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6집 음반 타이틀곡 [할 줄 알어?]의 18금 판정 소식에 경악한 것은 박지윤 팬들만이 아니었다. 필자도 몹시 놀랐다.
그 정도의 성적 표현도 눈감아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설마,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닌데 그 때문에 놀라겠는가.
오히려 심의위원회가 박지윤 음반 팔아주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놀라고 당황했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빨간
딱지를 붙임으로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금단의 열매'로 보이게 만드는가. 하나도 야하지 않은, 그리고 조금도 신나지 않는
노래들을 대대적으로 매스컴에서 다루게 만드는가. 그리고 대체 왜, 매스컴이 박진영에게 성 담론의 설파 기회를 제공하게 하는가 말이다.
[할 줄 알어?]가 18금이 된 순간, 정작 당사자인 박진영과 박지윤은 전혀 경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싸안고 닐리리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왜 아니겠는가. 빨간 딱지가 붙은 음반은 내용물에 관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청소년이라고 못 살 줄 아나. 다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
게다가 소리바다에 들어가면 MP3 파일도 널려 있지 않은가. 기독교 단체나 학부모 단체가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 금상 첨화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에서 지원 사격을 해 주기 때문이다. 딱지가 붙은 음반이 흡사 '순교자'처럼 보이게 되고, 내용물의 부실함에 대한 비판은 어딘가로
증발해 버리고 만다. 언제나 그랬듯, 박진영의 장사는 대 성공이다.
정작 중요한, 그러나 거의 이야기거리가 되지 못한 박지윤 6집의 내용물은 한숨이 나올 수준이다. 청소년들이 들어선 안 될 가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온갖 파격적인 영상을 접해온(상당수는 실전도 치른) 청소년들에게 '할 줄 알어?' 운운하는 가사가 무슨 자극이 될 수 있겠나. 오히려 가사는 못 썼다고
하는 편이 정직한 평가일텐데, 특히 박지윤이 직접 만든 노랫말들은 최악이다. 문희준과 더불어 국내 최악의 작사가라는 평을 받을 법하다.
음악은? 박진영의 작업들이 항상 그랬듯, 절묘한 짜깁기와 무허가 샘플링으로 가득하다. 비욘세 곡을 살짝 베낀 [할 줄 알어?], 그리고 제니퍼 로페즈가 들으면 짜증낼 [DJ]는
박진영에게 양심의 기능이 마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박진영의 장기라던 리듬 파트는 별다른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흔적이 역력하고,
박지윤의 코맹맹이 보컬은 숨막힐 듯 답답하다. '가성창법'이라고 초지일관 우겨대던데, 음이 안 올라가서 가성 쓰는 것도 가성창법이라니 말 다했다.
음반의 전체적인 인상은 "박지윤은 발전이 없고, 박진영은 약발이 다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오디 오라버니들의 새 음반도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가.
그래서 밧데리가 다 된 박진영이 박지윤 6집의 실패로 완전히 내리막길을 걷는가, 하는 시점에서 빨간 딱지가 붙어 버렸다. 결과는? 보이는 그대로다.
박지윤 6집의 허하고 부실한 내용물에 대한 비판은 은근슬쩍 뒷전으로 물러났고, 그 자리를 박진영의 성(性) 담론이 메웠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쪽과 청소년의 밝은 미래를 염려하는 쪽이 팽팽히 대립했다. 박진영은 2000년대 판 정태춘이 되어 보수적 한국 사회와 심의 제도가 낳은 희생양이 되었다.
각종 언론에서 박진영과 인터뷰를 했고, 이는 박지윤 6집 홍보의 장으로 충실히 기능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박진영 개인의 섹스에 대한 '소신'이 널리 전파되었다.
이렇게 세간의 관심을 한데 끌어 모은 뒤, 박지윤은 대체 타이틀곡 [DJ]로 최후의 단물까지 빼먹었다. 박진영의 승리, 박씨 브라더스의 승리였다. 과연 다음 작업 때는
어떤 수법으로 음반을 팔아먹을 것인가? 문희준 음반과 퀄리티에서는 별 차이도 없는 내용물을 들고서.
