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수염] 사랑 밀어내기 (3)

말글눈200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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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촌


화진포로 떠나기 위해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불쑥 삼촌 내외가 찾아왔다. 거의 5년 만에
보는 것 같다.
소문 들었다.
삼촌의 첫마디다. 무슨 소문을 들었느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다. 삼촌은 경찰서 정보계장
을 하다가 뇌물사건으로 옷을 벗은 사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는 빠
삭한 것이다.
그 시그마 주식을 안 팔고 갖고 있기 정말 잘했다. 이번에 배짱을 튕겨서 좋은 값으로 넘
긴 건 더욱 잘한 일이고. 왜냐 하면 지금 시그마에 투자했던 미국회사하고 경영권 때문에
소송이 걸려 있거든.
주식을 흥정하러 왔던 사내가 진땀을 흘리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다. 그런데 이 삼촌이
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긁어 모으는 걸까.
사실은 나도 그 동안 여의도 바닥에서 증권 좀 주물러 봤다. 너도 알다시피 정보를 수집하
고 분석하는 데에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잖아. 그런데 정보가 있으면 뭐하냐. 밑천이 있
어야지 밑천이. 말 그대로 돈 놓고 돈 먹는 장산데 적시타를 때려야 할 때 실탄이 부족해
가지고 번번히 대박을 놓쳤단 말이야.
5년만에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너무나도 뻔뻔하다. 지금 자기한테 투자하라는 얘기를 하
고 있는 것이다.
이익을 반반으로 나누자. 최소한도 월 5프로는 보장을 하지. 다시 말하자면 니가 1억을 투
자했을 때 월 5백만원의 이자가 보장된다 그 말이야. 은행에 넣어 두면 이자가 그 10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지? 그렇다고 평생 그림밖에 모르고 산 니가 그 돈 가
지고 장사를 하겠냐 부동산투기를 하겠냐?
숙모도 간절하게 거들고 나선다.
그렇게 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고생만 하고 살았으니까 이제 학생들 가르치는 일도 그만
두고 호강 좀 하면서 살아 봐야 할 거 아니야?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 있어? 조금도 골치
썩힐 필요없이 한 달에 5백만원씩 따복 따복 들어오기가 어디 쉬워? 2억을 투자하면 한 달
에 천만원씩 들어오고 말이야.
문영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삼촌이라는 인간은 문영에게 유일한 혈육이나 다름없다. 위로 고모가 또 하나 있지만
어려서부터 서로 소가 닭 보듯이 하고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얼굴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육군 대위였던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일이 그렇게 꼬이고 말았다.
그때 문영은 열한 살이었다.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묻자마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
버지의 연금이랑 전사수당을 몽땅 챙겨 가지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문영은 삼
촌집에 맡겨졌다. 그 당시 어머니는 나중에 와서 데려갈 테니 넉넉잡고 1년만 기다리면 된
다고 했다.
딱 1년이야, 1년. 자리만 잡히면 금세 달려와서 데려갈 거니까, 어쩌면 1년도 안 걸릴 거
야.
어머니가 숙모한테 사정했다. 숙모는 벌써부터 잔뜩 기분이 상해 있었다.
어디 가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 건데요?
부산 남포동에서 외국선원들 상대로 옷장사하는 친구가 있어. 그런데 얘기 들어 보니까 모
두들 보따리로 사 가기 때문에 벌이가 짭짤한 모양이야.
아무리 짭짤해도 그렇지요. 언제 그런 장사를 해 봤어요? 장사를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배워야지 그래서 1년 동안만 맡아 달라는 거야.
맡아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보시다시피 집도 좁은데 우리도 애가 둘씩이나 되잖아요?
맨입으로 맡아 달라는 거 아니야. 1년 동안 하숙생 하나 친다고 생각하라구.
