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

돈키호테200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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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밤이 깊어가는 시간의 베이징역은 장거리행 기차가 유난히 많다. 보통 하루 넘어 걸리는 노선이 허다하니 밤부터 시작해 보리라는 기차들의 마음일 것이다. 베이징역에서는 하루에 두차례 있는 네이멍구(內蒙古)행 열차는 그래선지 각각 밤 8시와 9시 20분에 있다.(베이징서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두 대 있는데, 각각 아침 8시 17분과 오후 4시 47분에 떠난다)

장소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베이징 역으로 나간 내가 네이멍구를 결정한 것은 드넓은 초원과 인생의 막장이라고 불리는 사막을 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와 이 생을 같이할 아내와 종자기(種子期) 같은 나의 친구가 있다. 내가 거문고를 키면 그 소리의 깊이를 알아주고, 그 친구가 시를 짓는다면 알아줄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국의 언어로 수다를 떨며, 여행을 계획하는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앞 칸의 아이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붙인다. 이미 얼굴에서 흔히 보는 한족의 모습보다는 우리와 더 흡사한 골상의 몽고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선지 마음이 편하다. 엄마와 같이 있는 귀여운 남자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붙인다. 아이는 이미 호기심이 있어선지 즐겁게 대답하고, 베이징에서 영어로 관광가이드를 한다는 아이의 엄마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한족 여자 아이도 같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예상대로 아이는 몽고족이다. 똑똑하고 야무진 모습은 우리 어린이들의 모습과 차이가 없다. 열차의 종착역인 네이멍구의 수도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도 3시간 가량 차를 타고 들어가는 바오토우(包頭)에 사는 열한살의 소년 까오위안(高圓)은 베이징에서 일하는 아빠, 엄마와 떨어져 바오토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며, 학교에 다닌다. 아이와 엄마는 간간히 우회적으로 묻는 내 질문에 징키즈칸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미 중국문화에 깊숙이 침윤된 까오는 몽고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의 전반에서 중국과 더 깊은 선을 닿아있다. 오히려 동생벌인 까오를 귀엽게 생각하고 말을 붙이는 당찬 한족 소녀는 학교에서 몽고 전통 춤을 배운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