사실 박진영이 박지윤의 음악 선생을 자처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원래부터 박진영은 '워너비 마돈나'였다. 음악과 연계한 성 정치를 통해 인기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속이 비치는 의상을 입고, 야한 노랫말로 화제를 부르고, 프리섹스를 전도하고, 그러면서도 방송에 당당히 나와 쇼도 하고 노래도 하는. 사실 어지간한 연예인이 '방종'해 보이는 발언을 했다가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지 않은가. 그러나 박진영은 1, 2집을 통해 착실히 인기를 쌓은 뒤에 작전을 개시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누지' 운운하는 노랫말과 모델 이소라를 동원한 뮤직비디오로 소동을 일으킨 [엘리베이터]가 그것이다. 마침 사회 분위기도 개방적이고 해서 대중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고, 다른 가수가 했다면 색골로 지탄 받았을 행동도 박진영이 하면 멋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기까지는 마돈나 언니의 발자국을 밀접히 따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진영은 남자였고, 이는 한계를 느끼게 했다. 한국이 어딘가. 남녀가 유별나게 유별(有別)한 나라가 아닌가.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 따라, 남자가 외치는 성적 자유가 더는 큰 반향을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내세운 게 바로 박지윤이다. 3집까지만 해도 청순한 이미지로 연명하던, 노출이 심한 옷은 죽어도 못 입을 것 같던, '아무것도 몰라요'하며 순진한 척 하던 박지윤. 박진영은 그녀에게 골반 댄스를 가르치고,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히고, 성인식을 치러 주었다. 음악적 기둥서방이 되었다. 그리고, 박지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그만의 성 강의를 재개했다.
좋다. 음악인은 자기 작품을 통해 얼마든지 이데올로기를, 취향을 설파할 수 있다. 그래서 박진영-박지윤 남매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사상을 이야기하건 그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이나 제대로 만들고 나서 정치를 하건 전도를 하건 해야 할 것 아닌가. 음악은 대강 베끼기와 흉내내기로 점철하고, 한심한 노래실력으로 불러제낀 뒤, 가요 프로그램에서 골반 댄스 추면서 '정치'를 하겠다고? 차라리 정형근이가 하는 정치가 낫다.
분명히 하자. 지구상의 어떤 음악 형식이건, 메시지를 담고 싶거든 음악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꾸바의 누에바 뜨로바(Nueva Trova)나 남미의 누에바 깐시온(Nueva Cansion) 계통 노래들을 들어보라. 메시지도 그렇지만
일단 노래가 끝내준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눈물짓고 흥에 젖게 만드는 절세의 명곡들이다. 한국 민중가요가 왜 듣기 거북한가. 좌파적인 메시지 때문이 아니다. 음악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만치 후졌기 때문이다. 성적인
메시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마돈나 언니, 프린스 아저씨 모두모두 '들을 만한' 음악을 만들고 거기에 성적 메시지를 실어 나른다. 그러나 박진영-박지윤 남매의 노래는 메시지도 밍숭맹숭 별 게 아닐 뿐더러, 가장 중요한 음
악이 '개차반'이다. 그저 매스컴에서 띄워주고, 심의위원회와 기독교 단체가 과잉 대응하고 하니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뿐이다. 이런 게 바로 상업적인 음악이란 것이다. 음악보다는 여타의 가십이 더 큰 소동을 부르는, 음악
적 내용물이 소동 속에 묻혀 버리는, 정작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거지 발싸개 같은. 대체 언제까지 대중들을, 언론을, 그리고 음악 산업계를 유린할 것인가 박씨 남매여.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박진영의 음악뿐만 아니라 정치력과 상술조차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윤 6집 파동은 그야말로 '행운'일 뿐이고, 아마 다음 음반에서는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없을지 모른다. 지오디
오라버니들의 인기도 예전만 못하고, 그나마 남은 '비'가 있긴 하지만 설마 비 오빠를 갖고 섹스 이야기를 하진 않겠지. 박진영의 제국은 그렇게 조금씩 쇠락해 가는 느낌이다. 진중한 음악 청취자들에겐 행복한 일일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덜 불행한 일인지도. 갈 데까지 간 박진영이 갑자기 '구슬기' 카드를 꺼내들고 '10대의 섹스'를 이야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필자 주) 구슬기는 량현량하 나이대의 소녀로서, 모 TV 프로그램에서 [성인식]의 안무를 완벽히 소화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박진영이 픽업, 가수로 키울 예정이라 했는데 춤 잘 추는 애를 왜 가수로 키우는지는 알 길이 없다.
