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도 모르는 남편

김정미200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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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으니 꼭 빨래를 널고 주무세요"

 

긴 햇살이 아까워 퇴근 후 잠시 산에 올랐어요

울긋 불긋하던 봄 꽃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온 산천이 진초록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이 좋은 녹음의 계절에 왜 이리 쓸쓸해지고 추워지고 슬퍼지는지요

녹음이 싱그러울수록 몸과 마음이 더 초라해지는 느낌을 잠시 받고 내려왔네요

마음도 그렇고 피로도 몰려오던 차 초저녁 잠에 빠져 들었답니다

위의 대화문은...

남편에게 이른 한 마디였습니다

 

깊은 밤을 지나 이 새벽녘에 병처럼 잠을 깨었어요

저는 늘 이 새벽을 좋아한답니다

하루의 고단함이, 그 힘든 노동이, 기쁨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거든요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신비로움의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을 들게도 합니다

새벽은 그래요... 모든 것이 잊혀지고, 못 견딜 소음을 지워주고, 눈을 아프게 하던 것들을 가려주고

떠들기 분주했던 내 입술마져도 굳게 닫아 걸어 무거운 자물통을 채워주거든요

모든 것은 가슴으로 모여들듯, 마침내는 아무런 생각들도 없어지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보이는 이 시간이 소중합니다

오직 정직과 진실만이 가능한 이 시간...

어둠을 밝히고 나니 현실적인 것들이 눈에 확 들어 옵니다

역시 남편은 빨래를 널지 않았군요

새벽 네시(?)에 빨래를 널고 다시 어둠속에 잠겨봅니다

나의 인기척에도 몸 한두번 뒤척일 뿐 아내의 존재 저 만치에 누워 잠든 남편.

작은 부스럭거림에도 그토록 예민하던 사람이 세월의 더께에 눌려 감각마져 둔해졌나 봅니다

 

끊어진 잠을 이어보려고 노력합니다

일에서 백까지 세워보기도... 수백개의 계단을 올라보기도...

두시간은 더 자 주어야 하는데 말이죠

가늘게 들려오던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짐도 노력하는 잠에 도움이 않되네요

점점 도움이 약해지고 있는 남편을 힐끗 바라보며 그냥 일어나고 말았네요

 

"취미는 무엇이죠?

좋아하는 노래는요?"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은 있나요?"

이십대 다운 질문이었죠 

그 대답이 맘에 들어서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이에요 백번을 물어도 똑 같은 제 마음입니다

"전 사실 유행가는 아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연예인은 한분도 모르구요"

희디 흰 와이셔츠에 까아만 양복을 입은 착해 보이는 이십대 중반의 신학생.

저 나이에 세상에 저토록 무관심한 사람도 있다니...

세상것에 별 관심없는 사람... 뚜렷한 사명감을 지닌 듯한 사람.

바보스런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정말 그 것이 이유의 전부였지요

 

"형수님~ 형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실거에요

저와 형님은 한 초등학교 동문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전 총동문회 회장이구요 우리 형님은...

지금까지의 졸업생중에서 형님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느날 동문 한명이 제게 왔더군요

'혹시 ...를 아시나요? 총동문회 명단에 그분 주소만 빠져 있어서요

  바로 형님의 이름이었죠  제가 얼마나 웃었는지 아세요

그런 사람입니다 "

 

"당신 지금 저 노래 부르는 가수 이름 알아?"

"알지...조...용...?..."

이젠 주눅이 들어 말도 더듬으며 제 눈치를 살핍니다

그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조용필씨였구요  그래도 국민가수 아닙니까?

그간 달라진 세월이 이 정돕니다

이런 남편과 삽니다요 제가...

유행가 한줄을 알기나 하나, 농담 한마디 할 줄을 아나...

하루는 남편의 친구분이 그러더군요

" ....씨와는 두번다시 노래방에 않갈겁니다  찬송가를 부르시더군요"

키타로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 흘리는 우리 남편.

 

 

결혼의 이유가, 이제 속상함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솔잎위에서 솔잎을 먹지 않고 살아가는 송충이.

세상속에서 결코 하나되지 못하고 떠 있는 기름같은 사람.

약간의 날라리(?)기질의 저도 이젠 성인군자 다 되었어요

공동의 관심사가 다르니 대화가 통하기를 하나,  함께 웃음의 제목이 다르고... 울음의 제목이 다르니.

깨어있는 시간이나,  잠든 시간에도 우린 영원한 "동상 이몽"입니다

완벽한 다름을 지닌체 한길을 걸어가는 부부.

그래서 참 외롭겠다구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저에겐 많은 것들이 있답니다

우리나라에 그 많은 산이 모두 제 것인걸요  그리고 아이들... 그 밖에도...

 

우리집은 두개의 파로 나뉘어져 있죠

노론과 소론이냐구요?  남인과 서인이냐구요?   뭐 그런 것과 비슷하죠

남편과 와 아내과(?)... 그 과(?)라는게 바로 고양이과, 나비과...하는 그런 종류죠

어쩌면 그렇게 반반씩 닮았을까요  참 공평한 세상입니다

그래도 다행인게 제과(?)가 하나 있음이죠

그 아이 미래에 제게 250평짜리 저택을 지어준다고 하니 마음도 든든하구요

"참 당신도...노후에 집이 그리 중요해.

사는대로 살다 가면 되지"

아~ 멋없는 사람...그대 이름은 남편이니라

 

오늘의 죄인은  누굴까요

1.따사로운 초여름의 긴 햇살

2.햇살이 아까워 오른 산

3.초저녁 잠

4.잠이 깬 새벽

5.널지 않은 빨래

6.불면의 순간

7.코고는 남편

8.포기한 잠

9.유행가 모르는 남편

10.남편 흉보는 아내

 

미안합니다  남편님...

내일은 제가 멋진 노래 한곡 가르쳐 드릴께요

요즘 배운 "묻어버린 아픔"이 좋긴 한데,  과연 그 가사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어질런지요

"그만 둬라  이 나이에 사랑은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