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힌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여기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야할까? 아무리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제자리 걸음 같아서 겁이 났다. 앞으로 더 얼마나 이래야할까? 그 동안 삶이 나에게 던져준것은 아픔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0년 동안 나에게 준 것은 고통이었다.
서재준: 어디서 오는 길이야
남자의 목소리에 미경은 깜짝 놀랬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그 남자가 그 재수 없는 사장이라는 것이다. 면접에서 날 아주 바보로 만든 그 놈이다. 나쁜 놈 이 남자 아니 이 사장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쬐메 궁금했다.
미경: 여기서 뭐해요. 서재준: 빨리 와서 문 열어
시종일관 무표정을 고수하면서 이젠 아예 명령까지 하고 있다. 자기 집도 아니면서 왜 명령이야. 집안으로 들어가려면 당연히 문을 열어야지. 내가 투명인가? 문뚫고 들어가게.. 이상한 사람이야 미경은 인상을 한번 쓰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장도 따라 들어왔다. 아침에 청소 안하고 간 것이 이내 마음에 걸린다. 하필이면 이럴때 오냐.. 아무튼 눈치도 없는 인간이다. 재수 없어
서재준: 여기서 살아 김미경: 그럼 여기서 살지 밖에서 살까봐~~요
이 사장 어떻게 사람이 이런곳에서 살까하는 표정이다. 이 사장이라는 인간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주 많이 건방지고 재수 없고 사람 깔보는 놈이다. 재수 없어.
김미경: 무슨 일이세요.
그 사장한테 미경은 불청객 대하듯 아주 건방지게 대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민망해서 빨리 말하고 나갈 궁리만 할건데 이 사장은 집안을 아주 찬찬히 돌아보고 있다.
김미경: 집 검사해요. 왜 그쪽이 사는 집과 비교가 되나요. 극과극처럼 느껴지요 서재준: 별로 나쁘지 않아 김미경: 거지는 아닌 것 같아~~요
이 사장 아주 살짝 웃는다. 그 웃음이 비웃는것 같아 미경은 열 받았다.
서재준: 본론으로 들어가지. 빠른 시일내에 짐싸서 여기로 연락해.
미경은 어이가 없었다. 이 사장 혹시 정신병자 아니야. 내 집 놔두고 이제 이사가라고 한다. 그것도 생전 처음보는 나한테.. 물론 두번째보는 거지만... 아무튼 이 사장 도저히 내가 이해가 안간다.
김미경: 지금 제정신인가요. 내가 왜 나가야해요.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리고 왜 자꾸 반말인데.. 사람 기분나쁘게. 니가 사장이면 사장이지. 내 사장은 아니잖아~~요 서재준: 김미경. 나이 28살. 김동준 사장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10년 부보님의 사고로 고아가 되었지. 부모님의 죽음으로 회사 부도. 18살의 나이로 김미경씨는 무일품으로 집에서 쫓겨났지. 맞아
이 남자의 차분한 아니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그 동안의 김미경이 살아온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이 사장이하는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아주 간단한 진실이지만..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김미경: 맞아.. 아예 돗자리 깔고 점이라도 보시지요. 사람 뒷조사하는게 취미생활인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나 조사하고 다니시죠. 서재준: 다른 사람은 재미없어. 그 동안 김미경씨를 찾았어. 김동준 사장님이 남기신 주식때문에 말이야. 그러나 김미경씨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더군 김미경: 아니 당신들은 날 찾고 싶었던게 아니었어. 그 동안 날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면 그전에 충분히 날 찾을 시간은 있었어. 그러나 당신들은 날 찾고 싶은게 아니었어. 내가 골치덩어리이였으니까? 아니라고는 부인못하겠지
그 동안 쌓아온 가슴의 멍이 한꺼번에 터졌다. 이 남자의 말대로 맨 몸으로 그 집에서 쫓겨났다. 사람들이 와서 뭐라고 말하는데 미경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미경은 자신이 이젠 부자도 부모님도 집도 예전의 모든것이 다 사라졌다는 것 말고는 기억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다시피해서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재수 없는 남자가 나타나기전까지는.. 한가지 늘 궁금한게 있었다. 왜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할때도 있었다. 예전에 우리 집은 남부럽지 않게 소히 말하는 부자였다. 갑부는 아니지만 돈에 부족함없이 살았다. 최고 아니면 상대할지 않을만큼...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고, 지금은 아무도 그때의 일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서재준: 어쩜 그게 맞을지도 모르지. 그때는 아주 작은 액수였고 별볼일 없는 금액이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죽음으로 회사는 더욱 악화되었고, 은행에서 먼저 선수를쳤지. 당신 부모님만 살아계셨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 운이 없었던거라고 생각해.
그래 항상 그 놈의 운이 문제였다. 우리 부모님이 사고난 것도 그 놈의 운이 없었던거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것도 그 놈의 운때문이다.
김미경: 지금의 와서 내가 필요할만큼 당신들한테 중요한 사람이되었나요. 무슨 이유죠 서재준: 그건 우리집에서 얘기하지. 우유 잘 먹었어.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그 사장은 떠났다. 이 집에서 그리고 나에게서 떠났다. 그가 나가고 한동안 미경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우유.. 뜬구름 없이 무슨 우유 그러고보니 아직 그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벌써 두번째 만남인데.. 나는 그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그 남자가 준 전화번호와 이름이 얌전하게 탁자위에 놓여져 있다.
