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아침부터 괴성이 울린다. 공포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벌써 5일째 아침마다 겪는 일이다. 것도 하루 이틀이래야 참지 매일 아침 저 윤지완이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마법의 성이 뒤흔들릴 정도로 볼륨을 높여 틀어 대고 있었다. 음악 종류도 가지각색으로 재즈부터 락, 팝, 가요에 이르기까지 종류 불문하고 울려 댔다. 그러다가 그것으로도 성이 안차면 아침부터 저렇게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댄다.
햇살에 취해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다 괴성에 놀라 깨어나길 지완이 온 뒤 꼬박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맞는 아침 풍경이다. 이러다 노이로제 걸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보통에 아파트 단지나 아님 주택가에선 절대 할 수 없는 짓거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
끌려 온 후 지완이 놈이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틀어 박혀 음악을 틀거나 낚시나 산책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마저도 앞이 보이지 않아 어쩌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세상 떠나가라 욕을 해댔고 신경질 적으로 붕대를 잡아 뜯으며 제 성을 제가 못 이겨서 생난리를 피워 댔다. 거기에 어디서 저런 욕을 배워 왔나 싶을 정도로 나이도 많은 놈이 주위 사람 안중에도 없이 욕을 해댔다.
“악!!! 민승아!!!”
“!!”
갑자기 불러지는 이름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한방에 정신이 번쩍 든다. 왜 갑자기 제 이름이 불려 졌는지도 모르고 두 눈 껌벅이며 숨죽이고 있다.
“으악~ 젠장!!”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치료만 잘 받으면 눈도 곧 낫는다는데 녀석은 매일 아침 저 난리다. 오늘은 왜 남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소리치는지 하는 짓이란 곤 이쁜 짓이 하나 없다. 어릴 적이나 나이를 먹은 지금이나 하나 변한 것이 없는 놈이다.
“승아 일어났니?”
갑자기 불려진 이름 때문에 안채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부르신다.
“에, 예. 일어났어요. 나갈게요.”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왔다. 지완이 때문에 더 잠들을 수도 없었기에 막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고 평소 같지 않은 아주머니 모습이 보인다.
“저기… 저기 말이다…….”
무슨 일인지 말을 못하시고 미적거리신다.
“예?”
“내가 말이야 부탁이 좀 있어서… 너 곤란한 거 아는데 내가 급하게 갈 데가 생겨서… 아저씨는 아침부터 지완이 일로 시내 나가시고 그래서… 딱히 부탁할 사람이 있어야지. 네가 정 안된다면야 할 수 없는데…….”
“무슨…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할게요.”
“그래? 고맙다. 네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어정쩡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줌마 얼굴빛은 환하게 변한다.
“……?”
“사실은 오늘 오전에 시내 서점에서 유명한 작가 사인회가 있어서… 너도 알다시피 이런 시골에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오는 일이 흔하지 않잖니? 그래서 꼭 가고 싶은데… 지완이 때문에… 가도 되겠니?”
가도 되는지 묻고 있지만 차려입은 옷은 벌써 갈 준비를 끝 낸 뒤다. 아주머니의 기대로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면서도 쉽게 답을 못하고 있다. 아침부터 지완이에게서 불려 진 이름 때문이라도 대답이 쉽지 않다. 난감함에 미적거리는데 아주머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안다는 듯 설득하신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뭘 알아? 그냥 나인 것처럼 하면 돼. 점심 전에 올게. 걱정 마. 오전부터 생난리 피우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부르면 말없이 심부름만 해주면 돼.”
아침부터 난리 피우는 것이 마법의 성에 오고 매일 반복되는 일인데 오전부터 생난리를 피우진 않을 거라 말씀 하시니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다른 거 뭐 특별히 할 것도 없어. 나머진 아저씨가 알아서 하실 거니까 넌 그냥 부르면 가서 심부름만 해줘. 괜찮겠지? 참! 아저씨한테는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 응?”
“그래도…….”
가뜩이나 지완이 만으로도 달갑지 않은데 거기에 아저씨께 까지 모르쇠로 일괄하라는 아주머니 말에 더욱 미적거려 진다.
“금방 올게. 승아야 한번만 부탁하자.”
오십을 바라보는 아주머니가 두 손 모으고 간절하게 부탁해 오는데 어찌 매몰차게 거절 할 수 있을까, 또 더욱이 그 간절함이 유명 소설가의 사인을 받고자 하는 천진난만함인걸 아는데…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어머,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알았지? 승아야? 그럼 부탁한다.”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나가신다. 조금만 소형차가 멀어지며 점이 될 때까지도 한숨만 쉬어 대고 있다. 이곳은 두메산골 시골 마을이다. 시내를 나가기 위해선 2시간을 넘게 차를 타야 했고 그곳에서도 또 한 번의 차를 타야 기차나 서울을 가는 버스를 탈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정말 오지다. 서울에서 십년 가까이 생활하며 이곳이 오지란 단어가 적당할 정도로 두메산골이란 걸 알았지 그전엔 그저 서울 외에 모든 곳이 시골이듯 이곳도 그 시골 중에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아버진 자청하셔서 이곳의 유일한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발령 받아 오셨다.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고 설사 강제 발령을 받더라도 불과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올라가곤 했단다. 단막극 작가였던 엄만 흘리듯 내뱉은 아버지의 말에 적극 지원을 부추기셨고 이북이 고향이신 아빠 또한 이곳을 고향 삼고자 흔쾌히 지원을 하셨다.
