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담그는 쳐녀..

아짐2003.05.10
조회14,340

결혼한지 육년째지만 아직 김치는 한번도 담궈보지 않았다.

아니.담궈 볼 생각도 안 해 봤다..

 

김치가 떨어지기도 전에 재꺽 재꺽 담아주는 친정 엄마가 가까운데 사시기 때문이다..

 

김치는 토종 한국인 입맛을 가진 나에게 없어선 안 되는 음식이지만 그렇다고 세식구 살림에 그렇게 마구 먹어지는 음식은 아니다..대여섯 포기 담아 주시면 네 다섯달은 먹는다..

 

그렇다고 내가 김치를 담아 본 적이 없는건 아니다..

나는 프랑스에서 삼년 정도를 살았었다..

내가 처음 프랑스에 갈때 나는 대학 2학년을 휴학하고 갓 스물 두살이 되는 꽃다운 나이이긴 하지만 어리고 철 모르는 나이였다..

 

그날 그때까지 부모 손을 떠나 본적 없었고 내 방 청소 한 번 한 적 없고 그 흔한 설겆이 한 번 해보지 않고 자란 나였다..그 야말로 온실 속의 화초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귀여움 받고 자란 외동딸이라 할줄 아는건 아무것도 없는 나였다..

 

그런 내가 한참 20대의 객기로 부모 품을 떠나 멋지게 독립하고 자기 생을 주체적으로 꾸려 보겠다는 허영심에 들떠 프랑스로 떠났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독립하지도 못했으면서도 서양화 전공이었던 나에겐 현실 감각 대신 까뮈니  지드니 하는 문학적 작가의 나라..또 수도 없이 유명한 화가를 배출한 예술의 나라..또 아모르의 나라..낭만의나라..라는 환상을 가지고 호기있게 출발하였다..

 

그런데 막상 낯선 나라에 혼자 떨어져 생활해 보니 사는게 말이 아니었다

밥도 할 줄 몰랐던 나에게 먹거리 해결은 정말로 큰 난제중의 하나였다..

어학을 했던곳은 시골이라 한국 음식점이나 식료품 가게도 없었다

 

어학 시절 원룸을 얻어 프랑스 문화원에서 사귄 친구랑 함께 자취를 했는데..그녀 역시 나와 다를 바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귀염둥이 막둥이였다..

그러나 그래도 언니라도 있던 그녀는 직접 하진 않았어도 본 것이 있어 그야말로 살림에 일자 무식이었던 나에게 스승 노릇을 했다.

나는 밥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구경이라도 해 본 그녀를 스승으로 모시고 밥 하는것부터 배웠다..

 

 

그렇게 힘겹게 딱딱한 바게트 샌드위치로 입천장 찔려가며 끼니 떼우고 학교 식당에서 피가 질질 흐르는 스테이크로 구역질 해가며 끼니를 떼우고 또 저녁엔 집에 와서 한국에서 가져온 멸치 조림과 김으로 끼니를 떼우며 하루 하루 힘겹게 민생고를 해결하고 있었다...

멸치도 점점 떨어져 가고 드디어 밥 한숟갈에 멸치 한마리만 올리기로 했는데 두마리를 올렸다고 싸우다가 이럴것이 아니라 김치를 한 번 담아 보자고 위험한 제안을 그녀가 했다..

 

 

김치만 있으면.....

 

정말 신날것 같았다..김치만 있으면 김치 볶음밥을 해 먹을 수도 있고..중국 식료품점에서 사온 일본이나 중국 라면이랑 먹어도 안 느끼 할것 같고 김치 찌게도 해 먹을 수 있을것 같고....

 

그런데 김치라 하면...

부엌에서 엄마가 산더미같이 배추를 쌓아 놓고 끝도 없이 일을 해 댔던 어마 어마한 광경이 떠 올라 엄두가 안났다..

그녀가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그래..스승이 믿으라고 하는데...

 

토요일 하루 날 잡아 중국 식료품 가게에 가서 재료들을 샀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젖갈,소금. 배추 두포기......

 

그녀 역시 엄마와 언니가 김치 담구던 풍경을 연상해 그 모습에서 김치 담구는 법을 유추해 내는것임에도 불구하고 제자 앞에서 초짜 티 안낼려고 왕 아는체를 하며 말했다....

 

" 욕조에 물 받아라.."

나는 스승님이 시키는대로 욕조가 철철 넘치도록 물을 가득 담았다...

그녀가 배추 두포기를 멋지게 네 조각으로 쩍 갈라  물이 가득한 욕조에 담궜다....

그리곤 말했다..

"일단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거야..이렇게 배추를 물속에 담군 다음 소금을 뿌리면 배추가 절여지는거지"

아....이렇게 똑똑할 수가...

