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리저리 매일 누군가가 쓴글만 보다가.. 저도 과연 쓸게 없을까 해서 고심끝에 몇자 적어봅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3년.. 그때 당시 제 나이는 19살이였습니다. 익산이라는 조그마한 곳에 살고 있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횟집일을 배우며 돈을 벌었고 방도 구하며 열심히 일하며 사는 나름 꿈을 가진 성숙한 소년이였습니다. 횟집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한두달 정도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여행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부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김제에 (익산옆에 있는 작은 도시;) 당숙할아버지가 횟집을 하시는데 일손이 부족하시덴다 가서 돈도 벌겸 한 일년 도와드려라 돈은 넉넉히 주신덴다" 라는 말에 몇일을 고심했습니다. 여행준비까지 다 해놓았었는데.. 그래도 벌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아부지께 "알겠어요 몇일있다가 갈께요" 라고 했더니 지금 당장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김제로 향했습니다. 약 70평 정도 되던 보통크기에 횟집.. 손님이 굉장히 붐비고 바빠보였습니다. 대충 일을 도와드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11시정도에 일어나보니 핸드폰에 문자가 약 10개정도 와있더군요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였죠. 저는 생각치도 못했기에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2월6일이 제 생일이기에 쌀쌀한 겨울날씨임에도 불구 굉장 푸근하고 그냥 미소가 지어지는 날이였던걸로 확실히 기억합니다. 그날 저녁 이것저것 적응하느라 굉장히 바쁜시간을 보냈는데 11시 마감 약 1시간 전.. 뒤에서 애기같은 목소리가 약간 짜증섞인 애교말투를 쓰길래 뒤를 돌아봤더니 하얀색 아식스 츄리닝을 입은 하얀 천사가 있었습니다. 싸이즈도 2치수는 큰거라 팔기장도 얼마나 길었는지 옷을 입고 온게 아니라 끌고 왔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겠군요..-_-; 엄마에게 (저에게는 증조할머니군요,,) 혼나고 있던 중이더라구요 저보다 1살많은 그때 20살.. 긴 생머리에 키는 160정도 너무나 하얀피부에 입술과 코끝에 점이 있던 애기같은 목소리를 가진 정말 예쁜 소녀였습니다. 처음본 순간 들고있던 칼을 떨어트려서 25만원짜리 제 칼끝이 부러지고 말았죠-_-; 몸이 아파서 1년을 쉬고 다시 학교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이리저리 증조할머니께 정보를 캐냈지요. 이름과 나이 학교 성격 등등.. (물론 바로는 아니고 조금씩조금씩 오래걸렸습니다.)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는 2년전에 재혼을 한상태 였고 지금까지 시골에서 조차 본적 없던 이 증조할아버지는 저와 촌수조차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그냥 아부지가 당숙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셧습니다. 그렇게 그냥 조금씩 알게되고 그때당시 다모임으로 친구도 신청하고 그때 제 핸드폰이 대포폰이라 전화가 무한대로 되어서 하루종일 통화도 하고 그랬더랍니다. 가게와 집이 붙어 있는 관계로 그 아이가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면 제가 다 들을수 있었고 그 소리에 따라서 그아이에 컨디션과 성격까지 파악할만큼 모든 신경세포가 그아이에게 집중이 되있었습니다. 저는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했기에 사장님과 사모님이 외출을 나가면 몰래 가게와 집 그 사이에서 만났고 웃으면 얘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사귀자는 고백을 하였고 몇번의 퇴짜끝에 결국 사랑하게 됬습니다. (퇴짜맞고 몇번을 멋모르고 달라든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럴 용기조차 안나더군요, 그땐 이아이가 아니면 죽을것 같이 간절했습니다.) 수능등급도 항상 1등급에 피아노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하던 그녀.. 사모님께도 허락을 맡고 평소에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서 였는지 나를 정말 좋게 보아주어서 인지 교제를 허락해 주셧습니다. 하지만 그게 나중에 트러블로 이어질줄은 정말 몰랐죠.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런 행복한 하루하루가 다시 올꺼라는 기대는 이제 안합니다. 그때 모든걸 다 누려서 더이상 누릴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대로 죽어버릴까도 여러번 생각할만큼 정말 진심으로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방에 찾아가서 피아노치는 것도 보고 일 중간중간 담배피러 나가면 그 아이창문 옆에서 피아노치는것도 보고 그냥 좋았습니다. 