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강민지는 병원에 다녀왔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을 때 남자 의사는 임신 두 달째라고, 축하한다면서 그녀를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병원을 나온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도 슬픈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벌써 열흘 째 그녀는 장성우를 만날 수 없었고, 전화 통화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강민지는 다시 한 번 수화기를 집어들고,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패배자 같은 심정으로 장성우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끝내 그녀는 신호음만 울려 대는 수화기를 힙 없이 내려놓아야만 했다.
통화를 하기 위해 애썼지만 장성우의 휴대폰은 꺼져 있거나 신호음이 오래 울려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소리샘에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지만 한 번도 응답이 없었다. 아니, 한 번은 그가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 몸에 난 상처를 혓바닥으로 핥는 짐승처럼 분노를 삭이고 있던 강민지는 계속해서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침대에 앉은 채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빈 커피잔을 집어들어 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벽에 부딪친 커피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 사방에 흩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강민지는 짐승 같은 신음을 토해 내며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장성우와 함께 찍은 사진 액자를 집어들고 높이 쳐들었다가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지난 여름휴가 때 제주도에서 산굼부리를 뒷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오늘 오전, 장성우의 원룸으로 찾아간 강민지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에 불끈 주먹을 움켜쥐면서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지는 ‘잘못 찾아왔나?’ 하는 생각에 호수를 살폈으나 장성우의 원룸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웬 여자의 목소리인가? 이곳까지 오면서 줄곧 불안감이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있었는데, 그녀의 마음속으로 그 불길한 예감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파고 들어왔다.
강민지는 목소리만 들리고 문이 열리지 않자 애써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머리를 저으면서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강민지를 쳐다보는 여자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장성우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혹시 장성우의 누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민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성우 씨가 누구죠?”
그러나 여자는 오히려 장성우에 대해서 강민지에게 물어왔다.
“그럼, 댁은 누구시죠?”
“이 집 주인인데요.”
여자의 대답은 짧았고 신경질적이었다.
“예? 이 집 주인이요?”
너무 기가 막힌 일이라 강민지는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장성우라는 사람, 혹시 전에 살던 사람 아니에요?”
“그럼……?”
“저는 어저께 이사 왔거든요.”
“어저께 이사 왔어요?”
강민지는 믿어지지 않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예. 어저께요.”
여자는 여전히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못박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혹시……, 그 사람이…… 어디로 이사했는지…… 아세요?”
강민지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내쉬고 나서 실성한 사람처럼 초첨 없는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여자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 현관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뜻인가? 장성우의 완전한 배신을 의미하는 거였다. 강민지는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가슴속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박히는 듯한 충격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귀가 먹먹해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그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었다. 곧바로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오면서 마치 물침대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발 밑이 출렁거렸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민지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행방이 묘연해진 장성우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와 전화 한 번 통화할 수 없었고,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강민지는 아버지의 서재 안에서 양주를 몰래 꺼내와 유리잔에 가득 부은 다음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분수처럼 뻗쳐오르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냉수 마시듯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한 잔을 다 마셨고, 두 번째 잔부터는 반잔씩 마시면서 한 방울까지 남김 없이 병을 다 비워 버렸다.
취기가 오르면서 강민지는 무거운 바윗덩어리에 깔린 사람처럼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그녀는 침대에 쓰러져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강민지의 꿈속에서 장성우는 이경아를 만나고 있었다. 커피숍에서, 그리고 커피숍에서 나온 두 사람은 다정스럽게 팔짱을 끼고 호텔로 가 미리 예약해 둔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지고 침대로 갔다.
이경아가 침대에 눕자 장성우는 입술과 손으로 동시에 그녀의 몸을 솜처럼 부드럽게 더듬기 시작했다. 목에서 젖가슴으로, 젖가슴에서 허벅지로……. 다시 순서를 바꾸어 허벅지에서 젖가슴으로, 젖가슴에서 목으로……. 그는 그렇게 되풀이 그녀의 몸을 애무하다 양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잡고 양다리를 V자로 벌렸다.
