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예찬론

김정미200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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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한두잔쯤 할 줄 아는 사람치고 나름대로 예찬론 한자락 정도는 다 펴리라 믿는다

"나는 이래서 술을 좋아하지"

"나는 이럴 적에 술을 마시고 싶어지지"

"술은 이래서 좋은 거야" 뭐 등등...

그 떠올림만으로도 취한 듯, 그리운 듯, 여유로워지고, 약간의 흐트러짐 조차도 용납이 되어지는 듯한

심지어는 은근한 미소마져 자아내게 하는 그 묘한 액체를 나 또한 사랑한다 아니할 수 없으니...

음료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도 아닌것이...

감히 행복이라고 까지 표현하고픈 술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언젠가는 이런 내용의 글 한편 정도는 내 놓아야 함의 의무감도 느껴오던 차.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의 술을 모두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주량이 센 천하의 여 주태백이도 아니고

술 좋아하시는 많은 사람들속에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긴 하지만

내 소중한 친구중에 결코 제외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용기를 내어본다

 

 

스무살을 갓 넘긴 눈부시도록 푸른 젊은 날

수업을 마치고 몇 몇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간 곳이 바로 술집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막걸리집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 의사와 상관도 없이 강제로 한 사발을 마셔지는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마치 쌀뜨물같이 생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각이라니...

텁텁하고 약간은 달콤하기도 하면서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맛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긴 했어도

무사히(?) 한사발의 임무를 완수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갑자기 몸이 이상해져 옴과 동시에 머릿속이 혼미하면서 마음까지 마구 흔들려온다

이럴 수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몸이 붕 떠오르는 듯도 하고 땅으로 푹 꺼지는 듯도 하고.

내 몸도, 내 정신도 그 순간 어쩔 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 위대한 쌀뜨물 사촌(?)의 힘에 놀람이란...

그동안 살아오면서 누가 감히 나를 어쩔 수 있었겠는가

낳아주신 엄마도,  선생님도,  심지어 친한 친구도... 그런데 저 액체가 도대체 뭐길래...

내 몸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말이 나오고 감정까지 마구 휘둘려지다니

도대체 뭐길래 나의 영혼까지 마구 흔들어 놓는가 말이다

내 눈물까지 내 생각까지 그리고 이 청춘의 심각함까지 마구 휘저어 놓는 저 액체가 뭔가 말이다

내 개인적으로 놀라운 발견이고 경이로움이기 까지한 그 날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후 막걸리에 대한 나의 짝사랑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퇴근길"  그 곳이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객지에 와서 공부하는 팔도의 친구들중에 몰려다니는 멤버들이 여럿있는데 나로 인해 두팀으로

나뉘어지게까지 되었다

나를 따라 퇴근길로 출근(?)하는 친구 몇과 평소에 드나들던 음악다방으로 향하는 친구들이다

"기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비록 목로주점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젊음의 낭만을 한껏 부추기기엔 커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의 주체못할 젊음이 그저 뜻모를 막걸리 몇사발에 의지하여 마구 흔들린다

그당시 한창 유행하던 음악다방에서 고운 싯귀와 음악을 신청해놓고 분위기 잡던 우리가 아니었는가

대신 막걸리로 약간은 들떠 있는 분위기만 달라졌을 뿐 우린 충분히 행복했다

막걸리가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지던 그 무렵,

객지의 애환도 술은 다 어루만져 주었고, 우리의 원함을 완벽히 헤아려주는 듯 느껴지던 그 어느날,

"우리 막걸리 마시기 내기 한번 해 볼래?"

누군가의 제안이 접수 되었고 한창 전성기였던 나 또한 대회참가자 명단에서 제외될 수 는

결코 없는일

자랑할 것이라곤 간 큰것 밖에 없는 천하의 정미라는 여자가 과감히 도전장을 내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취하고 또 취해서...

......

승부의 결과는...

밤새 토하고, 또 토하고, 드디어 탈진까지 하여 버렸으니.

내가 발견한 신대륙이 마구 돈다  해일이 일고 지진이 나고 태풍이 분다

그 완벽한 돔 속에서 연약한 내가 그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다

마구 휘청거리고 몸부림치고 나에게 그토록 경이로움을 선사하던 술이란 놈이

두 얼굴을 내밀고 나를 마구 희롱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나는 신대륙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더 이상 너는 나의 짝사랑의 대상이 아니었고 경이로움도 그 무엇도 가져다 줄 수 없는

한낱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액체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그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힐끗 힐끗 보아지는 정도로 밖엔.

우리의 열렬한 구애는 소강상태를 보이게 되었음은 말 할 것도 없고 관심의 저만치의 밀려 결국은

서먹하기까지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젊음을 어찌 할 것인가  다시 음악다방으로,  쓴 커피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 처럼/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술로 얼룩진 시인 박인환님의 시를 외우며 우린 술을 마셔댔다 다시...

분명 지금과는 다른 것이 술 속에는 반드시 시가 있었고 지금으로는 설명이 잘 않되는

멋스럼과 낭만이 함께 녹아있었다

젊음의 객기와 호기심과 낭만으로의 향한 끝없는 사랑이 이유모를 술을 더 가까이 하게 하는

핑게가 되었고 우린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라고는 처음처럼 그런 일방적인 짝사랑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술 중에서도 소주를 좋아한다

이유는 물론 있지만 설명이 충분히 될 것 같지를 않아서 그냥 성격이라고만 하리라

확실함...그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도 할까

빈 속을 타고 내려오는 싸아한 감촉 그리고 이어지는 나와의 결별

현실을 벗어난 잠시만의 여행길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전설속의 새 파랑새가 있다

내 그리던 꿈의 세계가 멀리에 있지 않다  발이 아프도록 찾아 헤매지 않아도...

저 무심한 낯선 사람의 얼굴속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다

너무나 짧아서 슬프긴 하지만 행복도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

나는 어김없이 술을 찾는다

술이 주는 그 약효로 일주일을 살아내고 또 기다림으로 일주일을 보낸다

내 인생은 그런대로 살 만하다

그 이유중에 중요한 부분이 역시 술을 빼 놓을 수 없으니 감히 "애주가"라 아니 할 수 있으리

술 없어도 잘 살아내는 세상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고 못 사는 사이까지도 바라지 않고

우린 서로 의지하고 기대고 바라고 찾으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커피 한잔에도 마음 흔들리는 내가 그 독한 소주 몇잔에 늘 마음 무너지지만

그래도 약간은 취한것이 살아내기 편한 세상이라 변명까지 늘여놓아 본다

언제까지나 나의 귀한 친구중에 하나로서 완벽한 자리매김에 부족함 없으리라 믿는다

우리 친하게 사는 날까지 더불어 가자

좀더 긴 여정이면 더 좋겠고...

 

 

참고로...제 주량은 소주 세잔 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