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홍 Story +3

수레국화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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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은수는 일찍 일어나서 부모님이 일어나시기도 전에 침통과 책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도서관에는 이미 언제 나왔는지 다홍이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일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다홍이지만 공부할 때만은 지독하게 했다. 은수는 다홍의 옆자리에 가방을 놓고 다홍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고개를 들면서 다홍은 싱긋 웃는다. 처음으로 은수를 향해 미소를 보인 것이다.

“나가자.”

둘은 동아리 방으로 갔다. 다홍의 드러난 어깨와 머리에 침을 놓으며 은수는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다홍의 하얀 어깨를 본 순간, 처음 침을 놓을 때보다 더 떨렸지만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다홍이 환자로 보였다.

“선배 침 잘 놓는거 맞아요?”

“제대로 놓으면 잘 놓는 거겠지. 왜 못 미더워서?”

“아뇨. 내 측근 중에 한의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은수는 당황했지만 나머지 침도 꽂았다.  한참 만에 다홍이 말문을 열었다.

“선배, 나 혹시 죽을 병 아니던가요?”

갑자기 뚱딴지같기는...

“왜? 어깨 말고 다른데도 아프니?”

“아니,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선배는 한의사니까 척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다홍은 한의사가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글쎄 ... 난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닌걸.. 다른 데 아픈 곳 있나 맥 한번 짚어볼게.”

은수는 가녀린 다홍의 손목을 잡았다. 맥이 좀 빠르지만 그다지 아픈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별로 나쁜 곳은 없는데.. 잠을 잘 못자니?”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한번 물어본건데 다홍은 신기한 듯 은수를 바라봤다.

“척 보면 알 수 있지. 소화도 잘 안되지?”

“우와. 맞아요. 무슨 병이예요?”

갑자기 다홍의 얼굴이 죽을 병이라도 걸린 사람 모양 수심이 가득했다.

“뭐, 신경성 소화장애야. 큰 병은 아니구. 규칙적으로 식사 챙겨먹고, 운동하면 금방 낫는 거야. 대신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돼. 무슨 걱정거리 있니?”

“있어요.”

평소 자기 얘길 안하는 다홍은 은수를 한의사로 믿어주기로 했는지 술술 다 털어놓았다.

“아버지 편찮으셔서 지방에 가 계신다는거 다 알거든요. 그런데 중요한건 부모님 앞에선 모른척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걱정할까봐 전근가셨다고 했는데 이미 3년전에 퇴직하신거 다 알거든요. 어떻게 제가 알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께 알려야 할지 고민이예요. 아부지를 그대로 방치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아버진 어떻게 편찮으신데?”

“위암요. 3년 전에 수술받으셨는데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아서 직장을 더 이상 다닐 수 없어서 퇴직하셨어요. 지금은 대구에 있는 고모집에 계시는데 매일 팔공산에 등산하시면서 엄마 간호를 받으니까 많이 좋아지긴 하셨는데 언제 재발할지 모르니까 걱정이예요.”

“그래서 돈 모으는 거야?”

“음.....꼭 그런 것만은 아니예요. 일단은 저 졸업하기 전에 어학연수 다녀올려구요. 아무래도 집에서 도움을 받기는 어려우니까 제 힘으로 가야하거든요. 아직까진 아버지를 위해 뭘 해드릴 수는 없어요. 그리고 나서 취직하면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올 참이예요. 제대로 입원해서 치료 좀 더 받아보려구요.”

“오히려 아버지는 대구가 더 좋을 수도 있잖아. 암에는 항생제 말고는 특별한 약이 없어. 식사 조절 잘 하시면서 영양가 있는 것으로 챙겨드시는게 제일 좋아. 그럼 더 건강해지실 것 같은데..”

“그럴까요? 그럼 돈 벌어서 용돈을 보내드리는게 더 좋은 방법이네요. 그죠?”

“그렇지. 아무래도.”

“머리가 좀 가벼워 진 것 같기는 한데 돈 벌 일이 태산이네.. 언제 졸업해서 취직하지???”

“그렇게 준비했는데 어학연수도 다녀와야지.”

“맞아요. 내 인생의 보너스를 위하여! ...아.아..선배 이거 언제 뺄거예요?”

신이 나서 손벽을 치려던 다홍이 침 때문에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은수도 그제야 침을 찔러 놓은 것이 생각나 다홍의 어깨와 머리에서 침을 뽑았다.

“좀 시원해진 것 같아?”

“네. 이제 아플때마다 침 놔 주세요. 알았죠?”

은수는 당돌하기도 하고 어린아이같기도 한 다홍의 장단에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이 그렇게 원하고 있었으므로.


민경과 준용은 침 맞는거 구경온다며 뒤늦게 동아리방으로 들어섰다.

