병처럼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어머니는 점점 피골이 상접한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속으로 고통을 참으면서 언제나 평온한 얼굴로 이경아를 대하려고 애썼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는 날이 시퍼런 칼로 가슴을 난도질당하는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그러나 이경아에게는 푸쉬킨처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뎌도 기쁨의 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수술도 받지 못하고서 한 달 후에 사랑하는 딸을 혼자 남겨놓고 영원히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어머니의 나이는 불과 마흔일곱밖에 되지 않았다.

  이경아는 어머니의 죽음을 사실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혼자 있으면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어디선가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술로 괴로움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이젠 룸살롱에 나갈 이유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경아는 술을 마시기 위해 룸살롱을 나갔다. 룸살롱에 나간 그녀는 아무 남자하고나 술을 마시고 아무 남자하고나 섹스를 했으며, 남자가 보는 앞에서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알몸을 내보이는 것을 조금도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이 구차스러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