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디바리우스

돈키호테2003.05.05
조회3,613

 

스트라디바리우스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기술
출생지 : 이탈리아 크레모나

크레모나 출생. 바이올린 명기의 대명사적 존재이며 현재의 표준형 바이올린의 창시자이다.

처음 N.아마티의 공방(工房)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1665년경에 독립하였다. 그 후로도 약 20년 동안은 스승인 아마티의 영향 밑에 있었으나, 1685∼1700년 사이에 많은 실험을 시도한 끝에 1700년 이후 독자적인 형을 고안하여 고전적인 완성기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 제작한 바이올린은 악기의 각 부분에 단풍나무 ·등나무 ·버드나무 등의 재료를 썼으며, f 자 구멍의 경사를 강화하고, 이중으로 니스칠을 하여 무게 있는 광택을 냈다. 그의 탁월한 미적 감각은 재료와 니스의 선택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의 완전한 균형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런 점이 음색의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과 결합되어 독특한 명기를 탄생시켰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울림의 아마티의 작품에 비하여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는 더욱 큰 음량과 빛나고 예리한 음색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이미 생전부터 명기라는 이름이 높았지만, 82년에 비오티가 파리 연주에서 이 악기를 사용하면서부터 더욱 유명해졌다.

현재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은 수억대의 고가로 호가되고 있다. 그는 평생 동안 약 1,100여 개의 악기를 제작하였다고 하며 현존하는 것은 바이올린이 약 600, 비올라가 12, 첼로가 50, 기타와 하프가 각각 3, 비올라 다모레가 1개 정도이다.

그의 바이올린은 명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애호되고 있으며, 이런 것들은 이전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파가니니’ ‘뷔탄’ ‘비오티’ ‘슈브와’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음악속의 공학] 스트라디바리와 공장제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피아노와 함께 서양 음악에서 가장 보편적인 악기로 여겨지고있어 흔히 피아노는 ‘악기의 왕’, 바이올린은 ‘악기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이올린은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음색뿐만 아니라 형태도 인간의 몸, 특히 여성의 몸매를 본뜬 것이라 하여 일반 대중들로부터 절대적사랑을 받고 있으며, 악기음향학 연구자에게도 제일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바이올린은 연주회장에서의 인기 뿐만 아니라 가격면에서도 다른 악기와비교할 수가 없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 같은 악기는 가격이 수백만달러에 이르며 악기인 동시에 골동품 내지 문화재로 대접 받고 있다.

흔히들 ‘스트라디바리의 비밀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또는 ‘스트라디바리의 비밀은 악기 표면의 칠(varnish)에 있다’고 하는데, 오늘의 시점에서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1930년대 이래 많은 악기음향학 학자들이 바이올린에 대해 연구한 결과 유명한 이탈리아 고악기의 특성이 모두 밝혀졌으며 비슷하게 아름다운 음색을 가진 악기를 복제할수도 있게 되었다.

필자의 친구인 독일의 뒨발트 박사는 바이올린의 음향학으로 박사 학위를받은 후에 몇 십년 동안 독일 그레펠트 교외의 전원주택에 살면서 의뢰인이 가져온 싸구려 악기의 음색을 의뢰인이 원하는 어떤 좋은 이탈리아 고악기의 음색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 주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바이올린의 몸체는 어떤 특정 주파수에서 특정의 진동 형태를 가지는데,그는 단순히 악기의 형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파수에 따른 이 특정진동 양식을 고악기와 일치시키거나, 근접시키는 방법으로 음색의 복제를시도해 왔으며 이는 이론과 경험이 모두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뒨발트 박사가 음향학적으로 같은 음색의 스트라디바리를 복제했다하더라도 복제 악기의 가격이 수백만 달러가 될 수는 없다. 복제된 악기는골동품이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성굉모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음향공학)

한국일보   2003-04-22 19:13:19

 

1677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선 라이스'
 

스트라디바리우스

  명기 '선라이스'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손수 장식한 소수의 바이올린 중 하나이다. 소용돌이 무늬와 옆판에 장시간 당호 모양, 그리고 겉판에 붙 인 독특한 상감을 보면 이것은 틀림없이 장식을 붙인 악기로서 최초의 작품이다.
 

