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방장이다. 매일 칼춤 춘다. 밤 11시쯤 집에 와서 이곳에 나의 넉두리를 풀어 놓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과가 되어 가고 있다. 누가 나의 글을 읽고 진짜 주방장이 아니라 보조 조금 하다가 말지 않았냐는 의심의 글을 남겼다. 그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뭐 지금 내가 화려한 경력을 가진 노련한 주방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주방장이 되기까지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스승님들... 일을 첨 배울 때는 너무 자주는 곤란하겠지만 직장을 여러 번 옮기게 된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다. 나도 그랬다. 그래 오늘은 말 난 김에 나의 옛 스승님들에 대한 얘기나 하고 자자.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개월 후에 나와 단 둘이 살고 있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심장마비....... 아버지의 유품에서 심부전증에 사용하는 약병이 발견되었다. 깨알같은 알약들이 들어 있는 엄지 손가락 만한 작은 병...... 난 몰랐다. 아버지께서 그런 병으로 고생하시면서도 나에게는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으셨으니...... 난 불효자였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난 너무도 괴로웠다. 나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충격이 무겁게 쏟아져 내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시던 분들이 장례식때 술 먹고 고스톱 치다가 서로 싸우는 것도 보았고 아버지께서 할부로 구입하신 냉장고 대금 걱정에 내 주민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와 가깝던 분들이 오히려 날 괴롭히고 있었다. 난 떠났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버지께서 평생을 운영하시던 이발소를 건물 주인이 단돈 500만원에 정리했다. 가방 하나와 만원짜리 500장 난 그렇게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이곳 저곳을 떠돌다 잠시 사촌형 집에 머문적도 있었다. 그때 나의 500만원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 당시 서울에서는 로바다야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난 어떤 로바다야끼에서 홀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었다. 한달에 35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지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기 시작하며 나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자.... 무슨 기술도 없고 의지할 것도 부모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기술이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주방장이 참 멋있어 보였다. 월급도 많이 받고 일도 별로 안하고 맛있는 것만 골라 먹고 사장도 쩔쩔 맨다. 너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난 주방 일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러 날을 주방장을 조르고 사정하여 어떤 가게를 소개받았다. 서울 중심가 아마다르네쌍쓰 호텔 건너편에 있는 일식집이였는데 그리 가서 자기 이름을 말하란다. 커다란 가방 하나를 메고 갔다. 주방장 이름을 대니 외판원으로 보던 시선이 금새 바뀐다. 바로 그날부터 안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정신이 없었다. 남자 주방장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주방장급이 네명.... 보조가 4명.... 주방에만 아줌마 2명.... 홀에 아가씨 4명..... 둘은 한복을 입었다. 나의 직책은 냄비딲이 낮에는 매운탕이 정신 없이 나가고 저녁에는 회만 판다. 메뉴판 따위도 없다. 그냥 사람 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92년도였는데 회 일인분이 4만원이였다. 내가 그곳에서 받은 월급은 15만원 3명이서 와서 회먹고 술 몇병 마시면 내 월급이 나오는 곳이다....... 일식집에서는 매운탕 나갈때 쓰는 비싸보이는 돌로 만든 뚝배기를 냄비라고 부른다. 요즘은 여자를 냄비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인간들도 있지만...... 그 냄비는 바닥에 쌓아 놓고 따로 닦아야 한다. 그 냄비를 닦는 일이 내게 첨 주어진 일이였다. 그래서 냄비닦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생선 굽는 법, 국수 삶는 법, 주방에서 사용하는 기구 손질하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젤 어려웠던 것은 모든 도구를 일본말로 부르는데 알아듣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야! 사꾸나배 가져와!" "네? 뭐요?" "아 사꾸말얌 마! 저새끼 아직 그것도 몰라?" "......" 보통 이런식의 대화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고 갔다. 난 절대 말대꾸 하지 않았다. 저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어야 내가 기술을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니까. 한번은 가쓰오부시 라는 것을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가시오가피를 찾는다고 창고에서 20분 이상 뒤지고 있다가 머리통을 세게 맞은 적도 있다. 