그게 너무.. 나중에 그 아이 어머니가 저를 부르더군요.. 수능이 1등급 나가던 아이가 4등급으로 떨어졌다.. 이런적 한번도 없었는데 너와 사귀더니 이렇게 됬다.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이런식으로 그냥..느낌으로 그만 헤어지라는 식으로 들리게끔 말씀하더군요.. 그아이도 성적이 자꾸 떨어져가니까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계속.. 울고.. 그러면서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제가 정말 한심했습니다. 적어도 그땐 그 아이가 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 느끼는 사랑만큼 이 아이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솔직히 자신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1년이고 2년이고 헤어져 있어도 언젠가 다시 만나면 다시 사랑할수 있을꺼라고 지금의 열정 그대로 간직한체 사랑할수 있을꺼라고..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말고 그냥 헤어지자고 정말 진심으로 사랑해서 헤어지는거니까 넌 니가 주어진일 열심히 하고 나도 내가 주어진일 열심히 하고 4개월 후에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후 일은 그만두고 저는 익산으로 다시 왔고 그아이는 한달여간을 울면서 전화오고 미안하다고 빌기도 하고 했지만 저는 매정하게 모두 끊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말입니다. 그떈 그 아이를 위해서였습니다. 가슴이 무척아팟지만 그아이에 미래를 위해서 그냥 참았습니다. 너무 보고싶어서 보충수업마치고 돌아가는 그아이를 차안에서 몰래 지켜본적도 있고 모자를 눌러쓰고 익산에서 김제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그 아이 뒷자리에 앉아서 따라간적도 있었습니다. 너무 보고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러던 그녀가 3개월 있다가 다른 남자가 생겨버렸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그러느냐.. 왜 변했냐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믿었거든요. 수능끝나고 다시 사랑할수 있을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다음날 눈이 오더군요 그아이 집앞으로 갔습니다. 창문을 똑똑거리니 겁먹은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길래 제가 "나야.." 했더니 말이 없습니다. "창문좀.. 열어봐 할말이 있어"라고 했더니 "난 너랑 할말 없어 더이상 보고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 라고 말하더군요.. 그냥.. 남자친구가 사겼다는 말을 들어도 참았습니다. 이날만을 기다렸으니까요 저는 제가 결심한 그때 그 믿음을 믿었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다시 사랑할수 있다는 그 미약한 믿음을 믿고 전화를 하고 싶어도 할수 없었고 보고 싶어도 보지 않았습니다. 다시 사랑할꺼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30분 정도를 그 아이 창문앞에서 서서 기다렸습니다. 눈은 계속 왔구요.. 그날 첫눈을 그렇게 맞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되니 발이 감각이 없고 얼굴에도 감각이 없고 몸에 마비가 오더군요..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이 얼마나 뜨거운건지 그날 알았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얼어버렸던 내 얼굴이 점점 따뜻해지는것 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계속 30분을 더 기다리다. 평생 울꺼 거기서 다 울었습니다. 눈물이 말라서 더이상 나오지도 않더군요,, 눈물이 말라버린다는 뜻도 그날 알았구요.. " 몇년이고 기다릴수 있어. 멋진 남자가 되어있을께" 라는 말을 남기고 차를 몰고 익산으로 넘어오는데 눈때문에 빙판이였는데도 그냥 막 밟고 와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늘이 살려준거 같네요 적어도 그땐 살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막 밟고 왔지만 지금생각해보면 한마디로 죽음에 질주................. 그 후.. 한번도 연락 하지 않았고.. 연락이 오지도 않앗지만 정말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왜.. 왜 대체 그녀는 저를 떠난걸까요? 제가 그렇게 쉽게.. 잊혀졌을까요..? 그리고.. 제가 그녀에 첫남자였고 저도 그녀가 첫여자 였습니다. 결혼까지 할생각까지 있었고 정말 목숨걸고 사랑했는데.. 정말 저는 아직도 이렇게 못잊고 힘들게 살아가는데 그녀는 아무생각 안날까요? 정말 다시는 못돌아오는 여자일까요? .... 몇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턱턱막히고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너무 보고싶네요..
