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00달러에서 백만장자까지 오른 미국 시카고의 구소련 이민자 출신 재벌이 미국 사상 최고 액수로 추정되는 1억8천300만달러를 이혼 위자료로 내주게 됐다.
4일 시카고 언론들은 이날 쿡카운티 순회 법원의 윌리엄 보이드 판사가 지난해와 같은 판결을 다시 내림에 따라 인베너지 LLC 의 마이클 폴스키 회장(57)과 마야 폴스키(55) 부부가 각각 재산의 절반인 1억 8천 300만달러를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31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에 이른 이들 부부는 2개월에 걸친 이혼 소송끝에 지난해 10월 보이드 판사로부터 재산을 절반으로 나눠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양측 모두 판사에게 이 같은 판결을 다시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당시 마이클 폴스키의 변호사는 "놀라울 정도의 부를 축적한 것은 마이클의 능력과 의지 덕분이었는데 결혼생활의 대부분을 주부로 지낸 마야 폴스키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 이라며 마야의 재산 축적 공헌 부분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마야 폴스키의 변호사는 "비록 주부로 지냈으나 마야는 남편의 믿을 수 있는 조언가로 성공에 기여했다" 고 반박하며 "현재 남편의 상황은 아내보다 미래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아내가 50퍼센트 이상의 재산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폴스키 부부는 1975년 당시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에서 결혼해 남편은 엔지니어로, 아내는 영어 교사로 일하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민을 결정하고 호주와 이탈리아를 거쳐 1976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도착했다. 당시 이들의 재산은 여행 가방 4개와 현금 500달러뿐이었으며 마야는 두 아들 가운데 장남을 임신중이었다.
이후 이민자 보조그룹의 도움으로 마이클은 미시간 앤 아버에서 엔지니어직을 얻게 됐고 1980년 시카고로 이사한 뒤 1985년 파워 장비 회사를 공동 설립하면서 에너지계에서의 비상을 시작했고 1991년 설립한 '스카이젠 에너지' 를 발전시켜 2000년 4억5천만달러에 매각했다.
마이클은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 MBA 를 취득하고 모교에 70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한편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샴페인의 데이비드 메이어 법학교수는 이번 케이스는 막대한 재산을 가정 주부에게 똑같이 나눠주기로 한 판사의 결정과 위자료 금액 등으로 인해 "주목할만한 역사적인 것" 이라고 말했다.
판사들은 그동안 중저소득층의 이혼에서는 부부의 재산을 동등하게 나눠왔으나 최근 10여년간 재벌들의 이혼에서는 이 같은 동등한 분배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1997년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회장인 게리 웬트의 이혼 소송 당시 아내인 로나 웬트는 재산의 절반을 요구했으나 코네티컷의 판사는 절반이 못되는 2천만 달러의 위자료를 줄 것을 판결했었다.
시카고재벌 1억8천달러 미국 사상최고 위자료
4일 시카고 언론들은 이날 쿡카운티 순회 법원의 윌리엄 보이드 판사가 지난해와 같은 판결을 다시 내림에 따라 인베너지 LLC 의 마이클 폴스키 회장(57)과 마야 폴스키(55) 부부가 각각 재산의 절반인 1억 8천 300만달러를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31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에 이른 이들 부부는 2개월에 걸친 이혼 소송끝에 지난해 10월 보이드 판사로부터 재산을 절반으로 나눠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양측 모두 판사에게 이 같은 판결을 다시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당시 마이클 폴스키의 변호사는 "놀라울 정도의 부를 축적한 것은 마이클의 능력과 의지 덕분이었는데 결혼생활의 대부분을 주부로 지낸 마야 폴스키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 이라며 마야의 재산 축적 공헌 부분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마야 폴스키의 변호사는 "비록 주부로 지냈으나 마야는 남편의 믿을 수 있는 조언가로 성공에 기여했다" 고 반박하며 "현재 남편의 상황은 아내보다 미래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아내가 50퍼센트 이상의 재산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폴스키 부부는 1975년 당시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에서 결혼해 남편은 엔지니어로, 아내는 영어 교사로 일하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민을 결정하고 호주와 이탈리아를 거쳐 1976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도착했다. 당시 이들의 재산은 여행 가방 4개와 현금 500달러뿐이었으며 마야는 두 아들 가운데 장남을 임신중이었다.
이후 이민자 보조그룹의 도움으로 마이클은 미시간 앤 아버에서 엔지니어직을 얻게 됐고 1980년 시카고로 이사한 뒤 1985년 파워 장비 회사를 공동 설립하면서 에너지계에서의 비상을 시작했고 1991년 설립한 '스카이젠 에너지' 를 발전시켜 2000년 4억5천만달러에 매각했다.
마이클은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 MBA 를 취득하고 모교에 70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한편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샴페인의 데이비드 메이어 법학교수는 이번 케이스는 막대한 재산을 가정 주부에게 똑같이 나눠주기로 한 판사의 결정과 위자료 금액 등으로 인해 "주목할만한 역사적인 것" 이라고 말했다.
판사들은 그동안 중저소득층의 이혼에서는 부부의 재산을 동등하게 나눠왔으나 최근 10여년간 재벌들의 이혼에서는 이 같은 동등한 분배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1997년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회장인 게리 웬트의 이혼 소송 당시 아내인 로나 웬트는 재산의 절반을 요구했으나 코네티컷의 판사는 절반이 못되는 2천만 달러의 위자료를 줄 것을 판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