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치니퀴

성경신자20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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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변화

캐나다 신부였던 찰스 취니퀴의 이야기

 

취니퀴는 1809년 7월 20일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퀘백주에 카모라스카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유명한 천주교 신부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최초로 금주회를 설립하여 "캐나다의 금주의 사도"라는 직함을 획득했습니다. 그의 능력과 신앙심 깊은 언동으로 말미암아 그는 일리노이스주에 정착해 살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아브라함 링컨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영국을 여행했는데 그의 생애에 이 특별한 이야기가 제일 먼저 런던에 제공되었습니다.

그는 90세까지 살다가 1899년 1월 16일 몬트리올에서 주님 나라에 먼저 가셨습니다. 그러나 저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오히려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큰 야망은 기독교인들을 개종시켜 그들을 나의 성당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1809년에 태어나 천주교에서 영세(領洗)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833년 캐나다에서 신부(神父)로 임명받았습니다. 지금 나는 74세인데 로마 교회(천주교)에서 신부직의 성직을 수여 받은 지 거의 50년이 됩니다.

나는 천주교에서 25년 동안 신부로 있었는데, 여러분에게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이 교회를 사랑했었고 교회 역시 나를 사랑했습니다. 이 성당을 위해서 나의 피를 전부 쏟기를 원했었고, 성당의 권력과 위엄을 미 대륙과 전 세계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내 목숨을 수 천 번이라도 바치고 싶었습니다.

나의 큰 야망은 기독교인들을 개종(改宗)시켜 그들을 나의 성당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천주교를 떠나서는 결코 구원이 없다고 들었고, 또 나도 그렇게 설교했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엄청난 수의 기독교인들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할 때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태어난 후 몇 년 안되어 우리 가족은 학교도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나의 첫 선생님이 되셨는데, 어머니께서 나에게 읽으라고 하셨던 제일 첫 번째 책은 성경이었습니다.

내가 여덟인가 아홉살 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적힌 쪽성경을 읽었는데 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읽었으면 하는 성경의 장들을 선택해 주셨고 나는 그 말씀에 기울이는 관심이 대단했었습니다.

성경책 읽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여러 번이나 밖에 나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거절했습니다. 그 말씀들 중 특별히 더 좋아하는 장들은 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성경은 집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전부터 그 성경을 소유하려고 애썼던 신부의 행동인 것 같았습니다. 이제 이 성경은 이 이야기에서 모든 것의 근원이 됩니다.

그 성경은 내가 어렸을 때 내 영혼에 들어왔던 빛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그 빛이 결코 변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빛은 아직도 내 영혼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사랑스런 성경 때문인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나는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 그리고 진리의 순수한 원천에서 물을 마신 자들 중에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오늘날 누리게 되었지요.

그러나 당신은 아마 물으실 겁니다.

"천주교 신부들은 신도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합니까?" 라고요.

물론 읽게 합니다. 그들이 읽도록 허락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날 거의 세계 각 처의 천주교에서 성경 읽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얼마간의 천주교인들 집에서 성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할 때 우리들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야만 합니다. 신부가 신도들 수중에 성경을 둘 때나, 또는 신부가 성당으로부터 성경을 받게 될 때,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부나 신도들이 비록 성경은 읽을지라도 결코 어느 상황에서도 그들의 상식으로나, 지능, 또는 그들 각자의 생각대로 한 마디라도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부로 임명받았을 때, 로마 교황의 만장일치(滿場一致)에 의해서만 성경을 해석하겠다고 맹세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로마 천주교에 가서 그들에게 성경 읽는 것이 허용되었는지 물어 보세요. 그들은 당신에게

"그럼요. 나는 성경을 읽을 수 있는데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어 보신다면 그들은 "아니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신부는 신도들에게 단호히 말하고 성당은 신부에게 단호히 말합니다. 즉, 그들 스스로 자신의 지식이나 상식에 따라 성경 중 한마디라도 해석할 수 없으며, 만약 그들 스스로 한 마디의 해석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죄(罪)가 된다고 말입니다.