그렇게 오빠들과 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우리 가족은 태양이 내리쬐던 무더운 말복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트럭 하나에 몇 안 되는 짐을 싣고 짐칸에 셋이 쪼그리고 앉아서 지나치며 보이던 시골 풍경에 우리들은 마냥 좋았었다. 지천에 널린 초원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 그리고 개울가에서 놀고 있던 동네 녀석들이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뛸 때마다 주인 할머니의 온갖 타박을 다 들어야 했던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다.
이사하자마자 큰 오빤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골목대장이 되었고 그 틈에서 둘째 오빠와 난 덤으로 으스대며 놀이에 끼곤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시골 아이들에 비해 딱히 나은 것도 없음에도 가끔 서울 얘기를 떠벌리며 서울을 동경하는 녀석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은근히 즐겼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시골생활은 적응기를 가질 필요도 없이 지나쳤고 부모님의 우려마저도 무색하게 했다. 거기에 작은 시골동네는 새로 부임한 선생님에게 지나치리만큼 신경을 써주셨기에 우리는 부족함이나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다.
헌데 이사 오고 반년쯤 됐을 무렵 나의 눈에 서울에서도 보지 못한 이곳 마법의성이 눈에 띄었다. 산허리에 뾰족 지붕 끝만이 겨우 보였는데 어린 마음에 분명 그곳에 공주가 갇혀 있을 거라 상상했다. 동네 아이들이 겨우내 얼음치고 눈싸움 등 겨울 놀이에 빠져 있을 때도 난 오직 철조망에 매달려 종일 마법의 성의 공주가 나오길 기다렸다.
철조망의 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고 항상 조금 열려 있었는데도 난 쉽게 들어서지 못하고 낮은 철조망 사이에 매달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성에 갇힌 공주 아님 마법에 빠진 왕자 등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며 난 조금씩 이곳 별장에 집착해 갔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지날 무렵 철조망 너머 오솔길로 누군가가 내려왔다. 그때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와 작은 점이 점점 커져 사람의 형태가 되기까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상상하던 마법의 공주가 나타날 것 같은 마음에 두 손을 모아 쥐고 두근거리며 바라봤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오솔길을 걸어 나온 분의 모습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고 철퍼덕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 울게 만들었다. 몸 배 바지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호미를 들고 나오신 아주머닐 본 순간 그 실망감으로 결국 울음을 터트려 버렸었다.
철조망 밑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 당황한 아주머니는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고 난 울음 사이사이로 공주와 왕자를 부르짖으면서 연신 별장을 가리켰다. 결국 아주머니는 난처해하시며 별장으로 손을 이끄셨다. 뾰족한 지붕 끝만 겨우 보이던 별장은 한참을 걸어가야 겨우 본채가 보였는데 어린나이에도 입을 쩌억 벌리며 넋을 잃고 바라봤었다.
아줌마가 알려주지만 않았다면 당연히 동화책에서 읽은 공주나 왕자가 산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아줌마는 서울 사람들이 가끔 와서 쉬는 곳이라고 말씀해주셨고 언제든지 놀러 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인연이 된 나는 이곳을 자연스럽게 왕래 했고 부모님도 나를 찾으면서 이곳 별장에 발을 들여 놓으셨다. 엄만 나보다 더 많이 좋아하셨다. 엄마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곳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듯 정말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우린 한 폭에 인물화가 되어 별장을 찾는 일이 잦아 졌다.
글을 좋아하는 아줌마는 단막극 작가인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셨고 나무 가꾸는 것이 취미인 아저씨는 아빠에게 선생님이라고 존칭까지 붙이며 얘기를 주고 받으셨다. 잔잔한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해살을 내리 쬐고 있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나중에 어른들에게서 들은 얘기는 조선시대 선비 누구의 자손 별장이란 정도였다. 몇 채의 별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은 가족 외엔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가족만을 위한 은신처라 했다.
그러기에 일부러 가꾸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두고 있었다. 철조망 끝부터 안채까지의 작은 오솔길은 들꽃과 풀로 무성했으며 그곳 외에도 손질 하지 않은 것처럼 나름대로 손질되어 있는 별장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별장 주인은 볼 수 없었다. 저렇게 좋은 집을 두고 왜 찾지 않을까 의문스러웠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그곳의 왕자나 공주를 볼 수 없었다.
들과 산으로 뛰어 노는 동네 아이들과는 다르게 난 별장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 졌다. 두 오빠들은 개울가에서 동네 녀석들과 놀기에 바빴고 한번 와보곤 전혀 관심 없어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자주 오는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뻔히 서울 사람들의 휴식처임을 알면서도 난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의 부잣집 도련님을 동화 속 왕자로 바꿔 어느 날 굳게 닫혀 있는 별장 문을 열고 왕자가 나타나 손잡아 줄 거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상상하던 일이 벌어졌다.
학교를 파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머니를 찾았는데 정말 마법처럼 스르르 문이 열리고 상상 속에서의 근사한 왕자가 나타났다.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의 키가 큰 왕자는 아니었지만 분명 내 눈에 왕자로 보였고 엄마가 읽어주셨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분명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 장담했다. 바보처럼 얼어붙어서 한 발자국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내게 왕자는 점점 다가왔다. 그러더니 묻는다.
