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 16.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토커200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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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

  LA다저스의 야구모자 챙이 뒤로 가게 쓴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장미꽃과 안개꽃이 섞인 꽃다발을 들고 이경아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꽃을 준비했는지 남자는 연신 싱글 벙글거리며 휘파람을 불기까지 했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서서 남자의 뒷모습을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혼자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 그녀는 왈칵 눈물이 솟아질 것 같아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가끔 이경아는 어디에 있는지, 그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곤 했다. 매일 같이 같은 음식을 먹고, 조용한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옆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에서 하는 연속극을 보고, 같이 잠자리에 들고, 같은 거리를 함께 걷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보살펴준 오승구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짓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이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려니 하고, 포기하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 탄 장성우는 스카이라운지가 있는 33층 버튼을 누르고 뒤로 물러섰다. 막 문이 닫히려고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급히 걸어오는 여자의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오자 그는 반사적으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 반쯤 닫힌 문이 열리면서 여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설 때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에게 등을 보이고 서서 33층 버튼을 누르려다 이미 버튼에 불빛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손을 거두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장성우와 여자 단둘뿐이었다. 그는 소리나지 않게 조심하며 숨을 가볍게 들이켰다. 여자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오자 그에게 매우 익숙한 향기가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아카시아꽃 향기였다. 이번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올 만큼 아카시아꽃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면서 힐끔 곁눈질로 여자를 쳐다본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런 곳에서 이경아를 만나고 단둘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니, 장성우는 마치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녀와의 만남이 필연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눌렀을 때도, 여자가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도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상상치 않았던 행운에 가슴속으로 기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면서도 장성우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저어, 이경아 씨 아니세요?”

  장성우는 엘리베이터가 7층을 지나 8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망설이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용기를 내어 이경아에게 반걸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정작 그의 목소리는 모기소리만 하게 울려 나왔다.

  “…….”

  그러나 이경아는 옆에서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장성우에게 아무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저어, 이경아 씨 아니세요?”

  이경아가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장성우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좀더 큰소리로 말했다.

  “……?”

  언뜻 장성우를 알아보지 못한 이경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아무런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으로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제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으세요?”

  그 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용기일까. 마음을 굳게 먹고 나니 자신도 놀랄 만한 용기가 솟아난 장성우는 약간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 이경아에게 물었다. 그런 그에게서 예전의 부끄러워하고 소극적이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잠시 장성우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고 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생각해낸 이경아는 미처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화장실 변기에 앉은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하필이면 이곳에서 맞선 봤던 남자를 만났다는 것에 반가움보다는 짙은 그늘이 얼굴에 드리워졌다.

  “누굴 만나러 오시나 보죠?”

  “예. 그런데?”

  “저도 누굴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이경아의 마음과는 달리 장성우의 얼굴은 쉴새없이 싱글 벙글거리고 있었다.

  “그러세요.”

  인사치레로 말을 받아넘긴 이경아는 장성우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해서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

  서로 말문이 막힌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지금 이경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장성우는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니 아주 영원히 문이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시간이 정지되어 그냥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그의 소망과 상관없이 이 건물에 마지막 층인 33층에 멈추고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럼…….”

  이경아가 먼저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

  “아, 예…….”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 못한 장성우는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이경아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 뒷모습을 보인 후였다.

  “저, 잠깐만!”

  문이 닫히려고 할 때 재빠르게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온 장성우는 이경아를 다급히 불러 세우며 지갑에 든 명함 중에서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회사는 그만 두더라도 명함 하단에는 그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할 말이 있는데, 아무 때이고 좋으니까 시간이 나실 때 명함 아래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연락을 주시겠습니까?”

  용기를 내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시 이경아가 거절할까봐 장성우의 입안은 바싹 말라왔다.

  “…….”

  처음엔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이경아는 약간 망설이다 장성우가 건네준 명함을 아무 말 없이 받아 핸드백 속에 넣고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고갯짓을 했다. 하지만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싱긋이 웃어 보였다.