사실상, 신부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버려지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아주 위험스런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는 것보다는 읽지 않는 편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성경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의 성과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성과는 신부들이나 신자들이 그들 수중에 성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성경을 읽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을 스스로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 책을 읽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천주교의 현 모습입니다.. 그들도 엄청나게 많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부들이나 천주교 평신도들의 책상 위에서 성경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만 명의 신부들 중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거나 그것에 유의하는 신부는 두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기저기 그저 몇 페이지 읽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지요.

천주교에서 성경은 봉함된 책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나의 마음에 성경이 귀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부가 되었을 때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에서 입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나의 원대한 목적은 미국의 기독교 목사들을 뒤엎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Holy Fathers"의 사본을 가지고 성경과 함께 밤낮으로 그 책을 연구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대항하여 싸우고 싶었던 것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서였지요.

나는 로마 천주교에서 나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연구를 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뇌성벽력보다 더 무시무시한 말씀이 나에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여!

내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들리는 이상한 음성이 있었습니다.

"로마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다만 사람들의 전통만 따르고 있는 것을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

밤의 고요한 시간 중에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음성은 뇌성처럼 강하게 반복되었습니다. 나는 거룩한 로마 천주교에서 생사를 같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조용히 해 주십사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음성은 더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을 때 그 분은 나의 속박을 끊어 버리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나의 속박을 끊어 버리시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구원의 빛으로 오셨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천주교 신부들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중 어떤 분은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잘못 판단하셨습니다. 때때로 나는 그들을 위해 울곤 합니다. 왜냐하면-바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가엾은 사람들은 주님을 거스려 싸우고 있고, 또 전에 내가 비참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몬트리올에는 훌륭한 성당이 있는데 그곳에는 15,000명을 수용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자주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주교께서 나에게 동정녀 마리아에 대해 설교하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신부들이 믿고 모든 곳에서 증거 하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내가 증거 했던 설교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자기 왕에 대항하여 반역했다가, 황제를 거스려 큰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을 말하기 위해 그가 직접 왕에게 가겠습니까? 그럴 수 없겠지요. 왕은 그를 꾸짖을 테고 그를 벌하시겠지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자신이 직접 가는 대신에 왕의 친구들 중 한 명을 택하든지, 왕의 근위병들 중에서 한 명을 택하든지, 혹은 왕의 누이나 어머니를 택해서 그들 손에 자기의 탄원서를 주어 그들이 가서 자기의 부탁을 말하게 하면 되겠지요.

그들은 그의 죄사함을 부탁하겠고 왕의 진노를 누그러지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번번이 왕은 거절할 부탁을 이 사람들이 청한다면 들어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罪人)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왕 중의 왕이신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신 왕에게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이 왕을 대적해서 반항적인 색채를 띠었습니다. 우린 그 분의 법을 발로 짓밟아 버렸으니 틀림없이 우리에게 화를 내시겠지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죄로 가득한 우리의 손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 그 분께 나아갈까요?

그럴 수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우리의 왕되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계시니까요.

공손한 아들이라면 사랑하는 어머니의 부탁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결코 거절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어떠한 부탁도 거절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셨을 때, 모친 마리아께서 자신에게 드리는 탄원서는 어떠한 것도 결코 거절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어떤 경우에게도 그의 어머니를 꾸짖은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어머니의 요구를 들어 드림으로 그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 때 말입니다.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도 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지요. 그 분 생전에 마리아의 어떠한 요구도 거절하셨던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늘날도 그 어머니의 어떠한 요구도 결코 거절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 우리들은 이 위대하신 왕앞에 죄투성이로 스스로 나아갈 수 없겠지요. 그분의 거룩한 어머니께 우리의 탄원서를 드립시다.

그녀의 하나님이시며, 아들 되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 발 앞에 그녀가 몸소 나아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간청하실 모든 부탁들을 분명히 받으실 것입니다.

