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차별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되는가?

어처구니2007.04.20
조회260
< 펌글 주소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pipaltree&folder=1&list_id=5502543


( 누구나 공감하는 글이기에 펌했습니다. 위의 주소를 복사해서 들어가시면..
글 보기가 더 편하실겁니다.)

자꾸 공산폐미가 물타기시도해서.. 방해공작을 하기에.. 또한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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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계셨죠

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 하고 불렀는데 어쩐지 오늘 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무슨 걱정 있나요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오늘 있었나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노래 ‘아빠 힘내세요’ 의 가사이다.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이 노래는 지난 9월 초 모 카드회사 CF의 배경음악으로 방송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동요로서는 드물게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탤런트 김희애씨가 ‘외로워도 슬퍼도’ 라는 노래를 부르며 지친 남편을 위로하는 보험회사 CF 역시 ‘2004 광고대상’ 을 수상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사회상을 근거로 지난 12월 15일 언론은 “희망을 갈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겨냥한 ‘희망 마케팅’ 이 성공을 거두었다.” 고 보도한 바 있다. (동아일보. 2004-12-15. 돌아본 2004 문화계…문화계 키워드<下>)

이처럼 경기 침체로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우리네 가장들의 지친 모습을 쉽게 떠올린다. 얼마 전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낸 뒤 외롭게 살아가던 ‘기러기 아빠’ 가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다는 언론 보도는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남성 가장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고통과 중압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아일보. 2004-12-10. 50대 기러기 아빠 또 ‘슬픈 선택’… 사업실패 비관 자살)

그러나 단순히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동정하고 위로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갈수록 늘고 있고 사회 곳곳에서 양성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가족 부양의 책임을 도맡으며 자신을 희생하는 남성 가장들의 모습, 여기서 우리는 남성을 옥죄는 ‘가부장적 남성차별’ 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가부장적 남성차별’ 과 ‘남성 역(逆)성차별’ 을 혼동하지 말아야




대다수 사람들은 ‘남성에 대한 성차별’ 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남성 역(성)차별을 떠올린다.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이란 ‘부당하게 차별을 당해온 쪽의 차별을 막기 위한 제도나 방침, 행동 따위가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이어서 도리어 반대편이 차별을 당하게 되는 경우’ 를 말한다. 따라서 남성 역차별이란 ‘여성이 받아온 차별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당하게 되는 차별, 또는 불이익’ 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한때 심각한 논란을 일으켰던 여성할당제가 남성 역차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 남녀간에 역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남녀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전제하에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역차별 운운하는 이들에게 묻자. 정말로 현재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의 가치를 이뤘다고 생각하는가. (…) 이렇게 남녀차별이 극심한데도 우리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녀역차별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등장한 지난 8월 언론에 게재된 시론의 한 토막이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역차별을 운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여성이 겪어온 성차별을 모두 개선한 뒤에 남성이 겪는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신문. 2004-08-27. [시론] 첫 여성 대법관의 탄생)

물론 여성할당제와 같은 남성 역차별만을 놓고 본다면 이러한 글쓴이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이 겪고 있는 성차별이 과연 남성 역차별뿐인가? 그리고 글쓴이의 주장대로 남성이 겪고 있는 수많은 성차별은 여성이 겪어온 성차별보다 부차적인 문제인가? 여기서 우리는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가부장제 하에서의 남녀관계를 논할 때,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냉정한 시각에서 살펴보았을 때,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 편향적인 시각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왜 똑같이 사회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여성보다 무거운 가족 부양의 책임을 져야하는가? 왜 남성은 여성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해야만 하는가? 왜 남녀가 만났을 때 데이트 비용과 같은 소비용을 남성이 부담해야 하는가? 왜 병역과 같은 의무를 남성만이 부담해야 하는가? 왜 남성은 자신의 감정(특히 눈물)을 숨긴 채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가?”




이 같은 의문에 대해 기존의 여성주의만으로는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즉 남성 가장에게 지워지는 가족 부양의 책임, 남성에 대한 각종 성별 고정관념, 그리고 남성 징병제 하에서의 병역과 같은 것은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지워온 부당한 굴레이며, 이는 남성 역시 여성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남성 역차별과 분명히 구별된다. 첫째, 남성 역차별과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그 주체가 다르다. 모두 알다시피 남성 역차별을 야기한 주체는 페미니즘, 즉 여성주의 운동이다. 우리 사회에 여성주의 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이 1950년대였고 그것이 본격화 된 게 80년대 초반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남성 역차별 사례의 대부분은 야기된 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에 반해 앞서 소개한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대부분 페미니즘이 아닌 ‘가부장제’ 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이 땅에 페미니즘이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성인 남성들은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 처자식을 부양해야 했고, 예외 없이 군역, 또는 요역과 같은 국가적 의무를 부담해야 했다. 성인 남성의 가족부양 책임, 역(役)의 의무 등과 같은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남성 역차별과는 달리, 가부장제와 그 운명을 같이하며 수천 년 동안 남성들을 억압해 온 것이다.

