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노자이야기1

렌시오약사님2003.05.22
조회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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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狂奴子 鄭光露(광노자 정광로)는 충장공 정분의 아들임.
어려서 이름은 원 이라고함

어떻게해서 진주 정가들이
장흥에 뿌리 내리게 되었는지
근원을 알려 주려고 합니다.

이야기는 광노자사적을 근거로 하여
상상으로 꾸몄고
어른들로부터
들은이야기를 토대로하였습니다.









광노자 이야기 1


때는 1452년 壬申년

남루한 거지행색의 스물예닐곱쯤 되보이는 한 젊은이가
남의 눈에띌까 저어하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도망치듯 한양성을 빠져나왔다.
비록 행색은 남루 하였으나 뗏 국물속에 감춰진 손이며

얼굴색이 마치 옥골선풍처럼 희고 고왔다.
틀림없는 반가의 자식이 변복을 하고

쫓기듯 도주하고 있슴이 분명 하였다.
그는 떨어진 짚신을 고쳐신고

개나리 봇짐을 추켜메고 길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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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을만큼 조정은
온통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병약한 왕은 삼정승을 불러들여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을 잇는다.

"내 자식놈을 부탁하오
경들이 어린아들을 끝까지 보필한다는 말을 듣기전에는
눈을 감지못하겠구려"

"전하.............
신들이 어찌....."

고명대신 중에는 분도 끼어있었다.

"이 일을 어찌할거나"
며칠전 처남 정인지와 만나

회유당한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오고 수치감 마져 느꼈다.

왕의 주변에는 단지 몇몇대신들이 힘을 다해 버티고 있지만
이미 힘의균형은 수양 일파에게 기울고 있었다.

분은 불안감을 느끼며 하나 있는 자식 원의 걱정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몇해전 성승의 여식과 혼인을 시켰으나
아직 손자를 얻지 못했다.

며늘아기는 오래비되는 성삼문처럼 똑똑하고
심성이 그지없이 착하였다.

아들 원도 이미 학문이 깊고 이목 또한 수려하여
전 왕 때부터

왕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준재였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명문가의 문을 여기서 닫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분을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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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버지로부터 사생이지
네 글자가 씌여져

아직 먹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종이는
눈물이 떨어져 이젠 글조차 알아볼수 없게 되버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가슴은 찢어질듯 져려왔다.
옆에서 소리죽여 울고있는 아내의 눈에도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못볼 것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은 어떻게든 죽지않고 살아서 종사를 이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그렇게 눈물로 이별한지도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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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계속

狂奴子 이야기 2

1453년 계유년 단종1년

"언제쯤 관원의 추적을 벗어날 것인가"
광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계유정난(자료실 참조)이 일어나 이미 영의정 황보인과
좌의정 김종서가 주살 되었다는 소식은 나라 안에 좍 퍼졌다.

대궐 안에서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우의정 이셨던 아버지 분( )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지만

집 떠나기 전에 아버지께서 늘상 되뇌이셨던 "불사이군(不事二君)"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도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거나
귀양을 가서 사약을 받을 것이 너무나 뻔하였다.

"역적으로 몰리면 삼족의 멸문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그렇게 되었을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도 잡히면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가문이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수양 일파가 쳐놓은 그물망은 물샐틈이 없었다.
그는 추적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변장하려고
옻나무 진액을 온몸에 발랐다.

옻이 올라서 얼굴이며 몸뚱이가 문둥병자처럼
진물러 버렷다.

또 벙어리 행세를 하느라고 뜨겁게 이글거리는
불 숯댕이를 입에 물었더니 혀가 녹아내려 버렸다.

잡혀서 고문을 당하면 자신의 신원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혀가 없는게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슬처럼 빛나고 아름답다는 뜻의 이름 광로(光露)도
미친 종놈이라는 뜻의 광노(狂奴)로 바꾼지 오래였다.

행색이 이러하니 검색하는 관원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쫓아버렸다.

밥을 빌어 먹으며 남의집 헛간이며 처마밑에 쪼구리고 누워
겨우 눈을 붙이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도망쳐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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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라 경상도 체찰사가 되어 남쪽 지방을 순시하고
충주 지경에 도착한 분은
그곳에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정난이 일어나 영상과 좌상이 주살되고
그 밖의 단종을 보필하고 수양과 맞서오던 여러 대신들이
생살부에 따라 모두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올 것이 온 것이다.
이미 짐작은 했으면서도 막상 그러한 소식을 듣고 보니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한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역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금부도사의

"역적 정분은 어서 어명을 받으라"는 말에

혼미한 중에도 기개와 위엄이 그를 버텨주고 있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쳐오더라도
충신은 불사이군이란 말을 가슴에 새긴지 오래다.

처남 정인지가 수차례 회유하였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사실 외아들 광로는 후 부인 변씨 소생이었다.
전 부인 정씨는 후사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정인지도 매형과의 우애를 잃지 않고
어떻게든 매형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분은 그래도 김종서처럼 아주 강성은 아니었다.
온건한 편이었다.

그래서 수차례 회유하면 자기쪽으로
올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윗돌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의리를 져버린 자기를
변절자라고 비웃는 듯했다.

분은 전 왕 문종의 고명대신으로써 한번 맹세한
충성을 져버린다는 것은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충신 가문의 절개와
사람으로써의 도리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분이 말하기를

"지엄하신 왕명을 어찌 노중에서 받는단 말인가
역관으로 가서 받겠다." 하니

"나는 다만 왕명을 수행할 뿐이오"하였다.
(자료실 충장공 정분 참조)

전라도 낙안으로 귀양가라는 어명이었다.

그 길로 발길을 돌려 유배지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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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