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 오는 집사람의 유세 20

승엽잘해라..200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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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엽이의 부진의 늪에서 부활을 기대합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제가 이곳에 첫편의 글을 쓴 것이 5월 16일입니다.

그리고 6월1일까지 글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로 오늘까지 남기지 않았는데..

그간의 기록을 정리해보니..

글을 올린 기간 5월 16일부터 6월 1일까지 승엽이의 기록은

49타수 22안타 11타점 9득점에 삼진은 5개였습니다.

6월 2일 이후 어제까지 20타수 2안타 0타점 2득점 삼진5개입니다.

글 남기지 않는 동안 4번 타자가 5경기 타점이 없었네요.

아무래도 한 두경기 더 부진하기 전에 제가 글을 올려봅니다.

오늘의 사연은 저의 누나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대로 적은 겁니다.

어떤 이는 제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을 거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구요. 그리고 좋은 학력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사람입니다.

장편으로 글 남길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열심히 살면 잘 살수 있다는 글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가난한 날의 아픈 추억이 있어 글을 써봅니다.

지리산 산골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집이 있었으니 우리 집입니다.

부모님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산골동네에서 월셋방 생활을 했던 우리 집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두분 모두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신 분들입니다. 동네사람들 우리 부모님 무시하는 경우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우리 집 감나무 가지가 옆집으로 넘어간다고 동네사람들 우리 집 감나무 가지도 잘라버린 적도 있고 동네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부모님은 의견 한번 내지 못 할 정도로 무시 받고 사셨던 분들입니다.

그렇게 배우지 못한게 한 이였던 부모님은 그 가난한 살림에도 어떻게든 고등학교 까지는 보내주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어서 너희들이 결혼할 자금을 벌어야 한다. 이게 부모님이 우리 4남매에게 내리신 숙제이자 과제였습니다.

배우지 못한 부모님은 우리 4남매에게 참고서 한 권도 사준 적이 없으셨습니다. 참고서는 동네 형이나 누나에게 얻어서 보는 책이었습니다. 참고서뿐만 아니라 교과서도 동네 형들에게 물려받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물려받은 참고서를 보고 난 후 몇 년간 집에 보관하였다가 밑에 동생이 그 학년이 되어 몇 년 전 제작된 참고서로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믿기 힘든 일이 있었으니 우리 4남매 모두 공부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4남매 중에 한 사람만 잘했다면 우리 부모님 한 명 정도는 대학을 보내주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4명 모두 공부에는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누나는 정말 공부를 잘했었습니다. 중학교 때 전교1등이었던 누나입니다. 그리고 전라남도에서 알아주는 고등학교를 다녔던 누나입니다.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르게 누나는 너무나도 공부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때마다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너는 순천여고 다녔으니깐 시집가는데 지장 없을 것이다. 대학 갈 생각 꿈도 꾸지 마라. 그러나 누나는 부모님의 그런 반대에도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나 대학 입시 때 부모님과 누나의 신경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순천여고에서 20여 년 전 졸업한 누나의 성적은 상위권 이었습니다. 대략 그 학교를 설명하자면 고입 200점 만점에 185개를 넘어야 그 학교 입학 가능 점수입니다.

누나는 자기가 알아서 대학을 다니겠다고 절대 부모님에게 도와달라는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하였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서 대학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누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월급을 타면 통장으로 돈을 입금시키라고 했는데 돈이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아버지 귀에 누나가 다시 재수로 대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아버지는 전라도 산골동네에서 서울까지 찾아가서 누나를 끌고 내려왔습니다. 그때 누나와 같이 공부를 하던, 집이 잘 살던 친구가 서울로 가족이 이사를 갔고 그 친구아버님이 그렇게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까워서 대학을 친구 아버님이 보내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아버지는 누나를 데리고 왔고, 누나는 대학을 갈 수 없다면 누나의 삶은 없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누나는 몇 일간 밥을 먹지 않았고 이불 속에서 눈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참 우리누나 아버지에게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렇게 몇 일 더 시간이 흐르자 정말 우리 누나는 대학의 꿈을 접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전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감히 아버지에게 어떤 말도 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습니다. 단지 누나에게 찾아온 행운까지 뺏어 버리는 나쁜 아버지라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던 나이입니다.

누나의 대학 진학의 꿈은 동생인 저에게 바로 직격탄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형과 누나는 대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저에게는 도시로 나가봤자 헛 생각만 한다고 바로 제가 태어난 구례군에서 다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구례군에는 남자가 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가 한 개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구례농고입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너는 농고 나와서 아버지랑 같이 농사를 짓자였습니다.