[*스타들의 뒷다마*] 박진영-박지윤, 음악과 정치와 상술의 고갈 선언 (내용 펌)
박지윤 - 성인식
박진영-박지윤, 음악과 정치와 상술의 고갈 선언
박지윤의 6집 음반 타이틀곡 [할 줄 알어?]의 18금 판정 소식에 경악한 것은 박지윤 팬들만이 아니었다. 필자도 몹시 놀랐다.
그 정도의 성적 표현도 눈감아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설마,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닌데 그 때문에 놀라겠는가.
오히려 심의위원회가 박지윤 음반 팔아주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놀라고 당황했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빨간
딱지를 붙임으로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금단의 열매'로 보이게 만드는가. 하나도 야하지 않은, 그리고 조금도 신나지 않는
노래들을 대대적으로 매스컴에서 다루게 만드는가. 그리고 대체 왜, 매스컴이 박진영에게 성 담론의 설파 기회를 제공하게 하는가 말이다.
[할 줄 알어?]가 18금이 된 순간, 정작 당사자인 박진영과 박지윤은 전혀 경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싸안고 닐리리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왜 아니겠는가. 빨간 딱지가 붙은 음반은 내용물에 관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청소년이라고 못 살 줄 아나. 다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
게다가 소리바다에 들어가면 MP3 파일도 널려 있지 않은가. 기독교 단체나 학부모 단체가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 금상 첨화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에서 지원 사격을 해 주기 때문이다. 딱지가 붙은 음반이 흡사 '순교자'처럼 보이게 되고, 내용물의 부실함에 대한 비판은 어딘가로
증발해 버리고 만다. 언제나 그랬듯, 박진영의 장사는 대 성공이다.
정작 중요한, 그러나 거의 이야기거리가 되지 못한 박지윤 6집의 내용물은 한숨이 나올 수준이다. 청소년들이 들어선 안 될 가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온갖 파격적인 영상을 접해온(상당수는 실전도 치른) 청소년들에게 '할 줄 알어?' 운운하는 가사가 무슨 자극이 될 수 있겠나. 오히려 가사는 못 썼다고
하는 편이 정직한 평가일텐데, 특히 박지윤이 직접 만든 노랫말들은 최악이다. 문희준과 더불어 국내 최악의 작사가라는 평을 받을 법하다.
음악은? 박진영의 작업들이 항상 그랬듯, 절묘한 짜깁기와 무허가 샘플링으로 가득하다. 비욘세 곡을 살짝 베낀 [할 줄 알어?], 그리고 제니퍼 로페즈가 들으면 짜증낼 [DJ]는
박진영에게 양심의 기능이 마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박진영의 장기라던 리듬 파트는 별다른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흔적이 역력하고,
박지윤의 코맹맹이 보컬은 숨막힐 듯 답답하다. '가성창법'이라고 초지일관 우겨대던데, 음이 안 올라가서 가성 쓰는 것도 가성창법이라니 말 다했다.
음반의 전체적인 인상은 "박지윤은 발전이 없고, 박진영은 약발이 다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오디 오라버니들의 새 음반도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가.
그래서 밧데리가 다 된 박진영이 박지윤 6집의 실패로 완전히 내리막길을 걷는가, 하는 시점에서 빨간 딱지가 붙어 버렸다. 결과는? 보이는 그대로다.
박지윤 6집의 허하고 부실한 내용물에 대한 비판은 은근슬쩍 뒷전으로 물러났고, 그 자리를 박진영의 성(性) 담론이 메웠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쪽과 청소년의 밝은 미래를 염려하는 쪽이 팽팽히 대립했다. 박진영은 2000년대 판 정태춘이 되어 보수적 한국 사회와 심의 제도가 낳은 희생양이 되었다.
각종 언론에서 박진영과 인터뷰를 했고, 이는 박지윤 6집 홍보의 장으로 충실히 기능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박진영 개인의 섹스에 대한 '소신'이 널리 전파되었다.
이렇게 세간의 관심을 한데 끌어 모은 뒤, 박지윤은 대체 타이틀곡 [DJ]로 최후의 단물까지 빼먹었다. 박진영의 승리, 박씨 브라더스의 승리였다. 과연 다음 작업 때는
어떤 수법으로 음반을 팔아먹을 것인가? 문희준 음반과 퀄리티에서는 별 차이도 없는 내용물을 들고서.
