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구의 아내인 최성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친구인 김수현과 박미영을 오랜만에 만난 터라 반갑게 맞이했다. 강남 압구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친구들은 급히 할 말이 있다고 전화를 하더니 총알 택시를 타고 왔는지 복잡한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들이닥친 것이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최성희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무슨 일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거실 소파에 앉으면서 최성희가 매우 안됐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 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너무 놀라지 마라.”
박미영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김수현과 불안한 눈짓을 서로 교환했다.
“…….”
무슨 영문인지 모르면서도 친구들의 태도에 극심한 불안감에 휘말린 최성희는 아무 말 못하고 물끄러미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우리 애 아빠가 봤다는데……, 아무래도 네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 같데.”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박미영의 말을 듣고 최성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서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니, 얼토당토 않는 말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받기보다는 친구에게 모욕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낮에 무교동에 있는 밀레니엄빌딩 스카이라운지에 누구를 만나러 갔다가 네 남편이 어떤 젊은 여자와 만나는 걸 봤다는 거야.”
“그 사람도 일이 있어서 그 여자와 만났겠지. 젊은 여자와 만났다고 해서 그게 다 바람을 피우는 거니?”
친구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최성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넌 믿고 싶지 않겠지만, 내 남편이 시간도 있고 해서 끝까지 미행해 봤더니 그 두 사람이 그곳에서 나와 곧장 서울호텔로 들어가더라는 거야.”
그러나 계속되는 박미영의 말에 침착성을 잃어버린 최성희의 얼굴이 이내 굳어지면서 눈빛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아 조마조마하며 쌓아 올렸던 모래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확실……한 거야?”
잠시 할 말을 잃던 멍하니 앉아 있던 최성희는 입안이 바싹 마르는 바람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탁자 위에 있던 유리컵을 들고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 남편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거짓말하겠니? 호텔 종업원에게 팁까지 주면서 알아봤더니 두 사람이 함께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방에 들어간 게 확실하다고 했어.”
박미영에게 방금 들은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잠시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말문이 막힌 최성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앞으로 너, 어떻게 할 생각이니?”
“……, 휴-!”
최성희는 대답 대신 땅이 꺼져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이 전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기가 막혔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 들어 평소보다 출장이 잦았던 오승구였다. 그리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도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에게선 술 냄새뿐만 아니라 여자의 화장품 냄새까지 미세하게 풍겼었다. 하지만 사업 관계상 어쩔 수 없이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겠지 하고, 최성희는 폭넓은 이해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언제였던가.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날 최성희는 자정이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가운만 입은 채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하는 마감뉴스를 보고 있는 오승구에게로 다가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오승구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표정을 감추고 마지못해 최성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서 입술을 찾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거쳐 젖가슴 쪽으로 더듬어 내려올 때 그녀가 그의 가운을 벗기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녀 위에 엎드린 그가 입술로 그녀의 몸을 정성스럽게 애무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의 성기가 애초의 상태 그대로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마음만 달아 있을 뿐 몸이 뜨거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최성희의 몸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그녀의 옆에 누운 오승구는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미안해…….”
오승구가 몸을 돌려 모로 누우며 최성희를 안으며 미안해했다. 그녀는 그가 막중한 업무에 찌들려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그가 안쓰러워 그의 가슴을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약까지 해서 먹였는데…….
오승구가 그 여자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함께 호텔에 투숙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최성희는 그 동안 자신이 감쪽같이 속고 살았다는 생각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면서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간통으로 고발해 버려.”
원망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최성희에게 김수현이 다짐을 주듯 말했다.
“누구 때문에 지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주 콩밥을 먹여야 돼.”
옆에 앉아 있던 박미영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 내색하지 말고 있다가 두 사람이 만나는 현장을 덮쳐서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돼. 흥신소에 의뢰하면 그들이 다 알아서 해오거든. 우리 이웃집 아주머니도 그렇게 해서 일을 해결했어.”
친구들은 최성희의 기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승구를 간통죄로 고발하는 데만 신이 난 듯 떠들어댔다.