“…이 동네 사니?”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도 눈만 껌벅이는 나를 향해 하얀 이가 다 보이게 웃어준다.
“이름이 뭐야?”
“민… 승… 아…….”
마법처럼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민승아? 이름도 예쁘네. 뭐? 뭐라고……?”
난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서 나왔냐고, 저기 집에 주인이냐고 그걸 묻고 싶었는데 말은 않나오고 손가락으로 별장만 찔러 대고 있다. 손가락을 따라 뒤를 바라보던 어린 왕자가 의아하게 바라본다.
“뭐? 저기 사냐고 묻는 거야?”
질문을 알아들은 것에 또 다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기가 우리 별장이야. 혹시… 말 못하니?”
고개만 끄덕이는 나를 보며 벙어리라 생각했는지 민승아라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며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 그런데도 난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만 가로 저어 댄다.
“예전에 왔을 땐 아이가 없었는데, 그땐 너 못 봤는데 몇 살이야?”
“… 열두 살… 아빠랑 같이 왔어…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저기 초등학교… 내가…….”
왜 그렇게 버벅 거렸는지. 왈가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일 사내 녀석들과 장난치며 싸우던 나였는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잘 됐다. 이곳에 오면 항상 말 상대가 없어서 너무 심심했는데 더욱이 여동생이 있었으면 싶었는데 정말 여동생이 생겼네. 이곳은 말이야 한… 일주일은 좋아. 딱 일주일은 있을 만해. 그런데 일주일이 넘으면 모든 것이 너무 조용해서 내가 숨 쉬고 있나 뭐 그런 것 까지 잊어 버려. 안 그러니?”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다. 아니 적막하다, 고요하다 그런 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고요하다’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적도 없고 글을 쓰는 엄마한테도 들어 본적이 없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4학년에게 時적으로 물어오는 어린왕자의 물음에 난 그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만 끄덕였었다. 뭔지도 모른 채 무조건 어린왕자가 하는 말은 다 맞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다.
“이곳에 자주 오니?”
또 다시 고개 끄덕이는 나
“어디가 가장 마음에 드니?”
난 망설이지 않고 앞장섰다. 지금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별장 어느 곳이 가장 근사한지를 너무 잘 알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어린 왕자를 이끌었다.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성큼 성큼 걷던 걸음은 어느새 뛰고 있었고 나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어린 왕자도 함께 뛰었다. 우린 숨이 턱에 차서야 겨우 멈춰 섰다.
“헉, 헉”
허리를 숙이고 두 무릎을 잡고 거친 숨을 토해내던 어린왕자가 고개를 들어 들녘을 바라봤고 순간 왕자의 눈이 감탄으로 커지는 걸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정말 대단하다. 헉헉. 왜 난 이곳을 몰랐지? 하아. 별장을 몇 번이나 왔었는데 한 번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지 못했어. 정말 근사하다! 대단해!”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니었다. 숨이 턱까지 차서 아직까지 헉헉거리면서도 난 어린왕자의 탄성에 잇몸까지 내보이면서 씨익 웃고 있었다.
“새, 새벽에도 물안개 끼면 더 멋있는데…….”
넋을 잃고 노을을 바라보던 어린 왕자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툭 튀어 나왔다. 아니 근사한 물안개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
노을을 바라보던 눈이 나에게 돌려 졌다.
“아쉽네. 그건 아무래도 다음에 봐야겠다.”
“내가, 내가 보여 줄 수 있어. 새벽에 나오면 볼 수 있어. 그러니까 내일 새벽에…….”
다음이란 말에 실망하며 다급하게 운을 떼는데 어린 왕자가 말을 막는다.
“다음에 꼭 보자. 내 동생 때문에 급하게 온 거야. 오늘 중으로 서울로 올라가 봐야해. 승아라고 했지?”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나.
“또 올 거야. 그때 꼭 같이 보자.”
그러곤 실망감에 풀이 죽어있는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놀라서 올려다보는데 환하게 웃는다. 학교 녀석들과 싸우고 때리기는 했어도 이렇게 손을 잡긴 처음이다. 시골 녀석들은 손은 둘째 치고 남자와 여자가 웃고 얘기라도 하면 다음날이면 바로 화장실 벽에 누구와 누가 좋아한다는 낙서의 글이 도배가 돼 있기에 한 번도 이렇게 손을 잡아 본적이 없다. 사실 잡고 싶은 녀석도 없었지만.
“어두워진다. 그만 가자.”
그렇게 단숨에 올라왔던 언덕을 어린왕자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여름의 끝에서 아직까지는 더위가 남아있었는데 맞잡힌 손을 빼고 싶지 않았다. 손 안이 긴장으로 진땀이 나고 있었지만 어린왕자가 손을 놓을까 오히려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곁에서 걷고 있는 어린왕자에게선 은은한 향까지 났다. 처음엔 그것이 어디에서 나는 향인지도 몰랐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머리에서 부드러운 향이 코를 자극했다. 그날 처음 고무줄 치마에 목이 늘어 날 대로 늘어난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내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입고 있었고 오빠나 언니 옷을 물려 입었기에 그 남아 여자 혼자인 나는 그들이 비해 나은 편이었는데도 어린 왕자 앞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에 눈만 반짝이는 내 모습이 여간 싫었던 것이 아니다.
