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BC 011

곤돌이200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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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Sada

 

아줌마이다..--;. 내가 basement(지하실, 반지하)로 이사가고 나서 나의 생활은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다. 내가 살던 집주인은 Sada kobe 라는 연세가 60 에 가까우신 분인데 bri 라는 고양이와 단둘이 살고 계셨다. 하얀색 토요타 셀리카를 운전하셨고 공무원이셨다. 아주머니에게는 이혼한 남편이 있었고 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살던 집은 1층에다가 반지하 형식으로 되어있었고 차고도 있었고 뒷마당에는 hot bath top 도 있었다.
그리고 지하실엔 사우나, 세탁실 그리고 내가 사용한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1층 부엌의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아침햇살이 부얶에 빛을 비추곤 했다...

그런데 나는 아주머니하고 대화할 기회는 별로없었고 심지어는 월세를 낼때에만 1층부엌에 가서 수표봉투를 놓고만 가는 수준었고 아주머니도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종이에 글을 써서 메모를 1층과 지하실을 연결하는 계단에 놓았을 뿐이다.

처음 1년동안은 진짜로 집밖에서 우연히 만나지 않고서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고 설상 얘기를 한다할지라고 간단한 인사뿐이었다. 그와중에 아주머니는 나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을 하셨다. 피우지 말라는 담배를 매일 지하실에서 창문을 열고 피우는게 못마땅하셔서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경고의  메세지만 계속 썼었다. 당연히 집주인의 말을 들어야 하는건 당연한데 난 그럴수록 몰래 않들키게 필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고 나중엔 배째라하고 나 몰라라까지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가끔식 내가 늦잠을 자서 학교에 늦으면 Sada 아주머니의 하얀 스포츠카로 손살같이 학교까지 데려다 준 기억도 난다. 아주머니는 처음에 내가 영어를 전혀 못하는줄알고 말걸기를 망설였으나 내가 뱅쿠버로 이사가기 전에는 아주머니하고 친해져서 얘기도 많이 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같이 많이 가까워졌었다....그러나 그때에는 내가 뱅쿠버로 이사가기 불과 몇일전이었고 난 이사를 갔다 --;

아주머니는 3명의 딸이 장성하고 나서 남편되시는 분하고 이혼을 하셨다. 그 이유는 크게 싸워서도 아니고 성격이 않맞아서도 아니고 이젠 자유롭게 혼자 지내고 싶어서 였다라고 하셨다...난 이해가 않되었지만 상대방의 의견이 옮지 않다고 해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했다...사실 이런것은 외국에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동양인이 이해못하는 일들중하나이다...심지어는 어떤 사람은 나에게 우리 부모님이 한번도 이혼경험이 없냐고 놀란듯이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뱅쿠버에 이사를 갔어도 서로 안부를 묻는 전화는 자주했었고 나중에 MY 식구들이 한국에서 뱅쿠버에 놀러왔을때에도 아주머니네 집에서 하룻밤묵고 식구들하고 인사시킨적이 있었다.

아주머니도 뱅쿠버에 있는 딸을 만나러 오실때 항상 잊지않고 전화를 해주셨고.. 아주머니에게 않좋은 일들이 있을때에도 위로하러 나나이모에 간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한식구처럼 서로 대해주었고 아주머니도 내가 뱅쿠버에서 올때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해주셨다.  

 

내가 작년에 5년동안의 캐나다 생활을 접고 한국에 가기전에도 마지막이 될지모른다는 생각에 아주머니얼굴 한번 보러 수상비행기를 타고 인사드린기억이 난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배로 왔다 갈려면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 했는데 (참고로 뱅쿠버에서 나나이모까지 대략 3시간이걸린다. 그걸 왕복으로따지면 벌써 6시간이나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반면에 수상비행기로 가면 20분씩 왕복 40분 밖에 않걸린다. 난 이때 진짜 시간이 돈이란걸 느꼈다. 왕복해서 100불 조금 넘는 비행기 삯이지만 Sada 아주머니를 만날수있다는 기대에 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Sada 아주머니하고 MSN 으로 대화도 하고 작년 크리스마스때에는 카드도 보내고 했는데....연락이 끊겼다...이메일을 해도 답장이 않오고....전화를 해도 다른 사람이 받고...

이번엔 내가 돈을 모아서 아주머니에게 한국여행을 시켜드리고 싶은데 요즘 연락이 없다...그러나 다시 만날날을 기대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