  원작의 상표에는 1677년의 연호와 그의 스승 니콜라아마키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만, 그는 벌서 약 12년 전에 그 공방에서 수업을 끝낸 33세의 전수자였다 이것은 그의 '아마티 시대'라고 불리는 양식의 작품이며, 이 시기 특유의 우 아함과 세련미를 겸비하고 있다. 특히 머리부분은 스트라디바리의 작품 중에 서도 가장 잘 조화되고 가장 고상한 품위가 충만한 것들이다.
 

  바이올린 전체는 지극히 정성들여 만들어졌으며 그 점이 바로 특별히 장식 되어 완성된 작품이란 것을 말해준다. 아마도 그가 특별 주문을 받아서 제작 한 것이거나, 누군가 동시대의 유력한 인사에게 헌정한 것, 아니면 자기 솜씨 의 정밀함과 완벽한 정확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만든 것, 아마 이중 어느 하나일 것이다. 1895년 6월 5일자 파리의 <음악세계>라는 잡지 기사에 의하 면, 스트라디바리는 전수자 자격 취득을 위하여 이 악기를 제작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근거 있는 추정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 바이올린의 대대의 소유자들에 대해서는 현재 상태로는 다음에 열거하는 사람들의 사실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알라르드의 제자 그로스잔은 1863년경부터 이 악기를 소유하였다. 그는 알 라르드의 의부였던 J.B. 뷔용으로부터 이것을 샀다. 그로스잔은 당시 평판 이 좋았던 음악 살롱을 열었으며 현악 4중주의 연주회로 많은 명사들을 모았 다.
 

  이 명기는 그후 1872년경 안트와프의 저명한 수집가 빌못트의 손에 들어갔 다. 그는 이탈리아의 명장들이 만든 바이올린에 강한 정열을 쏟았다. 스트 라디바리와 델제스의 가장 아름다운 수집품을 소유하였고, 이것들을 끊임없 이 사고 팔고 하였지만 이 작품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1893년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를 찾았을 때까지는 이윽고 그이 상속인들이 이 악기를 팔려고 내 놓았다. 이것을 규스타브 베 르나르델이 1894년에 매입하여 다음해인 1895년에 프조 공업의 중역 피립 보브 에에게 팔았다.
 

  그리하여 1914년에 필립 보브에가 사망한 후 이번에는 아들 잔이 소유자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잔 보브에는 대전 중 입은 중상으로 한쪽 팔이 부 자연스러워 이것을 팔기로 결심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스트라디바리는 크레모나의 명장의 손으로 된 가장 아 름다운 두부를 갖고 있다. 보존 상태는 완벽하여 어느 모서리 하나 마모되지 않았다. 목 부위도 원작 그대로이고, 현악기 제작 용어로 이른바 부판에 의 하여 받침 나무 부근에서 들어 올려져 있다. 이것은 넓은 음정을 얻기 위하여 윗줄 받침에서 아랫줄 받침까지의 길이를 충분히 크게 잡을 필요가 있기 때문 이었다.
 

  소용돌이 무늬에는 단풍나무가 사용되었으며, 니스나 장식 모양을 비춰 보아 도 단풍나무 특유의 무늬 모양이 선명하게 보인다. 두판은 한 매의 판으로 되 었고, 사진에서 보아도 알수 있듯이 대단히 훌륭하다. 사용한 단풍나무에는 화 려하고 여유있는 줄 무늬 모양이 있고, 이것이 참으로 변화 무쌍한 광택을 띤다 니스의 호박색을 띤 황금색 위에 광채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없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단히 폭이 큰 흑색의 상감이 있고, 원과 마름 모 모양의 상아가 번갈아 줄지어 있다.
 

  옆판은 다섯 개 부분, 즉 상부의 두개 부분, 좌우 두개의 C형, 하부의 단 하 나의 C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측의 다른 부부노가 달리 뒤집어서 붙어 있 다. 이 C형은 다른 부분과 달리 뒤집어서 붙어 있다. 처음부터 이런 모양으로 구부러져 버렸기 때문에 새삼스레 이것을 똑바로 펼 형편이 아니어서 그 방향 그대로 붙였는지, 또는 안쪽을 향하여 감추고 싶었던 작은 흠이라도 있있는지 여하튼 이것은 수수께끼다.
 