미풍에 흩날리던 머리며 눈이 부시게 흰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새하얀 운동화까지 모든 것이 눈이 부셨다. 그는 분명 어린왕자였다. 언제나 꿈꾸던 나의 성안에 살고 있는 상상 속에 그대로의 왕자였다. 웃는 미소도 근사했으며 말하는 톤도 부드러웠고 머리 하나는 훌쩍 큰 그가 망토만 걸치지 않았을 뿐 분명 왕자였다. 가슴팍에 있던 “ㄴ”표시가 그때는 메이커의 표시인지도 모르고 그 뒤 어린왕자를 흉내 내며 늘어난 티셔츠에 ㄴ 자를 그려 넣었던 생각이 난다.
“아줌마!!!”
어린 왕자 생각은 예상보다 빠르게 아줌마를 찾는 지완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서둘러 안채로 뛰었다. 뛰면서도 불안함과 불길함이 교차한다. 도대체 어쩌려고… 왜 자꾸 일이 꼬이는지 모르겠다. 떠나기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란 마음과 이렇게 마주친 것에 달갑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중 어느 쪽에 더 많이 치우치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소파에 깊숙이 앉아 있던 지완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처음으로 제대로 얼굴을 봤다. 산책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긴 했지만 그날 이후 제대로 보건 딱 5년만인 것 같다.
여전히 지나치게 조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곧은 콧대며 붉은 입술 거기에 붕대로 가리고는 있지만 깊숙한 눈매까지 여전히 근사하다. 머리도 꽤나 길었다. 곱슬머리는 햇빛을 받아 처음 봤을 그때처럼 금빛을 띠고 빛나고 있다. 또 어딘지 모르게 제법 남자다운 느낌이 든다. 떡 벌어진 어깨나 거뭇한 수염이 풋풋한 고교시절의 지완을 덮어버리고 있다.
“아줌마 저 물 좀 주세요.”
퍼뜩 정신이 든다. 서둘러 주방으로 가 물을 내왔다. 하지만 어찌 줘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앞을 못 보니 놔줘도 못 먹을 것 같고 그렇다고 손을 잡아 컵을 들게 해줄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결국 생각한 것이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소리를 듣고 놓아진 곳으로 손을 뻗길 바라며 한 행동인데 그 둔탁한 소리에 지완의 눈길은 네게 와서 멈춘다. 유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으면 테이블 쪽으로 뻗어 마시면 될 것을 굳이 제 손에 컵을 쥐어 달란다. 그렇다고 앞에 있다고 말 할 수도 없고…….
“아줌마……?”
“…….”
쟁반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완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고 있다. 아마도 물을 주지 않고 테이블에 그냥 논 것에 기분이 상한 것 같은데 단순히 그것만이라고 치기엔 뭔지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어 보인다.
“…아줌마에요? 다른 사람인가?”
'헉!'
무슨 말을 하나, 뭐라고 대답을 하나, 아니, 아니 대답은 둘째 치고 지완이 눈치 챌까 입을 막고 뒷걸음만 쳐대고 있다. 모르겠다. 튀고 보자. 나중에 터질 일은 아줌마가 알아서 하실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들통 나면 저 놈 성격에 잡아먹고도 남을 놈이다. 종종거리며 도망치고 있는데
“아줌마, 물 달라고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친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는걸 보니 눈치 재지 못한 것 같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 졌다. 더욱이 다행스럽게도 성격급한 지완이 기다리지 못하고 손을 뻗는다. 손 가까이 컵을 가져갔다. 차가운 느낌에 더듬거리며 컵을 잡는다. 잠깐, 아주 잠깐 서로의 손이 스쳤다. 놀라 손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섰다. 지완이 아무렇지 않게 물을 마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지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얼굴이나 모습이 어른스러워 졌지만 하얗고 긴 손가락은 그대로다. 저 손으로 기타를 쳤었고 저 손으로 내 손을 잡았었다. 아주 오래전 아주 잠깐… 바보 같은 나를 착각하게 만들었었다. 이제 다 잊혀 진 기억들이다. 세삼 떠올리고 싶지도 또 그때의 일들을 끄집어내 추억이라 색칠하고 싶지도 않다.
“아줌마… 뭐 저한테 화난 것 있어요? 제가 어제 오늘 이러는 것도 아닌데, 오늘 왜 아무 말씀 안 하세요? 정말 많이 화났나보네.”
“…….”
“우리 아줌마 화나면 무서운데… 오늘은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어야겠네.”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청바지에 빈티지를 입고 있는데도 역시 멋지다. 세상 불공평하게 돈도 많은 놈이 얼굴까지 받쳐준다. 아니다 세상은 공평하다. 그런 놈이 성격은 지랄 스럽다. 확실히 성격 장애가 있는 놈이다.
수채물감-2. 어린왕자
2. 어린 왕자
“으악~!!!”
