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장일기 <달마야 놀자>

주방장200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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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방장이다.

칼춤 자알 춘다.

이젠 이 말이 조금씩 지겨워진다.

똑같은 말 몇 번 했다고 지겹다니......

나도 이젠 진정한 네티즌의 대열에 끼는가?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는 시내 중심가에 있다.

조금만 걸어가면 시장도 있고 반대쪽으로 조금만 가면 아침 해 뜰때까지 술 퍼마시며 세상을 비판하는 젊은 민초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거리가 있다.

술파는 집이 밀집되어 있다보니 찾아오는 손님들도 아~주 다양하다.

돈 많아서 오는 사람

돈 많은 사람들 많이 아는 사람

천하무적 카드를 부하처럼 지갑속에 거느리고 오는 사람 등......

그래도 위에 나열한 사람들은 무언가 먹고 마시러 오는데.....

안그런 손님들이 가끔 내 인상을 구긴다.

일주일에 평균 2회 이상 찾아오는 무리들이 있으니~~~~

바로 달마의 후예들.

무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하늘을 찌르는 긍지와 세상을 덮을 듯 한 인자함과 자비심으로 무장한 그들은 오늘도 보잘 것 없는 우리가게를 찾는다.

"나무아미타아부울~ 과안세에음보오사알~"

살생을 막 하려는데 어디선가 나즈막한 목소리와 함께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맑고 청아한 목탁소리.

순간 난 내손을 쳐다본다. 살벌한 칼.....

스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미지의 뜻을 담은 불경이 칼을 든채 치켜올려진 나의 오른손을 천천히 내려오게 만든다.

칼판위의 광어가 빠금거린다.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글쎄.......

난 스님을 천천히 보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날 주시한다.

아! 우리 사장.....

순간 나의 내려졌던 작은 단두대는 큰 원을 그리며 탁! 하고 아주 간단하게 살생을 저질러 버린다.

아..... 스님........ 어째서......이런 곳에................

 

사장이 금고를 연다.

"땡!" 하고 금고 속 어디선가 작은 종소리가 울리며 주둥이를 쭈욱 내미는 금고에서 천원짜리 한장이 들려 나온다.

사장이 말없이 건넨다.

목탁소리가 끊기고 스님은 합장을 하며 고개숙여 뭐라 한마디 나즈막히 건네고는 조용히 나간다.

아마 이러한 장면은 저 스님이 들르시는 업소에서 몇번이고 재현될 것이다.

 

조금있다 사장이 다가왔다.

"어이, 정실장. 니 아까 온 중 어떤거 간노?"

"예? 뭐가요?"

"그 중 말이다. 진짜같길레 돈 준거거든."

"그럼 가짜도 있습니까?"

"아직 니는 잘 모르제? 가짜 중 억수로 많다."

"가짜중이요?"

"그래. 가짜중들이 진짜중들하고 같이 다닌다."

"같이 다녀요? 가짜랑?"
"아니, 같이 다닌다는게 그게 아이고 진짜중들이 시주하러 나오면 그때 맞춰서 돌아다닌가 아이가......

가짜 중 오믄 절대 돈 주지 마라. 오늘 분명히 또 올기다."

 

사장의 예언은 이루어졌다.

진짜 스님이 다녀가고 난 후 세명의 중이 더 찾아왔다.

전부 가짜였다.

어떻게 진짜를 구분하는가? 이것이 문제인데..... 의외로 간단했다.

 

첫번째 중

목탁이 없었다.

난 절에 자주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중이 시주를 받을 때는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우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쯤은 안다.

근데 이 중은 목탁이 없다.

총도 없이 전쟁터에 나온 군인....... 군인 아니다.

목탁없이 시주받으려는 중....... 중 아니다.

사장도 무시하고 나도 무시하고 중은 말없이 가게 문 안쪽에 서서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다.

30초쯤 흘렀을까....... 가만히 지켜보던 보조가 가짜로 강하게 의심되는 중에게 다가갔다.

"저희가게는 사람들이 전부 교회다니는데요."

오호. 나의 눈치빠른 보조. 멋진 대사다.

제법 쓸만한 때도 있다니...

중이 한마디 하고 떠난다.

"알았엄마, 빨리 말해야지 씨~~"

보조....................... 말이 없다.

번쩍이던 대머리가 사라지자 보조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운다.

나도 뭐라 할 말이 없는 황당한 상황

사장만 피식 웃더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얄밉다.

 

두번재 중

구두를 신었다.

구두....... 그거 가죽으로 만드는 것 아니가? 동물의 가죽으로.......

그래도 목탁도 그럴싸~하게 두드리며 무어라 중얼거린다.

일단 구두는 신었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진짜같다.

낡아보이는 목탁, 그럴싸한 불경도 중얼중얼

사장은 나가고 없고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식사중인 손님들한테 방해가 된다.

손님중에 교회다니는 아줌마라도 있다면 불경을 들으니 머리가 아프다고 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중의 얼굴 한 번 보고 구두 한 번 보고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데..........증거가 포착되었다.

