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오는 봄 물결이 산도 푸르게 샛강도 푸르게 들판도 푸르게 물들이는 신록이 사람의 마음까지도 푸르게 물들인다. 오월 신록의 포근한 고움을 어디다 비교할 수 있으리라.....
시골에 살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실감나게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특히 산과 들판의 변화하는 모습은 세상을 덮을 수 있는 보자기가 있어도 감출 수 없다. 신록의 유년이 녹음 의 청년으로 바삐 변해 가기 때문이리라.....
산과 들판이 변해 가는 모습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니 좁은 새가슴으로 받아들이기란 가히 담아내기 모자라 넘쳐 날 뿐이다. 아침마다 바라보는 산은 초록의 절경이고 산 꽃들 어지러운 향내 꽃바람에 실려가 누리에 붉고 푸르게 흐드러져 천지를 달려간다. 지금 상큼한 아카시아 하얀 꽃이 지고 나면 초하, 성숙하지 못 한 또 다른 여름이 꽃 지고 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니.....
우리동네 작은 고개 마루 내려오면 청보리가 들판에서 푸르런 봄바람을 가볍게 타고 있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보리수염 사각거리는 푸른 소리 귀기울여 보는 보드라움에 나는 가만히 아름다운 감동을 한다. 보리이랑 푸른 감동 속에는 서글픈 보릿고개의 배 아리던 아련한 추억도 잠겨있으려니.....
몇 마지기 청보리밭에 일렁이는 맑고 밝은 푸른 바람의 희롱에 청보리 풋풋한 내음이 구수해져옴은, 서글픈 내 유년의 아름다움이 소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눈시울 적시지 않는 슬픈 아름다움이 청보리 이랑마다 곱게 베어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만큼 슬픈 것도 없으리라.....
"입춘대길 건양다경" 춘련절구 붙일 때쯤이면 마을의 굴뚝에는 서서히 연기가 사라지는 가난의 미운 계절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서글프게 다가와서 뱀의 또아리처럼 질기게 감겨왔다. 할머니는 보리 싹 뜯어다 모자란 양식 아끼려 죽을 끓여 식구들 오순도순 먹게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픔에 겨워 어머니가 겉 삶아 놓은 보리쌀 한 줌 한 줌 먹다보면 어느새 소쿠리는 빈 소쿠리가 되어 버렸다. 물을 잘 먹지 못하는 보리는 초벌 삶아서 밥을 할 때 다시 한번 지어야 먹을 만한 보리밥이 되기 때문에 어느 집이나 한 번 삶아서 바람 잘 통하는 소쿠리에 삼베 보자기를 덮어 보관하였다. 들일 나갔다 돌아오신 어머니는 빈 소쿠리를 보고 황당해 하였지만 먹성 좋은 어린것들의 배고픔에 오히려 당신의 가슴 아파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봄바람에 익어 가는 여물지도 못한 풋보리 이삭 꺽어 불서리를 한다. 어설픈 모닥불에 털 가시 거슬린 보리 알을 손바닥에 비벼 한줌씩 입에라도 털어 넣고 쫄깃거리는 풋보리의 비릿함으로 배부름을 대신하기라도 하면 입술은 깜부기로 황칠 한 듯 새까매지고 그래도 깔깔 웃음으로 봄노래를 불렀다.
허기짐에 찬물 한 사발로 목을 추기시던 아버지의 헛기침.....
들풀처럼 살아오신 외로운 세월을 나는 지켜보며 자라왔다. 모두들 전설 같은 저 멀지도 않은 세월을 되돌아보려하지 않을 뿐 그 외로운 세월을 시커멓게 지켜보고 살아온 할머니와 아버지는 흙으로 한 많게 돌아가시고, 다시 새잎이 돋아나듯이 태어난 내 아이들은 보리와 밀의 이삭도 구별할 줄 모른다. 모와 벼와 나락도 구별 못하는 아이 같은 어른들도 있으리니.....