최성희는 자신보다 나이가 세 살 어린 오승구를 사랑했다. 그에 대해서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쌍놈의 새끼! 속으로 욕설을 삼키면서 그녀는 갑자기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분노와 절망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생각 같아서는 실컷 울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친구들 앞에서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녀는 충격을 숨기고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어금니를 깨물며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입방아를 찧던 친구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최성희는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어!’라고 강하게 부정해보지만,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부정이 긍정으로 확실히 바뀌어 갈 뿐이었다.
최성희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광경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느라 고양이처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했던가. 그녀는 목숨같이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오승구의 배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날 배신해? 이 새끼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최성희는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크게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여보세요?”
오승구의 전화일 것이라는 생각에 받고 싶지 않아 최성희는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나야. 지금 뭐하고 있었어?”
최성희의 생각대로 오승구의 전화였다. 그의 목소리는 변함 없이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평범한 남편의 목소리였다.
“…….”
최성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승구의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의 감정 같아서는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일이었으나, 욕설을 내뱉을 수 있는 일이었으나 박미영의 말대로 그가 오리발을 내밀지 못하도록 아무 내색하지 말고 있다가 두 사람이 만나는 현장을 덮쳐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최성희가 아무 말하지 않고 있자 오승구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듣고 있으니까 말해.”
최성희는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이듯 말했다. 제 몸에 난 상처를 혓바닥으로 핥는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분노를 억제하고 있었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오승구와 통화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도둑놈 제 발 저리다고, 예전 같지 않은 최성희의 목소리에 오승구는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그놈의 사진이 또 경비원이 없을 때 집으로 날아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언뜻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힌 오승구는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무겁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도 아냐.”
최성희는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억제하기 위해 입술을 깨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신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 않은데, 도대체 왜 그래?”
최성희의 매우 낯선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오승구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스런 말투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왜 전화한 거야?”
오승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최성희였지만 더 이상 그와 통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냉랭한 어조로 용건을 물었다.
“별안간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알았어.”
‘젊은 년 만나서 벌거벗고 뒹굴려고 그러니?’라고 내뱉고 싶었지만, 최성희는 치밀어 오르는 역정을 가까스로 참으며 무거운 한숨과 함께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파에 허물어지듯 앉아 무심코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을 응시했다.
재작년 봄 담장 밑에 널려 있는 개나리꽃이 만발할 때 쌍둥이인 두 딸을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내면서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승구는 좋은 남편처럼, 좋은 아빠처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젯밤에 우리 애 아빠가 말하는데……, 아무래도 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데. ……두 사람이 함께 서울호텔로 들어가더라는 거야.”
최성희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더 이상 사진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구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상이 캄캄해지고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끝내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최성희는 어깨를 파도치듯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이가 세 살이나 어린 동생 같은 오승구와의 결혼은 순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이 예쁘다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엽고 예쁘기만 한 무남독녀 외동딸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도 억울한데 고생 끝에 모은 전 재산까지 고스란히 남에게 넘겨줄 수 없었던 아버지는 데릴사위를 원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데릴사위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무조건 늙어 죽을 때까지 처갓집에 얹혀 살 수 있는 건강한 머슴 같은 남자였으며, 또 하나는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머리가 썩 좋지 않은 남자였다. 그건 그런 류의 남자는 등뒤에서 공격할 정도로 머리를 굴리지 못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자수성가로 뼈 빠지게 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까먹지 말아야 하므로 게으름을 모르는 근면 성실한 남자였다.
“요즘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요?”
아버지의 엉뚱한 조건에 결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최성희는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볼멘 소리로 항의를 했다.
“왜 없어. 찾으면 다 있기 마련이니까, 시집 못 갈까봐 너무 걱정하지마.”
아버지는 최성희의 항의에 짐짓 대수롭지 않다 듯한 말투로 그녀를 달랬다.
“저보고 결혼하지 말고 그냥 늙어 죽으라는 것밖에 안되잖아요.”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는 최성희의 얼굴은 떫은감을 씹은 표정이었다.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마. 알았지?”
몇 날 며칠을 최성희와 아버지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완력에 가까운 단호한 결정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남자들에게 호감이 가는 미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나 결국엔 아버지의 판단이 어리석지 않았다는 것을 최성희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병역의무를 마친 오승구가 예비군복을 입고 나타나자 아버지는 입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던 것이다.