'당신 가짜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

침을 꾸울꺽 삼켰다.

손은 목탁을 두드리고 있고 입은 무어라 알 수 없는 내용을 웅얼거리고 있는데~ 그러다가 또 침을 꿀꺽 삼킨다.

중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바로 옆 테이블을 주시하고 있다.

한 아줌마가 상추 두장에 회 두점을 올리고 초장을 뿌리더니 마늘 몇 쪽을 더 올려서 조심스레 싸서는 입으로 쑤셔넣는다.

'꾸울~꺽'

내 착각이겠지만 그 소리 엄청 크게 들렸다.

오호~ 이것봐라.............

난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못발리는 장난기.....

직접 확인을 해야겠다.

난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고는 중에게 다가갔다.

"저, 스님. 제가 시주는 하고 싶은데 가진게 이것이 전붑니다. 차비는 있어야 하는데.....죄송합니다."

어떻게 대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중의 눈알이 옆에서 내쪽을 이동하며 살짝 웃는다.

"복 받으십시요~ 제가 오천원은 돌려드리리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하하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중이 바지주머니쪽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더니 지갑을 꺼냈다.

가죽지갑.............

상표를 보니 '샘소나이트' 다.

지갑을 열고 오천원짜리를 꺼내더니 내가 내민 만원짜리를 쳐다본다.

난 만원자리를 잽싸게 주머니에 다시 쑤셔넣으며 중에게 한발짝 다가갔다.

"아저씨! 진짜 중 맞아요?"

"예?"

"무슨 중이 가죽구두 신고 다닙니까? 지갑도 가죽이네........."

"..........."

중은 말없이 날 쳐다보니니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쌩~ 하니 나가버렸다.

재밌다.

오죽 먹고 살기 힘들면 가짜 중 행세하면서 다니겠는가마는 방금 그 가짜는 얼굴에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걸 보니 절대 배고파서 가짜중이 된 것은 아닌게 확실하다.

 

세번째 중.........

아마 평생동안 지나가는 중만 봐도 기억에 남을 대머리.

두명의 가짜중을 퇴치하고 잠시 휴식을 갖고 있었다.

식당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세시부터 다섯시 사이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다.

그때 오는 손님이 있으면 보조에게 맡긴다.

그래야 그녀석도 실력이 늘 것 아닌가?

또 녀석의 실력이 늘어야 나도 편해지고....... 후훗

어제밤에 새벽 네시까지 새로 나온 비디오겜을 했더니 조금 졸리길레 방에 들어가서 잠시 잠을 청했다.

"야, 한시간 후에 깨워라."

"넵!"

보조녀석 좋아한다.

내 칼 가지고 이것 저것 썰고 저미고 손님 오면 지가 직접 회도 뜰 것이다.

지금은 느리지만 아마 금방 실력이 늘 것 같다...... 성실하고 귀여운 녀석.....

방석을 두개 겹쳐서 반으로 접으면 푹신한 베게...... 잠이 스르르 들려고 하는데.........

"똑!  똑! 또로로로로로로........나아무우아미이타아부울.....과안세에으음 보오사아알...."

왔다!

나가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고 싶은데~ 졸리다.

졸린 상태에서 단 30분이라도 잠을 자두지 않으면 저녁시간에 바쁠 때 피곤하다. 자야한다.

난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생각하며 귀에만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밖에는 홀 여직원 한 명과 보조가 지키고 있으니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손님도 없다.

그냥 저렇게 목탁 치다가 가겠지~~~~~~

근데 그럴 생각이 없는가보다.

3분 정도 목탁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그리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도............

아~~~~~~~ 짜증난다.

졸린데 잠이 안온다.

스르르 잠이 올려고 하면 그놈의 목탁이 잠을 내쫒고 또 의식이 몽롱해지면 그놈의 목탁리듬이 내 정신을 깨우친다.   미치겠다.

잔뜩 인상을 구기고 그래도 이젠 가겠지~ 하며 참기를 5분 정도...... 짜증이 나는 중.

방안에서 그냥 소리를 질렀다.

"얌마! 네가 돈 줘서 보내라 좀!"

보조에게 알아서 하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이자슥이~~~!" 하면서 일어나 나가보니 홀 여직원은 카운터에 앉아있고 보조는 주방에 서있는데 둘 다 중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가만히 있다.

나도 중을 보았다.

진짜같다....... 그런데.....예쁘다.

머리는 반짝이긴 하는데 몸집도 작고 목탁을 받치고 있는 손도 작다.

그리고 남자치고는 넘 예쁘장하다.

잠이 깬다...

이건 또 무슨 현상인가?

여자라면 중이라도 충분히 사막과 같은 내 가슴에 단비를 내리는가?  난 미쳐가는가?

안되겠다.... 돈모아서 단란주점이라도 가서 단란한 여자랑 단란하게 놀아줘야겠다.

같은 계통에 있는 여자 무지 밝히는 친구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살냄새~ 그거 못맡으면 남자는 남자가 아니게 되지."