곧 장성우가 고개를 숙이고 축축이 젖어 있는 이경아의 옹달샘에다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축이기 시작했다. 절정에 오른 듯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며 자신의 사타구니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그의 머리를 움켜잡으며 ‘아-!’ 하는 탄식을 쉴새없이 내뱉었다. 방안은 신음소리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장성우가 V자로 벌려진 이경아의 양다리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포복자세로 앉아 돌격 태세를 갖춘 성기를 집어넣고 아주 여유 있는 몸짓으로 천천히 움직이자 정신이 아찔하도록 온몸을 감싸는 황홀감에 그녀의 신음소리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강민지는 두 사람의 짓거리를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경아가 내뱉는 신음소리에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강민지는 장성우를 향해 핏발선 두 눈을 부릅뜨고 ‘쌍놈의 새끼!’ 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온힘을 다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소리는 목구멍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달고 있는 듯 다리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서야 강민지를 발견한 장성우가 이경아에게서 빠져나와 벌거벗은 몸으로 45도 정도의 각도로 뻣뻣하게 서 있는 성기를 앞세우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짐승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입가엔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 역시 눈빛만큼이나 몹시 섬뜩한 느낌을 주는 미치광이 같은 미소였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지체 없이 솥뚜껑처럼 시커먼 손으로 그녀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강민지는 장성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건 악몽이야. 빨리 이 악몽에서 깨어나야 해.”
강민지는 지금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발버둥을 쳤다.
“제발, 제발…….”
도저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강민지는 정말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아 절망감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발…….”
강민지는 그 어떤 고통도 두려움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그녀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도저히 장성우를 포기하거나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민지의 마음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백 번씩, 아니 수천 번씩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솟으면서도.
지금 강민지의 뱃속에서는 장성우의 아이가 꼬물대며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장성우의 배신은 전부 이경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녀만 사라져 준다면 그의 마음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리라고 강민지는 거기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성우에게 향했던 그녀의 분노가 180도 방향을 틀어 이경아에게로 향하게 된 것이다.
장성우의 마음은 자신에게 와있는데 이경아가 백 년 묵은 여우처럼 꼬리를 흔들며 그를 유혹한 것이다. 따라서 강민지는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친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의 아빠를…….
지금 이 순간부터 이경아는 강민지의 친구가 아니었다. 오직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강민지의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증오심으로 바뀌어 짚더미에 붙은 불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그녀의 머릿속은 고양이에게 쫓기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새끼처럼 진정 돌이킬 수 없는 끔직한 음모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최후의 수단이라 할지라도 생각조차 해서는 안될 무서운 음모였지만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는 그 어떠한 짓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독하게 먹은 강민지였지만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쨌든 친구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을 해도 이경아는 10년을 넘게 사귄 친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서, 그녀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오랫동안 흐느꼈다.
강민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선뜻 마우스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강민지는 오랜 망설임 끝에 인터넷에 들어갔다. 그녀는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자신 스스로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강민지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해결사’ 관련 정보를 마우스로 클릭해 자신이 의뢰하고자 하는 일에 딱 알맞을 것 같은 사이트를 찾아내 접속하는데 성공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접속에 성공한 그녀의 눈빛은 예전의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은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강민지가 상담 스페이스에 들어가자 10여 초가 흐른 뒤 모니터에 응답이 떠올랐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주로 무슨 일을 도와주시나요.”
잠깐 주저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강민지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뭐든지 닥치는 대로 고객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 도와드립니다.”
“사람을…….”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었더라도 강민지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해보세요.”
“사람을 해치는 일인데……, 상관없나요?”
강민지는 어쩌면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지불 조건만 맞는다면 기꺼이 일을 처리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액수는?”
“상황에 따라서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대강…….”
