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전설이라면...[6편]

로렐라이200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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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자 그는 금새 삼계탕 한그릇을 다 비웠지만 은수는

 

거의 반이상 음식을 남겨놓은채 민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건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은수가 선택해 들어왔던 그 삼계탕집은

 

음식이 썩 맛있는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하는 보는사람마저 군침이 돌게끔 그 삼계탕을 맛있게 다 비우고 있었다.

일주일새 4kg이나 빠졌다더니 어쩌면 그동안 줄창 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하며 은수는 수저를 놓았다.

"왜 그것밖에 안먹어요? 혹시 삼계탕 안좋아하는데 나 때문에 어쩔수 없이 온거 아니에요?"

음식을 거의 다 남긴채 생각보다 일찍 식사를 마친 은수가 신경 쓰였는지 민하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그녀는 대답대신 그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어떡하면 일주일새 몸무게가 4kg나 빠질수 있어요? 나도 다이어트 해보게 그 비법좀

 

알려줘요..."

"다이어트를 해야할 만큼 심각한 몸매는 아닌 것 같은데 그걸 꼭 알아야 해요?"

"알고싶어요."

그러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고싶은 사람 있는데 볼수도 없고... 안올거란거 알면서도 매일같이 기다리는일...

 

그게 자꾸반복 되다 보니까 자연스레 식욕은 없어졌어요. 잠잘려고 눈을 감으면 자꾸 생각나

 

밤잠도 설치고... 처음 본 사람에게...그것도 단한번 봤던 사람을 잊지못해 그랬던건

 

처음이에요...

그러다가 이젠 정말 잊어버리자고 마음먹고선 오랜만에 혼자 쇼핑 나온 거였는데 공교롭게

또 만나 버렸어요..."

"이해할수 없군요..술꾼에다가 여자다운 매력이라곤 조금도 없는 나를..

 

나같은 사람이 어디가 좋다고..."

그러다 은수는 보란듯이 갑자기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딱히 담배생각이 나서라기보단 그에게 난 이런여자다 라는 뉘앙스를 주기위해 그녀는

 

일부러 그러고 있었다. 은수는 담배연기와 뒤섞여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할께요. 나 민하씨가 싫은건 아니지만..부담스러운건 사실이에요..이나이에 새삼

사랑에 대한 핑크빛 꿈을 꿀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때 서빙을 하던 아주머니가 다가와선 그들의 빈그릇을 거둬 갔고 후식으로 커피를 내놓고

갔다. 민하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두손으로 감싸쥐면서 대답했다.

"부담스럽더라도 싫은게 아니라면 됐어요... 당신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면 충분한 시간을

 

줄거고... 내가 기다려야 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기다리죠.. 난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보다 진지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를 대하면서 은수는 복잡해졌

다. 그의 말을 가볍게 한귀로 듣고 흘릴수도 있는데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이 함께 따라가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자고 사라진 그를 찾아내 저녁까지

 

사고 있는걸까... 그녀는 담배를 비벼끄고 남은 커피를 한번에 입속에 털어넣으며 말했다.

"날 어떻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난 순진하기는커녕 착하지도 않은 여자라구요..

제멋대로에다...한번씩 히스테리컬 하기도 하죠..

 

그래서 예전에 만나던 남자가 날 떠났는지도 모르고...그러니까...."

"내가 싫은건 아니라고 했으니 이유없이 날 밀어내지 말아요..그건 할수 있겠죠?"

은수는 슬핏 웃음을 지었다. 한마디도 지지않고 차분하게 대답하는 민하를 보면서 한편으론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지만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과 다시 사귀고

인연을 맺는일이란 아무래도 피곤한 일이었다.

더구나 상우와 헤어진날 밤 찾아갔던 카페에서 만난 사람이라니...그녀는 그날밤을 다시

떠올리다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코메디 같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식당앞에서 서로 인사는 나눴지만 민하는 혼자 어디론가 걸어가는 은수를

지켜보다가 그녀의 모습이 거의 안보일때쯤에야 갑자기 그녀를 쫓아갔고 가쁜 숨을 고른 후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혹시 인연이란거 믿어요?"

".........."

"난 그런거 별로 믿진 않았는데 이젠 믿고 싶어졌어요.."

은수는 그의 뜬금없는 말에 천천히 걸음을 멈추더니 그를 올려다봤다.

"인연이고 뭐고....내가 지금 어디가는 줄 알고 다시 쫓아온거죠?"

"어딜 가는지는 모르지만 집까지만 데려다 줄께요...그러고 싶어서 따라온건데..또 가라는

말은 하지말아요.."

그녀는 뭐라 대꾸하려 했으나 귀찮은 생각이 들어 곧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는 앞만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은수는 민하의 그런 행동들이 다소 성가신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한편으론 재밌어 하며

은근히 즐기고 있었고  새삼 그에 관해서 궁금증이 이는걸 느끼며 스스로 혼란에 빠졌다.

상우와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두번다신 그런 감정에 빠져들지 않으리라  작정했는데 그와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다른사람을 생각하려 하는지......

은수는 저 장민하란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꾸 서글퍼지는 감정을 애써 추스리면서.....

그녀는 몇 개의 가로등과 가로수.. 그리고 여러 상가건물들을 지나쳐 갈때까지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민하 역시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따금씩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긴 했지만 그는 결코 그녀를 앞서 걷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또 옆으로 붙어

걷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은수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말문을 연건 민하였다.

"예전엔 말이죠..사람이 사람을 만나고..또 만나서 좋아하고 사랑하는일을 참 부질없는 일로

여겼었어요..흔히 말하는 것처럼 마음먹고 등돌리면 바로 남이 되어버리는 그런 쉬운사랑에

내시간과 온마음을 들인다는게 엄청난 낭비라 생각했으니까요...

