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을 내기전에 참조하세요.

복순 복돌 부부2007.04.24
조회635

안녕하세요?

제가 이곳에 이런 글 남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적습니다. 저는 30대 중반 그리고 아내는 30대 초반을 넘어선 나이입니다. 우리부부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3학년인 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집사람 아이디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네이트 동거이야기와 이혼하고 싶어요에 집사람이 올린 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하기에 기록되는 글은 모두 사실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와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글을 동거이야기와 이혼하고 싶어요. 두 곳에 남기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동거로 시작해서 이혼까지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거짓없이 적겠습니다.

1995年 남편과 저는 처음 만났습니다. 남편은 제가 다니던 회사의 유망 받던 연구소 사원으로 입사를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때 당시 회사가 2조원의 매출을 올리던 회사였고 그 회사의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부서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저는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났고 가정형편도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고등학교를 다녀 졸업했던 여사원이었습니다.

저는 30대 초반의 여자입니다. 제 나이에 이런 고생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경기도 오산시에 있었던 수영고등학교를 직장 다니면서 다녔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방직 공장이 없어져서 아마도 제가 야간으로 졸업했던 수영고등학교는 폐교되었을 겁니다. 그 남자와 몇 번의 만남이 있었고 그리고 그 남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장기간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받아야 하는 월급과 상여금은 그의 급여통장에 모두 들어오고 그리고 출장비는 별도로 받아서 가고 거기다가 실리콘밸리의 회사에서는 별도로 하루에 50달러를 추가로 받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남자도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지 못한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장기간 미국 출장을 가기 전 잔뜩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잠자리를 하게 되었고 이개월 뒤 저는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당시 어린 저로써는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지워야 하나 낳아야 하나? 밤엔 눈물을 흘리면서 밤을 세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하고 친정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단호하게 아이를 지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당시 친정 집의 동생들은 모두 어린 학생들 이었고,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으로 14년간 병원 생활을 하는 터라 저의 아이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밑에 동생은 어렸을 적에 죽었고 그리고 그 밑의 쌍둥이 동생은 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납니다. 제가 받은 월급이 바로 우리 가족의 생활비 였으며, 삶의 밑바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는 동생들 납입금까지 지원해 주던 회사였습니다. 제가 장녀였고 밑에 동생들이 3명이 있었습니다. 모두 어린 학생들 이기 때문에 친정어머니의 선택은 단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식당에서 허드레 일을 하셨던 분이구요. 물론 그 남자의 집안에서도 반대는 대단했습니다. 남자집안에서는 꽤 괜찮은 가정에서 남자와 사둔을 맺자는 혼처가 몇 군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그 남자에게 제가 임신한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그 남자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 남자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결혼을 서두르는 남자… 그러나 아무도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친정에서는 딸을 시집 보낼 돈도 없고, 그 남자의 집에서는 절대 저를 며느리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혼을 양쪽 모두 반대를 했습니다. 아마도 친정 집에서는 결혼을 반대하는 시댁에 제가 시집을 가봤자 오래되지 않아서 이혼을 하게 될 것 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시집 보낼 돈이 없어 동거를 해라고 하는 친정 부모님. 그래서 동거쪽으로 양쪽 집안에서 유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남편에게 아이를 지우자고 몇 번이나 설득을 했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무슨 잘못이냐고… 왜 모두 그 아이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고…..눈물을 글썽이는 남편이었습니다.

그 뒤 남편은 미국 생활을 회사 허락 없이 정리하고 왔기에 친정과 시댁에서 거리가 먼 곳으로 직장이직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남편과 저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996년 늦가을에 우리의 딸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반겨주지 않는 딸이었습니다. 친정식구 시댁시구 아무도 딸을 보러 찾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남편은 저에게 최선을 다해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옆에 누워있던 다른 산모들이 저를 부러워 할 정도 였습니다.

그 뒤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살던 집에 오게 되어 있었던 일입니다.

딸을 낳고 같이 살고 있는데도 우리 시어머니는 우리아들 총각이라고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이야기 하는 시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저는 정식으로 결혼도 하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둘째인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뒤 우리 시어머님은 저와 아이들에게 정말 잘해 주십니다.

그 뒤 며느리로 인정해 주시고 무시하거나 그런 거 없습니다.