그리곤 욕조에다가 소금을 옛다 한 웅쿰 뿌리며 말했다..

"이렇게 한 두어시간 담궈 놓으면 배추가 절여 지지..그동안 우리는 양념을 만들자..."

 

 

그리곤  우리는 신나게 양념을 만들었다...꼴랑 배추 두포기 담구면서 50포기 담굴때 욕조에 물 받아 소금 절인거 봐 놓곤 배추 물에 동동 뛰워 놓고 양념은 또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그녀는 엄마가 담군 기준으로 마늘을 백여개를 주면서 나보고 까고 빻으라고 했다

나는 그날밤 마늘을 너무 많이 까서 손가락이 화끈거려 잠 한숨도 못 잤다....

그렇게 끝도 없이 마늘을 까고 생강을 찧고 고추가루를 때려 부어 양념을 몇 양쟁이를 만들동안 배추는 절여지기는 커녕 물에 담궈 두니 잎만 더 파릇파릇하게 살아 더 없이 싱싱해져만 갔다...

 

 

그리하여 소금을 끝도 없이 때려 붓고 계속 소금 사러 뛰어 가고 하면서 겨우 사해의 농도 만큼이나 그 많은 물을 진하게 만들어 놓고서야 배추가 겨우 절여지고...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깜깜한 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나고 드디어 우리 앞에 빨갛게 양념 버무린 김치가 완성 되었다..

그때의 그 감격....

김치하고 밥 먹을거라고 하루종일 밥도 안 먹고 오매불망 김치만 바라 보고 있었으니 두 눈은 지쳐 푹 기어 들어 가고 뱃가죽은 달라 붙다 못해 등짝에 갖다 붙은지 오래였다...

 

 

마늘을 많이 까서 손가락엔 불이  난듯 화끈거리고.. 고생이라고 모르고 자란 내가 머리털 나고 그렇게 고생한적은 그때가 첨이었다....

 

"밥먹자..."

 

그리고 둘이서 폴폴 날리는 이태리 쌀로 한솥 가득 밥해서 우리가 직접 만든 김치로 밥 먹는 그 순간...

 

정말로 그 김치가 맛이 있는것이었는지 어땠는지는 지금에서야 알수 없는 노릇이었지만..정말로 그때 그 김치 맛은 환상 그 자체였다.

 

내 스승의 얼굴은 나의 존경심으로 마구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거지만..내 스승은 그때 김치를 담구면서 그녀가 이미 배추를 담굴때부터  실수했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조건 믿고 순종하는 제자 앞에서 차마 그녀의 실수를 인정할 수가 없어 욕조에 물을 비우는 대신 소금을 있는대로 때려 부었던거고 그야말로 천지 구분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나는 그 맛나는 김치를 씹으면서 왜 물을 그렇게 많이 부어야 하는건지 조용히 의문에 휩싸였다..

 

 

그 고생 스러운 경험이후...나는 김치의 여왕이 되었다...

파리로 거주지를 옮기고 혼자 생활하게 된 나는 한달에 한번씩 김치를 담궜다...

날이 갈수록 시간도 단축되고 기술도 숙련되고 담구는 양도 많아져 한번에 배추 스무 포기와 열무 스무단을 순식간에 담아 치웠다.

금요일 저녁에 한국 식료품점에 전화로 재료를 주문하고 저녁에 소금 뿌려 놓으면 담 날 아침이면 잘 절여져 있다..그러면 순식간에 양념거리 만들어 혼자 앉아 철퍼덕 철퍼덕 치대면 점심때가 되면 맛나는 김치를 먹을수가 있다...

그러면 한달동안 김치 볶음밥에 김치 찌개에 라면먹을때에...된장 끓일때에 넣어 먹으면 그 많은 김치가 한달이면 완전히 동이 난다...

 

정말로 맛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기억으로 그렇게 담궈서 익혀 먹는 김치는 정말로 맛이 있었다...내 김치가 어찌나 맛이 있는지 결혼해서 사는 유학생 부부도 파리 제일의 김치 맛이라고 추켜 세워 주곤 했었다.

주변의 유학생들은 나보고 김치 장사로 나서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참으로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유학시절을 떠 올리면 먹거리와 함께 했었던 추억이 젤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렇게 김치를 철퍼덕 철퍼덕 어렵지도 않게 잘도 담구던 내가 결혼을 해서는 한번도 김치를 담궈 보지도 않고  또 이젠 어떻게 하는건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할수만 있다면 지금 그때 내가 담궜던 김치를 한 번 맛보고 싶다..

그렇게 한국 음식이 그립고 궁했던 시절이라 그게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내 김치 담구던 솜씨가 휼륭했었는지.....

알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정말로 궁굼하다..

 

 

 

 

 

 

 

☞ 클릭, 다른 오늘의 talk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