김미경: 서재준.. 그 재수 더럽게 없는 사장 이름이 서재준인가?
아무튼 그 사장 보면 볼수록 사람 주눅들게 만든다. 그 당당함은 그 카리스마는 머니에서 오는 거겠지. 한때 내가 그랬던것처럼...
그 다음날 미경은 어제의 일이 꼭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저 꿈처럼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마치 어제는 일은 없었던 것처럼...
김미경: (일어나) 어제 무슨 일었던거야.
이제는 뭐 먹고사나 그게 걱정이다.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다 전쟁이다.
이혜숙: 미경아 어제는 어떻게 된거야
혜숙이 갑자기 문을 벌컹 열고는 들어와 내 머리속에 있는 잡다한 생각들을 치워주었다.
김미경: 떨어졌다. 이혜숙: 떨어지면 우유 배달은 안해도 되나 김미경: 응 안해. 어차피 알바자리였어. 이헤숙: 너 이제 뭐먹고 사냐 김미경: 니가 왜 걱정이냐.. 안그래도 아침부터 그 걱정했거든 니가 안도와줘도 돼. 이혜숙: 우린 친구잖아 김미경: 친구좋아하네.. 웬수잖아
친구..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단어다. 10년전 김미경이였다며.. 절대로 혜숙과는 친구가 되지 못했을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쓸쓸한 웃음이 나온다.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싸가지 없고, 버릇없는 한마디로 말해서 왕싸가지였다.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지금도 그렇게 살아겠지. 밥맛없게...
이혜숙:그 회사 떨어져서 실성했어. 김미경: 아니 그냥 웃긴 얘기가 생각나서.. 이혜숙: 왜 누가 니보고 못생겼다고 하든.. 그건 알긴 힘든 비밀인데 어떻게 알았든 김미경: 내가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형편없어 이혜숙: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좋아지고 있잖아.
그래 좋아지고 있지.. 너무나 많이..
이혜숙: 일어나 찬 공기라도 마셔야 살 얼굴이다. 김미경: 고마워 이혜숙: 그 고마운 마음 돈으로 줘 김미경: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좀 빠지지마 이년아 이혜숙: 욕도 잘해.. 그 욕잘하는걸로 앞으로 백년은 더 잘 살겠다. 김미경: 그렇지.. 이년아 이혜숙: 미친년.
그 날 하루종일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녔다. 몇년만에 나오는 야외인지 모르겠다. 늘 이렇게 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김미경: 집에 들어가기 싫다 이혜숙: 바람 남 아줌마처럼 집에는 왜 들어가기 싫냐. 김미경: 몰라
자동차가 없어도 좋다.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가 옆에 있는데 힘들어도 버스타고 천원짜리 김밥먹어도 행복하다.
김미경: 야 우리 친구맞지 이혜숙: 무슨 닭똥집 씹는 소리야 김미경: 닭똥집만큼 좋다는 소리지
혜숙이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었다.
김미경: 안가 이혜숙: 저기 봐. 눈 튀어나오겠다. 김미경; 눈도 작으면서.. 그 눈은 뭐그리 자꾸 튀어나올 일이 많아 뭘 보고 그래
그 놈의 재수 없는 사장이 떡하니 서 있었다. 개폼 잡고 서 있는 꼴라지봐라. 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자동차에 그가 개선장군처럼 서 있었다. 좋은것타고 다닌다고 자랑하고 싶다이거지.
서재준: 지금오나 김미경: 그래 지금온다. 서재준: 왜 연락안했어. 김미경: 그 돈 이젠 필요없어. 자존심도 오기도 아니야. 너희들은 날 10년전에 찾아야했어.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때 그때 날 찾아야했어. 서재준: 그럼 안 받겠다는건가? 김미경: 그래 어쩔래 서재준: 안 받겠다는데 억지로 줄 수 없지. 이건 그쪽거야. 오피스텔 열쇠지
열쇠를 나에게 던졌다. 난 반사적으로 그걸 받았다.
서재준: 한가지 더 내일부터 출근해
또 지 할말만 남기고 슝~~ 하고 가버렸다. 좋은 차 타고..
이혜숙: 누구야
혜숙이 계속 누구냐고 사람 못살게 굴었다. 혜숙의 호기심이 충족될때까지 난 잠자기는 다 틀렸다.