일 끝나고 밤이 되면 혼자 가게에서 잤다. 다음 날 아침 일곱시면 사장이 가락시장에서 물건을 싣고 온다. 대장들이 출근하기 전에 각 재료를 대장들의 자리로 구분해서 옮겨 놓아야 하고 모든 생선을 다듬어야 한다. 만일 내가 늦으면 아침 밥 먹는 시간이 늦어지므로 욕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네명의 주방장 중 안주방에서 불로 하는 요리를 책임지는 사람이 나의 직속 상관이였다. 다른 사람보다 그 사람의 명령이 우선했으며 나의 한쪽 귀는 그사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언제나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박부장님이라 불렀던 기억 밖에 없다. 알콜중독자였다. 앞주방(다찌바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주는 술 먹다가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박부장님은 누가 술을 주는 사람이 없는 데도 저녁 9시만 되면 눈이 풀려 있다. 한번은 잘 관찰해 봤는데 음식 만들기 위해 주방에 들여 놓는 큰 정종을 마시고 있었다.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조그마한 밥공기로 따악 한잔 마신다. 그걸 마시고 취한다. 그 이후부터가 신기했다. 소주든 양주든 아무리 마셔도 더 이상은 취하지 않는 것이였다. 처음 취한 그 상태로 계속 마셔대는 것이다. 대장이 술 취하면 내가 가장 괴롭다. 이유없이 그냥 뒤로 다가와서 엉덩이를 발로 찬다. 첨에는 슬쩍 장난처럼 차더니 나중에는 정말 힘있게 걷어찬다. 왜 때리냐고 따진 적도 없다. 한번은 다른 대장이 알려준 당근으로 꽃 파는 걸 연습하고 있는데 엉덩이를 찬다. 손가락이 깊이 베이고 피가 흐른다.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박부장님은 한쪽 다리를 절었다. 나한테는 예날에 축구를 하다가 심하게 다쳐서 그랬다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말해주시기를 술 먹고 자기 다리를 사시미칼로 찔렀다고 한다. 한달동안 목발 짚어가며 일했는데 불쌍해서 해고는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핸드폰이 널린 것도 아니고 삐삐라는 것도 몇십만원씩 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도 연락할 길이 없었다. 다들 대학 다니느라 집에도 없다...... 난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일만 하고 있었다. 손님이 먹다 남기고 가는 술이 있으면 홀의 아가씨들이 잘 챙겼다가 내게 주기도 했다. 그때 소주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손님이 남기고 간 튀김쪼가리를 안주 삼아 작은 방에서 촛불 켜놓고 마시는 김빠진 술....... 이거 자꾸 예날 생각이 나서 그런지 본론에서 빗나가고 있다. 알콜 중독자 박부장..... 나의 첫 사부..... 실력은 알아주는 편이었다. 어떤 출판사에서 요리와 관련된 책을 출간한다며 우리 가게에 취재를 왔었는데 커다란 조명을 몇 개 설치하고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있는 것이 아주 장관이었다. 그때 나의 사부가 '아라다께' 라는 요리를 하고 남방스께, 일본식 우동 그리고 환상적인 초밥까지 예술적으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 사장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의 시력을..... 나도 알게 되었다.... 그 다음날 부터 나의 찐드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사부를 무지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첨에 이것 저것 질문을 할때는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기특한지 웃으며 알려주더니 두달이 지나자 짜증을 내면서 알려주곤 했다. 난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을 항상 넣고 있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적고 외웠다. 요리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소스의 비율도 열심히 받아 적었다. 하루는 사부가 나오기 전에 사부가 해야 할 일들을 새벽에 일어나서 전부 해버린 적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사부는 나에게 자상하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요리나 생선의 종류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도 내가 적고 있으면 잠시 멈춰가면서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후 9시 전까지. 그 시간이 넘어가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친절하고 자상하던 사부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성질 고약한 주방장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전부 술 때문이라 생각했다. 한번은 주방에 있는 그 커다란 정종을 전부 마셔 버리더니 나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술을 가져다 대령한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사부가 술이 잔뜩 취해서 밤에 가게로 다시 왔다. 자다가 누가 문을 두드리길레 나가 보니 사부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문을 열어주었다. 조용히 들어왔다. 난 얼른 다른 손님용 방에 내가 쓰던 이불과 베게를 갖다 주고 주무시라는 말을 하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내 방으로 가서 잠이 들려는 찰나 사부의 외침이 들여왔다. "xx야 사랑해!" 사부는 홀에서 일하는 아가씨 중 누구를 사랑하고 있었는가 보다. 