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아쉬운 시절. 누구나 사연이 있고 누구나 아픔이 있는 과거... 요즘 더더욱 그리워 지는 사람... 저와는 12살이나 차이가 나는 형이 있었습니다. 형은 공부를 잘해서 연세대 영문과 장학생으로 학교에 들어가고 늘 장학금을 받았죠. 평소에는 기숙사 생활을 해서 형을 자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방학 때가 되면 형은 집에 왔고 그때 저의 집은 영어학원을 했기때문에 강의실 위 공간에 다락방을 만들어서 살았죠. 형은 항상 강의실 한구석 쇼파에서 잠을 잤습니다. 새벽 4시-5시 졸린 눈을 비비고 다락방에서 내려와 형이 자고 있는 강의실로 자주 가곤 했어요. 형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싱글벙글... 너무 좋아서... 한번은 형이 저를 롯데월드에 데려갔습니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니 무지하게 놀라웠죠. ㅋ 그때 형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잔돈까지 동원해서 '빅5'를 사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놀이기구를 타러 들어갈때 손잡고 배웅해주고 나올때는 항상 출구에서 기다려줬습니다. 형도 같이 타면 좋을텐데... 라는 마음도 들었지만 형은 어른이라서 나만 태워주는거라 생각했죠. 그날 저는 집에 와서 일기장에 '나중에 커서 아르바이트해서 월급타면 꼭 형 빅5 사줄꺼다'라고 다짐하며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 그런 세월이 지나가고 형은 ROTC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당분간 형을 못본다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하고... 하지만 더욱 멋진 남자가 될 형을 생각하며 섭섭한 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가끔식 휴가를 나오면 나의 살찐 모습을 보면서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 해줬습니다. ^^ 편지에도 ' 사나이는 공부할 때는 사나이답게 공부하고 놀때는 사나이답게 노는거야', '항상 형이 널 위해 기도한다' 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죠. 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형도 재대를 3개월정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마음아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전화벨이 울리고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들려오는 소리... "전중위님이 크게 다치셨습니다. 빨리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전 울음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일이 생기나... 울고 계신 것은 어머니셨습니다. 처음에는 분위기에 눈물이 흘렀지만 점차 형에 대한 일인줄 알고 나니 그저 멍했습니다. 부모님은 절 부르시더니 이젠 네가 우리집안 대를 이어야하니 부모님 말씀 더 잘 들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형은 몇일 뒤 한줌의 재가 되어 대전 국립묘지 장교묘역에 안치 되었습니다. 너무나 착했던 형... 나의 전부였던 형... 벌써 형이 나를 떠난지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잊을 수 아니... 죽어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언젠가 꼭 한번 만난다면 한번도 못했던 말 사랑한다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더더욱 그리워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아쉬운 시절.
누구나 사연이 있고 누구나 아픔이 있는 과거...
요즘 더더욱 그리워 지는 사람...
저와는 12살이나 차이가 나는 형이 있었습니다.
형은 공부를 잘해서 연세대 영문과 장학생으로 학교에 들어가고 늘 장학금을 받았죠.
평소에는 기숙사 생활을 해서 형을 자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방학 때가 되면 형은 집에 왔고 그때 저의 집은 영어학원을 했기때문에 강의실 위 공간에 다락방을 만들어서 살았죠.
형은 항상 강의실 한구석 쇼파에서 잠을 잤습니다.
새벽 4시-5시 졸린 눈을 비비고 다락방에서 내려와 형이 자고 있는 강의실로 자주 가곤 했어요.
형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싱글벙글... 너무 좋아서...
한번은 형이 저를 롯데월드에 데려갔습니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니 무지하게 놀라웠죠. ㅋ
그때 형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잔돈까지 동원해서 '빅5'를 사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놀이기구를 타러 들어갈때 손잡고 배웅해주고 나올때는 항상 출구에서 기다려줬습니다.
형도 같이 타면 좋을텐데... 라는 마음도 들었지만 형은 어른이라서 나만 태워주는거라 생각했죠.
그날 저는 집에 와서 일기장에 '나중에 커서 아르바이트해서 월급타면 꼭 형 빅5 사줄꺼다'라고 다짐하며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
그런 세월이 지나가고 형은 ROTC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당분간 형을 못본다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하고... 하지만 더욱 멋진 남자가 될 형을 생각하며 섭섭한 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가끔식 휴가를 나오면 나의 살찐 모습을 보면서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 해줬습니다. ^^
편지에도 ' 사나이는 공부할 때는 사나이답게 공부하고 놀때는 사나이답게 노는거야', '항상 형이 널 위해 기도한다' 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죠.
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형도 재대를 3개월정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마음아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전화벨이 울리고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들려오는 소리... "전중위님이 크게 다치셨습니다. 빨리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전 울음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일이 생기나... 울고 계신 것은 어머니셨습니다.
처음에는 분위기에 눈물이 흘렀지만 점차 형에 대한 일인줄 알고 나니 그저 멍했습니다.
부모님은 절 부르시더니 이젠 네가 우리집안 대를 이어야하니 부모님 말씀 더 잘 들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형은 몇일 뒤 한줌의 재가 되어 대전 국립묘지 장교묘역에 안치 되었습니다.
너무나 착했던 형... 나의 전부였던 형...
벌써 형이 나를 떠난지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잊을 수 아니... 죽어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언젠가 꼭 한번 만난다면 한번도 못했던 말 사랑한다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