  옆판을 장식한 검은 당초 모양을 보노라면, 이렇게 작은 폭위에 이렇게 정연 하고 예술적인 모양을 그릴 수 있었던 빼어나고 정교한 솜씨에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다시 그 아래에는 재목의 아름다운 줄무늬 모양이 비치고, 옆판 중 하 나가 뒤집혀 붙여진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스트라디바리가 굳이 다른 제목을 쓰려 고 하지 않았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뒤판과 옆판을 위하여 선택한 제목 은 그 정도로 긴밀한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마디 더 하자면 검은 당초 문양 은 3세기를 지난 지금에도 처음 그렸을 때와 똑같이 싱싱하다.
 

  겉판은 한 매의 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진기한 일이다. 전체적으로 아름다 운 물결 모양이 흐르고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그 모양이 소용돌이처럼 휘감김 곳도 있다. 또 이 바이올린은 좌우 어느쪽에서나 켤 수 있었던 것 같다. 턱이 닿은 곳 의 니스가 벗겨진 정도는 텔피스 양쪽 모두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트디디바는 는 이 겉판의 재료로 왼쪽 끝은 결이 많이 겹친 것을, 오른 쪽에는 나뭇결이 넓어진 왜전 나무를 사요하였 다. 겉판의 네 귀에서도 흠은 전연 볼 수 없다. 이렇게 보존이 잘 되고 낡은 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대대로 이어온 소유자들이 모두 이 악가 가 지닌 높은 예술성을 알고 있었으며, 종교적인 외경심 을 가지고 취그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겉판에는 뒤판과 같은 장식 상감이 있다. f자 구멍은 가늘고 대담하게 잘려져 있어 아름다운 선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한가운데쯤의 오른쪽 모서리 방향으로 아 주 조금 넓어졌기는 하나 왼쪽의 f자 구멍은 흠 없는 상태 그대로다.
 

  '선라이스'의 겉모양은 동체가 훌쭉하고 지극히 우아하며, 융기촵윤곽촵f자구멍촵 등 전제의 선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니스는 호박색을 띤 황금색이며 그 아 래로 단풍나무의 겉과 왜전나무의 섬유가 비친다. 동체의 길이는 355mm이며 이것은 보통 치수와 변함이 없다.
 

  음색은 대단히 강력하며 또한 수정처럼 투명하고, 네 개의 현 모두가 균질하다. 가 끔 불유쾌한 소리를 내는 D선에 관해서는 특히 주목하게 된 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악기는 제일급 바이올린이라고 할 수 있다.

1701 두쉬킨(Dushkin)

새로운 세기가 열릴 때 만들어진 매력적인 이 악기는 메이플로 만들어진 뒤판 중앙에 옹이가 선명하게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의 작품 중에서는 간혹 이처럼 특이한 메이플이 발견된다.

헤르베르트 굿카인드는 자신의 저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 도해>에서 사무엘 두쉬킨에 대해 언급하며 이 악기를 '두쉬킨'이라 기록했다. 두쉬킨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와
친밀하게 지내며 활동했던 인물이다.

힐즈는 1929년에 이 악기를 런던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버트 샌들러에게 팔았다. 1946년에는 필드가 루돌프 부를리처사로부터 이를 구입함으로써 이 악기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후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알란 자페가 1988년 필라델피아의울리엄 뫼니크 & 선사로부터 이 악기를 구입했으며 그는 1994년에 이것을 바인 앤 푸시에 위탁했다.

결국 이 바이올린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는 밀워키의 안젤라 존스톤이 소유하게 되었다. '두쉬킨'은 '스트라디바리 협회'가 특별히 재능있는 연주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관리하는 악기들 중 하나로,
한때 시카고 태생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상미가 사용했다.

-<Strad> 중에서-

 

 

1701년에 크레모나에서 제작된 스트라디바리 '크로이처`

 

 

>>감정가는 무려 60억 원<<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리니스트 우토 우기는 194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생했다. 네 살 때부터 아버지의 친구이자, 밀라노 라스칼라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제 1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리오단테 코지에게 바이올린의 기초를 배웠다.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이미 일곱 살 때에 밀라노의 리리코 극장에서 바흐의 파르티타 d단조와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등을 레퍼토리로 하는 공개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다. 이후 당대의 바이올린 명인들인 조르주 에네스쿠와 예후디 메뉴인을 사사했다.

