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홍 Story +9

수레국화2007.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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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여지가 없다. 혹시나 해서 은수가 일러준 월야면 보건소로 전화를 해봤다. 당직근무자인지 귀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남자는 의사들은 다 퇴근했다고 한다. 은수 친구의 이름이라도 알아놨어야 하는건데.. 조급한 마음에 다홍은 엄마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길을 물어 서부정류장에서 진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진주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시 월야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은수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민경이 전화했다.

“은수선배 연락안된다며? 티비에 보니까 물난리나서 대피시키고 난리던데..”

“그래. 지금 지리산 가는 길이야.”

“지리산? 정말이야?”

“어. 10분 정도만 가면 월야면이야. 민경아, 나도 내가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저히 집에 앉아서는 못 기다리겠어.”

“거기 입산 통제라는데 어떻게 찾으려고?”

“월야면 보건소에 친구가 있다니까 그 쪽으로 한번 가보려고.”

민경은 워낙 다홍의 목소리가 초조해서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았다.

“은수선배 산 잘 탄다잖아. 너무 걱정마.”

“그래도 그쪽으로 물난리나고 입산통제까지 했다는데 연락도 안되고... 무사한 거 보면 금방 올라갈거야.”

“그렇게 걱정되니?”

“나 미쳤다고 욕해도 괜찮아.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 일단 도착해서 전화할게.”

그제야 다홍은 버스안을 돌아보았다. 젊은 남녀 한쌍과 대부분은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낯선 서울말이 신기한 듯 다들 다홍의 통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듯 했다.

전화 끊기를 기다렸는지 뒤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다홍의 옆으로 옮겨와서 앉았다.

“서울아가씨가 와 이까지 왔노?”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에 다홍은 아주머니를 돌아다보았다. 전형적인 아줌마 파마를 하고 더운 날씨지만 파란색 앞이 막힌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아까 잠깐 들으까 월야면 보건소 간다꼬?”

“네.”

“거 아는 사람있나?”

“아뇨. 제가 찾는 사람 친구가 거기 있거든요.”

“아가씨 친구는 뭐하는 사람인데?”

“한의사요.”

“가만 있그라 보자.. 그람 여선생 말하는긴가? 보건소에 한의사는 여선생 밖에 없는데.”

“이름은 몰라요.”

“그람 얼굴 생김은 아나? 곱상하그러 가스나 같이 생겼는데”

아주머니는 어떻게든지 다홍과 공유할 뭔가를 찾고 싶었나보다.

“만난 적이 없어요. 지리산에 물난리났다는데 등산간다고 여기 왔는데 연락이 안돼서 찾으러 왔어요.”

“하모하모, 오늘 아침에 난리도 아니었쟤. 등산갔으만 119 소방관들이 다 구출해 냈을낀데.. 언제쯤 올라갔노?”

다홍은 그제서야 그 아주머니가 보건소를 아는 것 같아 자세를 고쳐앉았다.

“어제 새벽쯤요. 혹시 물야면 보건소 아세요?”

“하모. 내가 이래뵈도 진주에서 일로 시집와가 20년째 여 살고 있다 아이가. 다 와가니까니 가만 앉았다가 내릴때 내캉 같이 내리믄 된다. ”

아주머니는 다홍이 불안해하며 손을 조물딱 거리는 것을 보고 가만히 다홍의 손을 잡았다.

“와? 그 친구가 애인이라도 되나?”

“애인은 아닌데...”

“뭐 우쨌거나 넘 걱정하지 마소. 뭔일이야 있겄나?”

아주머니는 시골 장터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버스를 내리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다홍보다 앞서 걸으며 보건소로 향했다. 정문이 닫혀 있어서 옆에 조금 열려진 문으로 들어가니 경비실에만 불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경비실을 지키는 남자와 아는 사이인지 대뜸 창문을 열었다.

“김씨요, 여선생님 어디 갔심꺼? 여 아가씨 친구가 여선생만나러 왔다가 산에 올라갔다카네. 뭐 소식 아는거 없심꺼?”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김씨라는 분은 다홍을 슬쩍 쳐다봤다.

“우리 여선생님 안그래도 오늘 새벽에 친구와서 같이 정산리로 약재구하러 갔당께. 사택 열쇠 여기 있응께 아직 안 내려온 모양이구만.  들어가서 기다릴랑가?”

“등산간건 아니구요? 혹시 산사태 나서 못 내려오는건 아닌가요?”

“아따, 이런 날씨에 어째 등산을 간단 말이오? 쩌그 정산리로 갔응께 곧 올것이요.”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아가씨요, 웬만하면 들어가서 기다리소. 여기는 뭐 아가씨가 들어갈 데도 엄꼬 .. 워낙에 후진 동네라서.. 아니면 우리집에라도 가서 기둘리는건 어떻소?”