“그럼, 먼저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상대는 여자고, 그 여자를 유인해 처리하는 방법은 제가 가르쳐드릴 겁니다.”
“그 정도라면 아주 쉬운 일이라 가격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액수는?”
“오천만 원, 우선 계약금으로 이천만 원을 주시고 나머지 삼천만 원은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지불하시면 됩니다.”
“물론 비밀은 보장되는 거죠?”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좋아요. 그렇다면 일을 의뢰하겠습니다.”
“선택을 잘 하신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계약금을 지하철 칠호선과 오호선이 만나는 군자역 코일 박스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수표는 절대 안되고 전부 현금으로. 그리고 열쇠는 그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가셔서 쓰레기통 속에 버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만약인데…….”
“말씀해 보세요.”
“계약금만 날리면 어떻게 하죠?”
“의심을 하시는 겁니까?”
“엄청난 일을 하면서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비정상이겠죠.”
“그럼, 좋습니다. 이번엔 특별히 계약금 없이 먼저 일을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절 어떻게 믿고서?”
“이런 위험한 일은 서로 신뢰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객님을 믿습니다.”
“좋아요. 내일 계약금을 그곳에 넣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접속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접속을 할 때 암호명을 먼저 대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암호명은 붉은 악마입니다”
“붉은 악마요?”
“예. 제가 축구를 좋아하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럼, 내일 다시 접속하겠습니다.”
배신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배신을 당한 사람의 심정이 어떤지 모른다. 강민지 역시 그랬다. 애인에게 배신을 당한 친구가 죽어버리겠다고, 아니 배신한 남자를 죽여버리겠다고 미친 듯이 울부짖는 것을 봤을 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미련을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하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제정신이 아닌 몸으로 정신병동의 철장 안에 갇혔을 때 그녀는 그 친구가 저주스러울 만큼 바보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강민지 바로 자신이 머리가 180도 돌아버린 사람처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상황을 판단할 능력조차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종이배 22. <해결사 사이트>
해결사 사이트
며칠 전 강민지는 병원에 다녀왔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을 때 남자 의사는 임신 두 달째라고, 축하한다면서 그녀를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병원을 나온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도 슬픈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벌써 열흘 째 그녀는 장성우를 만날 수 없었고, 전화 통화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강민지는 다시 한 번 수화기를 집어들고,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패배자 같은 심정으로 장성우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끝내 그녀는 신호음만 울려 대는 수화기를 힙 없이 내려놓아야만 했다.
통화를 하기 위해 애썼지만 장성우의 휴대폰은 꺼져 있거나 신호음이 오래 울려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소리샘에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지만 한 번도 응답이 없었다. 아니, 한 번은 그가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 몸에 난 상처를 혓바닥으로 핥는 짐승처럼 분노를 삭이고 있던 강민지는 계속해서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침대에 앉은 채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빈 커피잔을 집어들어 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벽에 부딪친 커피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 사방에 흩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강민지는 짐승 같은 신음을 토해 내며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장성우와 함께 찍은 사진 액자를 집어들고 높이 쳐들었다가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지난 여름휴가 때 제주도에서 산굼부리를 뒷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오늘 오전, 장성우의 원룸으로 찾아간 강민지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에 불끈 주먹을 움켜쥐면서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지는 ‘잘못 찾아왔나?’ 하는 생각에 호수를 살폈으나 장성우의 원룸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웬 여자의 목소리인가? 이곳까지 오면서 줄곧 불안감이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있었는데, 그녀의 마음속으로 그 불길한 예감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파고 들어왔다.
강민지는 목소리만 들리고 문이 열리지 않자 애써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머리를 저으면서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강민지를 쳐다보는 여자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장성우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혹시 장성우의 누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민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성우 씨가 누구죠?”
그러나 여자는 오히려 장성우에 대해서 강민지에게 물어왔다.
“그럼, 댁은 누구시죠?”
“이 집 주인인데요.”