우토 우기는 15세가 되던 1959년부터 유럽의 주요 공연장에서 순회 연주회를 갖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국립 방송 교향악단을 포함하는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우토 우기가 세계 순회 연주를 통해 협연했던 메이저 오케스트라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영국의 5대 교향악단 등이다. 그리고 마에스트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콜린 데이비스, 하이팅크, 바비롤리, 시노폴리, 로스트로포비치, 비쉬코프, 키릴 콘드라신, 자발리쉬, 정명훈, 쿠르트 마주어, 주빈 메타 등의 지휘자들이 그와 호흡을 맞추었다.
우토 우기는 1975년, 소련 연주여행을 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일로 인해 이
듬해인 76년 재차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는 연주회장에 인파가 너무 몰려서 청중이 다 들어갈 수가 없게 되자, 붉은 광장에서 연주를 하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우토 우기는 파가니니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의 위대한 전통을 잇고있는 연주자이다. 이탈리아의 음악, 문화 전통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매면 참가하면서 한편으로는 '베니스에 바치는 존경(Homage to Venice)'이라는 이름의 음악 축제를 고국에 창설하기도 했다. 또한 산타 체칠리아 비르투오지 오케스트라(I Virtuosi di santa cecilia)의 지휘를 맡는 등 지휘자와 작곡가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 음반사인 BMG의 RCA 레이블과 에르미타쥬 레이블에서 음반 녹음을 하고 있는 그는 볼프강 자발리쉬와 함께 한 베토벤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비발디 '사계' 등의 음반을 내놓았다. 또한 현재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예후디 메뉴인과 주빈 메타 등은 우토 우기와 매우 뜻이 잘 맞는 지휘자들이다.
바이올린은 1774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카리플로(Cariplo)'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따뜻하고 깊이 있는 음색을 가진 악기로 현존하는 과르네리 종류 가운데 최상급의 것이다. 또한 1701년에 크레모나에서 제작된 스트라디바리 '크로이처'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바이올린은 베토벤이 '크로이처 소나타'를 써서 헌정하기도 했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로돌포 크로이처가 사용하던 것이다. 우토 우기는 현재 베네치아에 살면서 로마의 산타 레리나 음악원의 교수, 파가니니 콩쿠르의 심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1704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Antonio Stradivari, 

 

 스트라디바리우스


추운 겨울 저녁. 영국 런던 시내의 한 악기점을
남루하게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의 옆구리에는 헌 바이올린이 들려져 있었다.


“무얼 찾으십니까?”

주인이 묻자 그는

“저는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제발 이 바이올린을 팔 수 없을까요?
저는 무엇을 먹어야 하니까요. 얼마라도 좋습니다. 그냥 사 주세요.”

그래서 악기점 주인 벤츠씨는 5달러를 주고 그 바이올린을 샀다.
벤츠씨는 그 사람이 떠난후 5달러를 주고 산 바이올린을 무심코 켜 보았다.
손잡이 활을 줄에 대고 한 번 당겨보니 놀라운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랄 정도로 풍부한 음색과 선율이었다.

벤츠씨는 급히 환한 불을 켜고 바이올린을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먼지 투성이의 바이올린 속을 들여다 보고 그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엔 기절할 만한 글씨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Antonio Stradivari, 1704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704! 년 제작)
악기점 주인 벤츠씨는 그 바이올린이 행방불명되어 1~2백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찾으려고 애썼던 거장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임을 알게 되었다.
악기점 주인은 얼른 밖으로 나가 바이올린을 판 사람을 찾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배가 고파서 밥 몇 끼니 먹을 수 있는 값 5달러에 팔아 버린 바이올린은
무려 10만달러 짜리였던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이야기다.
그 남루한 바이올린 주인이 바이올린의 가격을 제대로 알아
정가격에 팔 수 있었다면
그는 이렇듯 비참한 생활을 끝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 안타까움 만큼이나 깊이 생각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나 또한 그 바이올린 주인처럼 10만달러보다
더 귀중한 나의 삶을 단지 먹고 살겠다는 이유만으로
혹시 5달러짜리로 취급하고 있지나 않은지.