사랑을 잊는 방법이 정말 남녀가 다른걸까요?
그냥 이리저리 매일 누군가가 쓴글만 보다가..
저도 과연 쓸게 없을까 해서 고심끝에 몇자 적어봅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3년..
그때 당시 제 나이는 19살이였습니다.
익산이라는 조그마한 곳에 살고 있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횟집일을 배우며 돈을 벌었고 방도 구하며
열심히 일하며 사는 나름 꿈을 가진 성숙한 소년이였습니다.
횟집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한두달 정도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여행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부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김제에 (익산옆에 있는 작은 도시;) 당숙할아버지가 횟집을 하시는데 일손이 부족하시덴다
가서 돈도 벌겸 한 일년 도와드려라 돈은 넉넉히 주신덴다" 라는 말에
몇일을 고심했습니다. 여행준비까지 다 해놓았었는데..
그래도 벌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아부지께 "알겠어요 몇일있다가 갈께요"
라고 했더니 지금 당장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김제로 향했습니다.
약 70평 정도 되던 보통크기에 횟집.. 손님이 굉장히 붐비고 바빠보였습니다.
대충 일을 도와드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11시정도에 일어나보니 핸드폰에 문자가 약 10개정도 와있더군요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였죠. 저는 생각치도 못했기에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2월6일이 제 생일이기에 쌀쌀한 겨울날씨임에도 불구
굉장 푸근하고 그냥 미소가 지어지는 날이였던걸로 확실히 기억합니다.
그날 저녁 이것저것 적응하느라 굉장히 바쁜시간을 보냈는데
11시 마감 약 1시간 전.. 뒤에서 애기같은 목소리가 약간 짜증섞인 애교말투를 쓰길래
뒤를 돌아봤더니 하얀색 아식스 츄리닝을 입은 하얀 천사가 있었습니다.
싸이즈도 2치수는 큰거라 팔기장도 얼마나 길었는지 옷을 입고 온게 아니라
끌고 왔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겠군요..-_-;
엄마에게 (저에게는 증조할머니군요,,) 혼나고 있던 중이더라구요
저보다 1살많은 그때 20살..
긴 생머리에 키는 160정도 너무나 하얀피부에
입술과 코끝에 점이 있던 애기같은 목소리를 가진 정말 예쁜 소녀였습니다.
처음본 순간 들고있던 칼을 떨어트려서 25만원짜리 제 칼끝이 부러지고 말았죠-_-;
몸이 아파서 1년을 쉬고 다시 학교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이리저리 증조할머니께 정보를 캐냈지요. 이름과 나이 학교 성격 등등..
(물론 바로는 아니고 조금씩조금씩 오래걸렸습니다.)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는 2년전에 재혼을 한상태 였고
지금까지 시골에서 조차 본적 없던 이 증조할아버지는 저와 촌수조차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그냥 아부지가 당숙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셧습니다.
그렇게 그냥 조금씩 알게되고 그때당시 다모임으로 친구도 신청하고
그때 제 핸드폰이 대포폰이라 전화가 무한대로 되어서 하루종일 통화도 하고 그랬더랍니다.
가게와 집이 붙어 있는 관계로 그 아이가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면
제가 다 들을수 있었고 그 소리에 따라서 그아이에 컨디션과 성격까지 파악할만큼
모든 신경세포가 그아이에게 집중이 되있었습니다.
저는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했기에 사장님과 사모님이 외출을 나가면
몰래 가게와 집 그 사이에서 만났고 웃으면 얘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사귀자는 고백을 하였고 몇번의 퇴짜끝에 결국 사랑하게 됬습니다.
(퇴짜맞고 몇번을 멋모르고 달라든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럴 용기조차 안나더군요, 그땐 이아이가 아니면 죽을것 같이 간절했습니다.)
수능등급도 항상 1등급에 피아노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하던 그녀..
사모님께도 허락을 맡고 평소에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서 였는지
나를 정말 좋게 보아주어서 인지 교제를 허락해 주셧습니다.
하지만 그게 나중에 트러블로 이어질줄은 정말 몰랐죠.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런 행복한 하루하루가 다시 올꺼라는 기대는 이제 안합니다.