기차의 불이 꺼지고 각자가 자기의 침상에 들어가고, 우리는 다시 통로에 나와 독주 한병을 액막이용으로 마시고, 맥주 몇 병을 마신 후에야 가까스로 내 침상을 찾는다. 눈을 뜨니 사람들이 모두 분주하게 짐을 챙기고 있다. 종착역인 후허하오터에 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차에서 내리니 우리는 맞으러온 여행사의 직원들이 몽고족들이 손님을 맞는 의식을 치뤄준다. 파란천을 방문객의 목에 걸어주며, 몽고족 전통의 노래를 부른다. 파란하늘을 상징하는 물건이자 몽고어로 후허하오터란 이 도시의 이름의 파란도시(靑城)라는 뜻을 생각하면 그다지 낯설지 않다. 또 샤먼들의 읊조림 같은 환영노래도 듣기가 나쁘지 않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패키지 여행의 폐해를 미리 보여주려는 듯 여행사는 2시간 넘게 사무실에서 기다려 다음 기차가 도착하는 9시 30분에야 우리의 일정을 시작한다. 네이멍구의 수도라지만 그다지 번화하지 않은 후허하오터는 해발 1천미터에 달하는 곳에 펼쳐진 허타오평원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다. 신장위구르, 티베트가 있는 시장에 이어 세 번째로 면적이 넓은 지역이자 최초의 자치구인 네이멍구는 63만7천의 비교적 적은 인구가 사는 도시지만 무한한 자원개발 가능성이 있는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한 주요한 거점도시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6명의 한국인과 4명의 일본인 또 4명의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여행사의 버스는 곧 시내를 벗어나 북쪽을 향해 달린다. 차는 막 홍수가 지나가 황폐한 비포장길을 지나 따칭산(大靑山)에 접어든다. 따칭산은 이 도시의 북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인산산맥(陰山山脈)이 후허하오터와 접경한 지역으로 다시 천미터 가량을 올라간 해발 2천미터 가량의 고산지대다. 차는 과거 중국 공산화 이전부터 소비에트가 형성된 우추안(武川)을 지나 우리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북부초원 관광지역중에 하나인 '씨라무런(希拉穆仁)초원 여유구'에 도착했다. 씨라무런은 다른 관광지역과 마찬가지로 말을 타는 것을 포함한 관광상품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몽고식 건축인 둥그런 형식의 천으로 된 숙소 파오에 여장을 푼 여행객들은 말을 타고, 간단한 몽고의 전통놀이들을 보고, 몽고식의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통 하루의 여정을 보낸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하지만 모든 것이 상업적인 색채의 상품으로 바뀌고 난 뒤에 남은 것이라고는 그 광활한 초원과(그마저도 서서히 점령당하고 있다) 하늘을 맞닿은 듯한 하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통으로 남아있는 그나마의 흔적인 아오포(敖包)를 찾기 위해 우리는 초원의 한쪽을 향했다. 10분여만에 우리는 멀리서 보이는 아오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대중으로 봐도 그 거리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초원의 사당과 같은 아오포는 몽고의 전통적인 오락, 유희인 나다무(那達慕)와 더불어 현재 남아있는 가장 전통문물의 하나다.
눈에 보이는 아오포를 반시간 여 동안 걸어서 도착했다. 아오포는 한국의 돌무더기 서낭당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돌덩어리로 쌓여진 제단이다. 아오포의 유래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몽고의 한 지방인 어웬커(鄂溫克)에 한을 품고 죽은 소녀가 온갖 재앙을 불러내어 마을민들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사만티아오(薩滿跳)신에게 도움을 청하자 신은 소녀의 혼을 불러 불태운 후 사람들에게 주문을 외게 함으로써 소녀 귀신의 한을 달랬다.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라는 주문과 함께 하는 제사에는 아오포를 쌓는 것이 중요한 행사다. 소녀의 뼈를 곱게 갈아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묻고 그 위에 돌산을 쌓기 시작한다. 마을민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도 모두 그 위에 돌을 높고, 재앙을 피하고, 복이 오기를 기원한다.
매년 몽고의 부족들은 여름인 5월하순부터 6월 상순까지(부족에 따라 7, 8월에 행사를 여는 곳도 있다) 아오포의 주변에 파오를 치고 말타기, 활쏘기, 씨름 등 용맹을 시험할 수 있는 경기를 벌이는 등 종합축제를 벌인다. 춤은 물론이고 노래 경연 등이 있는 이 행사는 축제는 물론 멀리 떨어진 몽고인들이 단합을 확인하고, 부족한 물건을 나누는 시장의 역할을 한 셈이라고 한다.
하지만 평상시에 아오포는 유목민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가장 높은 지역에 다시 돌무더기로 쌓은 아오포는 사방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곳에 형성되어 초원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등대역할을 한다.
양고기를 중심으로 요리하는 몽고식 저녁에 우리는 손님을 반기는 술잔을 한잔씩 받았다. 금잔이나 뿔잔 대신에 은잔에 술잔은 받고, 앞에서 행했던 이들을 따라 하늘과 땅과 내 이마에 술을 뿌린 후 잔을 들이켰다. 70도의 술이라는 말과는 달리 40도밖에 되지 않은 술이어서 실망이 많았지만 술을 잘 하지 않는 아내의 잔까지 챙김으로써 기분을 낸다.
