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넘의 흑염소가 뭔지... 원...

바이올렛200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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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댓바람부터 걸려온 아랫동서의 전화를 받고서 다운되기 시작한 오늘 나의 일기예보는 아마도 오래도록 흐릴것 같다.

아직도 경상도 본토발음이 많이 묻어나는 억양을 애써 매끄러운 서울말로 가려서 하느라 동서딴엔 고생이 많지만...

그것도 내 마음의 일기예보에 따라 그 억양이 이뻐보일때가 있고... 썩 그렇지 못한 날이 있기도 하는데...

아무리 생각을 고쳐먹어봐도 왠지 오늘은 그 동서가 도저히 이뻐보이지가 않는다.

꽉 채우는 두 주간을 처음으로 시집살이 아닌 시집을 사느라... 말은 못해도 어제 저녁부터는 조금씩 목이 뜨끔거리는게... 아무래도 한차례 몸살이 올 조짐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10년을 건너뛰는 나이차 만큼이나 성격에서도 아랫동서와는 그렇게 늘 반대편에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는 편이다.

입가에 잔잔히 흐르는 미소 하나로 모든걸 때우고 사는 나와는 달리... 울 동서...

나이가 주는 자신감 만큼이나 아직은 세상을 참 도전적으로 겁없이 산다.

활달하고 당찬 그 모습이 보기 좋을때가 아직은 더 많지만... 가끔씩은...

어쩌다 아주 가끔씩은 생각없이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가 약점이되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곤 하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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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사 40을 넘긴 이 나이가 주는... 오랜 경험에서 오는 연륜을 어찌 따라오랴만은...

무늬만 두아이의 엄마지... 오늘같으면 정말 철없다...

어머님과 둘만 아는 비밀을 나누어 가졌으면 책임을 지고 그 비밀... 끝까지 잘 간수를 해야 할 것이지...


내일이면 집으로 가신다고 이따 오후에... 어머님이랑 백화점 쇼핑하기로 약속이 다 되어 있는데...

우리 시어머니...

눈치없는 둘째며느리 때문에도 가만보니... 큰며느리 눈치를 보는 곤란한 표정이...  죄송한 표현으로 치자면... 오늘은 좀 불쌍해보일 정도시다.

 

 

그 넘의 흑염소가 뭔지... 원...

 

 

우리집 큰놈과 10년 터울의 늦둥이를 낳은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

친정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그때의 내겐 몸조리며... 보약... 이런걸 솔직히 제대로 챙길 정신적인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7개월짜리 딸내미를 안고 다니러갔던 그 해 추석명절에...

힘든 뒷설겆이 다 물리고 조금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울 시어머니... 그러셨다.

" 어멈아! 흑염소 한마리 고아 주까? "

" 묵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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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뜻밖의 제안에 미처 마음의 준비를 못한 이유도 있지만

사실 그 때...

아직은 딸내미... 적은 양이나마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기에 선뜻 빠른 대답을 못했었다.

망설이는 나에게 울 시어머님 분명히 그러셨다.

" 난중에... 젖 다 떼고나면 그 때... 바로 전화해라이~~~ "

'집뒤에 텃밭에 놓아 믹이는 얌생이 한마리 잡아서 고아주께' 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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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어머님... 그 말씀만 안하셨어도...

 

 


시댁의 뒤편 텃밭에는 각각의 울타리 안에 황소와... 흑염소 가족과... 그리고 몇 마리의 개들이 어울려 살고있다.

우리 아들놈의 자연학습장이기도 한 그곳의 식사(?)담당은 언제나 시아버님과 물을들고 뒤를 쫓는 나의 몫이곤 했다.

가끔씩 나들이삼아 야트막한 언덕으로 끌고가 방목을하는 그 흑염소는 새끼가 넷이나 딸려있는...

그 어린 염소들에게는 세상에 둘도없이 소중한 그들의 애미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빤히 건너다보는 새까만 눈빛이 더없이 맑기만 한 그 새끼들의 애미를...

나 하나 몸보신 하자고...

지금 저렇게 애미품이 소중한 놈들에게서... 나는... 측은한 맘에서라도 그때는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차라리 사골을 사서 고아먹는게 났겟다 싶은 마음에서도...

 

 


그런데...

 

 

그 눈이 새까만 새끼들의 어미를... 인정머리도 없이...

세상에나~~~~

 

 

그 당시에 만삭이었던 아랫동서가 농담삼아 자주 그랬었다.

" 형님~~~  저 몸 풀고나면 흑염소 한마리씩 어머님께 고아달라고 해요? "

" 무슨... 한마리씩이나... "

" 정 그러면 한마리 고아서 둘이 나누면 되겠구만..."

"글구... 어머님께는 뭐... 흑염소 맽겨났냐?  어찌 그리 당당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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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

 

" 시집와서 소중한 자손을 늘려주었는데... 당연히 챙길건 챙겨야죠? "
 
" 그리구요... 한마리 가지고 둘이 나누면... 솔직히 약이 안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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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다.

그 때...

그 동서의 '약'이란 말을 가슴에 한번쯤은 단단히 새겨들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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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내 울적한 기분을 감출수가 없는 얼굴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맘에 걸리는지...

시어머니...

자꾸만 백화점 빨리 가자시며 당신은 벌써부터 외출준비를 다하고 쇼파에 얌전히 앉아 계신다.

 

 


보아하니...

모유수유를 안한 동서의 은근한 압력에 그만... 울 시어머니...

차마 그대로 이실직고하지 못했던 이 큰며느리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시고서는...


" 너거 행님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라이~~ "

" 큰아~는 저래~ 입이 짧아서... 큰일이데이~~ "

" 몇 달 후에 저 새끼들 팔아서 그때 지 몫아치 약 따로 해주면 안 되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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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인즉슨 이랬던 것 같았다.

 


좁은 집안에서...

언젠가는 어차피 들통이 날 수 밖에 없는... 뻔한 이야기지만...

당연한 내 몫 이었음에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대로의 분명한 까닭이 다 있었는데...

 


왠지 오늘은 그 속상함이 쉽게 풀어지지가 않을것만 같다.

 

어머니...

오히려 저희 자식들 입장에서 먼저 보약도 챙겨드리고... 넉넉한 용돈도 보내드리고 해야함이 늘 부족해서...

너무 죄송한 마음에 ...

그 때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

그 자리서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거...

분명... 속으로는 그렇게... 짐작은 다 하시고 계셨겠지요?

 


하지만...

절대로...

앞으로는... 적어도 이런 문제로는 동서간에 맘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셔야 돼요?

동서가 대신 채어(?)간 제 몫의 흑염소가 아까워서 이러는게 아니란 것도... 어머님만은 저의 깊은 마음속을... 그대로 읽어주실 수 있는 거지요?

 

몇주긴해도... 처음으로 한집에서 서로의 숨김없는 얼굴들 바라보면서...

부족한 며느리의 게으른 모습까지도 너그러움으로 가만가만 감싸주시던 그 큰 사랑에... 조금은 늦은 감사인사를 이렇게라도 드려보고자 합니다.


근데요...

그때 저랑 눈길이 딱 마주쳤던 그 애미염소의 슬프도록 맑은 눈길이  잊혀지지가 않아... 사실은 지금도 마음이 영...  짠~하기만 하답니다.

 


" 에구~~  철없는 동서야~~~ "

" 형님 속여가며 흑염소 한마리 니 혼자서 다 묵는다고 욕봤다.  정말... "

" 그래!!"

" 그리 맛이 있더나??? "

" 내... 오늘 저녁까지만, 동서 니... 미워할거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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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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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