김미경: 그 회사 사장. 이혜숙: 오~~`우 냄새가 나는데.. 김미경: 그럼 목욕이나 하시지 이혜숙; 그 사장이 뭐라고 그런거야. 왜 너 찾아온거야. 뭐라고 했냐고.. 첫 눈에 반했데..그런거야. 김미경: 오버하지마. 내일부터 출근하래 이혜숙: 그 말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거야. 그 높은 사람이 말도안돼. 더 있지 그치. 내가 모르는 일이 더 있지. 그게 뭔데...궁금해 김미경: 로맨스 쓰냐 이혜숙: 왜 쓰면 안되나 김미경: 넌 그렇게 세상살면서 로맨스가 쓰고 싶냐. 유치하게.. 꿈에도 그런 일은 없더라 이혜숙; 그런 유치한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김미경: 결혼한 유부녀가 상상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인데.. 내 친구 바람났네로 영화보고 싶지 않거든 이혜숙: 너는 여자도 아니야. 여자가 말이야 좀 애교도 있고, 귀여운 구석이라도 있어야지. 너무 현실에 강해. 그러다가 너 시집 못간다. 김미경; 나도 안가고 싶다. 이혜숙:거짓말. 거짓말. 처녀가 시집 안간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김미경: 밥이나 먹자. 삼겹살 어때 이혜숙: 소주도 김미경; 좋지. 나 이제 백조아니다. 백조탈출한 기념으로 니가 쏴라 이혜숙: 독한 년
내일부터 뭐먹고 살아야하나 걱정하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내일부터 내가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생겨서 안심이다. 그러나 내일부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녀도 알지 못했다.
미경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첫 출근 하는날. 설레이고 긴장되고 떨리고 기분이 묘하다. 물론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그냥 호기심에 아빠가 남기고 간게 뭘까하는 호기심에 그냥 가보는 거다. 그러므로 난 낙하산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빠의 빽도 아니고 당당하게 내 실력으로 들어간 회사다. (양심이 조금 흔들리지만) 어째든 난 그런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김미경: 그래 잘하면 되는거야. 낙하산이면 어때 아빠 빽이면 어때 내가 바늘 구멍을 통과했다는게 중요하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존심은 잠시 쓰레기통에 담아두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 재수없는 남자가 던져준 그 먹이를 난 결코 받아먹기 않을 자신이 있다.
큰 호흡을 한번하고 미경은 출근길에 올랐다. 이 지옥같은 출근길도 미경에게는 천국으로 계단과 같았다. 룰루랄라... 회사앞 로비에서 미경은 환하게 한번 웃었다. 드디어 해낸다는 뿌듯한 뭐가가 가슴속 깊이 차 올랐다.
-아빠 제가 잘 할수있게 도와주세요. 아빠 이름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거에요.
최지영: 어머 이게 누구야
미경은 마음껏 멋을 부린 어떤 여자를 돌아보았다.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도대체 누구인지 기억이 없는 여자다. 누구지?
최지영: 나 누군지 몰라. 최지영이야
오케이 최지영. 싸가지 없는 최지영.. 한때 나와 라이벌이라고 지 입으로 떠들고 다녔던 그 최지영. 얼굴에 칼을 좀 됐구만. 그래서 내가 쉽게 알아볼 수 없었던거다.
김미경: 코하고 눈 좀 수정했네. 그래서 내가 못 알아봤어 미안. 그런데 너는 날 알아보는구나. 10년이 지났는데.. 자연산이라서 그런가? 최지영: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말빨은 여전하네. 그래도 세월은 못 속이는 것 같아. 그 촌스러운 옷은 어디서 났어. 예전의 그 잘난 공주병 김미경은 어디로 갔지?
이 인간이 사람 뚜껑열리게 만든다. 예전같으면 나에게 찍소리도 못했을 삐리리가 지금은 잘도 씹는다. 미경은 옛날 최지영을 한번 생각해보았다. 항상 나한테 당하던 지영이 아니 항상 나와 견줄 수 없는 지영이 떠오른다.
미경은 학교에서 유명한 연예인처럼 인기가 정말 많았다. 팬까페도 있을 정도로.... 미경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그 학교에서는 아주 유명인이였다.
담임선생님: 김미경 1학년 대표로 발표회 나갈거야? 김미경: 몸이 안 좋아서 못 나갈것 같아요. 그 대신 최지영이 나가고 싶어하던데요. 담임 선생님: 최지영 나가고 싶어. 최지영: 발레로 나가고 싶어요. 담임 선생님: 그럼 우선 명단에 넣어놓을게. 미경이가 몸이 좀 괜찮으면 선생님한테 말해. 니가 나가야지 우리반이 일등하지. 김미경: 생각이 바뀌면 말씀드릴게요.
미경은 예능 쪽으로 못하는게 없을 정도다. 발레, 피아노, 바이올린.. 집이 받쳐주 관계로 학교에서도 영향력이 대단했다. 어머니는 학교 어머니회 책임을 받고 있었다.
최지영: 누가 나가고 싶다고 했어. 니가 뭔데 선생님한테 내 얘기를 해.
지영이 미경에게 시비조로 나왔다.
김미경: 안나가고 싶으면 말해. 내가 나가도 되니까? 난 니 생각해서 말했지. 내가 나가면 우승은 난데.. 재미없잖아. 최지영: 지금 뭐하자는 플레이니.. 니가 우승할 것은 뻔하니까 나보고 나가라고.. 이년이 진짜 김미경: 머리도 안되고 발레도 나보다 안되고 얼굴도 안 따라주고 세상살기 힘들잖아. 그래서 내가 도와주는거야. 그냥 받아먹어.
분노로 떠는 지영. 미경을 향해 손을 들었다.