둘째, ‘여성차별 개선’ 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남성 역차별과는 달리,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무조건적인 차별이다. 한 예로 여성할당제 같은 경우, 물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이는 ‘고용 불평등 개선’ 이라는 분명한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이와 달리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지금껏 관습적으로 행해져 온 것일 뿐, 냉정히 따져보면 합리적인 차별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왜 남편이 아내보다 경제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가?”, 혹은 “왜 남성만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이 궁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대다수 사람들은 가부장제 하에서의 남성의 굴레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여왔을 뿐, 단 한번도 이러한 굴레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고, 이런 풍토 속에서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타당한 근거 없이 남성들을 옥죄어 온 것이다.




여성차별이 해소되면 가부장적 남성차별도 해소된다?




혹자는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러한 사회 현상은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개선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다면 그 같은 남성차별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과연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여성차별의 부산물일 뿐인가? 즉 여성들이 자기들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인가? 이에 대해 미국의 남성운동가 워렌 패럴(Warren Farrell) 박사와『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의 저자 에스테 빌라 여사는 각자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페미니즘 덕분에 여자는 강해지고 독립적이 되었다. 그러나 여자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이상형은 페미니즘과는 상관이 없다. “웨딩마치가 울리는 날, 신랑의 수입이 당신의 수입보다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신부에게 물었을 때, 한결같이 “절대 그렇지 않다” 고 대답했다. 여자는 배우자의 수입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많을 거라고 내심 기대한다. 만약 그런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되면, 이미 깊은 관계를 맺은 남자라도, 혹은 동거까지 한 남자라도 결혼하지 않는다. -워렌 패럴.『남자 만세』-




사실상 에드워드 앨비로부터 재클린 수단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문학은 대부분, 자신이 선택한 여자를 신분에 맞게 부양할 수 없을 때 그는 그래도 남자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존립한다. 그 경우 물론 그는 남자가 아니다. -에스테 빌라.『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다시 말해 미국처럼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고 그들이 자신만의 경제력을 갖추게 된 사회에서도, 자신보다 우월하거나 최소한 똑같은 지위에 있는 남성과 결혼하려는 여성들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언론에 실린 영화평론을 읽게 되었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내 남자 친구는 왕자님’ 의 여주인공 페이지에 대해, 글쓴이는 사랑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그녀를 ‘새로운 21세기형 신데렐라’ 라 부르며 극찬했다. (한겨레. 2004-12-02.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의 페이지) 최근 ‘대장금’, ‘내 남자의 로맨스’ 와 같은 몇몇 국내 드라마와 영화의 여주인공들도 이와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풀 하우스’, ‘파리의 연인’ 등에 등장하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신데렐라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위해 투자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그려낸 작품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이 과연 가부장적 남성차별을 개선하는데 얼마나 공헌을 하였는가? 영화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남녀관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여성들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작품 줄거리 속의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남성은 여성보다 강해야 한다. (혹은 성공해야 한다)’ 는 성별 고정관념은 드라마 속 여성상의 변화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인기를 모은 드라마 몇 편을 살펴보자. 지난 2000년 평균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 MBC 미니시리즈 ‘진실’ 의 여주인공 이자영(최지우 분)은 명문대학 영문과에 수석으로 합격한 여학생이다. 동시통역사를 꿈꾸며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나약한 신데렐라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자영의 연인인 정현우(류시원 분)를 살펴보면, 그는 자영과 같은 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는 선배로, 국회의원 운전기사의 딸인 자영과 달리 대기업 회장의 외아들이다. 장래성, 경제력, 집안배경 등 모든 면에서 남성인 현우는 자영보다 우위에 서있다. 결국 여주인공인 자영만이 신데렐라의 틀에서 벗어났을 뿐, 남자 주인공인 현우는 장래성 있고 능력 있는 왕자님의 틀을 깨뜨리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극중의 또 다른 연인인 이신희(박선영 분)와 박승재(손지창 분)는 그러한 공식을 어느 정도 깨뜨린 예이나, 악역으로 등장하는 두 사람은 결국 동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최근 들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SBS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극중에서 여주인공인 이수인(김태희 분)은 하버드 메디컬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으로,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여기서 수인은 당당하고 패기 있는 여성상을 보여주었으나, 그 상대역인 김현우(김래원 분)의 모습은 지금껏 다른 드라마에 등장한 왕자님의 모습 그대로이다. 대대로 명망 있고 부유한 법조집안의 자제로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인 현우는 경제력과 집안배경 등 모든 면에서 여주인공인 수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있으며, 이를 이용해 수인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제6회 남녀평등방송상’ 수상작인 MBC 드라마 ‘대장금’ 에서도 이러한 남녀 구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서장금(이영애 분)은 궁중 요리사로, 나중에는 조선조 최고의 의녀(醫女)로 인정받는 진취적이고 능력 있는 여성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장금의 성공 뒤에는 그녀의 연인인 민정호(지진희 분)의 도움이 있었다. 앞서 소개한 드라마에서처럼, 한성부의 판관인 민정호는 궁녀였던 장금보다 높은 위치에 서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장금을 보호하고 이끌어준다.