“오승구……, 그 친구 말이야. 네 생각엔 어떠니?”
어느 날 저녁이었다. 식사를 끝낸 후 소파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던 아버지가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는 듯이 최성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아버지의 의도와는 달리 최성희는 입으로 가져가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질문이 출판사 내에서의 오승구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아빠가 쭉 지켜보았는데…… 오승구 그 친구 말이야, 네 신랑감으로 적격인 것 같아.”
“예? 저보고 오승구와 결혼하라고요?”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선택에 순간적으로 경직된 얼굴이 된 최성희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왜? 싫어?”
아버지는 최성희에게 짧게 묻고서 커피잔을 비웠다.
“저보다 세 살이나 어리잖아요.”
“결혼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어.”
“에이, 말도 안돼요.”
“네 얼굴 표정을 보니까 싫지는 않은가 보구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찬 아버지의 시선이 최성희의 얼굴에 머물렀다.
“…….”
아버지의 말에 최성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왠지 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세 살이 어리거나 많은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요즘 나오는 광고 카피처럼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슬쩍 눈을 흘겼다.
“아빠가 뒤에서 도와줄 테니까 잘해 봐.”
최성희의 마음을 읽은 듯 아버지는 흐뭇해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결과 오승구에게는 사회의 시커먼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순수성이 있었다. 거기다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과 근면 성실하고 정직함 때문에 그 누구도 그와는 적이 될 수 없었다. 다만 남들처럼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력도 없는 단점이 여자들에게 외면 받는 원인이었다. 그 원인이 최성희의 아버지에게는 최상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1년 동안 그를 지켜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 이후로 최성희는 종전과 다른 감정으로 오승구를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미처 예감하지 못했던 야릇한 연민과 애정을 그에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 살이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오승구가 아버지에게 데릴사윗감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최성희의 가슴속에 그에 대한 사랑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인 그녀는 그가 대리를 승진하 날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종이배 17. <들통난 바람>
들통난 바람
오승구의 아내인 최성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친구인 김수현과 박미영을 오랜만에 만난 터라 반갑게 맞이했다. 강남 압구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친구들은 급히 할 말이 있다고 전화를 하더니 총알 택시를 타고 왔는지 복잡한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들이닥친 것이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최성희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무슨 일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거실 소파에 앉으면서 최성희가 매우 안됐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 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너무 놀라지 마라.”
박미영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김수현과 불안한 눈짓을 서로 교환했다.
“…….”
무슨 영문인지 모르면서도 친구들의 태도에 극심한 불안감에 휘말린 최성희는 아무 말 못하고 물끄러미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우리 애 아빠가 봤다는데……, 아무래도 네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 같데.”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박미영의 말을 듣고 최성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서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니, 얼토당토 않는 말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받기보다는 친구에게 모욕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낮에 무교동에 있는 밀레니엄빌딩 스카이라운지에 누구를 만나러 갔다가 네 남편이 어떤 젊은 여자와 만나는 걸 봤다는 거야.”
“그 사람도 일이 있어서 그 여자와 만났겠지. 젊은 여자와 만났다고 해서 그게 다 바람을 피우는 거니?”
친구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최성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넌 믿고 싶지 않겠지만, 내 남편이 시간도 있고 해서 끝까지 미행해 봤더니 그 두 사람이 그곳에서 나와 곧장 서울호텔로 들어가더라는 거야.”
그러나 계속되는 박미영의 말에 침착성을 잃어버린 최성희의 얼굴이 이내 굳어지면서 눈빛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아 조마조마하며 쌓아 올렸던 모래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확실……한 거야?”
잠시 할 말을 잃던 멍하니 앉아 있던 최성희는 입안이 바싹 마르는 바람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탁자 위에 있던 유리컵을 들고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 남편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거짓말하겠니? 호텔 종업원에게 팁까지 주면서 알아봤더니 두 사람이 함께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방에 들어간 게 확실하다고 했어.”
박미영에게 방금 들은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잠시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말문이 막힌 최성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앞으로 너, 어떻게 할 생각이니?”