김미경: 폭력은 좀 곤란하지. 넌 나한테 안돼. 평생 안될걸. 대대로 명문가와 부동산으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어떻게 같을 수 있니. 너희집 땅투기 한다면서.. 무식이 파도를 치면 안되지. 최지영: 너 가만히 안둘거야. 이 싸가지 없는 년아. 내가 너 어떻게 되는지 꼭 두고 볼거야. 싸가지 밥 말아 먹을 년. 김미경: 두고 본다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더라. 최지영 잘들어 넌 나와 친구가 될 수 없어. 앞으로나 아는척 하지마. 나 따라하지마.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있다고 해서 너와 내가 같지는 않아. 날 따라한다고 해서 넌 내가 될수 없어. 그만해.
그 이후로 지영은 발레를 그만 두었다. 중학교때는 그저 같은 반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미경은 자신의 옆에 친구를 두는 스타일은 아니다. 친구들이 미경을 잘 따라서 그렇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었다. 어느 날 지영이라는 애가 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같은 학교에 입학을 했다. 명문 사립교.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지영이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녔고, 같은 머리 스타일 같은 악세사리를 하기 시작했다. 미경이 발레를 하면 발레를 했고, 미경이 피아노를 하면 피아노를 같이 했다. 미경은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지영에게 더욱 차갑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미경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정도로 배려가 깊은 소녀도 아니었다.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가득찬 소녀였다. 겉은 화려하고 예뻐지만 마음은 차가운 얼음 공주였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소녀였다.
박태욱: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 아니야 김미경: 니가 무슨 상관인데.. 지영이와 사겨
박태욱.. 대기업의 이사로 있는 아버지. 뼈대있는 집안이라고 해야하나. 고등학교 들어와서 알게된 친구이다. 반듯하게 생긴 외모.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고, 성격도 좋은 편에 속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학교 짱이다.
박태욱: 말이 너무 심하다 김미경: 그럼 상관하지마 박태욱: 김미경 김미경: 충고 한마디할까? 남에 일에 끼여들지마 박태욱: 니가 왜 남이야. 친구잖아. 김미경: 친구.. 지영이하고도 친구니. 그럼 지영이한테 가서 위로해줘. 나한테 이러지말고. 난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박태욱: 그래 너 잘났다. 김미경: 알아.
미경은 자신의 힘이 무엇인지 말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갖고 있어야할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 배려 친절 봉사. 사람한테 최소한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그때 미경은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오만했다. 과거는 잠시 여기서 그만.
최지영: 니가 여기 왜 있어. 김미경: 이 회사 다녀 최지영: 나도 이 회사 다녀. 다닌지 한달 됐어. 그 동안 유학 갔다 왔거든.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명품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도백을 했구만. 예전에 나도 저랬나. 거만떨고 오만떨고 싸가지 떨고.. 잘난척이나 하고.. 그랬나.
김미경:난 오늘이 첫 출근이야. 그런데 첫출근 환영인사치고는 너무 불길하네. 너를 여기서 만나고 말이야. 최지영: 곧 죽어도 자존심이다 이거지. 부보님 돌아가시고 힘들게 살았다면서. 널 알고 있는 친구들이 그러더라. 너야 친구라고 생각 안하겠지만. 아무튼 여기서 만나니 무지 반갑다.
반가운 얼굴이 그렇게 차갑냐. 두번만 반가웠으면 냉동인간 되겠네.
서재준: 여기서 뭐합니까?
갑자기 최지영 얼굴에 꽃이 피었다. 그를 보는 최지영의 얼굴은 사뭇 아주 달랐다. 그를 분명히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걸.. 미경은 핵심의 미소를 지었다. 눈치 구단의 미경의 눈으로 볼때 분명 최지영은 이 남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신이 주신 나의 기회. 최지영 넌 나한테 죽어도 안되는 걸...
김미경: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고 있어요. 두분이서 아는 사이인가봐요. 최지영: 어떻게 니가 재준오빠를 알아. 김미경: 세상은 아주 좁거든. 오늘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난것처럼 말이야. 안그래요. 서재준: 글쎄.. 만나야할 사람은 어디에 있든 만나겠지. 김미경: 그렇게 생각해요.
미경의 물음에 재준은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최지영: 만나야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났다고.. 좋은 말이야 김미경: 너 그 스카프 진짜 촌스럽거든.. 그 옷하고 안올려. 어쩜 그렇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촌스럽니. 돈이 많은 것하고는 상관없는 것같아. 최지영: 곧 죽어도 잘난척이다. 예전의 그 공주 김미경인지 내가 지켜보겠어. 넌 이제 내 상대가 못돼. 넌 이제 돈이 없거든 그리고 예전의 김 미경도 아니거든. 김미경: 아무리 그래도 넌 최지영이야 성형을 했다고 해도 내가 기억하는 최지영은 평면형 얼굴이었거든. 그 사진 갖고 있는데...니 말대로 돈이 좋네 그 얼굴이 이 얼굴로 바뀌다니..놀라워
분해 죽을 것 같은 지영의 얼굴을 뒤로하고, 미경은 유유히 사라졌다. 회사 생활이 정말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곳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영을 만나다니..과거를 다 잊고 살고 싶었는데..쉽지가 않다.