그녀는 우리의 죄사함을 간청하셔서 그 사함을 얻으실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 나라에 여러분을 위해서 처소를 부탁드리실 테고 여러분은 그것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여러분의 죄를 잊으시고 여러분에게 진실한 회개를 주시라고 간청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청한 모든 것들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의 청중들은 밤낮으로 자기들을 위해 간구하시려고 예수님의 발아래 이러한 중보자가 계시다는 생각에 굉장히 흐뭇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또한 마리아가 그들의 죄용서함을 간구하여 죄사함을 받게 하신다는 것에 기쁨으로 차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이것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상식적인 종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아무런 반론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설교 후 주교께서 오셔서 나를 축복하시고 감사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설교가 몬트리올에서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무릎 꿇고 성경책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내가 했던 훌륭한 설교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나는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12장 46-50절을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읽었을 때 뇌성벽력보다 더 무시무시한 음성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취니퀴야, 마리아가 예수님께 구하는 요구를 항상 들었다고 말하였으니 오늘 아침에 너는 거짓말을 전했구나. 너는 마리아가 아들에게 온 것, 다시 말해서 그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달 동안 그녀를 떠나 있었던 아들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을 보지도 못하느냐?"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 곳은 너무 혼잡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자식이 있는 곳에서 모든 엄마들이 하는 것 같이 해야 되겠지요. 음성을 높여 예수님께 자기를 보러 오라고 말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성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 그분은 그녀의 청원을 들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그녀의 소리에 귀를 막으시고 그녀의 간구에 그분의 마음을 굳게 닫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공개적인 꾸짖음이셨고, 그러므로 그녀는 그것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의아해 했고 분개해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향하여 말했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모친께 가서 말하지 않습니까?"

그분은 이 놀라운 말씀 외에는 다른 대답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나의 어머니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하시고는 그분의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자,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과 나의 자매들을..."

마리아는 다만 홀로 남게 되었고 공개적으로 꾸짖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나에게 다시 뇌성과 같은 힘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 31-35절도 읽으라고요.

여러분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8장 19-21절에서도 똑같은 사건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의 청원을 들어주기보다는 그녀를 공공연하게 꾸짖는 이와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 음성은 어마어마한 힘으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소년이셨을 때는 요셉과 자기 어머니께 순종(順從)하셨단다. 그러나 그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구세주로서, 인간의 위대한 빛으로서, 세상 앞에 나서자마자 마리아는 사라져 버려야만 했다.

그것은 세상의 촛점이 예수님께로만 맞춰져야 하며 빛과 생명을 얻기 위해서 돌아서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님 뿐이셨기 때문이란다."

자, 그런데 여러분, 그 음성은 나에게 밤새도록 말하는 것이었지요.

"취니퀴야, 취니퀴야, 너는 꾸며낸 많은 이야기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설교했다. 마리아가 예수님으로부터 무슨 청이든지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너는 성경을 거스려 설교하였다."

나는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정말 한 잠도 잘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누가 피를 흘림으로 당신과 저의 빚을 갚아 주셨습니까?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침 식사에 초대해 주신 주교님과 식사하기 위해 그분께 갔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M. 취니퀴, 자네는 마치 눈물로 밤을 새운 사람 같구먼.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물으셨습니다.

"각하, 당신 말씀 대로입니다. 저는 한없이 쓸쓸하고 우울합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주교께서 물으셨습니다.

"오! 여기서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 방에서 당신과만 있도록 한 시간 정도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당신에게 당신이 의아해 할 이상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 식사 후 나는 그분과 함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제 당신께서는 저를 굉장히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어머니의 청원을 항상 들어 주셨다는 것을 안다고 제가 설교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각하, 저는 지난 밤 당신의 말씀보다 더 강한 다른 음성을 들었는데, 저의 고민은 제가 그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음성은 저에게 우리 로마 천주교 신부들과 주교들은 항상 허위를 전한다고 말했어요.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서 항상 그녀가 원하는 청들을 받으시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고요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각하,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 악마적이고, 저주적인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교께서는 말씀하시기를,

"M. 취니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자네 기독교인인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아니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라고 나는 대답했지요. (내가 성경에 너무 심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 기독교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 직접 대면하여 말씀드리겠는데 이제 제가 거짓말을 증거했던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각하, 당신께서도 다음 번에 설교하실 텐데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의 어떠한 청도 거절하신 적이 없었다는 것을 빙자해서 우리들이 마리아께 기원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시겠지요.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주교께서는,

"M. 취니퀴, 자네 좀 지나치구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각하! 말은 무익(無益)하니 여기 복음서가 있습니다. 읽어보십시오."