또 아침부터 괴성이 울린다. 공포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벌써 5일째 아침마다 겪는 일이다. 것도 하루 이틀이래야 참지 매일 아침 저 윤지완이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마법의 성이 뒤흔들릴 정도로 볼륨을 높여 틀어 대고 있었다. 음악 종류도 가지각색으로 재즈부터 락, 팝, 가요에 이르기까지 종류 불문하고 울려 댔다. 그러다가 그것으로도 성이 안차면 아침부터 저렇게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댄다.
햇살에 취해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다 괴성에 놀라 깨어나길 지완이 온 뒤 꼬박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맞는 아침 풍경이다. 이러다 노이로제 걸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보통에 아파트 단지나 아님 주택가에선 절대 할 수 없는 짓거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
끌려 온 후 지완이 놈이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틀어 박혀 음악을 틀거나 낚시나 산책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마저도 앞이 보이지 않아 어쩌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세상 떠나가라 욕을 해댔고 신경질 적으로 붕대를 잡아 뜯으며 제 성을 제가 못 이겨서 생난리를 피워 댔다. 거기에 어디서 저런 욕을 배워 왔나 싶을 정도로 나이도 많은 놈이 주위 사람 안중에도 없이 욕을 해댔다.
“악!!! 민승아!!!”
“!!”
갑자기 불러지는 이름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한방에 정신이 번쩍 든다. 왜 갑자기 제 이름이 불려 졌는지도 모르고 두 눈 껌벅이며 숨죽이고 있다.
“으악~ 젠장!!”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치료만 잘 받으면 눈도 곧 낫는다는데 녀석은 매일 아침 저 난리다. 오늘은 왜 남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소리치는지 하는 짓이란 곤 이쁜 짓이 하나 없다. 어릴 적이나 나이를 먹은 지금이나 하나 변한 것이 없는 놈이다.
“승아 일어났니?”
갑자기 불려진 이름 때문에 안채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부르신다.
“에, 예. 일어났어요. 나갈게요.”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왔다. 지완이 때문에 더 잠들을 수도 없었기에 막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고 평소 같지 않은 아주머니 모습이 보인다.
“저기… 저기 말이다…….”
무슨 일인지 말을 못하시고 미적거리신다.
“예?”
“내가 말이야 부탁이 좀 있어서… 너 곤란한 거 아는데 내가 급하게 갈 데가 생겨서… 아저씨는 아침부터 지완이 일로 시내 나가시고 그래서… 딱히 부탁할 사람이 있어야지. 네가 정 안된다면야 할 수 없는데…….”
“무슨…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할게요.”
“그래? 고맙다. 네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어정쩡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줌마 얼굴빛은 환하게 변한다.
“……?”
“사실은 오늘 오전에 시내 서점에서 유명한 작가 사인회가 있어서… 너도 알다시피 이런 시골에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오는 일이 흔하지 않잖니? 그래서 꼭 가고 싶은데… 지완이 때문에… 가도 되겠니?”
가도 되는지 묻고 있지만 차려입은 옷은 벌써 갈 준비를 끝 낸 뒤다. 아주머니의 기대로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면서도 쉽게 답을 못하고 있다. 아침부터 지완이에게서 불려 진 이름 때문이라도 대답이 쉽지 않다. 난감함에 미적거리는데 아주머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안다는 듯 설득하신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뭘 알아? 그냥 나인 것처럼 하면 돼. 점심 전에 올게. 걱정 마. 오전부터 생난리 피우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부르면 말없이 심부름만 해주면 돼.”
아침부터 난리 피우는 것이 마법의 성에 오고 매일 반복되는 일인데 오전부터 생난리를 피우진 않을 거라 말씀 하시니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다른 거 뭐 특별히 할 것도 없어. 나머진 아저씨가 알아서 하실 거니까 넌 그냥 부르면 가서 심부름만 해줘. 괜찮겠지? 참! 아저씨한테는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 응?”
“그래도…….”
가뜩이나 지완이 만으로도 달갑지 않은데 거기에 아저씨께 까지 모르쇠로 일괄하라는 아주머니 말에 더욱 미적거려 진다.
“금방 올게. 승아야 한번만 부탁하자.”
오십을 바라보는 아주머니가 두 손 모으고 간절하게 부탁해 오는데 어찌 매몰차게 거절 할 수 있을까, 또 더욱이 그 간절함이 유명 소설가의 사인을 받고자 하는 천진난만함인걸 아는데…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어머,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알았지? 승아야? 그럼 부탁한다.”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나가신다. 조금만 소형차가 멀어지며 점이 될 때까지도 한숨만 쉬어 대고 있다. 이곳은 두메산골 시골 마을이다. 시내를 나가기 위해선 2시간을 넘게 차를 타야 했고 그곳에서도 또 한 번의 차를 타야 기차나 서울을 가는 버스를 탈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정말 오지다. 서울에서 십년 가까이 생활하며 이곳이 오지란 단어가 적당할 정도로 두메산골이란 걸 알았지 그전엔 그저 서울 외에 모든 곳이 시골이듯 이곳도 그 시골 중에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아버진 자청하셔서 이곳의 유일한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발령 받아 오셨다.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고 설사 강제 발령을 받더라도 불과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올라가곤 했단다. 단막극 작가였던 엄만 흘리듯 내뱉은 아버지의 말에 적극 지원을 부추기셨고 이북이 고향이신 아빠 또한 이곳을 고향 삼고자 흔쾌히 지원을 하셨다.