그녀의 로맨스 2편
숨이 막힌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여기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야할까? 아무리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제자리 걸음 같아서 겁이 났다. 앞으로 더 얼마나 이래야할까? 그 동안 삶이 나에게 던져준것은 아픔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0년 동안 나에게 준 것은 고통이었다.
서재준: 어디서 오는 길이야
남자의 목소리에 미경은 깜짝 놀랬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그 남자가 그 재수 없는 사장이라는 것이다. 면접에서 날 아주 바보로 만든 그 놈이다. 나쁜 놈
이 남자 아니 이 사장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쬐메 궁금했다.
미경: 여기서 뭐해요.
서재준: 빨리 와서 문 열어
시종일관 무표정을 고수하면서 이젠 아예 명령까지 하고 있다. 자기 집도 아니면서 왜 명령이야. 집안으로 들어가려면 당연히 문을 열어야지. 내가 투명인가? 문뚫고 들어가게.. 이상한 사람이야
미경은 인상을 한번 쓰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장도 따라 들어왔다. 아침에 청소 안하고 간 것이 이내 마음에 걸린다. 하필이면 이럴때 오냐.. 아무튼 눈치도 없는 인간이다. 재수 없어
서재준: 여기서 살아
김미경: 그럼 여기서 살지 밖에서 살까봐~~요
이 사장 어떻게 사람이 이런곳에서 살까하는 표정이다. 이 사장이라는 인간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주 많이 건방지고 재수 없고 사람 깔보는 놈이다. 재수 없어.
김미경: 무슨 일이세요.
그 사장한테 미경은 불청객 대하듯 아주 건방지게 대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민망해서 빨리 말하고 나갈 궁리만 할건데 이 사장은 집안을 아주 찬찬히 돌아보고 있다.
김미경: 집 검사해요. 왜 그쪽이 사는 집과 비교가 되나요. 극과극처럼 느껴지요
서재준: 별로 나쁘지 않아
김미경: 거지는 아닌 것 같아~~요
이 사장 아주 살짝 웃는다. 그 웃음이 비웃는것 같아 미경은 열 받았다.
서재준: 본론으로 들어가지. 빠른 시일내에 짐싸서 여기로 연락해.
미경은 어이가 없었다. 이 사장 혹시 정신병자 아니야. 내 집 놔두고 이제 이사가라고 한다. 그것도 생전 처음보는 나한테.. 물론 두번째보는 거지만... 아무튼 이 사장 도저히 내가 이해가 안간다.
김미경: 지금 제정신인가요. 내가 왜 나가야해요.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리고 왜 자꾸 반말인데.. 사람 기분나쁘게. 니가 사장이면 사장이지. 내 사장은 아니잖아~~요
서재준: 김미경. 나이 28살. 김동준 사장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10년 부보님의 사고로 고아가 되었지. 부모님의 죽음으로 회사 부도. 18살의 나이로 김미경씨는 무일품으로 집에서 쫓겨났지. 맞아
이 남자의 차분한 아니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그 동안의 김미경이 살아온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이 사장이하는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아주 간단한 진실이지만..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김미경: 맞아.. 아예 돗자리 깔고 점이라도 보시지요. 사람 뒷조사하는게 취미생활인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나 조사하고 다니시죠.
서재준: 다른 사람은 재미없어. 그 동안 김미경씨를 찾았어. 김동준 사장님이 남기신 주식때문에 말이야. 그러나 김미경씨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더군
김미경: 아니 당신들은 날 찾고 싶었던게 아니었어. 그 동안 날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면 그전에 충분히 날 찾을 시간은 있었어. 그러나 당신들은 날 찾고 싶은게 아니었어. 내가 골치덩어리이였으니까? 아니라고는 부인못하겠지
그 동안 쌓아온 가슴의 멍이 한꺼번에 터졌다. 이 남자의 말대로 맨 몸으로 그 집에서 쫓겨났다. 사람들이 와서 뭐라고 말하는데 미경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미경은 자신이 이젠 부자도 부모님도 집도 예전의 모든것이 다 사라졌다는 것 말고는 기억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다시피해서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재수 없는 남자가 나타나기전까지는.. 한가지 늘 궁금한게 있었다. 왜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할때도 있었다. 예전에 우리 집은 남부럽지 않게 소히 말하는 부자였다. 갑부는 아니지만 돈에 부족함없이 살았다. 최고 아니면 상대할지 않을만큼...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고, 지금은 아무도 그때의 일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서재준: 어쩜 그게 맞을지도 모르지. 그때는 아주 작은 액수였고 별볼일 없는 금액이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죽음으로 회사는 더욱 악화되었고, 은행에서 먼저 선수를쳤지. 당신 부모님만 살아계셨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 운이 없었던거라고 생각해.
그래 항상 그 놈의 운이 문제였다. 우리 부모님이 사고난 것도 그 놈의 운이 없었던거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것도 그 놈의 운때문이다.