먹거리가 지천으로 쌓이고 계절을 잊어버린 푸성귀에 국적불명의 과일이 산처럼 쏟아지는 풍요로운 세상에 무감각한 배부름이 오만으로 쌓여 가는 시절이련만.....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시절,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가난하였어도 묻어나던 인정 어린 손길의 맛이 없어진 오늘에도 나는 정녕 배부르지가 않다.
아슬아슬한 가난의 구비 넘어 보리밥이 별미가 되고 건강식이 되는 시절, 소문난 보리밥집을 찾아 한나절의 자동차 타기를 마다 않는 이런 시절도 있으려니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리까? 우리 할머니는 .....
때로는 찬란한 봄이 몹시도 싫어지기도 한다. 칠칠맞지 못하던 보릿고개의 가난했던 유년이 묻어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보리이랑 훑어 가는 바람결에 속삭이며 알 여물어 가는 청보리 이삭의 합창을 보노라면, 그 아픔의 유년도 먼 추억이 되어 아름다워지고, 배고픈 세월을 지켜보고 살아온 대지의 푸근함이 지난 시절을 잊게 해 준다. 봄바람에 여전히 미소 짖는 청보리 푸른 이랑이 잠시 비켜가던 봄의 아픔도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다가올 뿐이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들 하지만, 몇 마지기 청보리밭에 불어오는 봄바람의 일렁거림은 보이는 그대로 아름다울 뿐이다. 아름다움은 우연히 만날 수 있어도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눈길로 때로는 지나칠 수 있다. 청보리밭의 바람 푸르런 아름다움은 애써 찾아 헤매지 않아도 봄이면 우리마을 작은 고갯마루 넘을 때마다 스쳐 지나가지만 않는다면 나는 언제나 볼 수 있다. 보릿고개의 서글픔도, 아름다운 추억의 화석으로 굳어 버린 내 가슴을 술렁거리며 보리이랑 쓰다듬는 봄바람은, 보리피리 불며 할머니의 빈 젖 만지다 잠들은 당신의 빈약한 품으로 나를 다시금 실어 가리라......
새롭게 살아가는 또 다른 나날 11
새롭게 살아가는 또 다른 나날 11
아름다운 것만큼 슬픈 것은 없다
달려오는 봄 물결이 산도 푸르게 샛강도 푸르게 들판도 푸르게 물들이는 신록이 사람의 마음까지도 푸르게 물들인다. 오월 신록의 포근한 고움을 어디다 비교할 수 있으리라.....
시골에 살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실감나게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특히 산과 들판의 변화하는 모습은 세상을 덮을 수 있는 보자기가 있어도 감출 수 없다. 신록의 유년이 녹음 의 청년으로 바삐 변해 가기 때문이리라.....
산과 들판이 변해 가는 모습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니 좁은 새가슴으로 받아들이기란 가히 담아내기 모자라 넘쳐 날 뿐이다. 아침마다 바라보는 산은 초록의 절경이고 산 꽃들 어지러운 향내 꽃바람에 실려가 누리에 붉고 푸르게 흐드러져 천지를 달려간다. 지금 상큼한 아카시아 하얀 꽃이 지고 나면 초하, 성숙하지 못 한 또 다른 여름이 꽃 지고 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니.....
우리동네 작은 고개 마루 내려오면 청보리가 들판에서 푸르런 봄바람을 가볍게 타고 있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보리수염 사각거리는 푸른 소리 귀기울여 보는 보드라움에 나는 가만히 아름다운 감동을 한다. 보리이랑 푸른 감동 속에는 서글픈 보릿고개의 배 아리던 아련한 추억도 잠겨있으려니.....
몇 마지기 청보리밭에 일렁이는 맑고 밝은 푸른 바람의 희롱에 청보리 풋풋한 내음이 구수해져옴은, 서글픈 내 유년의 아름다움이 소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눈시울 적시지 않는 슬픈 아름다움이 청보리 이랑마다 곱게 베어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만큼 슬픈 것도 없으리라.....