“벌써 다 맞은거야? 너 아직 살아있니?”

민경은 다홍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은수의 실력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어, 이게 왜 이러시나? 그래도 국가가 발행한 한의사 면허증이 있는데. 민경이 넘하는거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니고. 지난번에 지현이 언니는 멀쩡하게 걸어들어가서 기어 나오길래...”

“허리는 원래 한번에 싹 다 낫는 게 아니야. 몇 번 더 맞고 요즘 지현이 잘 걸어다니는데..”

“그래요?”

그렇지만 민경은 영 못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다홍의 한마디에 민경은 조용해졌다.

“야, 그래도 한의사맞더라. 내 어깨 주무를때 아무렇지도 않더라. 다른 남자들이 내 어깨 만졌다고 생각해봐라.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나. 벌써 두드러기 나도 백번은 더 났지.”

은수는 다홍의 말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난감했다. 자신은 그렇게 떨리고 설레었는데 다홍은 아무렇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인 자신을 믿어준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자신의 손길이 닿는 데도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내심 속상했다.

“아무렇지 않았어?”

“네. 그래도 의사 손은 다르네. 제가 좀 남자 알러지가 있거든요. 남자들이 원래 징그럽잖아요. 그래도 선배는 괜찮았어요. 걱정마세요.”

위로의 말이라고 한 것 같은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도 징그러워?”

준용이 끼어들었다.

“내가 언제 선배랑 스치기라도 하는거 봤어요?”

준용의 얼굴은 15톤짜리 돌에 맞은 것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너 병이지? 형, 아까 진찰할 때 얘 뭐 병 없었어요? 심하게 남성혐오증 있는 것 같은데..”

“이보쇼, 남성혐오증이라니.. 난 잘생기고 멋진 남자는 좋아한단 말임다. 장동건은 몇 번을 봐도 멋있더구만. 선배가 장동건만 되었어도 어떻게 해보는건데..”

가끔 다홍은 여자임이 의심스러운 표현들을 사용해서 당혹스럽게 하곤 했다. 그렇게 장난끼넘치는 준용 마저도 다홍앞에서는 무너져 버렸다.


“점심시간인데 우리 맛난 거 먹으러 갈까? 나 오늘 차 가져왔어.”

“난 밥으로.”

다홍은 혼자 사는 만큼 밥에 집착했다.

“너희들은 어때?”

“저희도 뭐 밥 좋아요.”

“그럼 우리 해물찜 먹으러 갈까? 맛있는 데 알거든.”

은수의 차를 보고 준용과 민경은 놀란 듯 했다. 평소 털털하고 평범한 성격의 은수와는 안 어울리는 고급 승용차였다.

“형, 언제 이런 차가 있었어요?”

“얼마전에 아버지한테 얻었어. 공익 끝나면 바로 출근해야 하니까.”

“선배 아직 돈도 못 버는데 사치 아니예요?”

학생들 무리에만 섞여 있다보니 그런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은수와 거리감이 느껴질려고 하는 찰나 다홍이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가 학생이라서 아직 차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렇지. 남자는 타고 다니는 차로도 그 사람을 말해주잖아. 은수선배는 한의사니까 그만큼 벌이가 되는데 이 정도 차 타는 건 사치가 아니죠. 만약 한의사가 마티즈타고 다닌다고 생각해봐요. 오히려 욕할걸. 돈벌이가 시원찮은가, 아니면 돈벌고도 안쓴다고 짠돌이라고 하거나. 그렇죠 선배?”

은수는 마음대로 이기는 하지만 일단 정리해 주는 다홍이 고마웠다. 아무 생각 없이 일요일이라 가져온 차인데 그렇게 준용과 민경이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다.

은수가 간 곳은 해물찜 전문 체인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주차할 곳도 없을 만큼 복잡했지만 가면서 미리 전화해 둔 덕에 조용한 방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다홍이, 이거 먹어봐.”

은수는 손에 시뻘건 고춧가루국물을 묻혀가며 뽑아낸 조갯살을 다홍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형, 우리는?”

“너희는 둘이 상부상조해. 나는 우리 사부님부터 챙겨야지.”

민경은 두 손을 걷어부치고 열심히 해물을 잘라 다홍의 접시에 놓아주는 은수와 무표정하게 받아먹고 있는 다홍이 안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어울림을 느꼈다. 둘 사이에 봄바람이 물씬 불어나오는 것 같아 싱긋 웃었다.

“넌 뭐야? 밥 안먹어? 괜히 실실 웃고 그러냐?”

준용은 은수에 대한 불만이 괜히 민경에게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민경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준용선배, 지난 번에 우리 내기한거 기억해요? 제가 이긴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