그렇게 오빠들과 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우리 가족은 태양이 내리쬐던 무더운 말복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트럭 하나에 몇 안 되는 짐을 싣고 짐칸에 셋이 쪼그리고 앉아서 지나치며 보이던 시골 풍경에 우리들은 마냥 좋았었다. 지천에 널린 초원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 그리고 개울가에서 놀고 있던 동네 녀석들이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뛸 때마다 주인 할머니의 온갖 타박을 다 들어야 했던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다.
이사하자마자 큰 오빤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골목대장이 되었고 그 틈에서 둘째 오빠와 난 덤으로 으스대며 놀이에 끼곤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시골 아이들에 비해 딱히 나은 것도 없음에도 가끔 서울 얘기를 떠벌리며 서울을 동경하는 녀석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은근히 즐겼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시골생활은 적응기를 가질 필요도 없이 지나쳤고 부모님의 우려마저도 무색하게 했다. 거기에 작은 시골동네는 새로 부임한 선생님에게 지나치리만큼 신경을 써주셨기에 우리는 부족함이나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다.
헌데 이사 오고 반년쯤 됐을 무렵 나의 눈에 서울에서도 보지 못한 이곳 마법의성이 눈에 띄었다. 산허리에 뾰족 지붕 끝만이 겨우 보였는데 어린 마음에 분명 그곳에 공주가 갇혀 있을 거라 상상했다. 동네 아이들이 겨우내 얼음치고 눈싸움 등 겨울 놀이에 빠져 있을 때도 난 오직 철조망에 매달려 종일 마법의 성의 공주가 나오길 기다렸다.
철조망의 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고 항상 조금 열려 있었는데도 난 쉽게 들어서지 못하고 낮은 철조망 사이에 매달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성에 갇힌 공주 아님 마법에 빠진 왕자 등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며 난 조금씩 이곳 별장에 집착해 갔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지날 무렵 철조망 너머 오솔길로 누군가가 내려왔다. 그때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와 작은 점이 점점 커져 사람의 형태가 되기까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상상하던 마법의 공주가 나타날 것 같은 마음에 두 손을 모아 쥐고 두근거리며 바라봤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오솔길을 걸어 나온 분의 모습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고 철퍼덕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 울게 만들었다. 몸 배 바지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호미를 들고 나오신 아주머닐 본 순간 그 실망감으로 결국 울음을 터트려 버렸었다.
철조망 밑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 당황한 아주머니는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고 난 울음 사이사이로 공주와 왕자를 부르짖으면서 연신 별장을 가리켰다. 결국 아주머니는 난처해하시며 별장으로 손을 이끄셨다. 뾰족한 지붕 끝만 겨우 보이던 별장은 한참을 걸어가야 겨우 본채가 보였는데 어린나이에도 입을 쩌억 벌리며 넋을 잃고 바라봤었다.
아줌마가 알려주지만 않았다면 당연히 동화책에서 읽은 공주나 왕자가 산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아줌마는 서울 사람들이 가끔 와서 쉬는 곳이라고 말씀해주셨고 언제든지 놀러 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인연이 된 나는 이곳을 자연스럽게 왕래 했고 부모님도 나를 찾으면서 이곳 별장에 발을 들여 놓으셨다. 엄만 나보다 더 많이 좋아하셨다. 엄마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곳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듯 정말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우린 한 폭에 인물화가 되어 별장을 찾는 일이 잦아 졌다.
글을 좋아하는 아줌마는 단막극 작가인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셨고 나무 가꾸는 것이 취미인 아저씨는 아빠에게 선생님이라고 존칭까지 붙이며 얘기를 주고 받으셨다. 잔잔한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해살을 내리 쬐고 있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나중에 어른들에게서 들은 얘기는 조선시대 선비 누구의 자손 별장이란 정도였다. 몇 채의 별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은 가족 외엔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가족만을 위한 은신처라 했다.
그러기에 일부러 가꾸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두고 있었다. 철조망 끝부터 안채까지의 작은 오솔길은 들꽃과 풀로 무성했으며 그곳 외에도 손질 하지 않은 것처럼 나름대로 손질되어 있는 별장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별장 주인은 볼 수 없었다. 저렇게 좋은 집을 두고 왜 찾지 않을까 의문스러웠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그곳의 왕자나 공주를 볼 수 없었다.
들과 산으로 뛰어 노는 동네 아이들과는 다르게 난 별장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 졌다. 두 오빠들은 개울가에서 동네 녀석들과 놀기에 바빴고 한번 와보곤 전혀 관심 없어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자주 오는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뻔히 서울 사람들의 휴식처임을 알면서도 난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의 부잣집 도련님을 동화 속 왕자로 바꿔 어느 날 굳게 닫혀 있는 별장 문을 열고 왕자가 나타나 손잡아 줄 거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상상하던 일이 벌어졌다.
학교를 파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머니를 찾았는데 정말 마법처럼 스르르 문이 열리고 상상 속에서의 근사한 왕자가 나타났다.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의 키가 큰 왕자는 아니었지만 분명 내 눈에 왕자로 보였고 엄마가 읽어주셨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분명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 장담했다. 바보처럼 얼어붙어서 한 발자국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내게 왕자는 점점 다가왔다. 그러더니 묻는다.
