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기도

나무처럼2007.04.21
조회344

오늘도 연례봄행사로 쑥캐러 나가던 길이었다.
검단산 앞길을 광주쪽으로 내려가다 어느 골짜기로 들어갈 참이었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배고픔을 살짝 느끼던 차에 개업간판이 걸린 식당이 보였다.
'어.... 막국수집 개업한다네....' 했더니 친구가 받아서
'한그릇 팔아주자' 그런다.
막국수는 시원하고, 면도 부드러워 맛있었다.
비빔국수도 양념이 칼칼하니 매콤하니 상당히 맛이 있었다.
잘 먹고 나오는데 주인아저씨께서 까만 봉투를 손에 쥐어주신다.
'가시면서 읽어 보세요....' 그런다.
의아하고 궁금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 친구더러 소리내어 읽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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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오늘 개업을 했답니다.
아마 막국수 맛에 대하여 부족하고 만족하시지 못했을 수도 있을겁니다.
그래도 고객님이 소중함을 알기에 정성과 온마음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실력이라는
실력은 모두 동원하고 젖먹던 힘까지 기울려 항 것이 겨우 걸음마 단계랍니다.
손쉽게 자리 잡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처가 어제밤 집에도 안오고, 밤새도록 막국수 면을 뽑으며 궁리하는 것이 안스럽고
개업식에 뭘 도울까라다가 저는 5통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아마 개업식에 낯모르는 손님이 5테이블 이상은 오지않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말입니다.
평소 좀 알던 분이나 친분이 있으신 분이 인사치레로 올 수도 있겠지만,
생면부지인데 오늘 우연히 들려주시는 분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전할길 없어
가시는 길에 읽어보시라고 다섯분에게 전할 마음을 적었답니다.

   

지금이 새벽3시인데 아내는 아직까지 잠 안자며 양념과 육수와 면과 씨름할겁니다.
저가 세상을 대충대충 살다보니 이렇게 좀 무능해졌고, 처는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지만 처음 해보는 막국수장사라 용빼는 재주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엄청 신경쓰고 노력할 것이라는걸 알기에 집에서 아이들과 편하게 잘 수 없어
오시는 분께 면전에서는 고맙다는 말 전하기가 쑥스러워 대신 아주 소수이겠지만
편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주방장이 처인데 호가호의 하는게 아닌지...)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얼만큼 발전하고 성장했는지 들려봐 주세요.
아마 그 때 저희가 없다면 쫄딱 망해서 짐싸서 갔을 것이고, 그 때까지 버틴다면
막국수집을 해서 먹고사는 수준일 겁니다.
제가 이 편지를 다음에 가지고 오시면 공짜로 해드리겠습니다.
5통의 편지인데 까짓것 막국수 몇그릇 공짜 못해주겠습니까?
(조미현이 줄겁니다. 처이름 팔았다고 집에 가서 뒤지게 맞는 한이 있더라도...)
기분좋게 내어드릴테니까요.
사실 처도 모르는 일이지만 패죽이지도 못하는 미운 남편이 남발한 약속일지라도
나 몰라라 외면할 매정한 사람도 아니구야박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아마 이런 편지 5통을 개업날 써서 전했는지 전혀 모를테고 저도 말 안할테니까요.
시간이 지나 고객님이 주방장 처가 알수 있게 이 편지를 쓰윽 내밀면 처가
어이없어 웃을지도 모르죠. 제가 엄청 많이 처를 가슴 아프게 했거든요.
엎질러진 물이지만요.  ~흑흑흑~~ 아앙~~

   

지금은 얼마 못버티고 망하면 어쩌나 하는게 걱정이지요.
이 편지가 다시 돌아와 처가 보기를 기대하며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먹국수 드시러 오시지 않으실래요? (제가 집사람을 사랑하고, 무척
아끼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 좀 전해주시고요. 그럼 좋을텐데... 그쵸?)

민성막국수집은 캄캄한 어두운 밤에서 새벽을 열기 위해 축발합니다.
부디 이 편지를 받으신 다섯분이 저희에게 등불과 같은분이 되어주시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지요.

    
맛과 사람냄새가 나는 인정 있는 곳이 되어 또 오고싶은 곳이 되도록 하는 몫은
집사람과 저의 몫이겠지요. 저도 지은 죄가 크고 말빨이 약해서 주방장인 처의
소고집을 꺽지못하고 밀릴 때가 많겠지만 그래도 자다가도 아내의 말을 들으면
먹을것이 생긴다는 심정으로 도와볼려고 합니다.

검은 봉투가  민성막국수집의 현재의 모습일겁니다.
등대와 든든한 바람막이처럼 조언과 편달을 바라는 마음인것 아시죠?
식당전화번호가 031-795-0599입니다.(주방장겸 처이름이 조미현이구요)
전화로도 언제든지 좋은의견과 잘 할수 있을것 같다는 아이디어및 평가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숨김없이 냉정하게 꼬집어 주세요.
누구나 자신의 단점을 보지못하기에 우리도 분명 그런점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애정어린 충고를 필요로하는 막국수집이랍니다.

    

오늘은 제가 담담하게 이 편지를 전하지만 언젠가 이편지를 들고 찾아오시는 분이
있다면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반가움으로 맞이할 것이고, 아내는 철딱서니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남편이 이런 유치한 짓... 발상을 했냐며자즈러지는 척 하면서도
내심으론 좋아하겠지요. 뭐~~(그 때가서 설마 패진 않겠죠??)

오늘은 비록 첫날이고 정황이 없어 고객님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할지 몰라도
다음에 오시면 다시는 몰라보는 일이 없을 겁니다.

    
가시는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시기를 바라며 진달래꼿 피고, 노란 개나리 피었고,
벚꽃이 피고 있는 이 봄에 가정과 고객님에게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거듭거듭 고맙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  4.  7.일  개업식날 다섯분에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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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편지 내용에 웃음과 감동과 궁금함이 함께 일었다.

이 남자는 얼마나 큰 아픔을 부인에게 주었을까?
이제 살아야겠다는 절절함이 얼마나 컷으면 이렇게 했을까.
이런 발상이 재밌기도 하고, 거기에 우리가 선택되었다는게 또한 재밌었다.
정말 다시 가보고싶은 생각이 일었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검단산산행을 하고나면 들러볼수도 있겠고.
올 봄 쑥캐러 가는 길에 여러번 들여다볼 수도 있을테지.

    

위치는 검단산 아래 에니메이션고교 앞길에서 광주방향으로 가면서
고속도로 진입하는 고가 밑으로 지나서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 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위치로 보아서는 장사가 잘 될까? 하고 고개를 갸웃 하게된다.

편지는 그 집을 확실히 인식시키는데 안성마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