이제는 행복해 지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쯤의 일입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무리를 했는지… 제가 허리 디스크로 병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딸과 아들을 책임지는 사람은 남편이었습니다. 아이들 아침에 밥을 해주는 일도 밤에 아이들 목욕시키는 일도 그리고 방청소도 모두 남편의 일이었습니다. 남편의 뒷바라지로 저는 점점 허리가 낳아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복도식 아파트 문을 잠깐 열어두고 청소를 하던 날 강도가 침입을 했고, 집에 가진 폐물과 현금, 상품권 등을 모두 빼았겼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차마 힘든 일을 당했습니다.

저는 빼앗긴 폐물과 현금보다 남편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빼앗긴 것을 더 걱정을 했습니다. 강도의 칼 앞에서 벌벌벌 떨며, 보냈던 시간보다 어쩌면 이제는 남편과 아이들과 남으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뒤 남편은 우리가 살던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날에도 아파트 베란다 문 조차 열지 못하는 여자로 전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옆방에서 자던 아이가 새벽에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올 때도 저는 잠결에 고함을 지르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놀란 아이 달래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건 발생 후 저는 병자 아닌 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습니다. 남편은 사건 후 112에 신고를 했지만 남편과 저는 참 많이 신고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국과수에서 증거자료로 이것 저것 가지고 같지만 벌써 4년 넘게 흘렀지만 아직도 범인은 잡지를 못했구요. 살던 지역에서 유사한 성범죄자가 잡히면 대질을 요구하기도 해서 귀찮기만 합니다.

하여간 사고를 당한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이사 들어갈 시기에는 문제가 없는 아파트였지만 이사 나올 당시에는 집 주인이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카드회사에서 가압류를 걸어 놓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전세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세금을 받지 못하고 이사를 한 후 급전으로 아파트 전세를 얻었기 때문에 이자를 갚기 위해서 밤에 힘든 일 마다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 남편입니다.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 하던 남편은 어느날 새벽 코피가 터졌고 남편이 베고 있던 베게와 이불에 코피가 다 묻을 정도로 많은 코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이겨낸 후 최근에 드디어 우리의 집과 논을 샀습니다. 우리의 집 경기도에 있구요. 대지 180평에 2층 양옥집을 샀습니다. 논은 400평 조금 넘구요. 같은 동네에 있는 논입니다. 집과 논을 샀는데 남편이 저의 명의로 해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별걱정 다하고 사니깐 그런 거 같습니다. 제가 이혼 당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인지 남편이 제 명의로 해주는 것입니다. 남편은 전세 살 때도 명의를 저 앞으로 꼭 해주던 사람입니다.

사실 정말 많은 사연과 내용이 있지만 저의 글 솜씨가 없어 이 정도밖에는 쓸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로는 쉬울 것 같은데 글로 사연을 남긴 다는게 정말 어렵군요.

참 남편은 무슨 일 하는 사람 이냐면요?

우리나라 최고의 직장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고의 엘리트입니다.

그러나 그런 남편이 힘든 일 마다 않고 해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둘 모두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을 먼저 했고, 아들은 아빠 같은 아빠가 되는게 자기의 꿈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가정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자입니다.

최근 컴퓨터 배경화면이 남편 초등학교 졸업사진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우리 둘째가 아빠의 초등학교 홈폐이지 카페에 있는 남편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배경화면으로 바꾸었습니다.

남편의 초등학교 동창카페에 가보니 남편이 우리의 딸과 아들사진을 동창 친구 중에 제일 먼저 사진 방에 올려 놓았더라 구요.

거기에 써놓은 남편의 글입니다.

우리아이들 건강하게 착하게 키우겠노라고….

내 남편의 식구는 4남매입니다. 전라도 지리산 산골 동네에서 태워 났는데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촌에서 전교 1등 아무것도 아닌 것 압니다. 그러나 남편의 형제 중에 유일한 고졸인 남편의 누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모는 지금도 아이들 과외를 시키지 않습니다. 직접 고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우리나라 모광역시 부자동네 사는 중학교 졸업하는 아이가 이번에 전교 1등으로 졸업을 해서 학교장상을 받은 집안입니다.

남편과 남편의 형님 즉 아주버님도 고졸로 직장생활 시작하여 두 사람 모두 대학을 독학으로 졸업한 사람들 입니다. 아주버님은 대학 졸업 후 15년 넘게 공무원 생활하시고 계시구요. 지금도 40넘은 아주버님 시간이 되는대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의 남편 직장 다니면서 대학 다니면서 군 생활까지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안 된다고 하지만 저의 남편은 분명 그렇게 했구요. 졸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영어와 일어, 중국어 학원을 다니는 것도 보았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해 간 남편입니다.

