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몽의 치명적인 오류들

구라들200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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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1.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 아니다.

삼국사기-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 우발수근처에서 하백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는데 유화가 금와왕에게 이르기를 스스로를 천제의 아들이라 칭하는 자가 나를 유인하여 그날로 사통(私通)하더니 바로 가는지라 그 이름을 물으니 '해모수'라 하였다 - 고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주몽은 다물족의 족장 해모수의 둘째아들 고진의 손자 즉, 고모수가 유화부인과 혼인하여

낳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추정하건데 유화부인은 문란한 생활을 한 여자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처음보는 남자와 관계를 가졌거나 시증조부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인데, 어찌됐건 당시 부여시대의 문란한 성생활과

유화부인의 음탕함이 역사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여지며 이로 인해 주몽이 햇빛을 받아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卵生)설화의 모태가 되는 셈이다.

 

오류2.'소서노(召敍奴)'는 자식까지 딸린 과부였다.

소서노는 소부족연맹체인 졸본부여의 계루부 군장인 연타발(연취타발 이라함)의 세딸중 하나였으며, 드라마상에 나오는 우태라는 인물과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았으나 우태는 일찍이 죽고, 부여에서 예씨부인과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은 주몽이 졸본으로 도망쳐와 소서노와 정략결혼하여 토착인이던 고구려 건국세력이 실세인 마리,오이,협보와 함께 BC37년 고구려를 건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훗날 예씨부인의 아들 유리가 주몽을 찾아와 태자가 되니 그가 고구려 유리왕이다.

 

오류3.한나라군에는 철기군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시대적 상황으로 당시가 청동기 시대라는 점은 상식이다. 고구려가 3세기경

아연과 주석의 배합비율을 알아내어 철기문화를 꽃피운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당시만 하더라도 고구려가 한나라보다 철기문화가 상당히 앞서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고증이 끝난 상태이므로 철기로 무장한 한사군에 청동무기나 어설픈 철제무기로 부여군이 대항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동부여당시 한사군과의 일전에서도 2년을 버틴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한사군의

철기군은 말이되지않는다.  

 

오류4.금와왕의 동부여에는 소금이 있었다.

드라마에는 부여가 소금이 없어 현토성 태수 양정과 마찰을 빚어 주몽이 행인국에서 소금을 가져온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내가 '한국사대계'라는 책의 고구려사 지도나 그밖의 모든 전해져오는 고지도에는 분명히 부여는 바다를 접하고 있다. 또 행인국은 지금의 티벳지방을 일컸는데 BC33년 주몽이 행인국을 점령할때 까지 당시 시대상황이나 거리등의 여건으로 볼 때 소금무역을 하였다는것은 신빙성이 전혀 없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ehyang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