"입춘대길 건양다경" 춘련절구 붙일 때쯤이면 마을의 굴뚝에는 서서히 연기가 사라지는 가난의 미운 계절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서글프게 다가와서 뱀의 또아리처럼 질기게 감겨왔다. 할머니는 보리 싹 뜯어다 모자란 양식 아끼려 죽을 끓여 식구들 오순도순 먹게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픔에 겨워 어머니가 겉 삶아 놓은 보리쌀 한 줌 한 줌 먹다보면 어느새 소쿠리는 빈 소쿠리가 되어 버렸다. 물을 잘 먹지 못하는 보리는 초벌 삶아서 밥을 할 때 다시 한번 지어야 먹을 만한 보리밥이 되기 때문에 어느 집이나 한 번 삶아서 바람 잘 통하는 소쿠리에 삼베 보자기를 덮어 보관하였다. 들일 나갔다 돌아오신 어머니는 빈 소쿠리를 보고 황당해 하였지만 먹성 좋은 어린것들의 배고픔에 오히려 당신의 가슴 아파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봄바람에 익어 가는 여물지도 못한 풋보리 이삭 꺽어 불서리를 한다. 어설픈 모닥불에 털 가시 거슬린 보리 알을 손바닥에 비벼 한줌씩 입에라도 털어 넣고 쫄깃거리는 풋보리의 비릿함으로 배부름을 대신하기라도 하면 입술은 깜부기로 황칠 한 듯 새까매지고 그래도 깔깔 웃음으로 봄노래를 불렀다.
허기짐에 찬물 한 사발로 목을 추기시던 아버지의 헛기침.....
들풀처럼 살아오신 외로운 세월을 나는 지켜보며 자라왔다. 모두들 전설 같은 저 멀지도 않은 세월을 되돌아보려하지 않을 뿐 그 외로운 세월을 시커멓게 지켜보고 살아온 할머니와 아버지는 흙으로 한 많게 돌아가시고, 다시 새잎이 돋아나듯이 태어난 내 아이들은 보리와 밀의 이삭도 구별할 줄 모른다. 모와 벼와 나락도 구별 못하는 아이 같은 어른들도 있으리니.....
먹거리가 지천으로 쌓이고 계절을 잊어버린 푸성귀에 국적불명의 과일이 산처럼 쏟아지는 풍요로운 세상에 무감각한 배부름이 오만으로 쌓여 가는 시절이련만.....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시절,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가난하였어도 묻어나던 인정 어린 손길의 맛이 없어진 오늘에도 나는 정녕 배부르지가 않다.
아슬아슬한 가난의 구비 넘어 보리밥이 별미가 되고 건강식이 되는 시절, 소문난 보리밥집을 찾아 한나절의 자동차 타기를 마다 않는 이런 시절도 있으려니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리까? 우리 할머니는 .....
때로는 찬란한 봄이 몹시도 싫어지기도 한다. 칠칠맞지 못하던 보릿고개의 가난했던 유년이 묻어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보리이랑 훑어 가는 바람결에 속삭이며 알 여물어 가는 청보리 이삭의 합창을 보노라면, 그 아픔의 유년도 먼 추억이 되어 아름다워지고, 배고픈 세월을 지켜보고 살아온 대지의 푸근함이 지난 시절을 잊게 해 준다. 봄바람에 여전히 미소 짖는 청보리 푸른 이랑이 잠시 비켜가던 봄의 아픔도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다가올 뿐이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들 하지만, 몇 마지기 청보리밭에 불어오는 봄바람의 일렁거림은 보이는 그대로 아름다울 뿐이다. 아름다움은 우연히 만날 수 있어도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눈길로 때로는 지나칠 수 있다. 청보리밭의 바람 푸르런 아름다움은 애써 찾아 헤매지 않아도 봄이면 우리마을 작은 고갯마루 넘을 때마다 스쳐 지나가지만 않는다면 나는 언제나 볼 수 있다. 보릿고개의 서글픔도, 아름다운 추억의 화석으로 굳어 버린 내 가슴을 술렁거리며 보리이랑 쓰다듬는 봄바람은, 보리피리 불며 할머니의 빈 젖 만지다 잠들은 당신의 빈약한 품으로 나를 다시금 실어 가리라......
2003, 05, 14 광주시 광산구 운암동 에서
푸 른 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