한 열번 정도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그 다음날 사부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다음날도 나오지 않았다. 나도 그때 쯤 그 가게를 그만두었다. 다른 가게에서 좀 다른 스타일을 배우기 위해 직장을 옮기게 된 것이다. 날 첨 그 가게에 소개시켜 준 주방장이 날 다시 다른 곳으로 보내 준 것이다. 거의 일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이후로도 많은 가게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상관을 모시고 그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하면서 나의 실력이 능숙해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아직 모자란 실력으로 주방장이라 스스로 칭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지만 자부심과 책임감을 스스로에게 지우기 위해 서슴치 않고 날 주방장이라 칭한다. 아직도 박부장님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무언가 가르쳐 줄 때의 그 자상하던 눈빛.... 내가 잘 따라하면 아주 흐믓해 보이던 그 얼굴...... 술이 그 분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한다. 술이 그 분의 한쪽 다리와 9시 이후의 인생을 앗아가고 짝사랑마저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패배자로 만든 것이다. 난 그래서 술은 좋아하되 많이 마시지 않는다. 하루 술을 먹으면 적어도 다음날은 마시지 않으며 술 해독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도 많이 한다. 그리고 절대 소주 한병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내가 한때 존경했던 분처럼 되지 않기 위해.... 말이 좀 이상하다. 존경했던 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니.....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만일 다시 보게 된다면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날 알아보실까? 유난히 마른 체격이었는데......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마! 네가 무슨 주방장이냐? 그냥 보조나 하면서 더 배워야 댐 마!" 그말.... 듣고 싶다.
주방장일기 <나의 옛 스승님>
난 주방장이다.
매일 칼춤 춘다.
밤 11시쯤 집에 와서 이곳에 나의 넉두리를 풀어 놓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과가 되어 가고 있다.
누가 나의 글을 읽고 진짜 주방장이 아니라 보조 조금 하다가 말지 않았냐는 의심의 글을 남겼다.
그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뭐 지금 내가 화려한 경력을 가진 노련한 주방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주방장이 되기까지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스승님들...
일을 첨 배울 때는 너무 자주는 곤란하겠지만 직장을 여러 번 옮기게 된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다. 나도 그랬다.
그래 오늘은 말 난 김에 나의 옛 스승님들에 대한 얘기나 하고 자자.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개월 후에 나와 단 둘이 살고 있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심장마비.......
아버지의 유품에서 심부전증에 사용하는 약병이 발견되었다.
깨알같은 알약들이 들어 있는 엄지 손가락 만한 작은 병......
난 몰랐다.
아버지께서 그런 병으로 고생하시면서도 나에게는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으셨으니......
난 불효자였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난 너무도 괴로웠다.
나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충격이 무겁게 쏟아져 내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시던 분들이 장례식때 술 먹고 고스톱 치다가 서로 싸우는 것도 보았고 아버지께서 할부로 구입하신 냉장고 대금 걱정에 내 주민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와 가깝던 분들이 오히려 날 괴롭히고 있었다.
난 떠났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버지께서 평생을 운영하시던 이발소를 건물 주인이 단돈 500만원에 정리했다.
가방 하나와 만원짜리 500장
난 그렇게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이곳 저곳을 떠돌다 잠시 사촌형 집에 머문적도 있었다.
그때 나의 500만원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 당시 서울에서는 로바다야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난 어떤 로바다야끼에서 홀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었다.
한달에 35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지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기 시작하며 나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자.... 무슨 기술도 없고 의지할 것도 부모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기술이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주방장이 참 멋있어 보였다.
월급도 많이 받고 일도 별로 안하고 맛있는 것만 골라 먹고 사장도 쩔쩔 맨다.
