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몇 년 전에 시댁 근처에 살면서 너무나 힘든 일을 겪었던 나는 우울증에 대인 고포증까지 오직 죽는게 최고의 방법이구나,, 할 정도로 힘들고 지쳐 있을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고 신랑이고 다 팽개치고 혼자 그 곳을 울면서 떠나 나올 때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닷물이 어찌나 포근해 보이던지 그 곳으로 들어가면 정말 평안해질 것만 같았었다. 지칠때로 지쳐서 혼자 친정으로 와선 친정 부모님 몰래 울기도 정말 많이 울고 나 때문에 친정 아빠 또한 남 모르는 눈물을 많이 닦으셨다. 그러다 난 결심 하듯이 다시 울 집 그러니까 시댁 근처에 있는 나의 집으로 가서 부랴 부랴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내 아이들 둘을 데리고 그 곳을 이사 나오면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라고... 다시는 며느리 노릇 그만 할 거라고.. 남편도 다 필요 없으며 난 이제 우리 아이들 엄마 노릇만 충실히 하며 살거라는 각오를 하고 그 곳을 빠져 나오는 날이 내겐 지옥불을 빠져 나오는 그런 느낌이였다. 그렇게 좋던 시누와 올케 사이를 과감히 이간 하시는 시아버지를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 참았던 화까지 다 폭발하고 난 그곳을 그렇게 빠져 나왔다. 그렇게 난 병원 치료를 하면서 점점 평화를 찾아가고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울 남편 결국 가족 찾아 자기도 그 곳을 나와 버렸고 우리 가족은 다시 옹기 종기 모여서 살게 되었다. 명절 때만 되면 시댁 일로 다툼도 있었지만 내 마음의 상처는 무시하고 자기 부모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남편의 세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난 더 많은 상처를 그 때마다 감당을 했어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 막내가 임신이 되었고 그 소식을 남편한테 들은 시아버지는 바로 아이를 지우라 했다는 소리를 남편한테 전해 들었다. 그래서 일까.. 아이는 건강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태어 났고 생후 90일 되던 날 우리 아이는 차가운 수술대에서 4시간에 걸친 심장 수술을 했었다. 2월달 그 날 난 차가운 수술실 앞에 주저 앉아 생전 믿지도 않았던 하나님을 부여 잡고 간곡한 기도를 했고 그 기도의 응답이라도 하듯이 3개월만 살겠다던 아이는 지금도 내 옆에서 건강히 소리 지르면서 독불 대장이 되어 있다. 그 수술한 내내 시댁 어느 누구한테도 전화 한 통이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부분에 못내 서운하게 돌아 왔었다. 아이가 점점 회복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난 내 속으로 결심을 하고 또 했었다. 죽어도 절대로 내 이 아이는 아버님 안 보여 드릴 겁니다. 궁금해 하지도 마세요.. 그렇게 시간과 세월은 흘러 우리 막내가 42개월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였는지 아님 보살핌이였는지 내가 독처럼 품고 있던 시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서운함들이 어느 순간부터 찾을려고 해도 전혀 찾아 지지가 않았다. 교회 다닌지 일 년 남짓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난 어제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냉정하고 쌀쌀할 거라 생각 했던 그 분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다정하게 내 귀에 들려 왔다. 날씨도 풀렸으니 아버님 우리 집에 한 번 다니러 오세요. 라는 소리에 약간 흥분 된 듯한 느낌까지 그대로 전달 되어 내게 전해 졌다. 우리 사는 것도 보시고 한 번도 못 보신 우리 막내도 보시구요.. 밥은 먹고 사나..하는 아버님의 이 소리가 잘 살고 있었구나,, 하는 안도의 소리로 내겐 들려 왔다. 그 동안 아이들에게만 전화를 하게 하였다. 명절엔 물론 난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들과 남편은 꼬박 꼬박 등 떠밀어 과일 몇 상자와 한과를 사서 보내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작은 다툼을 했어야 했지만 갔다오면 내 마음은 왠지 안심이 되고 좋아었다. 어머님과 상의 해서 한 번 다니러 오시겠다는 소리에 나 또한 아버님에 대한 그 동안에 미움과 서운함과 그런 상처로 인해 힘들었던 지난 것들을 다 묻어 버리기로 했다. 결혼한 지 14년이 다 되어 가니 이젠 전에 받았던 그리고 받아야 했던 그 상처들이 얼마나 나를 크게 만든 요인이 된 것인지 이제야 작게라마 알게 됨을 감사한다. 아버님이 오시면 무얼 어떻게 맛나게 해 드릴까 생각하니 은근히 설레기도 하고 흥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아버님 많이 늙으셨을텐데,,,,,,,
시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하다.