처가에서 시집 보낼 돈이 없다고 동거할 때 적금 만기 된 돈 1000만원을 친정집에 주어서 그 돈으로 혼수 장만해서 결혼했습니다. 만약 이 사실 아시면 우리 시어머님 아들 낳은 후 개선된 저와의 관계에 금이 갈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희 친정아버님 병원비도 아낌없이 도와주고 용돈도 준 남편입니다. 친정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이 없어서 고민하자 장례용품모두를 해결해 준 남자입니다. 그리고 부의 돈도 쫀쫀하게 몇십만원 하는 남자 아닙니다. 남편은 처가의 큰일이 있으면 백만원 단위로 지원을 해줍니다. 처제 결혼한다고 최신 디지털카메라 사주고 결혼축하비용 100만원도 아낌없이 내놓는 남자입니다. 이번에 그렇게 결혼한 처제가 아이를 낳았을 때도 20만원 주더니 이번 설날에는 아이 보행기를 메이커 있는 걸로 사주는 남자가 저의 남편입니다. 명절에 한번은 꼭 처가에 가서 처가에서만 지내다가 오는 남자이기도 합니다. 사실 시댁보다는 친정을 더 자주 가는 편입니다. 그리고 친정집에 가서 외식을 해도 언제나 계산을 해주는 남자입니다. 이번에도 친정 작은아버지와 할아버지댁에 보낼 과일도 사주는 남편입니다. 올해 과일 비싸지 않습니까?

남편은 과일 3~4박스 친정어머니 한방화장품등등등 아낌없이 사주는 남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친정집에 무슨 돈 나올 것 있어서 도와 주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 했지만 강원도 산골동네에서 자기집 없이 살았구요. 우리집 앞으로 된 논이나 밭도 전혀 없습니다. 오랜 병원생활로 돌아가신 친정 아버님이고 제가 중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을 정도니깐 우리 친정집에서 우리에게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남편은 아낌없이 도와 줍니다.

그리고 시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구요. 반대하는 결혼했다고 남편 시댁에서 10원도 못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고졸로 직장 다니면서 군대생활하면서 대학 다닌 남편이 광역시에 40평 대의 빌라를 24살의 나이로 샀던 사람이 저의 남편입니다.

남편 회사 주식이 샀던 가격에서 40배 이상 올라서 어렵지 않게 집을 총각 때 샀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그 집 가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00시에 2층 양옥집에 이번에 아파트를 한채 더 샀습니다. 물론 저 아파트 살 때 제가 남편에게 준비해준 돈 10원도 없습니다. 남편이 알아서 돈 마련하고 등기권리증을 저에게 가져다 주는 남자입니다. 저는 전업 주부입니다. 간혹 아르바이트 나가지만 하루에 26000원 받습니다. 우리나라 최저 인건비 보다 적은 금액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학원비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남편 일년에 800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리지만 제가 사다 주는 신발이나 옷 아니고 서는 사달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구요. 우리딸아이가 키가 160cm입니다. 우리 딸아이가 이렇게 크도록 우리 남편은 제가 결혼할 때 사준 낡은 구두를 신고 회사에 출근한 사람입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10년 넘게 똑 같은 잠바 입고 다니구요. 최고 후진 핸드폰 쓰면서도 불만 없습니다. 남편 이발도 5000원 이하로 하구요. 스포츠로 이발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늦게 깍아도 된다구요. 자기를 위해서는 돈 10원 아까워서 못쓰는 남자지만 이번 설에 친정어머니에게 절하고 세배 돈 대신에 용돈 봉투를 드린 내 남자입니다.

세상 모든 남자가 저의 남편처럼 가정에 잘하는 남자이기를…

물론 저 예쁜 얼굴도 아니고 날씬한 몸매도 아닙니다.

우리남편에게 간혹 제가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내 딸과 아들의 엄마이고 그리고 그 아이에게 제일 잘 할 사람이기에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 결혼하고 나면 이혼 할거냐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그때쯤 되면 내 손자 손녀에게 부끄럽지 않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중요하겠지.. 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직장에서 대졸 최연소로 30대 초반에 연구소 과장이 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실 남편이 근무하는 연구소에는 대졸이라고는 남편과 나이 많이 드신 분 한분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100여명 되는 연구원 중에 석사, 박사 졸업자 이외에 학사는 남편과 나이 많이 드신 분 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악필이 많이 달리지도 모르겠습니다. 못 믿겠다느니…

제가 저의 남편이야기를 거짓으로 적어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동거이야기와 이혼하고 싶어요.에 안타까운 글들을 읽으면서 제 나름대로 남편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고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행복해 지셨으면 합니다.