“……, 휴-!”
최성희는 대답 대신 땅이 꺼져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이 전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기가 막혔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 들어 평소보다 출장이 잦았던 오승구였다. 그리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도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에게선 술 냄새뿐만 아니라 여자의 화장품 냄새까지 미세하게 풍겼었다. 하지만 사업 관계상 어쩔 수 없이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겠지 하고, 최성희는 폭넓은 이해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언제였던가.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날 최성희는 자정이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가운만 입은 채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하는 마감뉴스를 보고 있는 오승구에게로 다가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오승구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표정을 감추고 마지못해 최성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서 입술을 찾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거쳐 젖가슴 쪽으로 더듬어 내려올 때 그녀가 그의 가운을 벗기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녀 위에 엎드린 그가 입술로 그녀의 몸을 정성스럽게 애무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의 성기가 애초의 상태 그대로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마음만 달아 있을 뿐 몸이 뜨거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최성희의 몸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그녀의 옆에 누운 오승구는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미안해…….”
오승구가 몸을 돌려 모로 누우며 최성희를 안으며 미안해했다. 그녀는 그가 막중한 업무에 찌들려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그가 안쓰러워 그의 가슴을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약까지 해서 먹였는데…….
오승구가 그 여자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함께 호텔에 투숙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최성희는 그 동안 자신이 감쪽같이 속고 살았다는 생각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면서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간통으로 고발해 버려.”
원망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최성희에게 김수현이 다짐을 주듯 말했다.
“누구 때문에 지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주 콩밥을 먹여야 돼.”
옆에 앉아 있던 박미영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 내색하지 말고 있다가 두 사람이 만나는 현장을 덮쳐서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돼. 흥신소에 의뢰하면 그들이 다 알아서 해오거든. 우리 이웃집 아주머니도 그렇게 해서 일을 해결했어.”
친구들은 최성희의 기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승구를 간통죄로 고발하는 데만 신이 난 듯 떠들어댔다.
최성희는 자신보다 나이가 세 살 어린 오승구를 사랑했다. 그에 대해서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쌍놈의 새끼! 속으로 욕설을 삼키면서 그녀는 갑자기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분노와 절망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생각 같아서는 실컷 울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친구들 앞에서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녀는 충격을 숨기고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어금니를 깨물며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입방아를 찧던 친구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최성희는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어!’라고 강하게 부정해보지만,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부정이 긍정으로 확실히 바뀌어 갈 뿐이었다.
최성희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광경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느라 고양이처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했던가. 그녀는 목숨같이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오승구의 배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날 배신해? 이 새끼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최성희는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크게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여보세요?”
오승구의 전화일 것이라는 생각에 받고 싶지 않아 최성희는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나야. 지금 뭐하고 있었어?”
최성희의 생각대로 오승구의 전화였다. 그의 목소리는 변함 없이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평범한 남편의 목소리였다.
“…….”
최성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승구의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의 감정 같아서는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일이었으나, 욕설을 내뱉을 수 있는 일이었으나 박미영의 말대로 그가 오리발을 내밀지 못하도록 아무 내색하지 말고 있다가 두 사람이 만나는 현장을 덮쳐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최성희가 아무 말하지 않고 있자 오승구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듣고 있으니까 말해.”
최성희는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이듯 말했다. 제 몸에 난 상처를 혓바닥으로 핥는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분노를 억제하고 있었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오승구와 통화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도둑놈 제 발 저리다고, 예전 같지 않은 최성희의 목소리에 오승구는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그놈의 사진이 또 경비원이 없을 때 집으로 날아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언뜻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힌 오승구는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무겁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도 아냐.”
최성희는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억제하기 위해 입술을 깨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신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 않은데, 도대체 왜 그래?”
최성희의 매우 낯선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오승구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스런 말투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왜 전화한 거야?”
오승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최성희였지만 더 이상 그와 통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냉랭한 어조로 용건을 물었다.
“별안간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알았어.”
