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애에요. 호리호리하고 자그마한 여자애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려 줄지도 모를 바로 그 아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두 점 들고 왔는데 그림이 턱없이 커 보인다. 문영은 대뜸 이게 아닌데 싶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 보였던 것이다. 고3은커녕 겨우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밖에 안 돼 보이는 체구였다. 거기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커다래서 꼭 무슨 병 때문에 성장이 멈춘 아이 같았다.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고 문영을 대하는 태도에도 도무지 야무진 데가 없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는가 하면, 또 그러다가 갑자기 문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원래 제멋대로거나 아니면 좀 모자란 아이 같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림솜씨였다. 기본이 단단하고 능숙한데다가 개성도 강하다. 누가 손을 봐 준 게 아니라면 수준급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솜씨가 있거나 말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일이다. 최선을 다해 봐서 합격만 시키면 또 한번 대박이 터질 판이다. 그런데 왜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문영이 물어보자 아이의 대답이 엉뚱하다. 미대에 간다고 해서 꼭 화가가 되라는 법은 없잖아요? 화가가 될 생각이 없다면 뭐하러 미대에 들어가? 그건 인생을 낭비하는 거잖아? 그럼, 법대에 들어가서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는 것은 낭비 아닌가요? 법대를 나왔다고 다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거야 그렇지만……. 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대에 가려는 거예요. 화가가 되고 안 되고는 그 다음에 생각해 볼 일이구요. 문영은 말문이 막힌다. 말하는 걸 보니 생긴 것하고는 영 딴판으로 야무지고 똑똑하다. 별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쩐지 좋은 조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았어. 열심히 해 봐. 아이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 아이 엄마가 부탁한 대로 일단 가르쳐 보는 것뿐이다. 합격을 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떨어지면 또 그뿐이다. 문영은 얼른 계산을 해 본다. 1억8천에다 1억7천을 보태면 자그마치 3억5천이다. 이 아이만 합격을 시켜 주면 문자 그대로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겪어 보니 신애는 생긴 것처럼 그렇게 이상하거나 비실비실한 아이가 아니었다. 신애가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그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신애가 화실에 나오기 시작한 지 2주쯤 지난 다음이었다. 문영이 아이들의 그림을 봐 주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아이가 머리를 싸 쥐며 주저앉고 있었다. 그리고 신애가 곁에서 한 손에 의자를 든 채 다시 한번 내려칠 듯이 식식거리고 서 있었다. 의자로 그 아이의 머리통을 갈겨 버린 것이다. 문영은 달려들어 의자를 빼앗은 다음 얻어맞은 아이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그 아이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신애는 계속 식식거리며 그 아이를 노려보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이 기집애가 제 그림에다 손을 대잖아요. 어떻게 손을 댔는데? 저한테 와서 재잘재잘 잔소리를 하길래 니 자리로 돌아가라고 그랬더니, 그래 너 잘났다 그러면서 여기다 이렇게 개칠을 하는 거예요. 꽃병을 그리고 있는 정물화 위쪽에 시커먼 일직선이 가로로 그려져 있었다. 문영은 머리를 싸 쥔 채 훌쩍훌쩍 울고 있는 아이한테 물었다. 니가 정말 그랬어?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장난삼아 저도 모르게 그만 손이 나가는 바람에……. 남의 작품에 손을 댄다는 것은 굉장한 실례야. 니 그림에 다른 사람이 손을 댔다면 너도 가만 있었겠어? 저도 모르게 그만……. 이번에는 신애 차례였다. 아무리 그림에 손을 댔어도 그렇지. 의자로 사람의 머리를 갈기는 법이 어디 있어? 잘못해서 뇌진탕이라도 일으키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신애는 자신이 생각해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 깔았다. 의자사건은 문영이 맞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 엑스레이를 찍어 보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그러나 그 파장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신애는 그때까지만 해도 화실에서 체구도 가장 작고 말수도 없는 조용하고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의자를 한 번 휘두르는 바람에 일약 두목이 되었다. 아이들은 처음과는 딴판으로 일제히 신애한테 상냥해졌다. 그리고 간식으로 무엇을 사다 먹을 것인가를 놓고 와글와글 떠들다가도 신애가 한마디 하면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아이가 확실하게 대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안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참새처럼 수다스럽고 망아지처럼 재멋대로인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여자애들이다. 여차하면 의자를 휘두르는 신애가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그 점은 문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화실을 해서 먹고산 지가 10년이 넘었지만 신애 같은 괴물은 처음이다. 여자애들만 바글거리는 화실에서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심해 봐야 서로 머리카락을 끌어잡고 엉기는 정도지 의자를 휘두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은 신애의 생김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포의 해프닝이었다. 