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기상과 아픔이 있는 강화여행 ^^

문화인200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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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번 강화를 체계적으로 문화관광하리라고 했으나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가리라고 작정을 하고 준비를 했다.

인천관광공사와 인천광역시 홈페이지에서 본 결과 강화 테마관광에는 A, B 두 코스가 있었다.

살펴보니 처음 갈 때는 A코스를 가는 것이 나을 것같았다.

강화는 몇 번을 간 기억이 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강화가 어떤 곳이냐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불 수는 없었다.

한번은 석모도 간 기억이 나고, 전등사 간 기억도 나고 또 언젠가 동료들 하고 마니산을 등산한 기억도 난다.

하여간 홀수 주 토요일에 A코스를 가는 것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안양역에서 8시경에 차를 탄 것같다.

구로에서 갈아타고 동인천 가는 급행을 타고 가다가 부평역에서 완행으로 갈아타서 인천역을 갔다.

가서 보니 시간이 9시 20분경 정도 된 것같았다.

우선 표부터 끊기 위기 인천역앞에 있는 종합관광안내소에 가서 신백승여행사 직원에게 표를 끊어 달라고 하니 예약을 했냐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살펴보니 어디에도 예약하라는 것이 없었다고 하니 다행히 이번에는 예약자가 많아서 버스를 2대를 대기 시켰기에 표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간 인천광역시는 이런 것은 낙후된 것같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다른 곳은 예약이 필요하면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도록 하는데 아직도 인터넷에 예약 공지도 안하고 방문하거나 전화로 해야 된다고 하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문화관광에 대한 관심부족인 것같다.

국민들에게 건전한 여가를 보내도록 하는 것은 지자체의 큰 역할 이리라 누구라도 어디선가 개선할 점이 있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런 문화관광은 전국민이 즐겨야 하는 것이다.

강화의 역사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특히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많이 느끼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버스를 타 보니 대부분 나이드신 어르신들이다.

왜 우리 청소년들은 이런 체험을 못하는 것일까?

너무 역사의식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것이 안타까웠다.

청소년들이 특히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보아야 미래를 대비하고 우리나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마음을 다지게 되는데 어떤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가장 좋은 교육은 여행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이 난다.

우리가 앞으로 더욱 업그레이된 성장과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시간이 남아서 인천역 앞의 차이나타운을 가볍게 돌아보았다.

패루를 지나 북성동 동사무소까지 가 보았다.

북성동 사무소는 차이나타운의 거리에 조화를 맞추어 중국풍으로 설치되어 자연스러웠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각국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버스는 10시 5분쯤에 출발한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서구쪽을 통해 청라지구를 거쳐 가는 것같았다.

가다보니 영종대교도 보이는 것같았고 김포를 지나가는 것같았다.

날씨가 흐려서 산듯한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창밖의 경치가 그런대로 볼만 했다.

갯벌도 보이고 군데 군데 우리의 초소들이 보이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 쪽 지역은 수도방위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것같았다.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과 예성강의 하구가 되는 지역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강화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이 된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구석기나 신석기는 유물이 안 나와서 알 수 없지만 그런 시대도 있었는 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지역일 수도 있다.

인천에서 강화까지는 문화해설사가 없어서 그냥 TV를 보면서 갔다.

마침 TV에서는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여행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방문지인 초지진에 도착하니 중년 여성인 문화해설사 선생님이 차에 오르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분은 보기하고 전혀 다른 분이셨다.

처음에는 시골틱하게 보이셔서 저런 분이 문화해설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가 본 어떤 문화해설사보다도 해박하고 열정적인 분이셨다.

강화의 자랑이라고 해서 결코 허언이 안될 분이셨다.

우선은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셨다.

방문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강화를 알릴 것인가?

아마도 평소에도 노심초사하시거나 타고 났거나 일 것이다.

내가 평소에 꿈꾸던 그런 문화해설사였다.

강화는 보는 것이 20%요 듣는 것이 80%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강화의 풀뿌리부터 돌 하나 모든 것이 문화 유산이라는 것이다.

지면을 빌려 그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시다.

초지진은 모든 배들이 강화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에 있는 진이었다.

조선시대를 말하면 진은 대대급 부대요 보는 중대급 부대요 돈대는 소대급 부대라는 것이다.

그러니 초지진은 강화는 물론 서울로 들어오는 초입에 위치한 대대급 부대 요새지인 셈이다.

조선말기에 서구열강들이 우리의 쇄국정책을 깨고 통상을 할려고 일으킨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은 여기 초지진부터 시작이 되었다.

초지진이 깨져서 규장각 도서가 프랑스에 빼앗겼고 그 다음 보인 광성보가 깨져서 수자기를 미국에 빼앗겼다.

우연이지만 어제 KBS 골든벨 퀴즈에서 수자기를 빼앗긴 장수의 이름이 뭐냐는 퀴즈가 나왔다.

답은 어재연장군이었다.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수자기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반환요청을 하였다고 하였다.

초지진에서 살펴보니 초지진은 돌출된 곳에 위치되어 있었고 왼쪽으로 등대가 하나 오른쪽에는 강화를 건너오는 다리가 보였다.

초지진을 구경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전등사였다.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성은 발이 세 개인 솟을 뒤집어 놓은 형상이라고 해서 정족산성이고 하고 정족산성 속에는 산이 3개 있다고 한다.