그때 모든걸 다 누려서 더이상 누릴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대로 죽어버릴까도 여러번 생각할만큼 정말 진심으로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방에 찾아가서 피아노치는 것도 보고
일 중간중간 담배피러 나가면 그 아이창문 옆에서 피아노치는것도 보고
그냥 좋았습니다. 그게 너무..
나중에 그 아이 어머니가 저를 부르더군요..
수능이 1등급 나가던 아이가 4등급으로 떨어졌다..
이런적 한번도 없었는데 너와 사귀더니 이렇게 됬다.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이런식으로 그냥..느낌으로 그만 헤어지라는 식으로 들리게끔 말씀하더군요..
그아이도 성적이 자꾸 떨어져가니까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계속.. 울고.. 그러면서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제가 정말 한심했습니다.
적어도 그땐 그 아이가 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 느끼는 사랑만큼 이 아이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솔직히 자신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1년이고 2년이고 헤어져 있어도 언젠가 다시 만나면
다시 사랑할수 있을꺼라고 지금의 열정 그대로 간직한체 사랑할수 있을꺼라고..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말고
그냥 헤어지자고 정말 진심으로 사랑해서 헤어지는거니까
넌 니가 주어진일 열심히 하고 나도 내가 주어진일 열심히 하고 4개월 후에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후 일은 그만두고 저는 익산으로 다시 왔고
그아이는 한달여간을 울면서 전화오고 미안하다고 빌기도 하고
했지만 저는 매정하게 모두 끊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말입니다.
그떈 그 아이를 위해서였습니다.
가슴이 무척아팟지만 그아이에 미래를 위해서 그냥 참았습니다.
너무 보고싶어서 보충수업마치고 돌아가는 그아이를 차안에서 몰래 지켜본적도 있고
모자를 눌러쓰고 익산에서 김제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그 아이 뒷자리에 앉아서
따라간적도 있었습니다. 너무 보고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러던 그녀가 3개월 있다가 다른 남자가 생겨버렸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그러느냐.. 왜 변했냐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믿었거든요. 수능끝나고 다시 사랑할수 있을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다음날 눈이 오더군요
그아이 집앞으로 갔습니다. 창문을 똑똑거리니 겁먹은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길래 제가 "나야.."
했더니 말이 없습니다.
"창문좀.. 열어봐 할말이 있어"라고 했더니
"난 너랑 할말 없어 더이상 보고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
라고 말하더군요..
그냥.. 남자친구가 사겼다는 말을 들어도
참았습니다. 이날만을 기다렸으니까요
저는 제가 결심한 그때 그 믿음을 믿었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다시 사랑할수 있다는 그 미약한 믿음을 믿고
전화를 하고 싶어도 할수 없었고
보고 싶어도 보지 않았습니다. 다시 사랑할꺼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30분 정도를 그 아이 창문앞에서 서서 기다렸습니다.
눈은 계속 왔구요.. 그날 첫눈을 그렇게 맞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되니 발이 감각이 없고 얼굴에도 감각이 없고
몸에 마비가 오더군요..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이 얼마나 뜨거운건지 그날 알았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얼어버렸던 내 얼굴이
점점 따뜻해지는것 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계속 30분을 더 기다리다.
평생 울꺼 거기서 다 울었습니다.
눈물이 말라서 더이상 나오지도 않더군요,,
눈물이 말라버린다는 뜻도 그날 알았구요..
" 몇년이고 기다릴수 있어. 멋진 남자가 되어있을께"
라는 말을 남기고 차를 몰고 익산으로 넘어오는데 눈때문에 빙판이였는데도
그냥 막 밟고 와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늘이 살려준거 같네요
적어도 그땐 살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막 밟고 왔지만 지금생각해보면
한마디로 죽음에 질주.................
그 후.. 한번도 연락 하지 않았고..
연락이 오지도 않앗지만 정말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왜.. 왜 대체 그녀는 저를 떠난걸까요?
제가 그렇게 쉽게.. 잊혀졌을까요..?
그리고.. 제가 그녀에 첫남자였고
저도 그녀가 첫여자 였습니다.
결혼까지 할생각까지 있었고
정말 목숨걸고 사랑했는데..
정말 저는 아직도 이렇게 못잊고 힘들게 살아가는데
그녀는 아무생각 안날까요? 정말 다시는 못돌아오는 여자일까요?
....
몇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턱턱막히고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너무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