애가 원래 엉뚱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겉보기와는 달리 성질이 표독스러워 그런 것일까. 문득 신애가 어떤 폭력조직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빠라든가 남자친구가 조직폭력배라면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가정환경으로 보나 인상으로 보나 그런 것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당사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 문영은 혹시 이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그 바람에 문영으로서는 좋든 싫든 신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한번만 비슷한 사고를 치면 사정없이 화실에서 쫓아낼 작정이었다. 주식 만 주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다. 또 문영이 막연히 증오하고 있는 가진 자들에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라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찝쩍거릴 엄두를 내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그 전처럼 다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에 재미가 붙게 된 것이다. 신애와 같은 괴짜가 등장하는 바람에 화실에는 어느덧 활기가 되살아 나고 있었다. 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은근히 신애의 입장을 옹호해 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아직 학생이지만 어쨌든 미대를 지망하는 예비화가다. 그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 그림에 손을 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문영 같았으면 아마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또 미국 같으면 권총을 뽑을 수도 있는 일이다. 따라서 엉뚱하거나 표독스러워서 생긴 일이 아닌 것이다. 자존심과 결벽이 유난스러워서 생긴 일이다. 문영은 우연히 신애가 그림에 열중한 모습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모습은 이미 학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린 여학생이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감정에 몰입해 있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신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도무지 여자 같지도 않았던 이 조그만 여자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그 매력을 더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매력의 대부분은 이 아이의 눈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니 눈은 너무 과장된 것 같아. 문영이 신애를 놀렸다. 성형수술비는 벌고 들어간 거죠, 뭐. 신애는 싫지 않은 듯 생글 생글 웃는다. 동양인으로서는 드물게 큰 눈이다. 문영은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웬지 섬뜩한 느낌을 받곤 한다. 단순히 크고 예쁜 눈이어서가 아니고 뭔가 끌어당기는 듯한 강렬한 기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애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뽀얗다 못해 창백한 살결이다. 금방 속이 들여다 보일 것만 같은 우유빛 살결 밑으로는 푸르스름하게 정맥이 비쳐 보인다. 아직은 어린애지만 몇 년만 지나면 수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 특이한 용모 때문에 어쩌면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두고 모델이나 배우로 성공할지도 모른다. 문영은 나중에야 그 매력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렇다. 성적 매력이다. 그것도 평범한 것이 아니고 엽기적인 매력이다. 어린애 같으면서도 결코 어리지 않고 어른 같으면서도 결코 어른스럽지 않은 묘한 매력인 것이다. 내가 저 아이의 성적 매력에 끌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고개를 젓는다. 귀여워하게 되었다면 또 몰라도 사랑이란 정말 안 어울리는 소리다. 우선 자신은 40이 꽉 찬 노총각인데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실패한 화가다. 직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 40에 고3짜리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야말로 스캔들이다. 원조교제에 나섰다가 쇠고랑을 차고 이름이 공개되는 망신을 당하는 것과 비슷한 스캔들이다. 문영은 스스로 다짐을 했다. 저 아이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연애감정은 아니다. 저 아이가 떠날 때까지 남몰래 좋아하면서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신애가 하루는 교습이 끝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화실을 나가더니 금방 혼자서만 되돌아 왔다. 선생님, 술 좋아하세요? 그러면서 신애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문영이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요란하게 생긴 양주 두 병과 봉투 하나였다. 아버지가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해서요. 봉투에는 백만원짜리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고맙긴 하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간단한 성의표신데 뭐 어때요? 양주야 그렇다 쳐도, 백만원짜리 상품권이 간단한 성의 표시냐? 하나밖에 없는 딸을 맡겨 놓고 고맙기도 하고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니까 그냥 받아 두세요. 이건 공평하지 못해. 다른 아이들은 그럼 뭐냐? 아이 참, 뭘 그렇게 까다롭게 생각하세요. 전 눈꼽만큼도 특별대우를 받을 생각이 없으니까 조금도 염려 마세요. 이런 선물 안 해도 넌 이미 특별대우를 받고 있어. 저도 그건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니, 무얼? 