“…이 동네 사니?”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도 눈만 껌벅이는 나를 향해 하얀 이가 다 보이게 웃어준다.
“이름이 뭐야?”
“민… 승… 아…….”
마법처럼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민승아? 이름도 예쁘네. 뭐? 뭐라고……?”
난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서 나왔냐고, 저기 집에 주인이냐고 그걸 묻고 싶었는데 말은 않나오고 손가락으로 별장만 찔러 대고 있다. 손가락을 따라 뒤를 바라보던 어린 왕자가 의아하게 바라본다.
“뭐? 저기 사냐고 묻는 거야?”
질문을 알아들은 것에 또 다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기가 우리 별장이야. 혹시… 말 못하니?”
고개만 끄덕이는 나를 보며 벙어리라 생각했는지 민승아라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며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 그런데도 난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만 가로 저어 댄다.
“예전에 왔을 땐 아이가 없었는데, 그땐 너 못 봤는데 몇 살이야?”
“… 열두 살… 아빠랑 같이 왔어…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저기 초등학교… 내가…….”
왜 그렇게 버벅 거렸는지. 왈가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일 사내 녀석들과 장난치며 싸우던 나였는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잘 됐다. 이곳에 오면 항상 말 상대가 없어서 너무 심심했는데 더욱이 여동생이 있었으면 싶었는데 정말 여동생이 생겼네. 이곳은 말이야 한… 일주일은 좋아. 딱 일주일은 있을 만해. 그런데 일주일이 넘으면 모든 것이 너무 조용해서 내가 숨 쉬고 있나 뭐 그런 것 까지 잊어 버려. 안 그러니?”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다. 아니 적막하다, 고요하다 그런 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고요하다’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적도 없고 글을 쓰는 엄마한테도 들어 본적이 없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4학년에게 時적으로 물어오는 어린왕자의 물음에 난 그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만 끄덕였었다. 뭔지도 모른 채 무조건 어린왕자가 하는 말은 다 맞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다.
“이곳에 자주 오니?”
또 다시 고개 끄덕이는 나
“어디가 가장 마음에 드니?”
난 망설이지 않고 앞장섰다. 지금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별장 어느 곳이 가장 근사한지를 너무 잘 알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어린 왕자를 이끌었다.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성큼 성큼 걷던 걸음은 어느새 뛰고 있었고 나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어린 왕자도 함께 뛰었다. 우린 숨이 턱에 차서야 겨우 멈춰 섰다.
“헉, 헉”
허리를 숙이고 두 무릎을 잡고 거친 숨을 토해내던 어린왕자가 고개를 들어 들녘을 바라봤고 순간 왕자의 눈이 감탄으로 커지는 걸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정말 대단하다. 헉헉. 왜 난 이곳을 몰랐지? 하아. 별장을 몇 번이나 왔었는데 한 번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지 못했어. 정말 근사하다! 대단해!”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니었다. 숨이 턱까지 차서 아직까지 헉헉거리면서도 난 어린왕자의 탄성에 잇몸까지 내보이면서 씨익 웃고 있었다.
“새, 새벽에도 물안개 끼면 더 멋있는데…….”
넋을 잃고 노을을 바라보던 어린 왕자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툭 튀어 나왔다. 아니 근사한 물안개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
노을을 바라보던 눈이 나에게 돌려 졌다.
“아쉽네. 그건 아무래도 다음에 봐야겠다.”
“내가, 내가 보여 줄 수 있어. 새벽에 나오면 볼 수 있어. 그러니까 내일 새벽에…….”
다음이란 말에 실망하며 다급하게 운을 떼는데 어린 왕자가 말을 막는다.
“다음에 꼭 보자. 내 동생 때문에 급하게 온 거야. 오늘 중으로 서울로 올라가 봐야해. 승아라고 했지?”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나.
“또 올 거야. 그때 꼭 같이 보자.”
그러곤 실망감에 풀이 죽어있는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놀라서 올려다보는데 환하게 웃는다. 학교 녀석들과 싸우고 때리기는 했어도 이렇게 손을 잡긴 처음이다. 시골 녀석들은 손은 둘째 치고 남자와 여자가 웃고 얘기라도 하면 다음날이면 바로 화장실 벽에 누구와 누가 좋아한다는 낙서의 글이 도배가 돼 있기에 한 번도 이렇게 손을 잡아 본적이 없다. 사실 잡고 싶은 녀석도 없었지만.
“어두워진다. 그만 가자.”
그렇게 단숨에 올라왔던 언덕을 어린왕자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여름의 끝에서 아직까지는 더위가 남아있었는데 맞잡힌 손을 빼고 싶지 않았다. 손 안이 긴장으로 진땀이 나고 있었지만 어린왕자가 손을 놓을까 오히려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곁에서 걷고 있는 어린왕자에게선 은은한 향까지 났다. 처음엔 그것이 어디에서 나는 향인지도 몰랐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머리에서 부드러운 향이 코를 자극했다. 그날 처음 고무줄 치마에 목이 늘어 날 대로 늘어난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내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입고 있었고 오빠나 언니 옷을 물려 입었기에 그 남아 여자 혼자인 나는 그들이 비해 나은 편이었는데도 어린 왕자 앞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에 눈만 반짝이는 내 모습이 여간 싫었던 것이 아니다.