여자의 대답은 짧았고 신경질적이었다.
“예? 이 집 주인이요?”
너무 기가 막힌 일이라 강민지는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장성우라는 사람, 혹시 전에 살던 사람 아니에요?”
“그럼……?”
“저는 어저께 이사 왔거든요.”
“어저께 이사 왔어요?”
강민지는 믿어지지 않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예. 어저께요.”
여자는 여전히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못박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혹시……, 그 사람이…… 어디로 이사했는지…… 아세요?”
강민지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내쉬고 나서 실성한 사람처럼 초첨 없는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여자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 현관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뜻인가? 장성우의 완전한 배신을 의미하는 거였다. 강민지는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가슴속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박히는 듯한 충격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귀가 먹먹해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그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었다. 곧바로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오면서 마치 물침대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발 밑이 출렁거렸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민지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행방이 묘연해진 장성우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와 전화 한 번 통화할 수 없었고,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강민지는 아버지의 서재 안에서 양주를 몰래 꺼내와 유리잔에 가득 부은 다음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분수처럼 뻗쳐오르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냉수 마시듯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한 잔을 다 마셨고, 두 번째 잔부터는 반잔씩 마시면서 한 방울까지 남김 없이 병을 다 비워 버렸다.
취기가 오르면서 강민지는 무거운 바윗덩어리에 깔린 사람처럼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그녀는 침대에 쓰러져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강민지의 꿈속에서 장성우는 이경아를 만나고 있었다. 커피숍에서, 그리고 커피숍에서 나온 두 사람은 다정스럽게 팔짱을 끼고 호텔로 가 미리 예약해 둔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지고 침대로 갔다.
이경아가 침대에 눕자 장성우는 입술과 손으로 동시에 그녀의 몸을 솜처럼 부드럽게 더듬기 시작했다. 목에서 젖가슴으로, 젖가슴에서 허벅지로……. 다시 순서를 바꾸어 허벅지에서 젖가슴으로, 젖가슴에서 목으로……. 그는 그렇게 되풀이 그녀의 몸을 애무하다 양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잡고 양다리를 V자로 벌렸다.
곧 장성우가 고개를 숙이고 축축이 젖어 있는 이경아의 옹달샘에다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축이기 시작했다. 절정에 오른 듯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며 자신의 사타구니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그의 머리를 움켜잡으며 ‘아-!’ 하는 탄식을 쉴새없이 내뱉었다. 방안은 신음소리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장성우가 V자로 벌려진 이경아의 양다리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포복자세로 앉아 돌격 태세를 갖춘 성기를 집어넣고 아주 여유 있는 몸짓으로 천천히 움직이자 정신이 아찔하도록 온몸을 감싸는 황홀감에 그녀의 신음소리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강민지는 두 사람의 짓거리를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경아가 내뱉는 신음소리에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강민지는 장성우를 향해 핏발선 두 눈을 부릅뜨고 ‘쌍놈의 새끼!’ 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온힘을 다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소리는 목구멍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달고 있는 듯 다리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서야 강민지를 발견한 장성우가 이경아에게서 빠져나와 벌거벗은 몸으로 45도 정도의 각도로 뻣뻣하게 서 있는 성기를 앞세우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짐승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입가엔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 역시 눈빛만큼이나 몹시 섬뜩한 느낌을 주는 미치광이 같은 미소였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지체 없이 솥뚜껑처럼 시커먼 손으로 그녀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강민지는 장성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건 악몽이야. 빨리 이 악몽에서 깨어나야 해.”
강민지는 지금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발버둥을 쳤다.
“제발, 제발…….”
도저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강민지는 정말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아 절망감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발…….”
강민지는 그 어떤 고통도 두려움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그녀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도저히 장성우를 포기하거나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민지의 마음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백 번씩, 아니 수천 번씩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솟으면서도.