사실 박진영이 박지윤의 음악 선생을 자처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원래부터 박진영은 '워너비 마돈나'였다. 음악과 연계한 성 정치를 통해 인기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속이 비치는 의상을 입고, 야한 노랫말로 화제를 부르고, 프리섹스를 전도하고, 그러면서도 방송에 당당히 나와 쇼도 하고 노래도 하는. 사실 어지간한 연예인이 '방종'해 보이는 발언을 했다가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지 않은가. 그러나 박진영은 1, 2집을 통해 착실히 인기를 쌓은 뒤에 작전을 개시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누지' 운운하는 노랫말과 모델 이소라를 동원한 뮤직비디오로 소동을 일으킨 [엘리베이터]가 그것이다. 마침 사회 분위기도 개방적이고 해서 대중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고, 다른 가수가 했다면 색골로 지탄 받았을 행동도 박진영이 하면 멋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기까지는 마돈나 언니의 발자국을 밀접히 따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진영은 남자였고, 이는 한계를 느끼게 했다. 한국이 어딘가. 남녀가 유별나게 유별(有別)한 나라가 아닌가.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 따라, 남자가 외치는 성적 자유가 더는 큰 반향을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내세운 게 바로 박지윤이다. 3집까지만 해도 청순한 이미지로 연명하던, 노출이 심한 옷은 죽어도 못 입을 것 같던, '아무것도 몰라요'하며 순진한 척 하던 박지윤. 박진영은 그녀에게 골반 댄스를 가르치고,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히고, 성인식을 치러 주었다. 음악적 기둥서방이 되었다. 그리고, 박지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그만의 성 강의를 재개했다.
좋다. 음악인은 자기 작품을 통해 얼마든지 이데올로기를, 취향을 설파할 수 있다. 그래서 박진영-박지윤 남매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사상을 이야기하건 그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이나 제대로 만들고 나서 정치를 하건 전도를 하건 해야 할 것 아닌가. 음악은 대강 베끼기와 흉내내기로 점철하고, 한심한 노래실력으로 불러제낀 뒤, 가요 프로그램에서 골반 댄스 추면서 '정치'를 하겠다고? 차라리 정형근이가 하는 정치가 낫다.
분명히 하자. 지구상의 어떤 음악 형식이건, 메시지를 담고 싶거든 음악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꾸바의 누에바 뜨로바(Nueva Trova)나 남미의 누에바 깐시온(Nueva Cansion) 계통 노래들을 들어보라. 메시지도 그렇지만
일단 노래가 끝내준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눈물짓고 흥에 젖게 만드는 절세의 명곡들이다. 한국 민중가요가 왜 듣기 거북한가. 좌파적인 메시지 때문이 아니다. 음악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만치 후졌기 때문이다. 성적인
메시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마돈나 언니, 프린스 아저씨 모두모두 '들을 만한' 음악을 만들고 거기에 성적 메시지를 실어 나른다. 그러나 박진영-박지윤 남매의 노래는 메시지도 밍숭맹숭 별 게 아닐 뿐더러, 가장 중요한 음
악이 '개차반'이다. 그저 매스컴에서 띄워주고, 심의위원회와 기독교 단체가 과잉 대응하고 하니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뿐이다. 이런 게 바로 상업적인 음악이란 것이다. 음악보다는 여타의 가십이 더 큰 소동을 부르는, 음악
적 내용물이 소동 속에 묻혀 버리는, 정작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거지 발싸개 같은. 대체 언제까지 대중들을, 언론을, 그리고 음악 산업계를 유린할 것인가 박씨 남매여.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박진영의 음악뿐만 아니라 정치력과 상술조차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윤 6집 파동은 그야말로 '행운'일 뿐이고, 아마 다음 음반에서는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없을지 모른다. 지오디
오라버니들의 인기도 예전만 못하고, 그나마 남은 '비'가 있긴 하지만 설마 비 오빠를 갖고 섹스 이야기를 하진 않겠지. 박진영의 제국은 그렇게 조금씩 쇠락해 가는 느낌이다. 진중한 음악 청취자들에겐 행복한 일일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덜 불행한 일인지도. 갈 데까지 간 박진영이 갑자기 '구슬기' 카드를 꺼내들고 '10대의 섹스'를 이야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필자 주) 구슬기는 량현량하 나이대의 소녀로서, 모 TV 프로그램에서 [성인식]의 안무를 완벽히 소화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박진영이 픽업, 가수로 키울 예정이라 했는데 춤 잘 추는 애를 왜 가수로 키우는지는 알 길이 없다.
☞ 두번째 오늘의 톡, 딸 이면 병원가서 지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