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여행 *

전망2003.05.07
조회345

 

* 어떤  여행 *

 

1997년 가을 어느날

샌프란시스코를 지나는 관광버스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미서부 일주를

 여행온 스무여명의 손님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열흘간 함께 지낼 손님들은 한분 한분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법조인, 공인회계사, 의사, 정년퇴직한 교장선생님 ..... 소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주름진 노부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함께 일어나 "저희는 경남 마산에서 왔습니다.

우리 둘은 동갑으로 올해 회갑이 되어 자녀들이 효도관광을

보내 주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얘기가 끝나자 모두 큰 박수를 보내 주셨고,

바로 이 부부는 저의 귀한 부모님이십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슬하에 5녀 2남을 두셨지요.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가을이면 창고에 곡식이 가득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선 부잣집으로 불려졌지만 농사로 7남매를 키우고

교육시키기엔 경제적으로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는 명문학교라 칭할 수 있는 학교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의 교육을 위해 마산시청 근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고 아버지는 시청 일용직 공무원을, 어머니는 집안일과

부업을 하시며 제가 보기에 평생 고단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의 고생에 마음 아파하며 그 보답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배우자를 만나 무난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여섯째인 장남은 미국에 유학중이었고요.

 

부모님은 관광을 마치고 아들이 있는 집에서 일주일을 더 계시다가

돌아오신뒤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들아, 고맙다.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이 언제 판사, 검사같은

양반들과 놀 수 있겠느냐.

그분들이 그러시더구나 가까운 동남아는 쉽게 갈 수 있지만 여기는

좋긴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 쉽게 한번 오기 힘들다고(서민들 기준)...

그러면서 자녀들을 잘  키웠다고 칭찬 하더라." 하시며 그분들이

가족처럼 따뜻하게 돌봐주어 감사했다고  역시 많이 배운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얼마전 이충영 판사의 맏딸이 쓴 '가족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판사께선 부인께 "사람은 평생 고생하고 마지막 일년 편안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이다" 라고 했다 합니다.

남편은 납북되고 많은 자녀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부인은 나중에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이 된 작은 아들이 질의하고 국무총리가

된 큰 아들이 답변하는 흐뭇한 모습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감격적인 광경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평생 수고하신 끝에 지금은 예전 시골집보다

더 넓고 편리한 집을 짓고 사시니 좋으시죠?

사람들은 흔히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를 '긴 여행'이라 하더군요.

남은 여행길 부디 건강하시고 저희들 효도도 많이 많이 받으세요.

언제까지나 사랑합니다.

 

* 어떤  여행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흐르는 노래는 문주란의 '부모'

 

 

 

 

 

1997년 가을 어느날

샌프란시스코를 지나는 관광버스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미서부 일주를 여행온

스무여명의 손님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열흘간 함께 지낼 손님들은 한분 한분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법조인, 공인회계사, 의사, 정년퇴직한 교장선생님 ..... 소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주름진 노부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함께 일어나 "저희는 경남 마산에서 왔습니다. 우리 둘은 동갑으로

올해 회갑이 되어 자녀들이 효도관광을 보내 주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얘기가 끝나자 모두 큰 박수를 보내 주셨고,

바로 이 부부는 저의 귀한 부모님이십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슬하에 5녀 2남을

두셨지요.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가을이면 창고에 곡식이 가득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선 부잣집으로 불려졌지만 농사로 7남매를 키우고 교육시키기엔

경제적으로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는 명문학교라 칭할 수 있는 학교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의 교육을 위해 마산시청 근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고

아버지는 시청 일용직 공무원을, 어머니는 집안일과 부업을 하시며 제가 보기에

평생 고단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의 고생에 마음 아파하며

그 보답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배우자를 만나 무난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여섰째인 장남은 미국에 유학중이었고요.

 

부모님은 관광을 마치고 아들이 있는 집에서 일주일을 더 계시다가 돌아오신뒤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들아, 고맙다.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이 언제 판사, 검사같은 양반들과 놀 수

있겠느냐. 그분들이 그러시더구나 가까운 동남아는 쉽게 갈 수 있지만 여기는

좋긴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 쉽게 한번 오기 힘들다고(서민들 기준).....

그러면서 자녀들을 잘  키웠다고 칭찬 하더라." 하시며 그분들이 가족처럼 따뜻하게

돌봐주어 감사했다고  역시 많이 배운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얼마전 이충영 판사의 맏딸이 쓴 '가족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판사께선 부인께 "사람은 평생 고생하고 마지막 일년 편안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이다" 라고 했다 합니다.

남편은 납북되고 많은 자녀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부인은 나중에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이 된 작은 아들이 질의하고 국무총리가된 큰 아들이 답변하는 흐뭇한

모습을 지켜봤다 합니다.

감격적인 광경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평생 수고하신 끝에 지금은 예전 시골집보다 더 넓고 편리한 집을 짓고 사시니 좋으시죠?

사람들은 흔히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를 '긴 여행'이라 하더군요.

남은 여행길 부디 건강하시고 저희들 효도도 많이 많이 받으세요

언제까지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