선생님이 절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요. 선생님, 절 좋아하고 계시죠? 문영은 얼굴이 확 달아 오른다. 어머, 선생님 얼굴이 빨개지셨네. 제 말이 너무 지나쳤다면 죄송해요.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에요. 문영은 다급하게 둘러댔다. 널 좋아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도 알아요. 스승이 제자를 사랑하는 차원이다, 그런 말씀을 하고 싶은 거죠? 그래. 니 재주를 아끼고 니 성격을 좋아하고 니 예쁜 모습을 좋아하고 니가 대학에도 합격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야. 자신이 생각해도 장황하다 싶은데 신애는 생글 생글 웃기만 한다. 아이 누가 뭐래요? 그러니까 여자로서 좋아하는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스승과 제자 사이로서 좋아한다 그런 말씀 아녜요? 맞아.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세요? 누가 빨개졌다고 그래? 니 말이 하도 당돌하고 황당해서 당황한 것뿐인데. 그럼, 됐네요 뭐. 그런데 선생님, 제가 예쁘다는 거 사실이에요? 어린앤 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다. 속이 꽉 차 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며칠도 안 돼 그 신애가 또 당돌한 제안을 하고 나선다. 선생님, 이렇게 화실에서만 씨름을 할 게 아니라 가끔 야외 스케치도 나가고 그래요. 아이들의 환성이 터져 나온다. 바싹 바싹 다가오는 시험날짜 때문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금기를 신애가 깨고 나선 것이다. 지금 밖에 나가서 바람 쏘일 시간이 어디 있어? 시험이 며칠 남았는지 생각이나 해 보고 하는 소리냐? 그럴수록 여유를 가져야지요. 그림공부는 고시공부하곤 차원이 다르잖아요? 신애가 그렇게 나오자 아이들도 아우성을 친다. 문영은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모두 지쳐 있는 상태였다. 하루쯤 기분 전환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신애는 거기서 한술 더 뜨고 나섰다. 동해안 거진에서 휴전선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화진포라는 아담한 해수욕장이 나오는데 거기 우리 방갈로가 한 채 있어요. 방이 세 개나 되니까 이번 주말에 거기 가서 1박2일 제끼고 오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이쯤 되면 문영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붉은수염] 사랑 밀어내기 (2)
2. 소녀
김신애에요.
호리호리하고 자그마한 여자애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려 줄지도 모를 바로 그 아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두 점 들고 왔는데 그림이 턱없이 커 보인다. 문영은 대뜸 이게 아닌데 싶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 보였던 것이다. 고3은커녕 겨우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밖에 안 돼 보이는 체구였다. 거기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커다래서 꼭 무슨 병 때문에 성장이 멈춘 아이 같았다.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고 문영을 대하는 태도에도 도무지 야무진 데가 없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는가 하면, 또 그러다가 갑자기 문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원래 제멋대로거나 아니면 좀 모자란 아이 같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림솜씨였다. 기본이 단단하고 능숙한데다가 개성도 강하다. 누가 손을 봐 준 게 아니라면 수준급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솜씨가 있거나 말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일이다. 최선을 다해 봐서 합격만 시키면 또 한번 대박이 터질 판이다.
그런데 왜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문영이 물어보자 아이의 대답이 엉뚱하다.
미대에 간다고 해서 꼭 화가가 되라는 법은 없잖아요?
화가가 될 생각이 없다면 뭐하러 미대에 들어가? 그건 인생을 낭비하는 거잖아?
그럼, 법대에 들어가서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는 것은 낭비 아닌가요? 법대를 나왔다고 다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거야 그렇지만…….
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대에 가려는 거예요. 화가가 되고 안 되고는 그 다음에 생각해 볼 일이구요.
문영은 말문이 막힌다. 말하는 걸 보니 생긴 것하고는 영 딴판으로 야무지고 똑똑하다. 별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쩐지 좋은 조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았어. 열심히 해 봐.
아이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 아이 엄마가 부탁한 대로 일단 가르쳐 보는 것뿐이다. 합격을 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떨어지면 또 그뿐이다. 문영은 얼른 계산을 해 본다. 1억8천에다 1억7천을 보태면 자그마치 3억5천이다. 이 아이만 합격을 시켜 주면 문자 그대로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겪어 보니 신애는 생긴 것처럼 그렇게 이상하거나 비실비실한 아이가 아니었다. 신애가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그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신애가 화실에 나오기 시작한 지 2주쯤 지난 다음이었다. 문영이 아이들의 그림을 봐 주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아이가 머리를 싸 쥐며 주저앉고 있었다. 그리고 신애가 곁에서 한 손에 의자를 든 채 다시 한번 내려칠 듯이 식식거리고 서 있었다. 의자로 그 아이의 머리통을 갈겨 버린 것이다. 문영은 달려들어 의자를 빼앗은 다음 얻어맞은 아이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그 아이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신애는 계속 식식거리며 그 아이를 노려보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이 기집애가 제 그림에다 손을 대잖아요.