김미경: 지금의 와서 내가 필요할만큼 당신들한테 중요한 사람이되었나요. 무슨 이유죠
서재준: 그건 우리집에서 얘기하지. 우유 잘 먹었어.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그 사장은 떠났다. 이 집에서 그리고 나에게서 떠났다. 그가 나가고 한동안 미경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우유.. 뜬구름 없이 무슨 우유
그러고보니 아직 그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벌써 두번째 만남인데.. 나는 그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그 남자가 준 전화번호와 이름이 얌전하게 탁자위에 놓여져 있다.
김미경: 서재준.. 그 재수 더럽게 없는 사장 이름이 서재준인가?
아무튼 그 사장 보면 볼수록 사람 주눅들게 만든다. 그 당당함은 그 카리스마는 머니에서 오는 거겠지. 한때 내가 그랬던것처럼...
그 다음날 미경은 어제의 일이 꼭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저 꿈처럼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마치 어제는 일은 없었던 것처럼...
김미경: (일어나) 어제 무슨 일었던거야.
이제는 뭐 먹고사나 그게 걱정이다.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다 전쟁이다.
이혜숙: 미경아 어제는 어떻게 된거야
혜숙이 갑자기 문을 벌컹 열고는 들어와 내 머리속에 있는 잡다한 생각들을 치워주었다.
김미경: 떨어졌다.
이혜숙: 떨어지면 우유 배달은 안해도 되나
김미경: 응 안해. 어차피 알바자리였어.
이헤숙: 너 이제 뭐먹고 사냐
김미경: 니가 왜 걱정이냐.. 안그래도 아침부터 그 걱정했거든 니가 안도와줘도 돼.
이혜숙: 우린 친구잖아
김미경: 친구좋아하네.. 웬수잖아
친구..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단어다. 10년전 김미경이였다며.. 절대로 혜숙과는 친구가 되지 못했을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쓸쓸한 웃음이 나온다.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싸가지 없고, 버릇없는 한마디로 말해서 왕싸가지였다.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지금도 그렇게 살아겠지. 밥맛없게...
이혜숙:그 회사 떨어져서 실성했어.
김미경: 아니 그냥 웃긴 얘기가 생각나서..
이혜숙: 왜 누가 니보고 못생겼다고 하든.. 그건 알긴 힘든 비밀인데 어떻게 알았든
김미경: 내가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형편없어
이혜숙: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좋아지고 있잖아.
그래 좋아지고 있지.. 너무나 많이..
이혜숙: 일어나 찬 공기라도 마셔야 살 얼굴이다.
김미경: 고마워
이혜숙: 그 고마운 마음 돈으로 줘
김미경: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좀 빠지지마 이년아
이혜숙: 욕도 잘해.. 그 욕잘하는걸로 앞으로 백년은 더 잘 살겠다.
김미경: 그렇지.. 이년아
이혜숙: 미친년.
그 날 하루종일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녔다. 몇년만에 나오는 야외인지 모르겠다. 늘 이렇게 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김미경: 집에 들어가기 싫다
이혜숙: 바람 남 아줌마처럼 집에는 왜 들어가기 싫냐.
김미경: 몰라
자동차가 없어도 좋다.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가 옆에 있는데 힘들어도 버스타고 천원짜리 김밥먹어도 행복하다.
김미경: 야 우리 친구맞지
이혜숙: 무슨 닭똥집 씹는 소리야
김미경: 닭똥집만큼 좋다는 소리지
혜숙이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었다.
김미경: 안가
이혜숙: 저기 봐. 눈 튀어나오겠다.
김미경; 눈도 작으면서.. 그 눈은 뭐그리 자꾸 튀어나올 일이 많아
뭘 보고 그래
그 놈의 재수 없는 사장이 떡하니 서 있었다. 개폼 잡고 서 있는 꼴라지봐라. 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자동차에 그가 개선장군처럼 서 있었다. 좋은것타고 다닌다고 자랑하고 싶다이거지.
서재준: 지금오나
김미경: 그래 지금온다.
서재준: 왜 연락안했어.
김미경: 그 돈 이젠 필요없어. 자존심도 오기도 아니야. 너희들은 날 10년전에 찾아야했어.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때 그때 날 찾아야했어.
서재준: 그럼 안 받겠다는건가?
김미경: 그래 어쩔래
서재준: 안 받겠다는데 억지로 줄 수 없지. 이건 그쪽거야. 오피스텔 열쇠지
열쇠를 나에게 던졌다. 난 반사적으로 그걸 받았다.
서재준: 한가지 더 내일부터 출근해
또 지 할말만 남기고 슝~~ 하고 가버렸다. 좋은 차 타고..
이혜숙: 누구야
혜숙이 계속 누구냐고 사람 못살게 굴었다. 혜숙의 호기심이 충족될때까지 난 잠자기는 다 틀렸다.
김미경: 그 회사 사장.
이혜숙: 오~~`우 냄새가 나는데..
김미경: 그럼 목욕이나 하시지
이혜숙; 그 사장이 뭐라고 그런거야. 왜 너 찾아온거야. 뭐라고 했냐고.. 첫 눈에 반했데..그런거야.
