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 만들줄 아세요?"

김정미200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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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친구집에 초대라도 받아 간 날엔 내 눈이 휘둥그레지기가 일쑤다

아구찜에 해물탕, 감자탕, 약식, 잡채...등 등 없는게 없다

찜이면 찜, 탕이면 탕, 온갖 나물반찬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요리들이 등장한다

그럴때 마다 나자신 놀람을 금치 못한다

학교 다닐때 지들이나나 나나 같은 수준의 요리실력(?)이었는데  세월이 조금 흘렀다고 해서

이렇게 우리사이에  간격이 벌어질 수가 있냐 말이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게 자랑하는 한가지 있으니 다름아닌,

교내 무우썰기대회에 나가서 당당 입상을 한 경력이다

사실 그렇다 그것만은 자신이 있다

신속하면서도 모양도 일정하게 그리고 최대한 가늘게 잘도 썬다

이건 분명 옆의 사람과의 비교 분석의 결과이니 의심없이 믿어주시길.

명색이 주부라는 사람이 요리 한가지도 자신있게 소개 못하면서 웬 썰기타령이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런 내가 우선 더 서럽다

 

도토리묵...

그런 내가 아무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도토리묵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적당한 굳기와 고유의 빛깔,  그리고 약간 떨떠름한 맛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환상의 도토리묵을 바라보며, 음미하며 이렇듯 자랑까지 하게 되었으니.

"너 도토리묵 만들어 본 적있냐?"

"아니 그걸 어떻게 만들었어?  맛 좀 보자"

"너 도토리묵 만들 줄 아니?"

만든 도토리 앞에 놓고 동네 방네 자랑 전화가 한창이다

오늘 드디어 그 원수를 갚는 날이다

아구찜에 죽은 기를 한껏 살리는 오늘이야 말로 마음의 광복절(?)임에랴

다른건 몰라도 도토리묵 하나만은 어디에다 내 놔도 큰 소리칠 수 있다

왜냐면...오직 그 희소성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자기들이 나를 흉내낼 수  없는 것이...우선 도토리를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말이다

 

 

작년 가을 추석을 맞아 청주 시댁을 내려갔다

직장일로 오래 머무를 수 없어 하룻밤의 사랑으로 늘 돌아오게 된다

그래도 시댁이라고 종일 몸을 움직인 탓에 심신이 몹시 지쳐있었다

자리에 눕자 마자 깊이도 모를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무심결에 눈을 떴다

밤은 깊었는것 같은데 어디에선가 두런 두런 말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순간 시계를 보니 세시가 넘어 있었다

"이 야심한 시간에 누가 깨어 있을까"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살그머니 열어젖히니 주방문틈으로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이상하다  이 시간에 누가 깨어 무엇을 하고 있지?..."

까아만 어둠속에 한줄기의 가는 불빛, 그 불빛속에서 새어나오는 대화들...

"너무 떫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좋아나 할런지"

도무지 영문을 모른체 주방문을 열어젖히기에 이르렀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

어머님과 아주버님이 무슨 일인가를 하고 계셨다

"두분 이 시간에 않 주무시고 뭘 하고 계세요?"

"우리 이야기소리에 깼구나   내일 간다고 서둘러 도토리묵을 만드는 중이다

내일 올라가려면 피곤할텐데 어서 가서 자거라"

그러고 보니 낮에 아주버님이 이상한 열매를 가지고 분주히 오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도토리묵 만드는 전초작업을 하신 것이다

산에서 채취해 오신 도토리를 방앗간에 가셔서 가루를 내 오시고

그 가루를 지금 물에 넣어 뭔가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신 모양이다

시골에 왔으니 시골것을 맛보게 하려는 두분의 사랑의 작업이 밤새 계속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약 "밀레"와 같은 화가라면 저 두분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텐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를 저 힘든 작업의 순간을 더는 지켜볼 수가 없었다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해서 얼른 그 자리를 피하는 수 밖엔.

 

다음날, 하루해도 못 채우고 떠나기 발 구르는 며느리위해 두분의 도토리묵작업은 밤새 이어진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당 한복판에 못 보던 가마솥 하나 걸려있다

아주버님 나무에 불을 지피고

어머님 밤새 가라앉은 도토리물을 솥에 부으시고

연기로 인해 눈물 연신 훔치면서 열심히 저으신다

"도토리묵은 무엇보다도 화력조절이 중요하단다"

아주버님 연신 불 붙은 나뭇가지 이리저리 조절하시고 어머님 행여 눌을 새라 열심히 저으신다

그 옆에 별 군침돌지 않을 도토리묵의 완성되어감을 지켜보는 저 속없는 며느리.

 

 

바로 어머님이 싸 주신 그 도토리가루로 오늘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아주 가볍에 풀을 쑤듯이 가루를 넣고 물만 부어 저어주면 되는 것을...

마치 자기가 산에서 직접 도토리를 구해 그 어려운 작업을 거쳐 도토리묵을 쑨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내가 우습기도 하고.

그러나...어머님덕에 나도 자랑할 일이 생겨났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일

전후  내막은 바로 이렇게 된 것이다

 

돌아가신 우리엄마보다 십년은 젊으셨던 우리 시어머니.

그러나 세월을 어쩌랴

"너희들 잘 되는거 보고 죽어야 할텐데..."

그럼요 그말씀 맞습니다 맞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