 

 

  1709 킹 맥시밀리안 (King Maximilian)

1737년에 스트라디바리가 세상을 떠나자 '킹 맥시밀리안'은 파올로 스트라디바리는 펙박스 안에 'PS'란 라벨을 붙였는데, 이 악기는 오리지널 넥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스트라디바리로, 이 라벨을
지금도 확인해볼 수가 있다. '킹 맥시밀리안'의 뒤판은 스트라디바리가 이 시기에 즐겨 사용했던 특별히 아름다운 나무로 만들어졌다.

1806년에 이 악기를 구입한 바바리아의 킹 맥시밀리안 조셉은 스크롤 뒷부분에 작은 두 개의 원을 표시하고 뒤판 위 끝 부분에 모노그램(이름 첫 글자를 도안화하여 짜맞춘 글자)을 만들어 자신의
소유임을 밝혔다(1702년산 같은 이름의 스트라디바리에도 그의 브랜드 표식이 있다.)

1827에는 하노버의 베른하르트 하우즈만이 '킹 맥시밀리안'을 구입했다. 이후의 공식 소유자는 1927년에 이 악기를 구입한 하노버의 프리츠 하르트만이었으나 소유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베쿠젠의 쿠흐네에게로 넘어갔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리더인 미셀 슈발베가 수년간 연주했던 '킹 맥시미리안'은 최근, 어느 유명 개인 소장가의 소장품이 되었다.

-<Strad> 중에서-

 

 

 1709년 산 스트라디바리 첼로 '마르케비치'

이 근사한 첼로는 스트라디바리의 가장 왕성한 활동 기간중인 65세 때 제작되었다. 1907년에서 1726년 사이의 패턴인 'Forma B' 모델로 이루어진 초기 작품으로 장인의 기술적인 면과 악기 재료 선택에 있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업퍼 바우트와 로우어 바우트의 궁형은 대담하게 큰 원을 그리며 C-바우트 의 곡선부로 아름답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미려하게 마감질 된 엣지와 우아한 퍼플링은 앞판의 그레인과 함께 외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하고 있다.

알프레드 힐이 이 첼로를 알게 된 것은 유명한 러시아 클렉터인 바론 크누프를 통해서이다. 1899년 러시아를 여행하게 된 이들은 악기 소유자인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마르케비치를 만난다. 차르 통치하의 의원이었던 안드레이 마르케비치는 열렬한 아마추어 첼리스트로 이 악기에 관해서는 전 소유자가 가운트 델피토였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이 악기를 내 놓았었는데 파리의 카레사의 손을 거쳐 다시 몽셰 레떼오에게 팔린다. 다시 카레사에게로 돌아온 이 악기는 미국인 그레이스 브로드벤터에게, 다시 1938년 뉴욕의 부를리처에게 팔린다.

흥미롭게도 이 첼로는 1962년에 마르케비치 가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작곡가 이고르 마르케비치의 동생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첼리스트 드미트리가 이것을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 이 악기는 런던의 콜렉터를 통해 Fridart 재단에 팔려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대여되고 있다.
 

 

  1710 비외탕, 하우저 (Vieuxtemps, Hauser)

'비외탕, 하우저'는 스트라디바리가 고안하여 말년까지 그 방식을 고수한 큰 형태의 바이올린이다.
그보다 앞선 활동한 크레모나의 장인들은 이런 비율의 바이올린 제작을 시도한 바 없었으므로 스트라디바리의 이 '그랜드 패턴'은 그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840년대에 파리에 있는 뷔욤의 작업장에서 일했던 악기 제작자 게오르그 게뮌더는 이 바이올린을 '엑스 뷔에탕, 하우저'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악기의 소유자가 비외탕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크로이처의 제자로 비르투오조이며 작곡가였던 미스카 하우저도 이 바이올린을 소유했다. 그가 사망하자 이것은 동생인 이시도르에게 넘어갔다.

1889년, 게뮌더는 이시도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악기의 G현 톤에 비견될만한 다른 진품 스트라디바리를 찾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Strad> 중에서-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 ‘깁슨’

명품 바이올린의 기구한 유랑생활

스트라디바리우스

 수차례 실종·도난 겪은 뒤 51년 만에 햇빛

1999년 개봉된 영화 ‘레드 바이올린’은 한 명기(名器) 바이올린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그린 영화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레드 바이올린’은 알프스의 수도원, 영국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문화혁명기 중국을 거치는 험로를 겪는다.

