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때돈을 벌게된 이야기(1)

세신200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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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7년전인 1997년의 이야기다.

졸업과 결혼을 동시에 했던 나는 어렵게 직장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몇년후

첫 직장의 경영상태가 어려워 월급을 제때 받을 수가 없어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결국 두자식과 아내의 생계를 위해 직장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알다시피

97년초는 우리가 금융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기아사태,해태,한보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던 시절이라 새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다 힘들었고, 더군다나 30대 초반

인 나로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한달쯤 그렇게 직장을 구하려 다니다. 둘째 놈 우유깞은 벌어야 되지않을까하는 생각에

노가다(막노동)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작정 인력시장이 열린다는 곳에 새벽 5시반에 나갔다.

(물론 지금은 용역회사들이 많이 있지만, 그때는 인력시장과 용역회사가 태동해 공존하던 때다.

그리고 나는 회사생활만 했던탓이라 용역회사가 있는 줄은 몰랐다.)

 

  새벽 6시가 되니까, 여기저기서 모닥불을 피우기시작했다. 엄청 사람이 많았다. 연령도 다양해

고등학교 갓 졸업한 어린 친구들부터 6,70은 된듯한 할아버지도 많았다. 참으로 늦겨울의 새벽은

추웠다.

 

  잠시뒤 승합차들이 줄줄이 들어 왔다. 사람들이 승합차만 들어오면 우르르 몰려다녔다. 겸연적어

처음에 그들 처럼 몰려 다니지 못했지만, 그날 일할려면 그렇게 해야한다는것을 깨닫는데는 불과 몇분

이 걸리지 않았다. 또 승합차들이 몰려들어 왔다.  뛰었다.

 

  조수석에서 한사람이 내렸다. 십장(노가다에서 잡부들끼리는 그렇게 부렀다. 십장님이라고)이 나왔다. 

 

"어제 타고간 여섯명 다나왔어?..이씨,박씨......."

 

여기저기서 대답소리가 들렸다.

 

"여섯명은 이차에 타고 .......거기,거기,자네도 , 아줌마도 뒷 차에...."

 

그는 어제 데리고 간 사람들 외에도 7,8명을 더 찍어 뒷차에 타라고 했다. 하지만 몰려든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와 눈길도 한번 마주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인원을 채우고 횡하니 가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무슨일이 있었는냥 다시 모닥불 근처로 돌아와 몸을 녹였다. 이것도 쉬운일이 아니구하는 생각이 쓰쳤다. 그리고 어제 저녁 쌀이 떨어져 라면을 먹으면서 봤던 아내의 그늘진 모습과 새벽에 일어나 나올때 보았던 둘째놈 얼굴이 자꾸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뒤에도 인부들을 태우려 오는 차량들은 계속되고 나의 행동도 시간이 갈 수록 더 적극적으로 바뀌어갔다. 하지만 일하려 나가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횟수가 많아 질 수록 차량들이 들어오는 시간이 자꾸 길어 지는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노가다는 7시부터 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전에 인부들을 데리고 가야하는 것이다.)

 

  어느 7시가 다 되었을 무렵 승용차 한대가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닫아야 했다. 그때까지도 처음 모여있던 사람의 반도 팔려가지 않는데..

승용차에서 조수석 창문을  열더니,

 

"사모래 두사람만 타요."

 

나는 이번에 필사적으로 달려가 맨앞에 섰고 조수석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사모래라니 그것은 또 뭔가 그냥 잡부도 아니고'  결국 난 문고리를 놓고 말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모래는 벽돌을 쌓는곳에서 모래와 시멘트를 썩어 벽돌 쌓는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는 일을 하루 종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요령도 있어야하고 조금은 노가다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결국 나의 첫 출근(?)은 데마찌(일이 없어 공치는 날)가 나고 말았다. 그렇게 삼일 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일도 한 번 나가 보지 못하고 남들 출근할때 집으로 들어 오곤했는 데, 그렇다고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보는 얼굴들중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과 친하게 되어 좋은(?)정보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부로 나갈 수 있는 곳이 시내에 여러 군데가 있는데, 이곳은 일당이 다른 곳보다 높고 소꾸링(조금은 노가다 경험을 가진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것과 자기는 용역회사서 아파트 청소만 한는 개잡부(그들은 아무런 기술이 없는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다)을 6개월정도 했는데, 그런일은 일당이 많이 약하고 용역회사에 매일 5000원씩 지불해야하고 30000원에서 35000원정도 가지고 간다는 것, 그는 기술(?)를 배우려고 이곳에 왔다는것등등 그리고 더 중요한것은 내가 처음 시작하는 것을 알고 내일부터 자신이 해왔던 용역회사에 같이 가자는 배려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다음날 부터 아파트 청소(공사중간중간에 잡자재들 운반하고 시멘트 가루나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일) 시작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 돈을 받는 즐거움에 휴일도 없이 일했다. 그나마 그로 인해 아내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벌이를 한다는 가장으로써 만족(?)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사실 막노동을 했던 때의 이야기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25층에서 청소를 하다 떨어질번 한 이야기며,잡부들 사이에도 파벌(?)이 있었던것등 기억하기도 싫지만 그렇게 7개월을 막노동을 했다. 그러나 처음 여기에 글쓰려고 했던것은 때돈 번었던 이야기 였으므로 그냥 이렇게 넘어가려고한다. 자꾸 왠지 모를 서러움도 복받쳐 오를고 해서말이다.

 

  오늘은 이쯤에서 이야기를 접고 다음번부터는 본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일제영향으로 생긴말들이 들어가 있어서 죄송한 생각든다. 그러고 글재주가 없어 재미가 없는것도 알고 있다. 다음번 올릴 때 부터는 엽기적이 었던 부분의 이야기가 많아 글재주가 아니더라도 재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길게 쓰지도 않았지만 아직도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프다.  처음엔 오늘 본론까지 들어 갈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겠다. 님들이 이해해 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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