밤에 기대했던 몽고의 전통춤은 한 소녀의 춤사위를 잠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음악은 전통음악에서 곧 경쾌한 팝음악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춤은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격렬한 동작으로 무엇인가를 털어내고 있었다. 무리에서 나와 하늘을 봤다. 너무나 선명히 떠오른 보름달 때문에 하늘에서 원한을 갖고 죽은 소녀의 별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30도까지 오르는 낮기온과 달리 초원의 밤은 10도까지 떨어지는 차가운 날씨다. 하지만 바람소리 들리는 파오속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면서 내일의 일출을 기대해본다. 이미 고도 2천미터에 달하는 산지대이자 초원의 중앙에서 급격히 떨어진 새벽기온으로 인해 적잖이 추운 언덕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덕이 모자라서려니 하고, 다음 여정을 기대한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버스는 초원을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호허하오터를 들른 후 다시 기차에서 만난 소년 까오가 사는 바오토우를 지나 오후 3시경에 후앙허(黃河)대교에 잠시 들른다. 5시간 여 동안 길을 지키고 있는 인산산맥의 줄기와 소피아 로렌이 나오는 영화 '해바라기'의 슬픈 정념을 느끼게하는 긴 해바라기 밖만이 우리에게 눈짓한다. 5460Km에 달하는 긴 물줄기인 후앙허의 한 줄기가 지나가는 대교는 누런 물이 황하임을 증명할 뿐이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 차는 쿠푸지(庫布齊)사막의 서쪽 시작의 한 축인 시앙사완(響沙灣)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차에서 내려 300미터 가량의 마른 강을 리프트를 타고 건너면 사막을 만날 수 있다. 사방 몇 백미터 안에서 낙타를 타고, 모래스키를 타는 사막이지만 모래 밖에 보이지 않는 일망무제의 사막은 여행자에 따라 목울대를 치밀게 하는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가끔은 삶의 곳곳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바오토우에서 하루를 머문 우리는 다음날 오후에야 다시 후허하오터에 닿았다. 느슨하게 일정을 잡으려는 여행사의 의도가 빤한 길은 패키지 여행은 피하고 보라는 내 여행수칙의 필요성을 재삼 확인시킨다. 후허하오터에서 들를 수 있는 곳은 따사오(大召)와 우타쓰(五塔寺)에 지나지 않는다.
따사오에서 만나는 큰 인물은 중국을 대국으로 만든 또 다른 신화 강희제다. 400년 된 은불이 안치된 이곳에서 안내인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강희제가 이곳에 들러서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물론 강희제에 앞서 몽고인들의 심중에 있는 가장 큰 영웅 칭키스칸이 있다. 세계에 동방의 존재를 알렸던 징키즈칸과 원(元 1279~1368)나라를 세운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은 이미 변화의 동력을 상실해가는 몽고인들의 가슴속에서 가장 큰 존재다. 순제를 마지막으로 명(明)나라에 망한 몽고족들은 다시 고비사막을 중심으로한 대초원으로 쫓겨났고, 계인 청(淸)나라가 중국대륙을 장악한후 1616년에 몽고도 청의 속국이 된다. 1685년 청군의 알바진 공격을 시작으로 진행된 러시아와 청나라의 대결은 강희제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외교협상의 결과인 네르친스크 조약(1689)으로 마무리되고, 이후에 강희제는 외몽골까지 합병시켜 몽고를 지배했다. 이후에도 준가얼부(準 爾部 몽골4부의 하나)의 반란이 있었지만 몽고는 중국의 역사를 타고, 시대를 넘어왔다. 근대에 몽고는 러시아, 중국의 사이에서 혼돈을 경험한 후 사실상 국토 분할인 내몽고와 외몽고의 분할을 거친 후 지금은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갖고 있는 외몽고와 인구수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중국화된 내몽고로 분할됐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대사오를 나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타쓰에 들른다. 이곳에는 사막과 하늘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이들답게 고도로 발달한 몽고인들의 천문학 수준을 살필 수 있다.
대도시라서 절이 있지만 몽고인들의 신앙은 샤머니즘이 50%에 달할 만큼 정령숭배가 일반적이다. 징키즈칸시대부터 샤먼은 중요한 조언자였고, 몽고인들은 텡게르(TENGER)라는 유일신을 그들의 믿음에 중앙에 둔다. 세계 최대 강국이었던 징키즈칸을 회상하며, 몽고인들은 다시 한번 그런 영웅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밤 8시 다시 우리는 후허하오터역에 섰다. 3일간의 초원과 사막의 먼지에 시달렸지만 그다지들 피곤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중국, 일본이라는 국가에 구애받지 않고, 정겹게 어울렸던 이들은 각기의 열차에 몸을 싣는다.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

네이멍구, 흔적을 잃어가는 징키즈칸 후예의 땅며칠후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는 바오토우의 양고기 구이집에서 나에게 낭송해주던 시를 보내왔다.
"사막에서 발자국을/ 남기지 마라 / 결대로 가고 /결대로 묻혀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 /등이 휘어져 봉우리가 되고 /그래도 가야 한다면 /결대로 가고 /결대로 묻혀야 할 것이다. // 바람에 날리고 씻기고 /모래로 남는 /사막의 결 /그 선에 서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결 /그 선에서 /불러본다 /낙타는 황혼으로 가고 오지 않는다 /너와 나는 마지막이다." (사막에서의 이별, 이복규(거제고 교사))

 

*이 글은 인터넷서점 예스24의 북진 붘키앙(www.yes24.com/bookian)에 기고한 글입니다. 전제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