김미경: 오버하지마. 내일부터 출근하래
이혜숙: 그 말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거야. 그 높은 사람이 말도안돼. 더 있지 그치. 내가 모르는 일이 더 있지. 그게 뭔데...궁금해
김미경: 로맨스 쓰냐
이혜숙: 왜 쓰면 안되나
김미경: 넌 그렇게 세상살면서 로맨스가 쓰고 싶냐. 유치하게.. 꿈에도 그런 일은 없더라
이혜숙; 그런 유치한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김미경: 결혼한 유부녀가 상상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인데.. 내 친구 바람났네로 영화보고 싶지 않거든
이혜숙: 너는 여자도 아니야. 여자가 말이야 좀 애교도 있고, 귀여운 구석이라도 있어야지. 너무 현실에 강해. 그러다가 너 시집 못간다.
김미경; 나도 안가고 싶다.
이혜숙:거짓말. 거짓말. 처녀가 시집 안간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김미경: 밥이나 먹자. 삼겹살 어때
이혜숙: 소주도
김미경; 좋지. 나 이제 백조아니다. 백조탈출한 기념으로 니가 쏴라
이혜숙: 독한 년
내일부터 뭐먹고 살아야하나 걱정하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내일부터 내가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생겨서 안심이다. 그러나 내일부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녀도 알지 못했다.
미경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첫 출근 하는날. 설레이고 긴장되고 떨리고 기분이 묘하다. 물론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그냥 호기심에 아빠가 남기고 간게 뭘까하는 호기심에 그냥 가보는 거다. 그러므로 난 낙하산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빠의 빽도 아니고 당당하게 내 실력으로 들어간 회사다. (양심이 조금 흔들리지만) 어째든 난 그런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김미경: 그래 잘하면 되는거야. 낙하산이면 어때 아빠 빽이면 어때 내가 바늘 구멍을 통과했다는게 중요하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존심은 잠시 쓰레기통에 담아두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 재수없는 남자가 던져준 그 먹이를 난 결코 받아먹기 않을 자신이 있다.
큰 호흡을 한번하고 미경은 출근길에 올랐다. 이 지옥같은 출근길도 미경에게는 천국으로 계단과 같았다. 룰루랄라...
회사앞 로비에서 미경은 환하게 한번 웃었다. 드디어 해낸다는 뿌듯한 뭐가가 가슴속 깊이 차 올랐다.
-아빠 제가 잘 할수있게 도와주세요. 아빠 이름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거에요.
최지영: 어머 이게 누구야
미경은 마음껏 멋을 부린 어떤 여자를 돌아보았다.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도대체 누구인지 기억이 없는 여자다. 누구지?
최지영: 나 누군지 몰라. 최지영이야
오케이 최지영. 싸가지 없는 최지영.. 한때 나와 라이벌이라고 지 입으로 떠들고 다녔던 그 최지영. 얼굴에 칼을 좀 됐구만. 그래서 내가 쉽게 알아볼 수 없었던거다.
김미경: 코하고 눈 좀 수정했네. 그래서 내가 못 알아봤어 미안. 그런데 너는 날 알아보는구나. 10년이 지났는데.. 자연산이라서 그런가?
최지영: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말빨은 여전하네. 그래도 세월은 못 속이는 것 같아. 그 촌스러운 옷은 어디서 났어. 예전의 그 잘난 공주병 김미경은 어디로 갔지?
이 인간이 사람 뚜껑열리게 만든다. 예전같으면 나에게 찍소리도 못했을 삐리리가 지금은 잘도 씹는다. 미경은 옛날 최지영을 한번 생각해보았다. 항상 나한테 당하던 지영이 아니 항상 나와 견줄 수 없는 지영이 떠오른다.
미경은 학교에서 유명한 연예인처럼 인기가 정말 많았다. 팬까페도 있을 정도로.... 미경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그 학교에서는 아주 유명인이였다.
담임선생님: 김미경 1학년 대표로 발표회 나갈거야?
김미경: 몸이 안 좋아서 못 나갈것 같아요. 그 대신 최지영이 나가고 싶어하던데요.
담임 선생님: 최지영 나가고 싶어.
최지영: 발레로 나가고 싶어요.
담임 선생님: 그럼 우선 명단에 넣어놓을게. 미경이가 몸이 좀 괜찮으면 선생님한테 말해. 니가 나가야지 우리반이 일등하지.
김미경: 생각이 바뀌면 말씀드릴게요.
미경은 예능 쪽으로 못하는게 없을 정도다. 발레, 피아노, 바이올린.. 집이 받쳐주 관계로 학교에서도 영향력이 대단했다. 어머니는 학교 어머니회 책임을 받고 있었다.
최지영: 누가 나가고 싶다고 했어. 니가 뭔데 선생님한테 내 얘기를 해.
지영이 미경에게 시비조로 나왔다.
김미경: 안나가고 싶으면 말해. 내가 나가도 되니까? 난 니 생각해서 말했지. 내가 나가면 우승은 난데.. 재미없잖아.
최지영: 지금 뭐하자는 플레이니.. 니가 우승할 것은 뻔하니까 나보고 나가라고.. 이년이 진짜
김미경: 머리도 안되고 발레도 나보다 안되고 얼굴도 안 따라주고 세상살기 힘들잖아. 그래서 내가 도와주는거야. 그냥 받아먹어.
분노로 떠는 지영. 미경을 향해 손을 들었다.
