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불제자 였다는 낭설에 속지 마십시오.

죄인2007.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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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네이트를 통하여 기독교 안티들과 논쟁을 가진 죄인입니다.

지금에서야 머리속에 드는 생각은 왜 우리가 안티들의 말을 듣고 분노하며 이를 갈아야 하는 것이냐는 것 입니다.

 

혹시라도 제 글을 읽고 있는 기독교인이 계시다면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만약 형제자매님들이 안티들의 말을 듣고 미워하는 마음과 분노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이 인터넷창을 닫으십시오. 또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주님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없다면. (즉. 긴가민가?하는 지식) 인터넷 창을 닫으십시오. 형제자매님들은 마음으로 죄를 범하는 것임이요. 또한 안티들의 말에 현혹되어 무릇 시험에 들진 않을까. 심히 두려움에 이 글을 씁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가겠습니다.

 

'김현갑' 님이 써 주신 예수님의 숨겨진 세월에서 예수님이 불교 제자였다는데 그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아마 현갑님은  80년대에 뉴에이지추종자인 홀거 케르스텐이라는 독일인이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보신거 같군요.

 

현재엔 많은 책들이 있죠.  유교의 경전 사서삼경, 불경, 성경, 고대역사 철학, 과학,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건 사람을 기만하고 속이는 책들이 난무하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 과연 예수님은 티벳에서 약 17년동안 불교 제자였을까?

 

1. 불경의 집필 연대와 성경의 기록 연대

불교의 석가모니는 예수님 보다 연대적으로 약 500년 이전에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당연히 불교의 불경도 기독교의 성경보다 먼저 기록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불경의 기록 연대는 성경의 기록보다는 아주 후대에 기록이 되었습니다다. 구약성경은 BC1500년경에 기록이 되었고, 신약성경은 AD100년 안에 모두 기록이 되었습니다. 반면, 불경은 모두 그 후대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제 석가모니의 생존 연대와 불경의 집필 연대를 고찰하여 보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다. 석가모니의 생존 연대는 불교 내부에서도 몇 가지 학설이 존재합니다만  

 

가장 유력한 연대는 BC 563~483년으로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속합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은 모두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들의 생애와 활동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그분들을 섬겼던 제자들의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불경은 석가모니 사후 약 10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불타의 가르침과 불교의 교리, 종교의식 등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수트라(Sutra)라고 합니다.

수트라는 산문체로 기록되었는데, 암송하는 짧은 문장에서 긴 것은 수백여 페이지에 달한다고 불교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교파마다 경전과 암송하는 내용이 서로 달라 교리적인 논쟁이 뜨겁게 가열되었습니다. 서로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있다는 논쟁이었죠. 이런 통일성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불교에서는 '결집' 이라고 합니다. 제 1차 결집은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 사료가 전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제 2차 결집 역시 BC 400년에 소집된 것으로 일부 불교인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증명할 사료가 없습니다. 역사가들은 제 2차 결집도 인정하지 않고있습니다.

제 3차 결집도 BC 247년쯤 아소카 왕 재위 기간에 이루어 진 것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을 뿐 역사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들은 제 3차 결집도 역사적인 충분한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고있습니다.

“불교의 유력한 부파 가운데 하나였던 '설일체유부' 의 연대기에서는 아소카 왕 때의 이러한 결집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3번째 결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카니슈카 왕 치세 중에 잘란다라(다른 전승에 따르면 캬슈미) 에서 열렸는데, 상좌부에서는 이것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카니슈카 왕의 연대가 확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결집이 언제 있었는가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AD 100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 하였습니다.(브리태이커 세계대백과사전, CD-ROM, Program 결집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는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의 전통성을 계승한 남방불교는 제 3차 결집만 역사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현재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은 1996년 7월 23일 대영 도서관에서 발견된 서기 100년경에 쓰인 것이 최고 오래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1999년 7월 23일 KBS 밤 9뉴스에도 보도되었죠.

불교 경전의 하나인 법화경도 AD 393~339년 사이에 불교의 일반 신도들에 의하여 파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모세 오경(구약성경)은 BC 1500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신약성경도 AD 100년 안에 모두 완성되었죠.

이처럼 기독교의 성경이 불경의 기록보다 역사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성경만큼 다양한 학문이 동원되어 검증을 받은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역사학, 고고학적으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로부터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과연 어느 쪽이 영향을 받았겠는가? 당연히 불경이 성경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역사와 학자적인 양심으로 보면 기독교와 불교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종교가 맨 처음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학자라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는 내용들을 모아 남의 종교를 깎아내리기 위해 "예수가 불제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주제 넘는 일입니다. 남의 종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면 정당하게 평가해야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견된 사고력과 결론을 미리 정하고 남의 종교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과 수단으로 전개한 학문 연구는 진정한 학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명문대 교수가 거짓된 내용을 분별없이 수용하여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소란을 떠는 것은 학자적인 품위는 물론 다니는 대학의 명예에도 손상을 주는 일인 것입니다.

2. 불교 학자들의 주장처럼 예수님께서 불제자였다고 가정(假定)하면 불교 스스로가 자기모순에 빠진다.

한양대 불문학 문희석 교수는 “성경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고 하였습니다. 주)엘리자베스. C. 저, 황보석 역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동국 출판사, 1998), 추천 문에서(추천문의 일부 글 내용)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명확한 구절들이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프랑스의 학자 필립 드 슈아레는 기독교의 성립에 관한 의문점을 푸는 하나의 중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그의 저서 "토마스에 의한 복음서"는 유럽의 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다.”고 하였다. 주)엘리자베스. C. 저, 황보석 역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동국 출판사, 1998), 추천 문에서…추천문의 일부.