‘대장금’ 의 작가 김영현씨는 지난 3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정호를 ‘여성에 대한 외조(外助)를 선비의 신조로 삼는 새로운 남성상’ 이라고 이야기했다. ‘외조’ 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앞서가는 남편이 뒤따라오는 아내를 이끌어주는 관계를 뜻한다. 그러나 만약 민정호가 외조가 아닌 ‘내조(內助)’ 를 하는 입장이었다면, 예를 들어 민정호를 한성부 판관이 아닌 일개 고을의 아전이나 떠돌이 보부상으로 설정하여 장금을 이끌어주는 역할 대신 그 뒷바라지를 하는 역할을 맡겼다면, 과연 이 작품이 지금처럼 인기를 모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여성들은 결코 지금처럼 이 드라마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며, 여성계도 지금만큼 민정호라는 남성상을 칭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새로운 여성상을 추구하는 드라마의 제작자들 역시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고정관념만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시청자들에게 나약한 신데렐라의 모습 대신에 후덕하고 능력 있는 왕자, 혹은 신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완벽한 남성상에 대한 동경을 자아낸다. 결과적으로 남성들은 ‘남성은 강해야 한다.’, ‘사랑을 이루려면 여성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성공해야 한다.’ 는 부담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워렌 패럴 박사는『남자 만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위험에 빠진 소녀를 구해주는 남자를 칭찬한다. 위험에 빠진 숙녀가 그 숙녀를 구해준 기사와 결혼하는 것은 축하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 구세주가 만약 여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위험에 빠진 남자와 결혼하는 성녀는 없다. 다이애나가 찰스 황태자와 결혼식을 올렸을 때 25억의 여성들이 텔레비전을 보며 부러워했지만, 성녀 테레사 수녀가 어떤 노숙자와 결혼한다면 부러워할 여자가 있을까?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를 축하하는 사람은 없다. 그 여자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사람은 많겠지만.




물론 테레사 수녀는 결혼을 할 수 없는 가톨릭 성직자이기에 적합한 예가 될 수 없겠지만, 테레사 수녀 대신 그 자리에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나 탤런트 이영애의 이름을 넣는다면 본래의 의미가 통한다. 패럴 박사의 이 주장은 위에서 소개한 드라마 속의 사례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모습은 비단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이제는 새삼스런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거센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 얼마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법고시와 행정고등고시, 심지어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던 군법무관 시험에서조차 여성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은행권, 유통업계를 비롯한 재계에도 여성의 진출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10월 KBS 예비사원 공채에서 방송직의 여성합격자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뛰어넘은 것은 실로 파격적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여성의 사회진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데 비해 가부장적 남성차별은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지난 12월 8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결혼연령이 높아지는 가장 큰 이유로 여성의 44%가 ‘자아성취 욕구 상실’ 을, 남성의 76%가 ‘경제적 부담’ 을 꼽았다고 한다. 이는 지난 5월 18~39세의 미혼 남성 2,200여명 가운데 34% 가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 고 답했다는 통계와 일맥상통한다. (중앙일보. 2004-05-27. 불황 때문에… 병원 안 간다·장가 안 간다·카드 안 쓴다, 연합뉴스. 2004-12-08. "늦은 결혼, 男-경제적 부담ㆍ女-자아상실 때문")