그때 전 어떻게든 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형처럼 광주광역시로 고등학교를 보내달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광주광역시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반 성적은 1등과 2등을 번갈아 가면서 했었습니다.

저 역시 고3시절 친구들 대입 시험을 볼 때 저는 입사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누나가 저에게 대학을 가라고 끝까지 싸워서라도 남자인 너는 대학을 가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아버님에게 저항할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밑에 동생 막내 역시 중학교 성적 전교1등이었지만 끝내 구례여고를 가야만 했던 가난한 집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누나는 고등학교와 중학교 초등학교를 다니는 3명의 자녀가 있고 저 역시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인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두명의 자녀 키우는 것도 사실 힘들더군요. 그리고 이제는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아버님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능력하다고 믿었던 아버님인데 아버님 돌아 가신지 17년 이란 세월이 흘러서 아버님은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 제 또래의 남자와 여자 동창 중에 고등학교를 간 사람은 저 한 명뿐입니다. 제 친구들은 중학교 졸업하고 모두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친구들입니다. 그렇게 못살던 동네에서 태어났고 그 못사는 동네에서도 가난했던 우리 집 형편에서도 우리 4남매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신 부모님입니다.

그리고 누나를 왜 친구아버님이 대학까지 보내준다고 했는데도 데리고 내려왔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이유는 누나가 대학을 가면 형과 저 그리고 동생 대학 간다고 하면 말릴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부모님은 가진게 하나도 없이 결혼하셨던 분이라서 너희가 결혼 전에 돈을 벌어서 살림을 시작해야지 잘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셨던 분들입니다. 부모님 두분 정말 가진 것 하나 없이 결혼하셔서 사시다 보니 결혼 전 돈을 모아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셨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든 세상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아버님 결혼하실 때 오강단지 1개 가지고 오시고 어머님은 반지고리 1세트 가지고 신혼생활을 시작했으니 가히 어떻게 살았을 지 생각해 보십시요.

그러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직장생활을 하던 형은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두었던 돈으로 대학을 다녔고 대학졸업 후 형은 지금 공무원을 20년 정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대학과 직장생활을 병행해 가면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막내 역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제일 잘했던 누나만이 지금까지 고졸입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누나가 대학의 꿈을 접은 것이 꼭 저 때문인 것 같아서 마음에 늘 걸립니다. 누나가 대학을 고집하자 저에게 도시로 고등학교를 안 보내겠다는 아버님의 뜻 앞에 누나가 저에게 광주로 고등학교를 보내줄 기회를 주기 위해서 꿈을 접었던 것 같아서 늘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4남매 정말 어떤 집안보다 우애가 있지만 서로의 생일을 잘 모릅니다. 바로 그건 어릴 적부터 가난하여 단 한번도 생일상을 차려주거나 미역국을 끊인 적이 없는 집이 또 우리 집 입니다. 그래서 생일날 축하전화도 못해주고 사는 집안사람들입니다. 비단 4남매 생일뿐만이 아니라 부모님 생일상도 한번도 차린 적이 없는 집이 우리 집입니다. 백일사진과 돌 사진도 우리 남매에게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남매의 어릴 적 사진은 제 나이 8살 때 우리 남매 사진 한 장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의 독 사진은 중학교 때 찍은 증명사진이 처음입니다. 저의 앨범 속에 초등학교 사진이라고는 졸업식 때 반 친구와 전체학년이 찍은 사진 두 장이 전부입니다.

누나는 조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누나가 직접 가르치는데 올해 중학교 졸업한 조카가 울산광역시 야음동 동평중학교 전교1위로 학교장 상을 받은 이아남 학생이 바로 누나 딸이고 저의 조카입니다. 그 조카가 우리엄마는 선생님보다 헐씬 잘 가르치고 똑똑한 사람인데 왜 선생님이나 의사나 판사처럼 존경 받는 사람이 못 되었냐고 저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누나의 꿈이 꺽인게 저 때문인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 가지고 살고 있으며 그런 기회를 준 누나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세상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하루 5시간 이상 자본 적 없이 열심히 살았던 저입니다.

누나 앞길에 동생이 걸림돌이 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 지울 길 없습니다.

저의 친구들은 저에게 고졸신화라고 말하지만 누나는 동생보다 더 잘해서 더 좋은 위치에 올라 갔었을 텐데. 나 때문에 미안해 누나

누나 행복하게 잘 사세요?

 

어제 중계방송을 보니 승엽이의 타격자세가 흐트러 져서 슬럼프 기간이 길어질 것

처럼 예상하던데..

오늘 바로 부활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에 거짓 사연 남겨서 뭐하겠습니까?

다음편을 쓰게 된다면 아마도 저의 신상을 공개하겠습니다.

모두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