  ‘경아 씨, 난 당신을 무진장 사랑하고 있습니다!’ 라고, 장성우는 도망치듯 서둘러 걸어가는 이경아의 뒷모습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단 한 마디도 목구멍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경아의 눈빛에서 장성우는 머지않아 그녀와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쉽게 거두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깐 서성거리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홍경래와 만나기로 한 스카이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약속시간은 아직 20분전이었다.

  장성우는 스카이라운지 안을 휘둘러보았으나 홍경래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먼저 이곳에 들어온 이경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이곳의 내부구조가 디귿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이쪽에서 보이지 않는 반대편 쪽에 앉아 있는 듯했다.

  혹시 오승구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경아와 마주치면 그녀가 당황할까봐 장성우는 더 이상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밖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가의 빈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그때 홍경래가 자동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깡패 분위기가 아닌 남색 양복 정장 차림이었다. 그는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 보였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 왔어.”

  장성우는 맞은 편 의자에 홍경래가 앉자 갖고 있던 편지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그것을 아주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그 쪽으로 밀었다.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과 오승구의 신상명세가 들어 있는 봉투였다.

  그때 테이블 앞으로 다가온 종업원이 엽차를 내려놓으면서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메뉴판을 장성우에게 내밀었다.

  “뭐 마실래?”

  장성우가 홍경래 앞으로 메뉴판을 펼쳐 보이며 물었다.

  “커피로 하지.”

  “커피로 두 잔 주세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봉투를 집어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고서 이빨을 드러낸 채 웃으며 양복 안주머니에 넣는 홍경래를 쳐다보면서 장성우는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

  “내가 할 일이 뭐야?”

  종업원이 몸을 돌려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자 홍경래가 호기심과 긴장감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장성우에게 물었다.

  “한 사람을 혼내주기만 하면 돼.”

  남이 들어서는 안될 일이라, 장성우는 홍경래 앞으로 얼굴을 내밀고 속삭이듯 말했다.

  “죽이면 안되고?”

  장성우의 부탁이 별 일 아닌 듯 싶었는지 홍경래는 얼굴에 깃들었던 긴장감을 풀면서 농담조로 물었다.

  “정말 죽일 수는 있어?”

  “마, 농담이야.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

  “혹시나 해서 그런데, 절대 죽여서는 안 돼. 그리고 나머지 백만 원은 일을 치르고 나서 줄 테니까 실수 없도록 해.”

  “걱정하지마. 네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히 처리해줄게.”

  장성우는 홍경래의 여유 만만한 태도에 안심을 하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곳에서 만나고 있는 이경아와 오승구에 대해서는 입을 봉할 생각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보다는 그녀의 모습을 홍경래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승구와 만나러 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장성우와 마주친 이경아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떨결에 그가 내민 명함을 받아 들었지만 연락을 취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엔 거래하는 보험회사의 생활설계사 아주머니의 거머리 같은 성화에 못 이겨서 끌려나가다시피 하여 건성으로 본 맞선이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대통령 아들이라고 해도, 모기업의 회장 아들이라고 해도 이경아에겐 불필요한 맞선이었던 것이다.

  만약 오승구와의 관계가 없었다면, 자신에게 룸살롱 호스티스라는 경력이 없었더라면 이경아는 얼굴에 순진하고 수줍음이 많은 소년 같은 표정이 담겨 있는 장성우와 지속적인 만남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구와 정상적인 사랑을 나누었으리라.

  어쨌든 이경아는 순한 초식동물의 눈빛을 한 장성우를 본 순간 그가 경신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고, 따라서 그녀는 오승구와의 만남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경아는 오승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주위를 힐끔거렸지만 다행히 그녀의 시야에 장성우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이쪽에서 보이지 않는 반대편 쪽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왜, 무슨 일이 있어?”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해하는 이경아의 행동에 오승구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걱정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일은 무슨 일…….”

  이경아는 내심 오승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말을 얼버무렸다.

