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로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ㅇㅇ200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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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주가지수가 1700선을 훌쩍 뛰어 넘었다. 종합주가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갱신했다는 뉴스가 매일 반복되다시피 한다. 사람들은 매달 은행에 꼬박꼬박 붓던 적금을 깨서 증권사로 달려간다. 펀드에 가입하기도 하고, 계좌를 만들어 주식을 직접 사고팔기도 한다. 몇 해 전 '내가 다시 주식을 하면 성을 간다'던 친구 녀석도 어느새 컴퓨터에 주식시세표를 띄워 놓았다.

싱가포르에 나와 살고 있는 내게 종합주가지수 1700은 사상최고치를 갱신했다는 싱가포르 ST지수 3500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사상최고치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다. 그런데 자세히 따져 보니까 싱가포르 ST 지수는 내게 아무 상관이 없지만, 한국의 종합주가지수는 내게 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지난 해 7월, 한국을 떠나면서 전세금을 빼서 대출금 갚고 남은 돈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수익성은 좀 떨어져도 오랫동안 안전하게 운용한다는 펀드에 일부 넣어 두었다. 다음에 한국 돌아갈 때 찾을 거라는 생각에 잊고 지냈는데, 주가가 많이 올랐다기에 호기심에 수익률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펀드 수익금이 한달 월급보다 훨씬 많다니...

최근 한 달 동안만 따졌을 때 펀드가 올린 수익금이 내 한 달 월급보다 훨씬 더 많았다. 물론 기분이 좋다. 공돈이 생긴 것 같아서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도 생각나고, 가족들과 외식을 할 궁리만 자꾸 하게 된다. 매달 이 정도 수익만 올릴 수 있다면 굳이 일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종합주가지수는 사상최고치를 갱신하고, 내가 가입한 펀드는 내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내 품에 턱 하니 안겨 주니까 즐겁고 신나긴 하지만 뒤끝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내가 한 달 동안 죽어라 일한 결과보다, 내가 가진 자산(자산이라 할 정도도 못 되지만)을 요령 있게 굴린 결과가 더 달콤하니 이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종합주가지수 1700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사람들이 많다. 실물경제를 반영한다는 종합주가지수는 사상최고치인데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고, 노동환경은 열악해져만 간다. 한 쪽에서는 돈 벼락을 맞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열심히 일 하고도 쥐꼬리만한 월급에 고용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그건 되레 악몽에 가깝다. 그 박탈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랴.

종합주가지수 1700은 투자자들이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공장에서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신분으로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하루하루 노동하는 이들의 땀의 대가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노동자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음으로 인해 회사의 수익은 기형적으로 높아지고, 그게 주식시장의 상승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회사 가치의 상승이 직원이 아닌 투자자들만 살찌운다면 누가 땀 흘려 일하려 하겠는가? 재주넘는 곰과 돈을 버는 왕서방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전세자금을 빼서 펀드에 넣어 둘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면, 투자는커녕 매달 붓는 청약통장마저도 부담스러워 하며 살았다면, 종합주가지수 사상최고치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펀드, 허황된 꿈만 꾸게 만든다

반대로 내게 여윳돈이 좀 더 있었다면, 그래서 그 돈을 모두 펀드에 넣어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종자돈이 얼마 되지 않아 한 달 월급보다 좀 더 많은 수익을 올렸지만, 돈이 많았다면 일 년 연봉보다 더 많은 수익을 앉아서 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허황된 꿈만 꾸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제대로 된 펀드 고르는 것도 또 다른 노력이라 할 수 있지만 그건 엄밀히 따져 노동은 아니다. 펀드수익률은 내가 일하면서 흘린 땀의 결과물로 되돌려 받는 정직한 열매는 아니라는 거다. 개개인의 건전한 투자가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있다. 최소한 내가 땀 흘려 일해 번 돈이 내가 들어 놓은 펀드 수익률보다는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게 정상이다.

종합주가지수 1700의 과실을 땀 흘려 일한 이들에게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주가지수 좀 덜 올라도, 회사 결산 이익폭이 좀 줄어도 노동자들에게 제 몫을 찾아 주는 게 더 급하다. 그게 지수 1700 보다 더 우리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축배를 들 때가 아니라,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