나는 복음서를 주교의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제가 이미 표시해 놓은 곳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읽어 보셨습니다.

나는 그 분이 그 말씀들을 처음으로 읽었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이 가엾은 분은 너무 놀래서 말도 못하고 떨고만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분은,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이지?"

하고 물으셨습니다.

"글쎄요. 이것은 복음서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당신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탁하려고 온 것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를 꾸짖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그분의 어머니라고 여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 사실을 공공연하게 설교하심으로 마리아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의 어머니시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도록 하셨습니다."

주교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도 좋은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각하, 누가 십자가 위에서 당신과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그분은 대답하셨어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누가 피를 흘림으로 당신과 저의 빚을 갚아 주셨습니까?"

마리아셨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셨지."

"그렇다면 각하,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누가 죄인들을 더 사랑하셨습니까?

마리아 셨던가요? 예수님이셨던가요?"

예수님이셨다고 그분은 다시 대답하셨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세상에서 마리아에게 나아갔던 죄인들이 있었습니까?"

"없었네."

"당신은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께 갔던 죄인을 기억하십니까?"

"그래. 많이."

"그들은 꾸지람을 들었습니까?"

"결코 그런 적이 없었지."

"당신은 예수님께서 한 번이라고 죄인들에게, 마리아에게 가거라 그러면 그녀가 너희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기억하십니까?"

"아니 없네."

"당신은 예수님께서 불쌍한 죄인들에게, 나에게 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래,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셨지."

"그분은 이 말씀들을 철회(撤回)하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아니 결코 없었지!"

"그렇다면 누가 죄인을 구원할 유일한 능력이 있었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지요.

"오! 예수님이셨네!"

"자, 각하!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이제 하늘 나라에 계신 이래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소원과 능력을 조금이라도 읽으셨다거나, 그분께서 이 능력을 마리아에게 위임하셨다는 것을 성경 말씀에서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자 주교께서는

"그렇게 할 수 없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시다면 각하, 여쭙겠는데요. 어째서 우리들은 그분께, 단지 그분께로만 가지 않는 것입니까?

왜 우린 불쌍한 죄인들을 마리아에게 가도록 권유하는 것일까요?

당신 스스로 그녀가 능력에 있어서나 긍휼에 있어서나 사랑이나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데 있어서나 그 어느 것도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다고 고백하심에도 불구하시고요?"

그때 가엾은 주교께서는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 분은 내 앞에서 떨고 계셨고 나에게 대답을 할 수 없게 되자 용건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나를 떠나 가셨습니다. 그분의 "용건"이란 나에게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교황의 발아래 계속해서 묶어 매는 많은 사슬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얽어매고 있는 사슬들을 끊어 버리기 전에 내가 대항해야 될 다른 싸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비록 그러한 고민이 있었을지라도 성당을 위한 내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주교들은 저에게 큰 권세와 권한을 주셨었고 교황은 저를 많은 신부들 위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소원이 있었는데 다른 신부들과 함께 많은 것에서 점차로 성당을 개정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며 그저 "사람의 전통"을 따라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스스로 믿고 싶었습니다.

1851년 나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거류지를 찾기 위해 일리노이스 주로 갔었습니다. 약 7만 5천명의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천주교의 이름으로 소유가 된 일리노이스의 거대한 초원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식민지에서 거창한 일을 시작한 후 나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성경을 사서 거의 모든 가정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주교께서는 이 일로 나에게 매우 진노하셨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천주교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교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지도하시기 원하는 방법대로 그들을 인도하기를 원했습니다.