같은 맥락으로 충북대 심리학과의 박광배 교수는 지난 9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남성의 이혼 후유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주간동아. 2004-09-09. 이혼의 시대 ‘이별 기술’ 필요하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남성의 정신건강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아내에게 이혼요구를 받게 되면 자신을 매우 무능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때문에 자존감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은 대개 경제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남성을 택합니다. 때문에 여성에게 배척당하는 것은 곧 자신이 사회적으로 무능하다는 결론인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여성의 사회진출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오늘날에도, 남성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일련의 사례들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비롯한 여성차별의 해소가 가부장적 남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 그것이 가부장적 남성차별의 해소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가부장제를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지은희 여성부 장관이나 최재천 서울대 교수와 같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호주제와 같은 여성차별이 개선된다면 그것은 남성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여성이 가부장적 굴레에서 해방되면 남성도 자연히 해방될 것’ 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앞서 소개한 일련의 사례들을 살펴볼 때, 얼마나 성급한 논리 비약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남성이 겪어온 수많은 성차별을 남성 역차별로만 국한시키며 여성의 입장만을 우선시하는 여성계의 태도가 얼마나 편협하고 비합리적인 것인지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회 구성원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문 표기만 ‘Ministry of Gender Equality’ 인 여성부이다. 지난 11월 언론보도에 따르면, 여성부 측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의 한글명칭이 여성부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여성부의 영문표기는 우리부의 기능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여성정책에 관한 정보교류를 위하여 Ministry Gender Equality(성평등부)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여성문제를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립적 구도가 아닌 남녀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함축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 명칭도 남녀평등부, 양성평등부 등이 거론됐지만, 결국 아직도 ‘여성’ 이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한글명칭은 여성부로 결정하였습니다. (시사포커스. 2004-11-18. 여성부, 왜 자꾸 한쪽으로 치우치나)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한글명칭을 여성부로 결정했다’ 는 여성부 측의 이 같은 답변은 가부장제에 대한 무지와 남녀문제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지운 수많은 굴레와 그로 인해 야기된 가부장적 남성차별을 무시한 채 여성이 받아온 차별만을 강조하고 부풀리는 한편, 수세기 넘게 남성들이 겪어야 했던 부당한 차별을 ‘역차별’ 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 가둬두려 한 여성계의 태도. 페미니스트들의 이 같은 독선적인 태도는 결국 가부장제와 함께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을 해치는 암적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 1년간 인터넷상의 논객으로 활동하며 현재 시행 중인 여성 편향적 정책들을 재고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글 첫머리에 소개한 시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가부장제를 여성의 시각에서만 분석, 해체해 온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 하에서의 남성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최근 들어 불거지고 있는 남성들의 불만을 ‘남성 역차별’ 이라는 작은 범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남녀공동병역 추진을 비롯해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거론되고 있는 남성차별 문제의 대부분은 지난 수세기 동안 가부장제와 그 운명을 함께하며 사회 구성원들을 억압해 온 뿌리 깊은 병폐이다. 이는 여성차별과 대등하게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이슈이지, 결코 한시적인 역차별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가부장제를 대함에 있어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여성주의적 사고, 즉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 라는 진부하고 비합리적인 공식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남성 역시 여성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수혜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성의 입장에서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해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참고자료>

동아일보. 2004-12-15. 돌아본 2004 문화계…문화계 키워드<下>

동아일보. 2004-12-10. 50대 기러기 아빠 또 ‘슬픈 선택’… 사업실패 비관 자살

서울신문. 2004-08-27. [시론] 첫 여성 대법관의 탄생

Warren Farrell. 2002.『남자 만세』. 예담출판사

에스테 빌라. 1997.『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황금가지

한겨레. 2004-12-02.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의 페이지

중앙일보. 2004-03-28. [인터뷰] 대장금 작가 김영현씨

세계일보. 2004-12-02. ''사시 女風'' 이젠 强風으로

서울경제. 2004-12-20. 행정고시 '여풍당당'

디지털타임스. 2004-12-20. 은행권 취업전선 `여풍당당`

매일경제. 2004-12-20. 유통업계 신입사원 절반이 여자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04-10-27. KBS, 방송직 여성합격자 사상 처음 50% 돌파

연합뉴스. 2004-12-08. "늦은 결혼, 男-경제적 부담ㆍ女-자아상실 때문"

중앙일보. 2004-05-27. 불황 때문에… 병원 안간다·장가 안간다·카드 안쓴다

주간동아. 2004-09-09. 이혼의 시대 ‘이별 기술’ 필요하다

오마이뉴스. 2003-09-05. "호주제 폐지되면 남성만의 가정책임 해방"

시사포커스. 2004-11-18. 여성부, 왜 자꾸 한쪽으로 치우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