김미경: 폭력은 좀 곤란하지. 넌 나한테 안돼. 평생 안될걸. 대대로 명문가와 부동산으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어떻게 같을 수 있니. 너희집 땅투기 한다면서.. 무식이 파도를 치면 안되지.
최지영: 너 가만히 안둘거야. 이 싸가지 없는 년아. 내가 너 어떻게 되는지 꼭 두고 볼거야. 싸가지 밥 말아 먹을 년.
김미경: 두고 본다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더라. 최지영 잘들어 넌 나와 친구가 될 수 없어. 앞으로나 아는척 하지마. 나 따라하지마.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있다고 해서 너와 내가 같지는 않아. 날 따라한다고 해서 넌 내가 될수 없어. 그만해.
그 이후로 지영은 발레를 그만 두었다. 중학교때는 그저 같은 반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미경은 자신의 옆에 친구를 두는 스타일은 아니다. 친구들이 미경을 잘 따라서 그렇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었다. 어느 날 지영이라는 애가 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같은 학교에 입학을 했다. 명문 사립교.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지영이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녔고, 같은 머리 스타일 같은 악세사리를 하기 시작했다. 미경이 발레를 하면 발레를 했고, 미경이 피아노를 하면 피아노를 같이 했다. 미경은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지영에게 더욱 차갑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미경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정도로 배려가 깊은 소녀도 아니었다.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가득찬 소녀였다. 겉은 화려하고 예뻐지만 마음은 차가운 얼음 공주였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소녀였다.
박태욱: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 아니야
김미경: 니가 무슨 상관인데.. 지영이와 사겨
박태욱.. 대기업의 이사로 있는 아버지. 뼈대있는 집안이라고 해야하나. 고등학교 들어와서 알게된 친구이다. 반듯하게 생긴 외모.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고, 성격도 좋은 편에 속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학교 짱이다.
박태욱: 말이 너무 심하다
김미경: 그럼 상관하지마
박태욱: 김미경
김미경: 충고 한마디할까? 남에 일에 끼여들지마
박태욱: 니가 왜 남이야. 친구잖아.
김미경: 친구.. 지영이하고도 친구니. 그럼 지영이한테 가서 위로해줘. 나한테 이러지말고. 난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박태욱: 그래 너 잘났다.
김미경: 알아.
미경은 자신의 힘이 무엇인지 말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갖고 있어야할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 배려 친절 봉사. 사람한테 최소한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그때 미경은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오만했다.
과거는 잠시 여기서 그만.
최지영: 니가 여기 왜 있어.
김미경: 이 회사 다녀
최지영: 나도 이 회사 다녀. 다닌지 한달 됐어. 그 동안 유학 갔다 왔거든.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명품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도백을 했구만. 예전에 나도 저랬나. 거만떨고 오만떨고 싸가지 떨고.. 잘난척이나 하고.. 그랬나.
김미경:난 오늘이 첫 출근이야. 그런데 첫출근 환영인사치고는 너무 불길하네. 너를 여기서 만나고 말이야.
최지영: 곧 죽어도 자존심이다 이거지. 부보님 돌아가시고 힘들게 살았다면서. 널 알고 있는 친구들이 그러더라. 너야 친구라고 생각 안하겠지만. 아무튼 여기서 만나니 무지 반갑다.
반가운 얼굴이 그렇게 차갑냐. 두번만 반가웠으면 냉동인간 되겠네.
서재준: 여기서 뭐합니까?
갑자기 최지영 얼굴에 꽃이 피었다. 그를 보는 최지영의 얼굴은 사뭇 아주 달랐다. 그를 분명히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걸.. 미경은 핵심의 미소를 지었다. 눈치 구단의 미경의 눈으로 볼때 분명 최지영은 이 남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신이 주신 나의 기회. 최지영 넌 나한테 죽어도 안되는 걸...
김미경: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고 있어요. 두분이서 아는 사이인가봐요.
최지영: 어떻게 니가 재준오빠를 알아.
김미경: 세상은 아주 좁거든. 오늘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난것처럼 말이야. 안그래요.
서재준: 글쎄.. 만나야할 사람은 어디에 있든 만나겠지.
김미경: 그렇게 생각해요.
미경의 물음에 재준은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최지영: 만나야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났다고.. 좋은 말이야
김미경: 너 그 스카프 진짜 촌스럽거든.. 그 옷하고 안올려. 어쩜 그렇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촌스럽니. 돈이 많은 것하고는 상관없는 것같아.
최지영: 곧 죽어도 잘난척이다. 예전의 그 공주 김미경인지 내가 지켜보겠어. 넌 이제 내 상대가 못돼. 넌 이제 돈이 없거든 그리고 예전의 김 미경도 아니거든.
김미경: 아무리 그래도 넌 최지영이야 성형을 했다고 해도 내가 기억하는 최지영은 평면형 얼굴이었거든. 그 사진 갖고 있는데...니 말대로 돈이 좋네 그 얼굴이 이 얼굴로 바뀌다니..놀라워
분해 죽을 것 같은 지영의 얼굴을 뒤로하고, 미경은 유유히 사라졌다. 회사 생활이 정말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곳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영을 만나다니..과거를 다 잊고 살고 싶었는데..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