무슨 미친 소리냐고 대가리를 쥐어박았었는데 지금 이순간은 누가 나의 대가리를 쥐어박아 줘야 할 상황

예쁜 스님에게서 퍼지고 있는 조용하고 낭랑한 불경소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신발을 신고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부우자아바아내애디이르고오자아바아~"

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게 장사 잘 되라고 하는 것 같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했다. 자세히 보고 싶었다.

목탁을 두드리는 손이 힘겨워 보인다.

내가 대신 두드려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약간 내리깔고 있던 스님의 눈이 나에게로 천천히 들려진다.

속눈섭이 무지 길다. 목도 길다. 예쁜 대머리사슴같다.

불경을 들으니 내 마음이 불경스러워졌다. 이 무슨.............

 

나에게 말을 한다.

"시주 좀 하시지요....."

순간 나의 못된 버릇이 자동실행된다.

스캔~~~~~

음~ 나이는 28정도?  그리고.....  33   24   32

으~악!  난 천벌을 받을 것이다.

나같은 놈이 천벌을 받지 아니하면 누가 지옥에 떨어지겠는가?

스캔한 데이타가 공중으로 흩어지며 더 이상 섹쉬한 스님을 볼 수 없다.

끄어억!  이건 또 무슨 표현인가?

난 다음 생에 틀림없이 도다리로 태어날 것이다.

새꼬시로 팔리기 위해 산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나의 뼈와 살들이 잘게 썰려도 억울해하지 못 할 죄를 짓는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영화에서 보면 이런 미모의 여스님(비구니라고 하나?)은 세상을 버릴 수 밖에 없는 무슨 기구한 사연이 있지 않던가.

절에 남녀구분이 어디 있겠는가?

이 스님도 한명의 중으로서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이런 살생이 난무하는 곳까지 오시지 않았겠는가?

그래 나도 최선을 다 하자.

난 얼른 지갑을 열었다.

하마터면 불안한 정신에 십만원짜리 수표를 꺼낼 뻔 했다.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며 혹시 두장이 서로 딱 붙어있는 것은 아닌지 지갑속에서 세게 비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스님을 보며 말없이 두손 모아 내밀었다.

스님은 합장을 하며 처언처언히 고개를 숙이신다.

근데.....

가슴팍으로 살며시 검은색 브래지어가 보인다.

....................

뭐 어떠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리고 여스님은 여자가 아니더냐?

유일하게 속으로면 표현하시는 깊고 은밀한  개성의 표현을 누가 감히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스님은 조용히 떠나간다.  말없이......

난 속으로 바랬다.

'스님 많이 버세요... 아니. 시주 많이 받으세요....'

 

그래도 할 것을 했다는 조금은 뿌듯한 마음에 발걸음을 다시 누워 자던 방쪽으로 돌리는데......

보조녀석이 게슴츠레~ 한 눈으로 날 본다.

헉! 녀석이 내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저 스님의 미모때문에 잠시 색귀에 사로잡혔던 나의 순진한 마음을 눈치챈 것은 아닐까?

"얌마..... 뭘 보냐........"

"저기....."

"뭐..... 임마....."

"저기.....실장님."

"왜?"

"저 여자........."

"어헛! 여자라니, 스님한테...... 무식한 놈...."

"가짜같은데여."

".................."

"아까 불경 외우는 것 모르세요?"

"어, 너 불경 아냐? 들으면 알 수 있어?"

"그게............. 노래 가사 같은데여........."

"......................."

"거 있잖아요. 이런 노래....  붙잡아! 내 뒤를 꼬옥 잡아~"

"....................!!! .....................!!! ..................! ............................................!!!!!!!!!!!!"

"그 여자 첨 왔을대부터 노래 여러개 그런식으로 외던데요.  그래서 하도 기가 막혀서 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여직원이 핵폭탄을 날린다.

"어머, 실장님.  진짜 돈 줫어요? 그 여자 얼마전에 손님들한테 꽃 팔러 왔다가 사장님이 쫓아냈어요. 근데 머리 진짜 밀었네~"

"............................"

보조가 나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주기 위해 애쓰는 한마디를 던진다.

"바보 아녜요?'

"그럼......... 너네들........... 알면서..........안말렸냐?"

"무얼 말립니까? 눈 풀려가지고 돈 줬으면서.... 것두 만원씩이나............"

"후우우우~~~"

"어? 왜, 왜, 왜 그러세요?"

내가 심호흡을 내뱉으며 다가가자 녀석은 초밥통 뚜껑을 챙기더니 뒤로 물러서기 시작한다.

아무 생각도 없다.

내 몸은 그저 두주먹 불끈 쥐고 보조를 향해 한발짝 한발작 다가서고 있을 뿐이다.

근데 보조 없이 그 많은 일들을 다 할 수 있을까?   힘들겠지.....

따악 두대만 때리자~

녀석은 맷집이 좋으니.......

그리고 오늘 가짜 중 하나만 더 왔으면 좋겠다........으드드드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