불교 학자들은 예수께서 청년기인 약 17년 동안 티베트에 가서 불경을 공부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주장처럼 사실이라고 한다면 불교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불교 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께서는 학문을 습득하기 가장 알맞은 인생의 황금기에 티베트에서 무려 17년 동안이나 불경을 교육받은 셈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에 비교하면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와 대학원 7년을 모두 포함시켜도 13년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과연 불교 교육을 무려 17년 동안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불교의 교리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어떻게 석가모니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불교 교육은 17년 동안이나 가르쳐도 자신들의 교리도 제대로 설파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종교인가요? 불교는 원래 '신' 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석가모니가 탄생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라는 말이 잘 반영하고 있는데요.

즉 “하늘 위에나 하늘 아래에 신은 없고 나, 곧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교는 원래 신을 믿지 않는 종교입니다. 즉 무신론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점에 대해 동국대학교 불교학 교수들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제자중에 '밧가리' 라는 유명한 제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스승인 석가모니는 그 제자의 곁을 찾게 되었죠. 그때 제가 밧가리는 석가모니에게 "스승님! 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숨을 거두기 전에 신들에게 드리는 최고의 예를 갖추어 스승님께 경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석가모니는 제자 밧가리의 유언을 듣고 난 후에 짤라서 말했습니다. "난 신이 아니다. 따라서 너의 경배를 받을 수 없다. 다만, 나는 민중의 아버지는 될 수 있다. " 고 솔직하게 말했죠. 말하자면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정통 불교에서는 신을 믿지 않는 불교를 내세의 종교로 강조하고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입니다.

또한 석가모니가 “그 이름은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그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기명활 천주야, 여이귀의 其命曰 天主也 汝爾歸依=불경). 또한 팔만대장경 나마다경 제 38장 8절에서 석가모니는 “언젠가 예수가 오시면 내가 깨닫는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시야소래, 何時爺蘇來, 오도무유지등야, 吾道無油之橙也=일본에 있는 불교경전, 팔만대장경에는 없음,).

모두가 잘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불교는 윤회설(輪廻說) 을 믿고 있습니다. 즉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 교리에 따르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동물로 태어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잡은 양고기를 잡수셨습니다. 만약 티베트에 가서 17년 동안 불교를 교육받았다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이처럼 불교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성경의 교리와는 물과 기름 같이 정반대 되는 교리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결코 티베트에 가서 불경을 교육받은 일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불제자도 아니었죠. 이것이 역사의 진실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청년기에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절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고 하였스비다. 목수 기술은 하루아침에 습득되는 것이 아니지않습니까?

만약 불교 학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예수께서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모습을 나타내시고(눅 2:42) 13세부터 티베트로 가서 17년 동안 불교 교육을 받았다면, 언제 예수님께서 목수 직업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했다는 말인가요?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청년기에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로 활동하셨던 것입니다. 성경 기록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논하려면 이런 기본적인 성경 기록 정도는 파악하고 남의 종교를 비판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규모가 작은 갈릴리 나사렛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다녔죠. 예수께서도 12살 때 그 부모를 따라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까닭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그 성장 과정은 물론 청년기 때의 생활도 주변에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5절에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하였죠. 이 기록이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청년 시절을 주로 고향 나사렛에서 목수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글을 배울만한 형편도 시간도 없었던것이죠.

이런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잘 알고 있던 갈릴리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마 13:57, 막 6:3). 예수님께서는 성경 기록대로 배움이 없는 목수로 활동하셨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성경에 능했습니다. 당시에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운 유대인들의 지식층보다도 성경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으며, 또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에 “이에 모세와 및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인류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는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은 학문을 많이 배운 분들이었죠.

그러나 유일하게 예수님께서는 학문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었던 유대 전통 학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워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에서는 한정되어 있는 공간이므로 많은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견해를 제시할 수 있지만,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또한 전문적인 학술 용어들은 가급적 피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말은 항상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무조건 맹종하지 말고 자세하게 살피는 신중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기대하는 전기(BIOGRAPHY) 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전기에는 주인공의 내적 발전과 외적 사건들의 전개가 작가의 관점에 따라 일관적으로 짜막추어 기록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글자 그대로 '복음' 즉.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책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누구신가를 전해주기 위한 책이고,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려는 책이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고, 몇 살 때 무억을 했고 하는 따위의 인물에  대한 신변잡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좀더 나중에 성립된 복음서들인 마태, 누가복음은 현전하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 비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 대한 전승도 관심있게 전해주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십자가 사건으로 귀결되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설명해 주고, 궁극적으로 십자가 사건이라는 역사를 가리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후대로 갈수록 '예수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이 커져서 많은 대중문학들이 양산되어 유행되었는데, 이들 중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이 바로 신약의 외경, 위경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들의 순진무구한 상상과 신앙심을 엿볼 수 있긴 하지만, 예수님의 역사적 모습에 관해서 상당히 조악하고 황당무계한 모습을 전해 주지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남의 종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면 정당하게 평가해야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편견된 사고력과 결론을 미리 정하고 남의 종교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과 수단으로 전개한 학문 연구는 진정한 학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욕할지언정 주님은 살아계시고 또한 '스스로있는자 (출3: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슴 속에 주님이 계십니까? 그 주님께 기도 하십시오.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 속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또한, 주님을 믿으면서도 담배피고 술마시고 여자와 행음하며 세상의 일락을 즐기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라'  이것은 '깨끗게하라'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으로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한주간도 승리 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날때마다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가에 대해서 차츰 차츰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