우리남편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구박하거나 핀잔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자세히 설명도 해주고 밤에는 아이들 자고 난 뒤에도 꼭 한두시간 정도는 하루중에 있었던 이야기나 TV내용 이야기 해주는 남자입니다. 얼굴도 못생기지도 않았고 운동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늘 겸손하고 윗 분들에게 잘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잘하는 만점짜리 아빠입니다.

남편이 간혹 저에게 이제 당신 앞으로 재산 다해주었는데 당신에게 잘 보여야겠네 라고 농담 삼아서 이야기 하는데…

복 있는 친정아버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저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재주가 없어 잘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꽤 자란 아들과 딸이 지금도 남편 옆에 서로 자겠다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여자입니다. 아이들 방학 숙제도 도와주고 그리고 어릴 적 책도 아이들에게 많이 읽어 주고 어릴 때에는 유모차에 태어서 나들이도 정말 많이 나가준 남자입니다. 좀 자라서는 아이들 여름철에는 매주 물놀이하러 계곡이나 바닷가가구요. 봄에는 꽃구경도 다니고 정말 가정을 위해 산 남편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대한민국 남자들이 저의 남편보다 가정에 더 충실한 남편들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악필에 제가 올린 글이 욕되게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힘들게 동거하시고 결혼생활 유지하시는 분들 착하게 열심히 살면 행복해 질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혼까지 생각하시는 분들도 될 수 있는 한 이혼보다는 아이들 생각해서 자기보다는 아이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제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도 병이 들었을 때도 처가가 가난해도 제가 강도강간을 다했어도 용서해주고 사랑해준 남편이 있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남편은 분명 자기보다는 우리 아이를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남편과 저의 글을 남기는 이유는 기왕이면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가정을 되시기를 바라면서 정말 어렵게 글 올렸습니다.

 

이렇게 집사람이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방에 어떤 글을 남기겠습니까?

아이 될 수 있다면 낳으세요. 저 우리 딸 낳을 때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일 때 미국에 갈 기회가 있어 갔지만 미국생활 포기하고 우리 딸 낳아 키웠는데… 언제나 제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신혼초에 시댁이나 처가에서 도와 준게 전혀 없었기에 힘들었던 것 사실입니다. 라면 먹을 때 김치없이도 먹어 보았고 물에 떠다니는 라면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만복의 근원은 내 아내 내 아이 사랑입니다. 내 아내 내 아이 사랑하니깐 역시 복 받더라 구요. 그리고 젊어서 낳아서 키우니깐 아이들 운동회 가면 좋더라구요. 젊은 아빠들 의외로 많습니다. 20대 초반에 어리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구요. 낳아서 키워보면 후회하지는 않을겁니다. 제가 고졸로 출발해서 이정도 사는 것 보면 아마 어린 나이에 우리딸 낳은뒤에 모든 일들이 잘 풀렸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배속에 가졌다는 것은 축복 받을 일입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들어온 복을 내어 버리지 마세요.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옹알이 하던 것 그리고 아장아장 걸음마 그리고 조금 커서 제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던 일도 있구요.

그리고 우리 딸 4살 때 이런 일도 있었네요.

퇴근하고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였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식탁에 앉더라구요.

그래서 밥그릇과 수저를 하나 더 가지러 갔다 온 사이 딸아이가 라면을 모두 엎질렀네요. 혹시 딸아이 델까봐 옆으로 내려 놓고 라면 치우고 있는데 딸아이가 엄마에게 쪼르륵 달려가서 이야기 합니다.

엄마 아빠 때문에 내가 미치겠어. 라고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녀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사람도 나이가 어려서 집에 임신 사실 알렸을 때 혼도 많이 나고 무조건 지우라고 했지만 제가 끝까지 우겨서 낳았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집사람 만삭이 되었을 때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부모 앞길을 막는 것은 아닌 것 같더라 구요.

제가 아이 포기하고 공부하고 아무리 열심히 살았더라도 지금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금 남자친구나 남편 사이에 애 문제로 고민하신다면 우리 부부의 글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용기를 내서 아이 낳으세요.

아이는 자기 먹을 것 가지고 태어 난다고 합니다.

그냥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하시고 고민하는데 조금이나마 참조했으면 합니다.

늘 행복 하시기를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