‘젊은 년 만나서 벌거벗고 뒹굴려고 그러니?’라고 내뱉고 싶었지만, 최성희는 치밀어 오르는 역정을 가까스로 참으며 무거운 한숨과 함께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파에 허물어지듯 앉아 무심코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을 응시했다.
재작년 봄 담장 밑에 널려 있는 개나리꽃이 만발할 때 쌍둥이인 두 딸을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내면서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승구는 좋은 남편처럼, 좋은 아빠처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젯밤에 우리 애 아빠가 말하는데……, 아무래도 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데. ……두 사람이 함께 서울호텔로 들어가더라는 거야.”
최성희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더 이상 사진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구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상이 캄캄해지고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끝내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최성희는 어깨를 파도치듯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이가 세 살이나 어린 동생 같은 오승구와의 결혼은 순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이 예쁘다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엽고 예쁘기만 한 무남독녀 외동딸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도 억울한데 고생 끝에 모은 전 재산까지 고스란히 남에게 넘겨줄 수 없었던 아버지는 데릴사위를 원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데릴사위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무조건 늙어 죽을 때까지 처갓집에 얹혀 살 수 있는 건강한 머슴 같은 남자였으며, 또 하나는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머리가 썩 좋지 않은 남자였다. 그건 그런 류의 남자는 등뒤에서 공격할 정도로 머리를 굴리지 못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자수성가로 뼈 빠지게 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까먹지 말아야 하므로 게으름을 모르는 근면 성실한 남자였다.
“요즘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요?”
아버지의 엉뚱한 조건에 결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최성희는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볼멘 소리로 항의를 했다.
“왜 없어. 찾으면 다 있기 마련이니까, 시집 못 갈까봐 너무 걱정하지마.”
아버지는 최성희의 항의에 짐짓 대수롭지 않다 듯한 말투로 그녀를 달랬다.
“저보고 결혼하지 말고 그냥 늙어 죽으라는 것밖에 안되잖아요.”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는 최성희의 얼굴은 떫은감을 씹은 표정이었다.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마. 알았지?”
몇 날 며칠을 최성희와 아버지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완력에 가까운 단호한 결정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남자들에게 호감이 가는 미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나 결국엔 아버지의 판단이 어리석지 않았다는 것을 최성희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병역의무를 마친 오승구가 예비군복을 입고 나타나자 아버지는 입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던 것이다.
“오승구……, 그 친구 말이야. 네 생각엔 어떠니?”
어느 날 저녁이었다. 식사를 끝낸 후 소파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던 아버지가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는 듯이 최성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아버지의 의도와는 달리 최성희는 입으로 가져가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질문이 출판사 내에서의 오승구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아빠가 쭉 지켜보았는데…… 오승구 그 친구 말이야, 네 신랑감으로 적격인 것 같아.”
“예? 저보고 오승구와 결혼하라고요?”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선택에 순간적으로 경직된 얼굴이 된 최성희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왜? 싫어?”
아버지는 최성희에게 짧게 묻고서 커피잔을 비웠다.
“저보다 세 살이나 어리잖아요.”
“결혼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어.”
“에이, 말도 안돼요.”
“네 얼굴 표정을 보니까 싫지는 않은가 보구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찬 아버지의 시선이 최성희의 얼굴에 머물렀다.
“…….”
아버지의 말에 최성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왠지 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세 살이 어리거나 많은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요즘 나오는 광고 카피처럼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슬쩍 눈을 흘겼다.
“아빠가 뒤에서 도와줄 테니까 잘해 봐.”
최성희의 마음을 읽은 듯 아버지는 흐뭇해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결과 오승구에게는 사회의 시커먼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순수성이 있었다. 거기다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과 근면 성실하고 정직함 때문에 그 누구도 그와는 적이 될 수 없었다. 다만 남들처럼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력도 없는 단점이 여자들에게 외면 받는 원인이었다. 그 원인이 최성희의 아버지에게는 최상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1년 동안 그를 지켜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 이후로 최성희는 종전과 다른 감정으로 오승구를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미처 예감하지 못했던 야릇한 연민과 애정을 그에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 살이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오승구가 아버지에게 데릴사윗감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최성희의 가슴속에 그에 대한 사랑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인 그녀는 그가 대리를 승진하 날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