이 ‘레드 바이올린’과 흡사한 실화가 있다. 최근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33)이 400만 달러(약 52억원)에 구입한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 ‘깁슨’의 행로는 영화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더욱 공교롭게도 조슈아 벨은 ‘레드 바이올린’의 연주를 담당했던 바이올리니스트다.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은 과르네리와 함께 세계 최고가를 형성하는 바이올린이다. ‘깁슨’은 이 장인의 솜씨가 최절정에 이른 시점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깁슨’이라는 이름은 첫번째 소유주였던 앨프레드 깁슨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댈러스 모닝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깁슨은 두 번이나 도난당하고 50년간 실종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근에는 법정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최근 400만불에 팔려 화제

깁슨은 몇 사람을 거쳐 20세기 초 폴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슬라우 후버만의 소유가 되었다. 후버만은 1919년 빈에서 악기를 도난당한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악기 중개상의 손에 들어간 깁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36년 후버만은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왔다가 카네기홀 대기실에서 다시 바이올린을 분실하고 말았다. 당시 영국의 로이드 보험사는 후버만에게 보험료만 3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 후 50년간 깁슨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뉴욕 뒷골목 클럽의 무명 연주자가 이 명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만 떠돌았다.

깁슨이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도난당한 지 정확히 51년 후인 1987년. 마르셀 홀이라는 노파가 깁슨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떠돌이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안 알트만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1985년 감옥에서 사망한 남편이 그녀에게 깁슨을 넘겨주며 평생 묻어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1936년 알트만은 한 집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카네기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시가 하나로 경비원을 꾀어 홀 안에 들어갔다가 비어 있는 분장실에서 깁슨을 발견하고 이 악기를 코트 속에 숨겨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희대의 명기를 훔쳤는데도 알트만은 별다른 부나 명성을 얻지 못한 채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악기에 대한 일차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던 로이드 보험사는 악기 가격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6만 달러를 지불하고 홀에게서 깁슨을 인수했다. 그러자 알트만의 딸이 이 금액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부인과 딸 사이에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다. 10년이나 끈 이 공방은 결국 홀의 승소로 끝났다. 그러나 긴 법정투쟁 동안 26만 달러를 거의 허비한 홀은 소송이 끝난 직후 무일푼인 채 세상을 떠났다. ‘레드 바이올린’의 소유자들이 모두 불행을 맞았던 것처럼 깁슨 역시 소유주들에게 시련만 안겨준 셈이다. 한편 깁슨은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로이드 보험사가 깁슨을 100만 달러 가격으로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히 연주해 본 이 악기의 음색에 반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올해 4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주고 깁슨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명품 바이올린은 400년간 진화하고 다시 400년간 퇴화한다’는 속설이 있다. 긴 방랑 끝에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난 깁슨이 그동안 맺힌 한(?)을 풀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도둑맞은1716년 "Colossus크로이소스(아폴로 신(神)의 거상(巨像))"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안키와 스트라 디바리 "Colossus"

스트라디바리우스


그림의 바이올린이 지금은 도둑 맞은 바이올린이랍니다.

Luigi Alberto Bianchi가 11년간 소장하다가

1998년 11월 3일 이태리에서 도둑 맞았다고 하는군요.

보통의 바이올린 보다도 좀 큰 사이즈여서

"Colossus(아폴로 신(神)의 거상(巨像))"라 알려졌다 합니다.

1716년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에 의해 제작되었고

Bianchi는 1987년에 구입 했다는군요.

17 , 18세기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은 현재까지 약 600여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최고 100억원대에 거래될 만큼 희소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저 악기를 보신분은

다음 전화번호로 연락바랍니다.
Magg. Musella,
The Italian Carabinieri
in Rome at (39)-06.58.56.31

 

 

 

1727 '뒤퐁'(Dupont)

1720년대 후반,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은 그 양식이나 재료, 바니쉬에 있어 보다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1727년에는 1710년대의 불꽃과도 같은 화려한 메이플이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으나 '뒤퐁'의 경우와, '뒤퐁'과 같은 해에 만들어진 '비너스'의 경우는 뒤판이 꽃같이 붉고 갈색의 바니쉬가 입혀져 있는 최고의 품질인 멋진 메이플로 만들어졌다.