어떻게 손을 댔는데?
저한테 와서 재잘재잘 잔소리를 하길래 니 자리로 돌아가라고 그랬더니, 그래 너 잘났다 그러면서 여기다 이렇게 개칠을 하는 거예요.
꽃병을 그리고 있는 정물화 위쪽에 시커먼 일직선이 가로로 그려져 있었다. 문영은 머리를 싸 쥔 채 훌쩍훌쩍 울고 있는 아이한테 물었다.
니가 정말 그랬어?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장난삼아 저도 모르게 그만 손이 나가는 바람에…….
남의 작품에 손을 댄다는 것은 굉장한 실례야. 니 그림에 다른 사람이 손을 댔다면 너도 가만 있었겠어?
저도 모르게 그만…….
이번에는 신애 차례였다.
아무리 그림에 손을 댔어도 그렇지. 의자로 사람의 머리를 갈기는 법이 어디 있어? 잘못해서 뇌진탕이라도 일으키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신애는 자신이 생각해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 깔았다.
의자사건은 문영이 맞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 엑스레이를 찍어 보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그러나 그 파장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신애는 그때까지만 해도 화실에서 체구도 가장 작고 말수도 없는 조용하고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의자를 한 번 휘두르는 바람에 일약 두목이 되었다. 아이들은 처음과는 딴판으로 일제히 신애한테 상냥해졌다. 그리고 간식으로 무엇을 사다 먹을 것인가를 놓고 와글와글 떠들다가도 신애가 한마디 하면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아이가 확실하게 대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안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참새처럼 수다스럽고 망아지처럼 재멋대로인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여자애들이다. 여차하면 의자를 휘두르는 신애가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그 점은 문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화실을 해서 먹고산 지가 10년이 넘었지만 신애 같은 괴물은 처음이다. 여자애들만 바글거리는 화실에서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심해 봐야 서로 머리카락을 끌어잡고 엉기는 정도지 의자를 휘두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은 신애의 생김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포의 해프닝이었다. 애가 원래 엉뚱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겉보기와는 달리 성질이 표독스러워 그런 것일까. 문득 신애가 어떤 폭력조직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빠라든가 남자친구가 조직폭력배라면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가정환경으로 보나 인상으로 보나 그런 것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당사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 문영은 혹시 이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그 바람에 문영으로서는 좋든 싫든 신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한번만 비슷한 사고를 치면 사정없이 화실에서 쫓아낼 작정이었다. 주식 만 주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다. 또 문영이 막연히 증오하고 있는 가진 자들에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라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찝쩍거릴 엄두를 내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그 전처럼 다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에 재미가 붙게 된 것이다. 신애와 같은 괴짜가 등장하는 바람에 화실에는 어느덧 활기가 되살아 나고 있었다. 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은근히 신애의 입장을 옹호해 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아직 학생이지만 어쨌든 미대를 지망하는 예비화가다. 그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 그림에 손을 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문영 같았으면 아마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또 미국 같으면 권총을 뽑을 수도 있는 일이다. 따라서 엉뚱하거나 표독스러워서 생긴 일이 아닌 것이다. 자존심과 결벽이 유난스러워서 생긴 일이다.
문영은 우연히 신애가 그림에 열중한 모습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모습은 이미 학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린 여학생이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감정에 몰입해 있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신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도무지 여자 같지도 않았던 이 조그만 여자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그 매력을 더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매력의 대부분은 이 아이의 눈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니 눈은 너무 과장된 것 같아.
문영이 신애를 놀렸다.
성형수술비는 벌고 들어간 거죠, 뭐.