때마침 시카고 주교께서 우리 프랑스인들이 참을 수 없는 일을 그 때에 하셨습니다. 아주 굉장한 위법이었으므로 나는 교황에게 그를 면직(免職)시키라는 글월을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주교께서 그분 자리로 대신 보내졌는데, 이 새로 온 주교께서는 나를 찾아가 보라고 대리인을 보내셨습니다.

그 대리인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M. 취니퀴, 우리들은 당신이 전에 시카고 주교를 면직하도록 한데 대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천주교에 더 이상 속해 있지 않다고 여러 곳에서 의심을 받고 있어요. 당신이 이교도이며, 기독교인이라고 의심을 하고 있지요. 당신과 당신의 교인들이 여전히 훌륭한 로마 카톨릭인 이라고 전 세계에 증명할 수 있는 서한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거기에 아무 이의도 없습니다."

라고 저는 대답했지요.

"교황께서 보내신 신임 주교께서는 당신으로부터 분명한 서한을 받기 원하고 계십니다."

라고 그 대리인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종이 한 장을 집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밤낮으로 나에게 말하며 나의 믿음을 자극시키는 그 조용한 음성에 대해 아주 귀중한 기회인 것 같이 저에게 느껴졌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하며, 그저 "사람의 전통"을 따라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스스로 믿고 싶었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각하, 일리노이스의 식민지에 있는 저희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거룩한 교황과 천주교 안에서 살기를 원하며, 이밖에는 구세주(救世主)가 없으며, 또한 이 사실을 높으신 분들께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저희들은 당신들의 권한을 그리스도의 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권한에 복종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이 말에 서명했고 나의 교인들에게도 서명하도록 권하자 그들도 서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문서를 대리인에게 드리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다."

라고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주교께서 용납하실 것이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며 그분은 저를 안심시키셨습니다.

주교께서 그 복종한다는 글을 읽으셨을 때 그분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분명히 아셨으므로 기쁘게 결정하셨습니다.

"당신이 복종한다고 하니 매우 기쁩니다. 왜냐하면 우린 당신과 당신 교인들이 기독교로 바꾸는가 해서 염려했었지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나의 어리석음을 보여줌으로 나의 수치를 인정해야만 되겠습니다. 그것은 인간인 주교와 화평하게 되기를 기뻐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는 화평하지도 않으면서...

주교께서는 내가 그분의 제일 좋은 신부들 중 한 사람이라고 공포한 내용의 "평화의 서신"을 나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곳에 머물기 위해서 이 판결을 가지고 이 지방 주민들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하심으로 나를 감찰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아닌 인간과의 화평이었던 이 화평을 깨뜨려 버리셨습니다.

주교께서 후에 전신국에 가셔서 다른 주교들에게 나의 질문 내용을 알리고 그들이 이 진술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습니다.

바로 그날 그들은 만장일치로 이 주교님께 회답(回答)하셨습니다.

"당신은 취니퀴가 변장(變裝)한 기독교인인 것과 또 그가 당신을 기독교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가 복종하겠다고 한 것은 당신에게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진술서를 없애 버리지 않는다면 당신 자신도 기독교인입니다."

주교께로부터 편지를 받은지 10일 후 내가 그분께 갔을 때 그분은 전에 나에게 주었던 "평화의 서신"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꺼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것이 바로 그 편지인 것을 알고는 난로로 달려가 그것을 불에 던져 버리시는 것이었어요.

나는 깜짝 놀라 그 편지를 꺼내려고 불로 뛰어갔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것은 벌써 다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교께 돌아서서,

"각하, 당신께서 어쩌면 이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저의 소유인 그 문서를 저의 손에서 취하셔서 제 동의도 없이 그것을 소멸해 버리십니까?"

"M. 취니퀴, 나는 자네의 상관이며, 그래서 자네에게 설명같은 것은 할 필요도 없네."

라고 그분은 대답하셨습니다.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각하, 저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신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보다 뛰어나시고 당신보다도 훨씬 더 높으신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물러서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저에게 올바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존전(存前)에서 저는 당신의 잘못에 대해 항의(抗議)합니다."