'뒤퐁'은 대부분 프랑스에 머물러 있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소유자는 제너럴 뒤퐁이다.이어 파리의 모렐이 소유하게 되는 1933년까지는 누가 소장하고 있었는지가 밝혀져 있지 않다.

이후 '뒤퐁'은 파리의 로느와 백작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는 이 악기를 1933년까지 지니고 있었다. 로느와는 이 바이올린을 벨기에의 아르투르 그뤼미오에게 빌려주었는데 그뤼미오는 오랫동안 이 악기로 수많은 연주회와 녹음을 했다.

1993년에 런던의 바이올린 딜러인 피터 비둘프가 파리에서 이 악기를 구입한 뒤 얼마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건너간 이 악기는 바인 앤 푸시를 통해 현 소유자인 파트리시아 코제레프스키와 리차드 보고몰니에게 팔렸다.

-<Strad> 중에서-

 

 

 1727년 '엑스 그뤼미요'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

 

[클래식] 제니퍼 고 국내 첫 독주회

스트라디바리우스

199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한 제니퍼 고(26)는 미국 일리노이주 태생의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오벌린 음대에서 영문학과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메노티.닐센의 바이올린 협주곡, 바흐.바르트.레거의 작품을 수록한'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샤콘'을 녹음했다. 미국과 유럽 무대에서 독주자로 활동 중이다.

피아니스트 고중원(단국대 교수)의 조카딸이기도 한 그가 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입상자 초청 음악회에 출연한 후 8년만에 서울 무대에 선다. 내한 독주회로는 데뷔 공연이다.

베토벤 소나타 제1번 D장조, 슈베르트.슈만의 환상곡,엘리엇 카터의'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찬미'등. 1727년산 '엑스 그뤼미요'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피아노 레이코 우치다. 3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2002.08.01

 

 

 '톰 테일러(Tom Taylor)' 1732

 

■ 조슈아  벨    (Josha Bell, 1967-  ) 미국


      인디애나주(州) 블루밍턴에서 태어나 5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12세 때는 조지프 긴골드(Joseph Gingold)와 이반 갤러미안(Ivan Galamian)에게 교습을 받았다. 뛰어난 실력을 보이던 그는 14세 때 이미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관현악단과의 협연으로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얼마 후에는 카네기홀에서도 연주를 했다.

인디애나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이후 섬세하고 사려 깊은 연주자로서, 영감에 가득 찬 성숙한 아티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뉴욕필하모닉, 보스턴교향악단, 클리블랜드관현악단, 로스앤젤레스필하모니관현악단, 런던교향악단 등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했다.

그의 무대를 빛내준 지휘자로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hkenazy), 샤를 뒤투아(Charles Dutoit), 존 엘리엇 가드너(John Eliot Gardiner),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Christoph von Dohnanyi),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진귀한 바이올린에 얽힌 300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드 바이올린 The Red Violin》의 음악고문이자 보이지 않는 연주자로 활약했는데, 이 영화는 프랑수아 지라르(Francois Girard)가 감독하고 존 코릴리아노(John Corigliano)가 음악을 맡았으며, 코릴리아노가 그를 위해 쓴 샤콘이 삽입되어 있다.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막스 브루흐(Max Bruch), 표트르 차이코프스키(Pyotr Chaikovskii),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의 협주곡 등 기존의 주류 레퍼토리뿐 아니라 색다른 음악들에도 관심을 보이는 그는 널리 알려진 영국 작곡가 니콜라스 모(Nicholas Maw)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세계 최초로 연주하기도 했으며, 리코딩 작업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일명 '톰 테일러(Tom Taylor)'라 부르는 1732년산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다.
 

http://www.sonyclassical.com/videos/89358/089358_MariaFull.ram

MariaFull.

 

 

 

 

1734년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

 

이 물건은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으니까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베노 라비노프에게
어떤 신사가 오더니 바이올린을 한 대 선물하겠다고 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보니 놀랍게도
1734년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명품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왜 이걸 제게 선물하시려는 거지요?”
“이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이 물건은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으니까요.
단, 제 이름은 아무에게도 밝히지 말아 주십시오.”

