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못 했던 그대는***

질경이200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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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지 못 했던 그대는***

 

금방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실연녀의 모습이던 그대는

 

편안한 초록옷 갈아 입고

새색시 되어 있다.

 

겨우내

훌쩍 커 버린 노루란 녀석은

쭉 뻗는 모가지에

쭉쭉 빵빵 다리에,

바짝 올려 붙은 엉덩이까지

살랑대고 사뿐거리며

임도를 걷다 혼이 빠져 달아 나고

 

비둘기는

머리 위 

떡깔나무 가지에서 구구 거리며

존재를 노래하고

 

변한건 내 기억력뿐이건만

지형마저 변한 듯한

골짜기에는 두 부부 나란히

새 집지어 도란거리며 이야기하고

 

눈물 닦지 못한 자녀들은

애닮픔으로 만들어 연결한 이승의 다리너머에서

가슴 쓸어 내리지만

 

나는 무아지경의 산사람이 된다.

 

나물이랑 고사리랑

너무 자라

용도를 잃어 버린 쟁기처럼 되버렸을 거라며

이 산행 줄곧 미뤄왔건만 

 

생각이 앞서 가는 것도 언제나 피곤한 일,

 

나를 위한 한 마당은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을 핑계삼고

게으름을 변명삼아

집을 나설 엄두를 내지 않았을 뿐이다.

 

끊임없이 바지가랭이 물고 늘어지는 그대를

애써 외면하고

포옹한 두 팔 간신히 풀었을 때,

 

어스름이 내리고

그대품에 머리풀어 세상사 모두 씻고

하산하는 길

이제 노동이 필요 없는

목장안 *농우(農牛)는

농부의 이랴!소리가 그리워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야구게임중계를 듣는다.

 

모닝커피 한 잔에 식은 땀을 비 오듯 쏟아 내는

중년남자의 

안간힘도 이해 못 할 일이지만

 

농우(農牛)가 야구중계를 들어야 하는 것은

더욱 이유 모를 일이다.

 

*농우: 지금은 보기 어려운 옛 쟁기끌며 농삿일 돕던 소,

 

글/이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