오래 전 몇 년 전에 시댁 근처에 살면서
너무나 힘든 일을 겪었던 나는 우울증에 대인 고포증까지
오직 죽는게 최고의 방법이구나,, 할 정도로 힘들고
지쳐 있을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고 신랑이고 다 팽개치고 혼자 그 곳을 울면서
떠나 나올 때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닷물이 어찌나 포근해
보이던지 그 곳으로 들어가면 정말 평안해질 것만 같았었다.
지칠때로 지쳐서 혼자 친정으로 와선 친정 부모님 몰래
울기도 정말 많이 울고 나 때문에 친정 아빠 또한 남 모르는
눈물을 많이 닦으셨다.
그러다 난 결심 하듯이 다시 울 집 그러니까 시댁 근처에
있는 나의 집으로 가서 부랴 부랴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내 아이들 둘을 데리고 그 곳을 이사 나오면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라고...
다시는 며느리 노릇 그만 할 거라고..
남편도 다 필요 없으며 난 이제 우리 아이들 엄마 노릇만
충실히 하며 살거라는 각오를 하고 그 곳을 빠져 나오는 날이
내겐 지옥불을 빠져 나오는 그런 느낌이였다.
그렇게 좋던 시누와 올케 사이를 과감히 이간 하시는 시아버지를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 참았던 화까지 다 폭발하고
난 그곳을 그렇게 빠져 나왔다.
그렇게 난 병원 치료를 하면서 점점 평화를 찾아가고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울 남편 결국 가족 찾아 자기도 그 곳을 나와 버렸고
우리 가족은 다시 옹기 종기 모여서 살게 되었다.
명절 때만 되면 시댁 일로 다툼도 있었지만 내 마음의 상처는
무시하고 자기 부모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남편의 세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난 더 많은 상처를 그 때마다 감당을 했어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 막내가 임신이 되었고 그 소식을 남편한테 들은 시아버지는
바로 아이를 지우라 했다는 소리를 남편한테 전해 들었다.
그래서 일까..
아이는 건강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태어 났고 생후 90일 되던 날 우리 아이는 차가운 수술대에서 4시간에 걸친 심장 수술을 했었다.
2월달 그 날 난 차가운 수술실 앞에 주저 앉아 생전 믿지도 않았던
하나님을 부여 잡고 간곡한 기도를 했고 그 기도의 응답이라도 하듯이
3개월만 살겠다던 아이는 지금도 내 옆에서 건강히 소리 지르면서
독불 대장이 되어 있다.
그 수술한 내내 시댁 어느 누구한테도 전화 한 통이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부분에 못내 서운하게 돌아 왔었다.
아이가 점점 회복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난 내 속으로 결심을 하고 또 했었다.
죽어도 절대로 내 이 아이는 아버님 안 보여 드릴 겁니다.
궁금해 하지도 마세요..
그렇게 시간과 세월은 흘러 우리 막내가 42개월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였는지 아님 보살핌이였는지 내가 독처럼 품고 있던
시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서운함들이 어느 순간부터 찾을려고 해도
전혀 찾아 지지가 않았다.
교회 다닌지 일 년 남짓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난 어제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냉정하고 쌀쌀할 거라 생각 했던 그 분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다정하게 내 귀에 들려 왔다.
날씨도 풀렸으니 아버님 우리 집에 한 번 다니러 오세요. 라는 소리에
약간 흥분 된 듯한 느낌까지 그대로 전달 되어 내게 전해 졌다.
우리 사는 것도 보시고 한 번도 못 보신 우리 막내도 보시구요..
밥은 먹고 사나..하는 아버님의 이 소리가 잘 살고 있었구나,,
하는 안도의 소리로 내겐 들려 왔다.
그 동안 아이들에게만 전화를 하게 하였다.
명절엔 물론 난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들과 남편은 꼬박 꼬박 등 떠밀어 과일 몇 상자와 한과를 사서 보내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작은 다툼을 했어야 했지만 갔다오면
내 마음은 왠지 안심이 되고 좋아었다.
어머님과 상의 해서 한 번 다니러 오시겠다는 소리에
나 또한 아버님에 대한 그 동안에 미움과 서운함과
그런 상처로 인해 힘들었던 지난 것들을 다 묻어 버리기로 했다.
결혼한 지 14년이 다 되어 가니 이젠 전에 받았던 그리고 받아야 했던
그 상처들이 얼마나 나를 크게 만든 요인이 된 것인지 이제야
작게라마 알게 됨을 감사한다.
아버님이 오시면 무얼 어떻게 맛나게 해 드릴까 생각하니
은근히 설레기도 하고 흥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아버님 많이 늙으셨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