미풍에 흩날리던 머리며 눈이 부시게 흰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새하얀 운동화까지 모든 것이 눈이 부셨다. 그는 분명 어린왕자였다. 언제나 꿈꾸던 나의 성안에 살고 있는 상상 속에 그대로의 왕자였다. 웃는 미소도 근사했으며 말하는 톤도 부드러웠고 머리 하나는 훌쩍 큰 그가 망토만 걸치지 않았을 뿐 분명 왕자였다. 가슴팍에 있던 “ㄴ”표시가 그때는 메이커의 표시인지도 모르고 그 뒤 어린왕자를 흉내 내며 늘어난 티셔츠에 ㄴ 자를 그려 넣었던 생각이 난다.
“아줌마!!!”
어린 왕자 생각은 예상보다 빠르게 아줌마를 찾는 지완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서둘러 안채로 뛰었다. 뛰면서도 불안함과 불길함이 교차한다. 도대체 어쩌려고… 왜 자꾸 일이 꼬이는지 모르겠다. 떠나기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란 마음과 이렇게 마주친 것에 달갑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중 어느 쪽에 더 많이 치우치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소파에 깊숙이 앉아 있던 지완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처음으로 제대로 얼굴을 봤다. 산책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긴 했지만 그날 이후 제대로 보건 딱 5년만인 것 같다.
여전히 지나치게 조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곧은 콧대며 붉은 입술 거기에 붕대로 가리고는 있지만 깊숙한 눈매까지 여전히 근사하다. 머리도 꽤나 길었다. 곱슬머리는 햇빛을 받아 처음 봤을 그때처럼 금빛을 띠고 빛나고 있다. 또 어딘지 모르게 제법 남자다운 느낌이 든다. 떡 벌어진 어깨나 거뭇한 수염이 풋풋한 고교시절의 지완을 덮어버리고 있다.
“아줌마 저 물 좀 주세요.”
퍼뜩 정신이 든다. 서둘러 주방으로 가 물을 내왔다. 하지만 어찌 줘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앞을 못 보니 놔줘도 못 먹을 것 같고 그렇다고 손을 잡아 컵을 들게 해줄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결국 생각한 것이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소리를 듣고 놓아진 곳으로 손을 뻗길 바라며 한 행동인데 그 둔탁한 소리에 지완의 눈길은 네게 와서 멈춘다. 유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으면 테이블 쪽으로 뻗어 마시면 될 것을 굳이 제 손에 컵을 쥐어 달란다. 그렇다고 앞에 있다고 말 할 수도 없고…….
“아줌마……?”
“…….”
쟁반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완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고 있다. 아마도 물을 주지 않고 테이블에 그냥 논 것에 기분이 상한 것 같은데 단순히 그것만이라고 치기엔 뭔지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어 보인다.
“…아줌마에요? 다른 사람인가?”
'헉!'
무슨 말을 하나, 뭐라고 대답을 하나, 아니, 아니 대답은 둘째 치고 지완이 눈치 챌까 입을 막고 뒷걸음만 쳐대고 있다. 모르겠다. 튀고 보자. 나중에 터질 일은 아줌마가 알아서 하실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들통 나면 저 놈 성격에 잡아먹고도 남을 놈이다. 종종거리며 도망치고 있는데
“아줌마, 물 달라고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친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는걸 보니 눈치 재지 못한 것 같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 졌다. 더욱이 다행스럽게도 성격급한 지완이 기다리지 못하고 손을 뻗는다. 손 가까이 컵을 가져갔다. 차가운 느낌에 더듬거리며 컵을 잡는다. 잠깐, 아주 잠깐 서로의 손이 스쳤다. 놀라 손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섰다. 지완이 아무렇지 않게 물을 마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지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얼굴이나 모습이 어른스러워 졌지만 하얗고 긴 손가락은 그대로다. 저 손으로 기타를 쳤었고 저 손으로 내 손을 잡았었다. 아주 오래전 아주 잠깐… 바보 같은 나를 착각하게 만들었었다. 이제 다 잊혀 진 기억들이다. 세삼 떠올리고 싶지도 또 그때의 일들을 끄집어내 추억이라 색칠하고 싶지도 않다.
“아줌마… 뭐 저한테 화난 것 있어요? 제가 어제 오늘 이러는 것도 아닌데, 오늘 왜 아무 말씀 안 하세요? 정말 많이 화났나보네.”
“…….”
“우리 아줌마 화나면 무서운데… 오늘은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어야겠네.”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청바지에 빈티지를 입고 있는데도 역시 멋지다. 세상 불공평하게 돈도 많은 놈이 얼굴까지 받쳐준다. 아니다 세상은 공평하다. 그런 놈이 성격은 지랄 스럽다. 확실히 성격 장애가 있는 놈이다.
더 이상 시킬것이 없는 것 같아 막 돌아서려는데
“승아…….”
"!!!"
놀라서 그대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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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이 6이나 있었습니다. 으하하 놀래서리....
넘 좋아서 올립니다. 푸하하 미쳤어요 ㅋㅋㅋ
날씨가 또 찌뿌둥한것이 이상합니다. 또 하번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흐리니 커피만 주구장창 마십니다.
님들도 맛난 커피 드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