지금 강민지의 뱃속에서는 장성우의 아이가 꼬물대며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장성우의 배신은 전부 이경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녀만 사라져 준다면 그의 마음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리라고 강민지는 거기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성우에게 향했던 그녀의 분노가 180도 방향을 틀어 이경아에게로 향하게 된 것이다.
장성우의 마음은 자신에게 와있는데 이경아가 백 년 묵은 여우처럼 꼬리를 흔들며 그를 유혹한 것이다. 따라서 강민지는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친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의 아빠를…….
지금 이 순간부터 이경아는 강민지의 친구가 아니었다. 오직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강민지의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증오심으로 바뀌어 짚더미에 붙은 불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그녀의 머릿속은 고양이에게 쫓기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새끼처럼 진정 돌이킬 수 없는 끔직한 음모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최후의 수단이라 할지라도 생각조차 해서는 안될 무서운 음모였지만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는 그 어떠한 짓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독하게 먹은 강민지였지만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쨌든 친구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을 해도 이경아는 10년을 넘게 사귄 친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서, 그녀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오랫동안 흐느꼈다.
강민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선뜻 마우스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강민지는 오랜 망설임 끝에 인터넷에 들어갔다. 그녀는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자신 스스로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강민지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해결사’ 관련 정보를 마우스로 클릭해 자신이 의뢰하고자 하는 일에 딱 알맞을 것 같은 사이트를 찾아내 접속하는데 성공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접속에 성공한 그녀의 눈빛은 예전의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은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강민지가 상담 스페이스에 들어가자 10여 초가 흐른 뒤 모니터에 응답이 떠올랐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주로 무슨 일을 도와주시나요.”
잠깐 주저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강민지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뭐든지 닥치는 대로 고객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 도와드립니다.”
“사람을…….”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었더라도 강민지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해보세요.”
“사람을 해치는 일인데……, 상관없나요?”
강민지는 어쩌면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지불 조건만 맞는다면 기꺼이 일을 처리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액수는?”
“상황에 따라서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대강…….”
“그럼, 먼저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상대는 여자고, 그 여자를 유인해 처리하는 방법은 제가 가르쳐드릴 겁니다.”
“그 정도라면 아주 쉬운 일이라 가격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액수는?”
“오천만 원, 우선 계약금으로 이천만 원을 주시고 나머지 삼천만 원은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지불하시면 됩니다.”
“물론 비밀은 보장되는 거죠?”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좋아요. 그렇다면 일을 의뢰하겠습니다.”
“선택을 잘 하신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계약금을 지하철 칠호선과 오호선이 만나는 군자역 코일 박스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수표는 절대 안되고 전부 현금으로. 그리고 열쇠는 그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가셔서 쓰레기통 속에 버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만약인데…….”
“말씀해 보세요.”
“계약금만 날리면 어떻게 하죠?”
“의심을 하시는 겁니까?”
“엄청난 일을 하면서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비정상이겠죠.”
“그럼, 좋습니다. 이번엔 특별히 계약금 없이 먼저 일을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절 어떻게 믿고서?”
“이런 위험한 일은 서로 신뢰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객님을 믿습니다.”
“좋아요. 내일 계약금을 그곳에 넣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접속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접속을 할 때 암호명을 먼저 대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암호명은 붉은 악마입니다”
“붉은 악마요?”
“예. 제가 축구를 좋아하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럼, 내일 다시 접속하겠습니다.”
배신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배신을 당한 사람의 심정이 어떤지 모른다. 강민지 역시 그랬다. 애인에게 배신을 당한 친구가 죽어버리겠다고, 아니 배신한 남자를 죽여버리겠다고 미친 듯이 울부짖는 것을 봤을 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미련을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하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제정신이 아닌 몸으로 정신병동의 철장 안에 갇혔을 때 그녀는 그 친구가 저주스러울 만큼 바보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강민지 바로 자신이 머리가 180도 돌아버린 사람처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상황을 판단할 능력조차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