  “지금도 그 괴상한 전화가 계속 걸려 오고 있는 거야?”

  오승구는 안쓰러움을 느끼며 지금 이경아가 불안해하는 것은 매일 같이 걸려오는 ‘망할 놈의 전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놈은 오늘도 그녀를 괴롭혔을 거라고, 그는 이가 갈리도록 분노를 느꼈다.

  “모르겠어요. 전화를 안 받으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을 수는 없잖아.”

  “중요한 전화는 핸드폰으로 오니까, 아무 상관없어요.”

  종업원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놓자 이경아는 설탕과 프림이 든 그릇의 뚜껑을 열어 오승구의 앞으로 밀었다.

  “그래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

  오승구가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넣고 나서 티스푼으로 몇 번 저은 다음에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할 수 없죠.”

  “이젠 무서워하지 말고, 전화 받아도 돼. 내가…… 그러니까…….”

  오승구는 이경아가 기분 나빠할 것 같아 얼른 말꼬리를 감췄다. 흥신소 직원을 고용했다는 말을 하려다 만 것이다.

  “왜요?”

  말을 하려다 별안간 꼬리를 감추는 오승구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경아가 물었다.

  “아냐. 하여튼 이유는 묻지 말고 전화를 받아. 그래야 그놈을 빨리 잡을 수 있어.”

  “알았어요.”

  이경아는 오승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대답했다.

  “우리 그만 나갈까?”

  “…….”

  이경아는 조금 전 이곳으로 오면서 꽃을 든 남자를 보고 이 세상에서 혼자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을 때처럼 장성우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또 불쑥 찾아온 그 외로움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 오늘은 이곳에서 그냥 오승구와 헤어지고 싶었다.

  이경아와 오승구가 갖는 섹스는 만남에 대한 일종의 의식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 섹스는 거의 빠진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오늘도 이 근처의 서너 번 가본 적이 있는 서울호텔에다 객실 하나를 예약해 놓았을 게 뻔했지만 그녀는 그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적당한 핑계를 대고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경아는 ‘오늘은 그냥 일찍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항상 그렇듯 오승구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는 게 그녀였다. 그녀는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고 나서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오승구의 뒤를 3미터 정도의 거리 간격을 두고 따라가면서 이경아는 자신도 모르게 스카이라운지 안을 살폈다. 장성우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디귿자로 된 실내라 처음엔 발견할 수 없었지만 모퉁이를 돌아서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인 듯 싶었다.

  그런데 장성우를 보자 이경아는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당혹스러워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가 자석에 끌린 듯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럴까? 그녀는 애써 마음을 추슬러보지만 자신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오승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장성우와 같은 남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이경아로서는 어림없는 소망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1년 전에 호스테스가 자신의 운명 중 일부분이었다면, 지금 그와 관계를 갖고 있는 것도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 중 일부일 것이다.

  이경아는 오승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꼭 한 번은 장성우를 만나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두 사람을 예의 주시하는 남자가 있었다. 장성우도 홍경래도 아니었다. 그 남자는 함께 있던 상대방과 헤어진 뒤에도 혼자 남아 계속해서 오승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오승구와 이경아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자 남자는 민첩한 동작으로 옆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마침 때맞추어 올라왔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갈 수 있었다.

  건물을 빠져나온 오승구는 이경아보다 몇 걸음 더 앞서서 서울호텔로 걸어갔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 서울 도심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상책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미행하고 있을지 모르는 그 얼굴 없는 놈에게 또 사진을 찍혀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승구와 이경아의 뒤를 따라 쫓아간 남자는 두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기까지 하면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서울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숨을 돌린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여유 있게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서울호텔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고서 끝까지 따라가 보았자 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여유 있게 담배를 다 피운 남자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 서울호텔 회전문을 통과해서 곧장 프런트로 향했다. 프런트 위에는 나라 도시마다 시침과 분침이 다르게 돌아가는 여덟 개의 벽시계가 결려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호텔 종업원이 매우 친절하게 남자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