"이거 원, 자네는 나에게 강의하려고 이 곳에 왔나?"

"그런게 아닙니다. 각하! 그러나 저는 당신께서 저를 모욕하시려고 이 곳에 오게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M. 취니퀴, 나는 자네가 잘 아는 대로 복종한다는 진술이 아닌 서한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자네를 이 곳에 오도록 했네."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저에게 어떤 진술서를 요구하고 계십니까?"

"자네는 이 몇 마디를 빼고 시작해야만 되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우리가 당신들의 권위를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면' 이라고 쓴 이 말들 말일세. 그리고 무조건 나의 권위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한다는 말만 그저 하면 되네. 즉 내가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한다고 약속하면 되지."

그 때 저는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각하, 당신께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복종한다는 진술서가 아니라 숭배한다는 진술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에게 그렇게 할 것을 거절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고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토록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그리고 나서 모자를 집어들고 주교에게서 물러 나왔습니다.

나는 예약해 두었던 호텔에 가서 방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내가 취했던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검토(檢討)해 보았습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분명하게 천주교가 그리스도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서운 진리를 배웠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입으로부터가 아닌, 카톨릭의 적으로부터도 아닌, 바로 카톨릭 그 자체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나는 공식 문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카톨릭 교회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나는 천주교를 포기한 것이 잘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 여러분,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검은 구름이 몰아쳐 왔는지...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의 영혼이 이렇게 검은 구름에 쌓였습니까?"

나는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에게 길을 보여 달라고.

그러나 얼마 동안 아무런 대답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천주교를 버렸습니다. 지위도, 명예도, 나의 형제들과 자매들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버렸습니다.

나는 교황과 주교들과 신부들이 또 교단에서 나를 공격하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나의 명예와 나의 이름을 없애버릴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나의 목숨까지도.

이 죽음에 이르는 전쟁이 천주교와 나 사이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싸움에 대항하는 나를 도우려고 내 편에 남아 있는 어떤 친구라도 있는가 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친구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까지도 나를 비난하려고 연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형편없는 배반자로 보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민들이 그리고 아주 많은 친구들이 있는 나의 사랑하는 마을이 나를 거부할 것이며 내가 세상에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셨다. 그렇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를 사셨다면 그분은 나를 구원(救援)하신 것이다.

그때 나는 기독교인들 중에 아는 친구가 없나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그 동안 나는 기독교인들을 대적하여 말하고 글을 썼었기 때문에 그 곳에는 한 명의 친구도 없었습니다. 이 싸움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 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벅찼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지독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면 나는 이 싸움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방에서 차가운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 즉 나에게 악수를 청하려고 내미는 손도, 나를 보고 엷은 미소를 짓는 단 하나의 얼굴도 찾아 볼 수 없는, 다만 나를 배반자로 보는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그러한 세상에 나간다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멀리 계신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주 가까이 계셨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나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나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너는 복음서를 가지고 있지 않니? 그것을 읽어 봐라. 그러면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나는 성경책을 폈습니다.

내가 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펴셨습니다.

나의 눈은 고린도전서 7장 23절에서 멈췄습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이 말씀과 함께 나에게 빛이 왔습니다. 그리고 처음 구속의 위대한 비밀을 사람이 알 수 있는 만큼 나는 알았습니다. 그분은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구나!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완전하시다! 그렇다면 나는 완전하게 구원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반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린양(羊)의 피로써 구원받았다."

이 말씀들은 나에게 너무나 달았으므로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마치 생명의 샘들이 터진 것 같았고 새로운 빛의 홍수가 내 영혼(靈魂)에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 같이 마리아에게 나아감으로 나는 구원받는 것이 아니구나. 연옥이나 면죄나 신앙고백, 아니면 고해성사에 의해서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구나!"