너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난 주방 일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러 날을 주방장을 조르고 사정하여 어떤 가게를 소개받았다.
서울 중심가 아마다르네쌍쓰 호텔 건너편에 있는 일식집이였는데 그리 가서 자기 이름을 말하란다.
커다란 가방 하나를 메고 갔다.
주방장 이름을 대니 외판원으로 보던 시선이 금새 바뀐다.
바로 그날부터 안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정신이 없었다.
남자 주방장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주방장급이 네명.... 보조가 4명.... 주방에만 아줌마 2명.... 홀에 아가씨 4명..... 둘은 한복을 입었다.
나의 직책은 냄비딲이
낮에는 매운탕이 정신 없이 나가고 저녁에는 회만 판다.
메뉴판 따위도 없다.
그냥 사람 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92년도였는데 회 일인분이 4만원이였다.
내가 그곳에서 받은 월급은 15만원
3명이서 와서 회먹고 술 몇병 마시면 내 월급이 나오는 곳이다.......
일식집에서는 매운탕 나갈때 쓰는 비싸보이는 돌로 만든 뚝배기를 냄비라고 부른다.
요즘은 여자를 냄비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인간들도 있지만......
그 냄비는 바닥에 쌓아 놓고 따로 닦아야 한다.
그 냄비를 닦는 일이 내게 첨 주어진 일이였다. 그래서 냄비닦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생선 굽는 법, 국수 삶는 법, 주방에서 사용하는 기구 손질하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젤 어려웠던 것은 모든 도구를 일본말로 부르는데 알아듣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야! 사꾸나배 가져와!"
"네? 뭐요?"
"아 사꾸말얌 마! 저새끼 아직 그것도 몰라?"
"......"
보통 이런식의 대화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고 갔다.
난 절대 말대꾸 하지 않았다.
저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어야 내가 기술을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니까.
한번은 가쓰오부시 라는 것을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가시오가피를 찾는다고 창고에서 20분 이상 뒤지고 있다가 머리통을 세게 맞은 적도 있다.
일 끝나고 밤이 되면 혼자 가게에서 잤다.
다음 날 아침 일곱시면 사장이 가락시장에서 물건을 싣고 온다.
대장들이 출근하기 전에 각 재료를 대장들의 자리로 구분해서 옮겨 놓아야 하고 모든 생선을 다듬어야 한다.
만일 내가 늦으면 아침 밥 먹는 시간이 늦어지므로 욕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네명의 주방장 중 안주방에서 불로 하는 요리를 책임지는 사람이 나의 직속 상관이였다.
다른 사람보다 그 사람의 명령이 우선했으며 나의 한쪽 귀는 그사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언제나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박부장님이라 불렀던 기억 밖에 없다.
알콜중독자였다.
앞주방(다찌바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주는 술 먹다가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박부장님은 누가 술을 주는 사람이 없는 데도 저녁 9시만 되면 눈이 풀려 있다.
한번은 잘 관찰해 봤는데 음식 만들기 위해 주방에 들여 놓는 큰 정종을 마시고 있었다.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조그마한 밥공기로 따악 한잔 마신다.
그걸 마시고 취한다.
그 이후부터가 신기했다.
소주든 양주든 아무리 마셔도 더 이상은 취하지 않는 것이였다.
처음 취한 그 상태로 계속 마셔대는 것이다.
대장이 술 취하면 내가 가장 괴롭다.
이유없이 그냥 뒤로 다가와서 엉덩이를 발로 찬다.
첨에는 슬쩍 장난처럼 차더니 나중에는 정말 힘있게 걷어찬다.
왜 때리냐고 따진 적도 없다.
한번은 다른 대장이 알려준 당근으로 꽃 파는 걸 연습하고 있는데 엉덩이를 찬다.
손가락이 깊이 베이고 피가 흐른다.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박부장님은 한쪽 다리를 절었다.
나한테는 예날에 축구를 하다가 심하게 다쳐서 그랬다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말해주시기를 술 먹고 자기 다리를 사시미칼로 찔렀다고 한다.