 

루이기 타리시오라는 바이올린 수집가는 246개의 바이올린을 남겼는데,
가장 비싼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은 허름한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가족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많은 명품 바이올린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안토니오의 작품은 특히 유명해서 탐을 내는 사람이 많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음이 오묘한 것은
와니스(varnish)가 특이한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아직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일설에는 와니스에 키토산이 든 곤충 날개를 섞었다고도 한다.

 

 

 

 

1734 '빌르모뜨'(Willemotte)

1730년대 초반에 스트라디바리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볼드'(bold)를 유행시켰다. 이 타입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빌르모뜨'는 큰 아칭, 중량감 있는 에지, 만곡이 큰 사운드 홀의 아래
윙 등 톤에서 뿐 아니라 외관에서도 남성적인 건장미를 느끼게 한다.

샤를르 빌르모뜨가 악기 평가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전문 감정가였다는 사실은 알프레드 힐의 한 서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빌르모뜨는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나 연주가로서는 활동하지
않았다. 1734년산 스트라디바리를 파리의 '강 & 베르나르델'로부터 1886년에 구입한 그는, 그 당시 이미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을 5개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

이후 여러 딜러와 음악가들의 손을 거친 '빌르모뜨'는 1983년에 바인 앤 푸시를 통해 미국인 의사 앨버트 오버하우저에게 팔렸으며, 오버하우저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이 사위에게
이 악기를 연주케 했다. 5년 뒤 이 바이올린은 바인 앤 푸시에 위탁되어 현 소유자인 뉴욕의 마크 프타슨에게로 넘어갔다.

-<Strad> 중에서-

 

 

 

 

1736 '문츠'(Muntz)

스트라디바리가 92세 되던 해에 만든 '문츠'는 그의 말기에 제작된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도 최고라고 할 만한 악기다.

'문츠'는 제작 당시부터 현재에 이른 경로를 정확히 밝힐 수 없는 몇 안 되는 바이올린 중 하나다. 스트라디바리의 연장과 얼마 남지 않은 악기들은 1775년, 아들 파올로 스트라디바리에 의해 최고의 바이올린 수집가이며 감정가인 살라부에의 코지오 백작에게 팔렸다.

코지오 백작은 스트라디바리가 바이올린의 옆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나무 몰드에 대해 '1736년산 바이올린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기록했다. 이 글은 크레모나에 있는 스트라디바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코지오 백작에게서 이 악기를 구입한 루이지 타리시오는 이를
1831년 파리의 강(Gand)에게 팔았고, 강 사는 이를 1862년 앤트워프의 수집가 빌르모뜨에게 팔았다.

이어 문츠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1902에 출판된 힐즈의 <스트라디바리>에는 이 바이올린의 이름이 '문츠'라고 기록돼 있다.
최근, 이 보물은 일본 음악 재단의 소유가 되었다.

-<Strad> 중에서-

 

 

 

 

1772 '주피터'(Jupiter)

'주피터'는 큰 형태로 만들어진 악기들 중 매우 잘 보존된 악기다.
뒤판은 두쪽의 메이플로 이루어졌으며 모양도 예쁘다.

'주피터'라는 이름은 존 하르트로부터 이 악기를 구입한 영국의 수집가 제임스 고딩이 지은 것이다.

1857년, 뷔욤이 잔제 자작을 대동하고 런던의 고딩 컬렉션 경매장을 찾았는데 경매 다음날 잔제는 이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1886년에는 캉포젤리스 공작이 이것을 사들였으며 이후로 몇몇 사람의 손을 거친 뒤 1905년에 아마추어 첼리스트인 핍스의 부인이 힐스로부터 이 바이올린을 구입해서 남편에게 선물했다. 핍스는 같은 해에 스트라디바리 첼로 '뒤포르'를 구입하기도 했다.

'주피터'는 오랫동안 핍스 가에 머무르다가 1971년에 캘리포니아의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며수집가인 에프레임 잉글먼에게 팔렸으며 몇 년 전에는 일본의 하야시바라 재단에 판매되었다.

하야시바라 재단은 이 악기를 미도리와 같은 자국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입했다.

-<Strad> 중에서-

 

 

 

 

1731, ex Garcin

Antonio Stradivari Cremona, 1731, ex Garcin 스트라디바리의 현재 시가는 1밀리온에서 7밀리온(13억에서 100억)까지 이르는 것이있다. 현존하는 바이올린으로서는 최고의 명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