게다가 내자신을 사랑하는 일조차 난....그래서 혼자 사는것도 그리 나쁜건 아니라고...

 

독신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거 같았는데...몇달도 못가서 이렇게 흔들릴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다 당신때문이지만...."

"참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거 같은데 누굴 핑계대고 그래요? 내가 당신생각을 바꾸게

끔 만들었다면 다행이네요...내가 보기엔 당신은 절대 혼자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거 같으니

까...가벼운 사랑이든 아니든...그게 중요한건 아니죠..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성한 아름

다운 교류이니까....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눈다는게 결코 쉬운일은 아니잖아요..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바라볼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도 찾을수 있어요...."

그러자 계속 은수의 뒤에만 있던 민하는 대뜸 그녀의 앞을 막고 서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거..참 말한번 잘했네....그래요...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면 마음을 활짝열고 상대를 바라봐야

겠죠..그런데 은수씬 좀 아닌거 같거든요..난 그렇게 할수 있는데...아직도 어떡하면 날 따돌

릴수 있을까 그것만 궁리하고 있는거 같아요..."

그러자 은수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주머니속에 넣었던 손을 빼내어 팔짱을 끼고선 이렇

게 대꾸했다.

"난 더이상 상처받기 싫고 또 나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받는것 역시 원치 않아요.."

"!!!!"

그는 대답대신 갑자기 걷는 속도를 늦추고선 은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하는 상처라는게 어떤걸 의미하는지...그녀를 처음 봤을때 막연히 느꼈었던... 

어쩌면 그게 꼭 실연의 아픔에만 국한되는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것저것 알고 싶은건 더 많아졌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데다 결코 연약한 성격도 아닌듯 하지만 민하는 이상하게 그런

은수에게 자꾸만 보호본능을 느꼈던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은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로 가득할 그녀에게....

한편 은수는 갑자기 조용해진 민하를 돌아보더니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정말 집까지 따라올 작정이에요?"

"그럼요...그리고 따라 가는게 아니라 데려다 주겠다고 했잖아요...무슨말 하려는지 대충

알겠는데 중간에 돌아갈거였으면 나 처음부터 같이 오지 않았어요..."

그러자 은수는 한숨같은 웃음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 말아요. 민하씨 돌려보낼 생각 없으니까... 당신이 쉽게 내말을 들을거 같지도 않지만

여기까지 같이 온 사람을 강제로 가라마라 하는것도 피곤한 일이고..어쨌거나 난 여기서 택

시 탈거에요.."

그리고는 때마침 다가오는 택시를 세웠고 그들은 나란히 뒷자석으로 자리했다.

은수는 행선지를 묻는 기사에게 면목동 장미아파트라고 말을 한뒤 창문을 내렸고 습관처럼

가방을 뒤지며 담배를 찾았다. 하지만 빈 담배갑만 삐져 나오자 그녀는 실망한 얼굴로 창밖

을 내다보며 아직 차가운 밤바람을 얼굴로 맞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그녀는 민하에

게 이렇게 말했다.

"혹시 그노래 알아요? 존 레논이 부른 oh my love. 카페에서 노래도 하고 그러니까 알거

같은데....알면 좀 불러봐요...대학 다닐 때 많이 듣던 노래라서 멜로디는 대충 알겠는데 가

사는 영 기억이 안나네..."

"몰라요."

그는 말한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혹시나 했는데....그럴줄 알았어."

민하는 사실 기대도 안했다는 투로 대답하고선 어설프게 그 팝송을 흥얼거리는 은수를 보며

소리죽여 웃었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존 레논의 oh my love는 사실 민

하도 알고 있는 노래였다. 하지만 뉴스까지 흘러나오는 택시안에서 아무렇게나 그노래를 부

를려니 영 내키지 않았고 게다가 중간에 영어가사가 막히기라도 하면 우스워 질거 같아

 

그냥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는 창밖에다 시선을 고정한채 생각에 빠져 노래를 흥얼거리는

은수를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 노래를 따라 하려다 곧 그만두었다.

"다 왔어요."

택시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은수는 계산을 마친후 차에서 먼저 내렸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는 약간 오랜 된듯한 작은 단지였지만 조그만 놀이터와 등나무 벤치를

둘러싼 여러 가지 나무들. 그리고 띄엄띄엄 길을 밝히며 서있는 오렌지빛 가로등이 어우러

져 아담한 느낌을 주었다. 은수는 아파트를 둘러보며 서있는 민하를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

히 다가갔다.

"고마워요. 같이 와줘서...조심해서 가세요.."

하지만 그는 뭔가 할말이 있는 듯한 얼굴로 한참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약간의 실

망감이 실린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끝까지 나에 관한건 아무것도 안물어 보군요."

"딱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궁금한것도 별로 없으니까요."

"혹시 다음에 다시 보게되면 그땐 말 편하게 하세요. 사실은 나......"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뭔가 더 말하려 했으나 결국 그냥 돌아서 버렸다.

"왜 말을 하다 그냥 갈려고 해요? 할말 있으면 다하고 가요."

그러자 그는 지갑에서 뭔가 꺼내어 들더니 은수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쉽게 입이 안떨어지네요.. 이걸보면 내가 무슨말 하려 했는지 알수 있을거에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민하가 그녀에게 건넨건 그의 신분증이었다. 은수는 자신의 손에 들려진게 그의 신분증인걸

어렴풋하게 확인하자 황당한 표정으로 멀리 사라진 그의 뒷모습만 눈으로 쫓다가 엘리베이

터를 타기위해 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밝은 불빛 아래서 그 신분증을 찬찬히 들여다 보다

뭔가 알아챈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