한달동안 목발 짚어가며 일했는데 불쌍해서 해고는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핸드폰이 널린 것도 아니고 삐삐라는 것도 몇십만원씩 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도 연락할 길이 없었다. 다들 대학 다니느라 집에도 없다......
난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일만 하고 있었다.
손님이 먹다 남기고 가는 술이 있으면 홀의 아가씨들이 잘 챙겼다가 내게 주기도 했다.
그때 소주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손님이 남기고 간 튀김쪼가리를 안주 삼아 작은 방에서 촛불 켜놓고 마시는 김빠진 술.......
이거 자꾸 예날 생각이 나서 그런지 본론에서 빗나가고 있다.
알콜 중독자 박부장..... 나의 첫 사부.....
실력은 알아주는 편이었다.
어떤 출판사에서 요리와 관련된 책을 출간한다며 우리 가게에 취재를 왔었는데 커다란 조명을 몇 개 설치하고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있는 것이 아주 장관이었다.
그때 나의 사부가 '아라다께' 라는 요리를 하고 남방스께, 일본식 우동 그리고 환상적인 초밥까지 예술적으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
사장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의 시력을..... 나도 알게 되었다....
그 다음날 부터 나의 찐드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사부를 무지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첨에 이것 저것 질문을 할때는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기특한지 웃으며 알려주더니 두달이 지나자 짜증을 내면서 알려주곤 했다.
난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을 항상 넣고 있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적고 외웠다.
요리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소스의 비율도 열심히 받아 적었다.
하루는 사부가 나오기 전에 사부가 해야 할 일들을 새벽에 일어나서 전부 해버린 적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사부는 나에게 자상하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요리나 생선의 종류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도 내가 적고 있으면 잠시 멈춰가면서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후 9시 전까지.
그 시간이 넘어가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친절하고 자상하던 사부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성질 고약한 주방장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전부 술 때문이라 생각했다.
한번은 주방에 있는 그 커다란 정종을 전부 마셔 버리더니 나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술을 가져다 대령한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사부가 술이 잔뜩 취해서 밤에 가게로 다시 왔다.
자다가 누가 문을 두드리길레 나가 보니 사부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문을 열어주었다.
조용히 들어왔다.
난 얼른 다른 손님용 방에 내가 쓰던 이불과 베게를 갖다 주고 주무시라는 말을 하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내 방으로 가서 잠이 들려는 찰나 사부의 외침이 들여왔다.
"xx야 사랑해!"
사부는 홀에서 일하는 아가씨 중 누구를 사랑하고 있었는가 보다.
한 열번 정도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그 다음날 사부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다음날도 나오지 않았다.
나도 그때 쯤 그 가게를 그만두었다.
다른 가게에서 좀 다른 스타일을 배우기 위해 직장을 옮기게 된 것이다.
날 첨 그 가게에 소개시켜 준 주방장이 날 다시 다른 곳으로 보내 준 것이다.
거의 일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이후로도 많은 가게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상관을 모시고 그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하면서 나의 실력이 능숙해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아직 모자란 실력으로 주방장이라 스스로 칭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지만 자부심과 책임감을 스스로에게 지우기 위해 서슴치 않고 날 주방장이라 칭한다.
아직도 박부장님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무언가 가르쳐 줄 때의 그 자상하던 눈빛....
내가 잘 따라하면 아주 흐믓해 보이던 그 얼굴......
술이 그 분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한다.
술이 그 분의 한쪽 다리와 9시 이후의 인생을 앗아가고 짝사랑마저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패배자로 만든 것이다.
난 그래서 술은 좋아하되 많이 마시지 않는다.
하루 술을 먹으면 적어도 다음날은 마시지 않으며 술 해독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도 많이 한다.
그리고 절대 소주 한병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내가 한때 존경했던 분처럼 되지 않기 위해....
말이 좀 이상하다.
존경했던 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니.....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만일 다시 보게 된다면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날 알아보실까?
유난히 마른 체격이었는데......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마! 네가 무슨 주방장이냐? 그냥 보조나 하면서 더 배워야 댐 마!"
그말....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