아주머니의 친절이 부담스러워 다홍은 일단은 보건소를 벗어나고 싶어 김씨라는 분이 가르쳐준 대로 보건소 뒤의 사택으로 갔다. 사택 마당에는 여러 대의 차가 있었다. 그 중 낯익은 차가 도로 쪽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3797. 은수의 차다. 막상 은수 차를 보고 나니 자신의 행동이 너무 충동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걱정되었다. 등산간 것도 아니라는데 전화는 왜 안받는지.. 돌아서려는데 은수 차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짙게 썬팅이 되어 있어서 사람이 있는 줄 몰랐는데 늘씬한 여자가 내려서는 다홍을 훑어 보았다. 낯선 얼굴이 차 옆을 서성이니 궁금했나보다. 다홍은 얼른 차에서 떨어져 길을 가던 사람 모양 모퉁이를 돌았다. 분명 은수의 차가 맞는데... 다홍은 은수에게 아무일도 없는 것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우스워 보일 것 같았다. 그때 또 한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사택 마당으로 들어섰다. 의료용 가방을 들고 은수와 그의 친구인 듯한 사람이 내렸다. 버스에서 만난 아주머니 말처럼 여자같이 곱상하게 생긴 친구다. 여선생인가 보다. 여자는 은수에게 달려가 그의 목에 두 팔을 감고 그를 꼭 끌어안았다.

“너희집에 전화했더니 여기 왔다고 하시길래 한걸음에 달려왔어.”

“민영이구나, 잘 있었어?”

은수는 여자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는 여자를 떼어놓았다.

“강민영, 나는 보이지도 않냐?”

“우리 애인만 보면 되지 넌 봐서 뭐하겠냐? 잘 있었어?”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여자는 은수의 친구와도 포옹을 했다. 다홍은 혼란스러워서 벽에 더더욱 붙어서 몸을 숨겼다. 애인이라고 했다. 애인.

“너 전화기 불나던걸. 차 문이 열렸길래 들어가 있었더니 잠시도 쉬지 않고 전화벨 울리더라. 너 혹시 나 몰래 바람난거 아니야? 너한테 그렇게 전화해댈 사람이 나 말곤 없는데..”

은수가 전화기를 건네받아서는 수신 내용들을 확인하는가보다. 그 와중에도 여자는 은수의 팔짱을 끼고 은수의 문자 내용을 같이 확인하고 있었다. 다홍은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분명 은수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다홍에게 전화할 것이다. 거기서 다홍의 전화벨이 울린다면 자신의 모습이 바보같아질 것이다. 애인이 버젓이 있는 남자를 걱정해서 대구에서 전라도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바보를 비웃을 것이다. 다행히 보건소를 벗어나서 전화벨이 울렸다. 은수일 것이다. 다홍은 전화를 감싸안고 그들과 더 멀어지기 위해 있는 힘껏 뛰었다. 월야 버스정류소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소라고 하기엔 동네 구멍가게만한 작은 크기였지만 안에는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서너개 줄지어 있었다. 진주로 가는 다음 버스는 6시다. 20분가량 시간이 남았다. 토요일이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벤치에 앉은 다홍 옆으로 앉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사라지자 진주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다홍은 뒤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가 출발해서 정류소를 돌아 나가는데 은수의 차가 정류소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다홍은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아버렸다. 온 몸의 힘이 쑥 빠져 나가 눈을 깜빡일 힘도 없었다.

문자가 여러 통 왔다. 진주에 다 도착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너 어디야? 은수선배 너 못 만났다는데? 안보고 서울 올라오는 길이야? ]

[무슨 일 생겼어? 왜 연락이 안돼? 그 동네는 가기만 하면 연락이 끊어지냐?]

[아무도 너 미쳤다고 욕 안할테니까 내게든 은수선배에게든 연락해줘.]

민경은 지쳤는지 전화도 문자도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민경의 문자 사이에 은수의 문자가 섞여 있었다.

[지리산 왔다더니 여길 못찾은거니? 어디있는지 연락바람. 걱정된다.]

[내가 전화 안받아서 많이 걱정했지? 차에 전화기를 두고 친구 일을 좀 돕느라..]

[제발 대구로 다시 갔다는 소식 들렸음 좋겠다. 꼭 연락바란다.]


다홍은 부모님이 계시는 대구 고모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엄마는 아침에 뭐에 홀린 듯 나간 딸이 녹초가 되어서 나타나자 걱정이 되었지만 어떤 것도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라 푹 자게 내버려 두었다. 전화벨이 울렸지만 곤히 자던 다홍은 전화기 전원을 꺼버리고는 다시 잠들었다.  일요일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잔 다홍은 일어나서 말끔히 씻고는 부모님과 함께 갓바위에 올랐다. 아버지 어머니는 매일 운동하는 길이라 지친 기색이 없는데 다홍은 보조를 맞추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아버지, 헉~헉~ 저 다다음달에 영국으로 유학가요. 헉~”

아버지는 앞서던 걸음을 멈췄다.

“언제 결정한거냐?”

“고민 많이 하다가 결정한거예요.”

“돈이 아직 모자랄텐데.. 어떻게 하려고?”

“내일 서울 올라가서 일단 교수님께 교환학생 부탁해 보고 안되면 제가 모은 돈으로 가려구요. 영국 학교에서 입학 통지 받는 대로 출국할 수 있을거예요. 그때까지 알바하면 웬만큼 될거예요. 모자란건 거기가서 알바하죠뭐.”

아버지는 어제 불쑥 지리산에 간다고 나갔다 와서는 내년에 간다던 유학을 갑작스레 앞당긴 다홍의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사건이 있을텐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