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던 생일

쫑애200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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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올해 27살이다. 학교를 졸업한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어느 화장품 광고 카피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스물 일곱, 너무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아주 매력적인 나이지'....라는...

진짜루 매력적인 나이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나두 벌써 그 나이가 된거다.

그것도 벌써 반이나 지나가고 있지만...

난 열흘전 나의 27살 생일 얘길 적을까 한다.

생일 이틀전에야 난 5월 11일(일요일)이 내 생일이란걸 알았다. (음력 생일이라 날짜가 매년 바뀐다.)

과연 생일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을런지...

토요일. 퇴근하고 장도 볼겸 할인마트에 갔다.

혼자 자취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장을 보곤한다.

빵 코너를 지나면서 생각했다. 명색이 생일인데 케익이 있어야겠지?

게다가 생크림 케익은 30% 세일까지 한단다. 낼름 젤 싼걸로 하나 골랐다.

평소엔 잘 먹지도 않던 즉석 미역국도 하나 샀다. 왠지 올해는 생일날 미역국을 먹고 싶었다.

여기저기 식품 코너를 돌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고르며 내일은 뭘할까 궁리했다.

남친이랑 가까운 공원에 나들이나 갈까? 김밥도 싸갖구...

김밥 재료를 카트에 싣고 작은 음료수도 싣고 계속 쇼핑을 했다.

한참 그러고 다니는데 남친한테 전화가 온다. 뭐하냐구...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갑자기 남친이 그런다. 내일은 결혼식에도 가야한다고...

내 생일인데...차마 그 말은 못했다. 남친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전화를 끊고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미역국은 혼자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밥 재료를 제자리에 갖다놨다. 어차피 결혼식에 갔다오면 김밥 싸서 나들이 가긴 힘들테니까..

맥주나 사다가 아는 언니 불러서 마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건 포기했다.

그러면 왠지 슬퍼질거 같아서...필요한 찬거리만 몇가지 더 사고 쇼핑을 끝냈다.

집에 가는 길..친구 녀석이 심심하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녀석이 술이나 한잔 하잔다. 짜식...가끔은 도움도 되는구만...

11시가 좀 지나서 친구랑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엘 갔다.

친구넘은 쓰러져 자고 혼자 노래를 불렀다. 12시를 한참 넘긴 시간..

내 27살 생일은 노래방에서 시작됐다.

늦은 새벽녘에야 잠들었는데 습관처럼 10시가 좀 지나자 눈이 떠졌다.

배도 별로 안고프고 딱히 할 일도 없다. 갑자기 반찬을 만들어야겠다는 대견한(?) 생각이 든다.

지난밤에 사다놓은 메추리알을 삶아 조리고 몇달전에 사놓고 냉동실에서 썩히던 오징어도 손질하고..

요리책을 봐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만들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일주일 전에 사둔 오이도 그대로다.

책을 뒤져 적당한 요리법을 찾아내 그것도 해치웠다.

그러는 동안 남친에게서 결혼식에 갈 준비를 한다며 전화가 왔다. 저녁에 보자며...

어느새 오후가 되버렸다. 아무래도 뭔가를 먹어줘야 할거 같다.

어제 사놓은 케잌이 있다. 생일 케잌이...

할인매장에서 파는거라 그런가 초도 칼도 안들어있다. 초는 달란 소리도 안했지만...

초도 없고 축가도 없이 꾸역꾸역 한조각을 먹었다. 서글픈 생각이 든다.

먹었으니 힘을 써야지. 밀린 빨래를 했다. 청소도 했던가?

그 이후엔 정말 아무것도 할게 없다. 4시다. 아직 미역국도 안먹었다.

케잌을 먹어 배도 안고픈데 밥상을 차렸다. 오로지 미역국을 먹어야한다는 의무감(?)에..

더 우울하고 슬퍼진다. 생일날 혼자 먹는 미역국이 얼마나 서글픈지 첨 알았다.

여태껏 엄마한테서도 전화가 없다.

부모님 곁을 떠난 이후로 생일날엔 어김없이 엄마가 전화를 했었는데..

아마 이번엔 잊어버렸나보다.

하긴...연세도 많은데다 7남매 중 늦동이로 낳은 막내딸의 생일까지 기억하기  쉽지 않겠지.

게다가 요즘은 농사일로 많이 바쁘실테니 어쩌면 기억 못하시는게 당연하다.

그걸 알면서도 서운한건 어쩔 수 없다. 아직 인격이 모자란 관계로...

TV 프로그램도 재미없고 해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분도 우울한데 오늘따라 게임도 더럽게 안된다. 아주 날 잡았나보다.

5시가 좀 지난 시간.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남친이다.

이제서야 나타났군. 갑자기 짜증이 밀려온다.

한참을 버티다가 문을 열어줬다.

오기전까진 다 이해했는데...친구 결혼식에 갔다 오는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 대하니 모든게 다 짜증스럽고 화가 났다.

뚱한 얼굴로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하고 있으니 삐진걸 눈치챘나보다.

자기가 늦게 와서 화났냐고 물어본다. 공원에 자전거 타러 가자고도 한다.

이 시간에 가서 뭘 하자고...? 마지못한척 따라갈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기분이 영 아니다.

모든 상황을 잊고 싶었다. 우울한 기분도 싫고 남친도 보기 싫고...

자는게 상책이다 싶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했다.

남친도 날 달래려 따라눕더니 억지로 팔베게를 해준다.

그 순간 모든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엄마에게선 전화도 없고 남친은 결혼식 가서 오지도 않고..

혼자 먹어야 했던 케잌과 미역국을 생각하니 눈물이 차올랐다. 나 눈물 많은 인간이다.

그게 싫어서 안 울려고 이를 앙다물어 봐도 이미 눈물은 볼을 타고 흐른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너무 늦게 와서 그 때문에 삐져서 운다고 생각했겠지.

그것도 한몫 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는데...

등돌리고 우는 날 억지로 자기쪽으로 돌려 눕히고 가만히 안아준다. 언제나처럼..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깬 후 우린 자연스레 화해를 했다. 별다른 사과와 용서의 말없이..

그렇게 나의 우울했던 27살 생일은 지나갔다.

다음날 저녁...한참 근무할 시간에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제가 내 생일이더라고...그래서 전화했단다.

토라진 말투로 엄마한테 투정을 부렸다.

이제서야 알았냐고...혼자 서러워서 울었다고...

그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흐른다. 늦게라도 기억해준 고마움 탓일까?

사실 생일이라고 특별히 축하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부모님께 감사드려야 하는거지.

그걸 알면서도 혼자 먹었던 미역국을 생각하면 아직도 맘이 아릿하다.

내년엔 생일날 집에 내려가서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을까 궁리중이다.

혼자 먹는 서글픔을 알아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