그리고 천주교의 모든 거짓 교리들은 마치 탑이 밑바닥에 충격을 받아 무너져 내리듯이 나의 마음으로부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천사들도 나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러한 큰 기쁨과 평안이 느껴졌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비참한 죄를 범한 나의 영혼에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기쁨의 커다란 외침으로 나는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의 선물, 저는 당신을 영접(迎接)합니다. 저의 마음을 받아 주시고 영원히 당신께서 주장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선물이여, 제 안에 계셔서 저를 깨끗하고 강하게 하시옵소서. 제 안에 계셔서 나의 길과 나의 빛과 나의 생명이 되소서. 제가 주님 안에 지금부터 영원히 거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사랑하시는 예수님, 저만 구원하시지 마시고 제 백성들도 구원해 주소서. 그들에게도 이 선물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저를 용납하소서.

오! 그들이 당신을 영접하여 제가 지금 부요하고 행복하게 느끼는 것 같이 그들도 느끼게 해 주옵소서."

내가 빛과 구원의 커다란 신비를 깨달은 것은 이런 식이었는데, 그것은 너무 단순하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위대하고 아주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의 손을 벌려 그 선물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이 선물 안에서 부유했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선물입니다. 즉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다만 그 선물을 받고 그것을 자랑하고 그리고 그것을 주신분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내 입술에 두었고 예수님 외에는 결코 증거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습니다.

나는 유월절 날 아침에 나의 거류민(居留民)들 가운데 도착했습니다. 모든 주민들은 몹시 흥분하여 나에게 달려와서 어떤 소식을 가지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 모였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 선물을 선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선물하셨는지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선물인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 즉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 죄를 용서함 받은 것, 그리고 선물로써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그리고 나서 나는 그들이 이 선물을 받고 싶은지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여러분을 떠날 때입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여러분에게 천거하기에는 여러분을 너무 존경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교황을 따르는 것이 더 낫다거나, 구원받기 위해서 마리아의 이름으로 비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자리에서 일어나심으로 나에게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그냥 앉아 있어 나를 무척 놀라게 했으며, 교회 안은 그들의 흐느낌과 눈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은 나가겠다고 나에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켜보고 있을 때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것은 굉장한 변화였지요. 어떻게 평범한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나는 기쁨에 찬 소리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어제 나를 구원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나와 함께 여러분은 홍해를 건너 약속의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선물 안에서 행복하고 부요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다른 방법으로 질문을 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황을 따르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마리아의 이름으로 비는 것보다 예수님 이름으로 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죽은 후 구원받는다는 천주교의 황당무계한 연옥보다 여러분의 신뢰(信賴)를, 오직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어린양(羊)의 피에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만일 신부가 여러분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전해 주는 것보다, 제가 여러분에게 순수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시면 일어나심으로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람입니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울면서 나에게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간청했습니다.

이 선물, 이 위대하고 말할 수 없는 선물이 처음으로 그들 눈 앞에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귀하게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이 선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무리들의 기쁨을 여러분에게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군요. 나처럼 그들은 이 선물 안에서 부요와 행복을 느꼈습니다. 내가 믿기로는 천 명의 영혼의 이름이 그 날 생명 책에 쓰여졌다고 봅니다.

약 6개월 후 우리 중의 2,000명이 개심자가 되었습니다. 1년 후에는 약 4,000명이 되었고, 지금은 우리의 옷이 빨아져 어린양의 피로써 희게 됨을 입은 자들이 거의 2만 5천명이나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한 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中保者)이십니다.