또한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고 해서 삼랑성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어찌되었든 강화도의 역사는 단군왕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참성단도 삼랑성도 청동기시대인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현재 전등사의 건물은 조선시대때 화재롤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전등사 들어가기 전에는 윤장대가 있었는데 이것을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선원사지에도 윤장대가 있었는데 강화도에서만 2개를 보았다.

전등사의 약사전은 보물이라고 하였고 대웅전 처마에는 4군데에 벌거벗은 여인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그 여인상의 손 동작이 달리하여 처마를 바치고 있는 형상으로 보아 벌을 서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 것은 당시 그 대웅전을 지었던 도편수를 배신하고 떠난 여인을 벌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전등사에는 일주문도 연못도 사천왕사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절로 보였다.

그런 것이 없기에 네 귀퉁이의 조각은 원숭이로서 액운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고 하였다.

전등사 범종도 보물로 송나라에서 만들었다고 하였다.

강화도에는 보물이 8점이 있는데 이 전등사에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3점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 조선시대에는 사고가 3군데 인가 있었다는데 임진왜란때 전주사고만 때고 다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전주사고를 가지고 4부를 복사하여 원본은 강화에 두고 태백산 등 전국에 보관하였다는 것이다.

전등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초입에 있는 남문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해결했다.

그곳은 여러 가지 꽃도 심어 놓고 물레방아와 옛날 대포도 갔다 놓아 조경에 신경을 쓴 집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선원사지였다.

선원사는 고구려때 지은 절로 원래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오래된 절이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지어진 절은 초문사, 두 번째는 기억이 안나고 세 번째가 선원사라는 것이다.

선원사는 고려때에는 송광사 다음가는 큰 절이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나라에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우리가 다아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원래 선원사에 있었으나 왜구가 이 팔만대장경을 노리고 계속 침략을 해 옴에 따라 이전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선 태조때 서울의 지천사로 옮겼으나 후에 해인사로 옮겼다고 하는 것이다.

그 곳 선원사지에는 목탁 소리내는 소가 있어서 방송에도 여러번 나왔다는 것이다.

소가 세 마리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안 쪽에 있는 소가 제일 소리를 잘 낸다는 것이다.

선원사지 근처에는 연꽃단지가 있어 8월 초에는 연꽃 축제를 한다는 것이다.

해설사 선생님이 오늘 해설사들의 모임이 있어서 원래 고인돌 다음에 강화역사관을 가기로 했는데 역사관 먼저 가기로 했다.

해설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강화도 마니산이 우리나라에서 기가 제일 센곳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계룡산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니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단군왕검께서 마니산에 참성단을 설치한 것이다.

실제로 개미허리 부근과 위 정상에 올라가는 가파른 곳에 기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곳에 가는 경우에는 그곳에 앉아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면 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화는 고조선시대, 고구려 시대, 고려 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우리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고조선 시대부터 참성단을 쌓고 삼랑성을 만들었으며 고구려 시대에는 전등사라는 절을 만들었고 고려시대에는 왕궁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외침을 온 몸으로 막던 곳이기도 하다.

강화는 해안선을 따라 성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성을 쌓는 몫은 일반 서민의 몫이었다고 한다.

해설사 선생님이 읽어 주는 성 쌓기에는 성 쌓기 인부로 차출된 아버지를 만나러 26살 된 아들이 왔다는 것이다.

한번 성 쌓기에 동원되면 26년을 집에 갈 수 없었다는 뜻이리라.

강화는 옥토이기도 한 모양이다.

인삼과 순무, 쌀 그리고 고구마가 유명하다.

역사관 앞의 수 많은 비석이 강화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것같았다.

온 몸으로 외구와 외래 침략군을 막던 이름 모를 병사와 장수들 그 분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몽고에 저항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분들 몽고와 싸우던 무사들의 기운이 강화를 둘러싸고 있는 듯하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강화를 갔을 때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을 했으나 이제 우리 역사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많은 아품을 강화는 온 몸으로 막아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인돌을 방문하였다.

고인돌도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했는데 북방식 지석묘였다.

넓은 평지에 고인돌이 있었으며 그 근처에는 기둥만 하나 있는 고인돌도 있었다.

아마도 덮게와 한쪽 기둥은 누가 가져가서 다른 곳에 사용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그 고인돌 근처에는 연개소문 유적지라는 비석도 있었다.

비석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강화도에서 낳고 강화도에서 무예를 닦았다고 한다.

강화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늘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에서 영웅호걸이 태어났으며 하늘의 기운을 받아 무예를 닦아서 중국을 정벌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 공식적으로 중국을 정벌하여 만리장성 안에 고려성을 세운 영웅은 연개소문 뿐일 것이다.

이 모든 역사가 강화도에 있었던 것이다.

기회가 되면 더욱 세밀하게 강화도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같다.

강화를 방문하니 강화가 우리의 모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외적과 싸우던 그 병사들의 함성과 절규가 들리는 듯하며 성을 쌓고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 것같다.

우리에게 이런 감동을 전해주신 해설사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할 일은 이런 강화의 역사를 우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지혜롭고 용기있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상을 받기를 기원해 본다.

우리 역사의 기상과 아픔이 있는 강화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