신애는 싫지 않은 듯 생글 생글 웃는다. 동양인으로서는 드물게 큰 눈이다. 문영은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웬지 섬뜩한 느낌을 받곤 한다. 단순히 크고 예쁜 눈이어서가 아니고 뭔가 끌어당기는 듯한 강렬한 기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애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뽀얗다 못해 창백한 살결이다. 금방 속이 들여다 보일 것만 같은 우유빛 살결 밑으로는 푸르스름하게 정맥이 비쳐 보인다. 아직은 어린애지만 몇 년만 지나면 수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 특이한 용모 때문에 어쩌면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두고 모델이나 배우로 성공할지도 모른다. 문영은 나중에야 그 매력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렇다. 성적 매력이다. 그것도 평범한 것이 아니고 엽기적인 매력이다. 어린애 같으면서도 결코 어리지 않고 어른 같으면서도 결코 어른스럽지 않은 묘한 매력인 것이다. 내가 저 아이의 성적 매력에 끌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고개를 젓는다. 귀여워하게 되었다면 또 몰라도 사랑이란 정말 안 어울리는 소리다. 우선 자신은 40이 꽉 찬 노총각인데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실패한 화가다. 직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 40에 고3짜리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야말로 스캔들이다. 원조교제에 나섰다가 쇠고랑을 차고 이름이 공개되는 망신을 당하는 것과 비슷한 스캔들이다. 문영은 스스로 다짐을 했다. 저 아이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연애감정은 아니다. 저 아이가 떠날 때까지 남몰래 좋아하면서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신애가 하루는 교습이 끝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화실을 나가더니 금방 혼자서만 되돌아 왔다.
선생님, 술 좋아하세요?
그러면서 신애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문영이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요란하게 생긴 양주 두 병과 봉투 하나였다.
아버지가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해서요.
봉투에는 백만원짜리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고맙긴 하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간단한 성의표신데 뭐 어때요?
양주야 그렇다 쳐도, 백만원짜리 상품권이 간단한 성의 표시냐?
하나밖에 없는 딸을 맡겨 놓고 고맙기도 하고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니까 그냥 받아 두세요.
이건 공평하지 못해. 다른 아이들은 그럼 뭐냐?
아이 참, 뭘 그렇게 까다롭게 생각하세요. 전 눈꼽만큼도 특별대우를 받을 생각이 없으니까 조금도 염려 마세요.
이런 선물 안 해도 넌 이미 특별대우를 받고 있어.
저도 그건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니, 무얼?
선생님이 절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요. 선생님, 절 좋아하고 계시죠?
문영은 얼굴이 확 달아 오른다.
어머, 선생님 얼굴이 빨개지셨네. 제 말이 너무 지나쳤다면 죄송해요.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에요.
문영은 다급하게 둘러댔다.
널 좋아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도 알아요. 스승이 제자를 사랑하는 차원이다, 그런 말씀을 하고 싶은 거죠?
그래. 니 재주를 아끼고 니 성격을 좋아하고 니 예쁜 모습을 좋아하고 니가 대학에도 합격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야.
자신이 생각해도 장황하다 싶은데 신애는 생글 생글 웃기만 한다.
아이 누가 뭐래요? 그러니까 여자로서 좋아하는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스승과 제자 사이로서 좋아한다 그런 말씀 아녜요?
맞아.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세요?
누가 빨개졌다고 그래? 니 말이 하도 당돌하고 황당해서 당황한 것뿐인데.
그럼, 됐네요 뭐. 그런데 선생님, 제가 예쁘다는 거 사실이에요?
어린앤 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다. 속이 꽉 차 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며칠도 안 돼 그 신애가 또 당돌한 제안을 하고 나선다.
선생님, 이렇게 화실에서만 씨름을 할 게 아니라 가끔 야외 스케치도 나가고 그래요.
아이들의 환성이 터져 나온다. 바싹 바싹 다가오는 시험날짜 때문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금기를 신애가 깨고 나선 것이다.
지금 밖에 나가서 바람 쏘일 시간이 어디 있어? 시험이 며칠 남았는지 생각이나 해 보고 하는 소리냐?
그럴수록 여유를 가져야지요. 그림공부는 고시공부하곤 차원이 다르잖아요?
신애가 그렇게 나오자 아이들도 아우성을 친다. 문영은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모두 지쳐 있는 상태였다. 하루쯤 기분 전환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신애는 거기서 한술 더 뜨고 나섰다.
동해안 거진에서 휴전선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화진포라는 아담한 해수욕장이 나오는데 거기 우리 방갈로가 한 채 있어요. 방이 세 개나 되니까 이번 주말에 거기 가서 1박2일 제끼고 오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이쯤 되면 문영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