이 소식은 아메리카 전 지역에 급속히 퍼졌고 심지어 프랑스와 영국까지 전해졌습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신부인 취니퀴는 남자들의 고귀한 무리 중에 상위(上位)의 위치에서 천주교를 떠나 버렸습니다. 어느 곳이든지 이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마다 예수님의 이름이 찬미(讚美)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영감(靈感)에 의한, 절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후 몇 백년 동안은 사도들의 서신이(성경의 신약 부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도시에서는 교황에 의해 실행되는 세력 있는 정치가, 특히 로마에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가르침과 전통 안에서 선도되어 왔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기원전에 기록된 어떤 고서(古書)들이, 이러한 전통을 더하기 위해서 성경의 구약 부분에 더해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이 책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 책들은 결코 히브리 성경의 한 부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책들은 오늘날까지 히브리 성경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책들에서 전혀 아무 것도 예시하시지 않으셨고 사도들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성경 인쇄에서 구약 성경을 원본대로 고쳤지만 로마 천주교에서는 아직도 이 첨부된 책들을 가지고 그대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신약은 본래 로마 천주교 성경과 기독교 성경이 모두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 두 종교의 성경에서 우리들이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내용은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실상 그리스도는 마리아를 숭배(崇拜)하는 것을 제지(制止)하셨었습니다. 그녀는 누가복음 1장 48절에 따라 존경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복음 11장 27절과 28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신지 주목해 보십시오.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에 가르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동정녀를 경외하는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마리아를 숭배하라거나 경배하라고 권하는 곳은 없습니다. 성경의 어떤 곳에서도 마리아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준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어떤 곳에서도 성도 중 어느 누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中保)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5)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大祭司長)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분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데, 그것은 그분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속죄 제물로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 14, 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고 충실된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가운데 마리아나 성도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성경은 지옥(地獄)의 실체(實體)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곳은 불신자와 마음에 회개를 하지 않은 자를 위한 심판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나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순전히 로마 천주교에서 지어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연옥을 가르치신 적이 없었으며, 그분의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거꾸로 가르쳐졌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그는 그의 주님과 함께 거(居)하려고 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함을 얻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calvary 십자가에서 받으신 그분의 고난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두 깨끗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죄의 일부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 전부를 위해서.

히브리서 1장 3절에,

"...(예수께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2장 13절과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교령)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에 자동적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그분의 용서하심과 회개(悔改)와 믿음에 의해서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가 오직 calvary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받으신 그분의 희생과 고난에 의해서만 깨끗해진다는 사실에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기도나 어떠한 종류의 선한 행위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변화되셨다면 그 생명이 선한 행위에 의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인들의 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과분한 호의)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입니다.

많은 기도나 미사, 그 밖의 어떤 것에 의해서 얻어진 면죄(免罪)는, 존재하지도 않은 연옥으로부터 당신을 구원하는데 있어 아무 소용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셨고 영원히 모든 죄인들의 문제를 calvary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와 미사는 결코 한 사람도 천국에 가게 할 수 없습니다.

로마 천주교의 미사는 죄인들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다시금 고난과 죽음에 내어 주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깨끗함)을 얻었노라"

여러분의 믿음이 미사에서 드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calvary 산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있어야만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4절 ∼ 28절에서 이 사실을 알아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구약 시대의 제사)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그리스도께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서 생명이 끝나기 바로 전에 부르짖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단 하나의 죄의 제사는 끝나 버렸습니다.

완전하게! calvary  산에서!

이 완성의 기적은 끝없는 영원을 통해서 성도들과 천사들에 의해 계속 전해질 것입니다.

그럼 베드로전서 1장 18, 19절에서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여기 간단한 말을 주목해 봅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여러분은 기도와 미사를 위해서 여러분의 모든 은(銀)과 금(金)을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희생은 calvary 산 위의 그리스도의 희생뿐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무런 값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단순히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희생되신 그분의 아들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9 ∼ 1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책에서 그분이 하신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완전한 용서함을 베풀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값도 요구하는 일도 없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분의 선물이신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당신이 죄 사함을 받는데 해야 할 것은 영원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믿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꼭 한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당신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다른 무엇보다도 그분을 사랑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당신의 죄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요구(要求)를 회개(悔改)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여러분을 죄 안에서가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라고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사람들에게 말한 메시지는 두 가지 였습니다.

즉 그들이 해야만 했던 것은 "하나님게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행 20:21)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진실하게 그분께 돌아오신다면 그분은 당신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바로 지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참 회개함 없이, 그리고 당신의 완전한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단순히 믿는 것이 없이 죽는다면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은이나 금은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지, 당신이 죽은 후에 그것들은 당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 당신의 구세주와 당신의 주님이 되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도자전도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