그러면서 어머니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 봉투 안에 얼마가 들었는지 문영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1년 동안의 하숙비라고 했으니 꽤 많은 액수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아이구 불쌍한 것, 어린것이 엄마 아빠도 없이 얼마나 외로울꼬. 하지만 여긴 삼촌집이니
까 내 집처럼 생각하고 먹고 싶은 것 많이많이 먹어라.
처음에는 그처럼 우호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봉투의 약발은 겨우 두 달을 가지 못했
다.
아니,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맡겨 놓고 두 달이 지나도록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 없는 여
편네가 어딨어? 장사를 배운다더니 어떤 놈팽이하고 살림 차린 거 아니야?
숙모가 그렇게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서 문영의 하루하루는 고달퍼지기 시작했다. 우선 밥
을 얻어먹는 것부터가 힘들어졌다. 문영을 아예 식탁에 부르지도 않는 것이었다. 문영에게
는 안주인이 부르지도 않는데 엉거주춤 식탁에 가서 자리잡고 앉을 만한 주변머리가 없었
다. 숙모는 식구들이 밥을 다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담에야 문영을 불렀다. 그리고는
식구들이 먹다 남긴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모아 비빔밥을 만들어 가지고 먹으라고 내놓
는 것이었다. 밥과 반찬이 많이 남았을 경우에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식구들
이 맛잇게 식사를 즐긴 경우에는 문영이 배를 곯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그 당시 처
음 나오기 시작한 라면을 사촌들한테 끓여 주면서 단 한번도 문영에게 차례가 돌아오는 법
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사촌이 라면을 먹다 남기는 바람에 거기에다 찬밥을 말아 먹
은 적이 있었다. 문영은 미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난생 처음 먹어 보는 것
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라면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설프게 얻어먹고도 설거지는 문영 몫이었다. 그것도 잘못해서 물기라도 남기는
날에는 사정없이 뺨을 얻어맞았다. 나중에는 빨래는 물론 집안청소까지도 도맡아 하게 되
었다. 사촌들의 운동화와 팬티를 빨 때에는 어린 소견에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어
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참다 못해 한번은 외할머니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 소
식도 궁금했지만 외갓집으로 옮기면 삼촌집보다는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살벌하기는 외갓집도 마찬가지였다. 외할머니는 외손주를 보자마자 공연
히 화부터 냈다.
니네 엄마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도 몰라. 자리잡고 돈을 벌면 어련히 안 데려갈
까봐. 그때까지 짹 소리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그것으로 모자간은 물론 외갓집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문영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삼
촌집에서 신세를 졌다. 그것은 완전무결한 노예생활이었다.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애비 에
미 없는 자식이라고 욕을 먹어야 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 흔한 짜장면이나 아이스
크림 같은 것을 사 먹어 본 일이 없다. 어쩌다 인심좋은 친구가 사 줘서 맛을 봤을 뿐이
다. 그 기가 막힌 맛이라니. 그러나 거기까지는 어떻게 참고 넘어갈 수가 있었다. 문영을
미치게 만드는 건 학교에 내야 하는 수업료와 각종 공과금이었다. 수업료 재촉을 받다 못
해 집으로 쫓겨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숙모는 그쯤 돼서야 마지못해 돈을 주는데
그것도 그냥 곱게 주는 법이 없었다.
남의 집 애들은 장학금에다 용돈까지 받아 가면서 공짜로 학교를 잘들 다니더구만 공부라
고는 쥐뿔도 못하는 게 허구헌 날 돈만 퍼다 주고 있어.
그리고는 돈을 똘똘 말아 방바닥에다 홱 던져 버린다. 그 돈을 주울 때마다 어김없이 눈물
이 핑 돌았다. 문영은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결심을 다졌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부자
가 되리라. 부자가 된 다음 이 숙모 앞에다 돈다발을 확 뿌릴 것이다. 담임선생 소개로 신
문배달을 하게 되어 그 집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인간들이 지금 돈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이다. 그 옛날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
럼 멀쩡한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문영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왔다.
어쨌거나 삼촌과 숙모가 5년 동안이나 날 먹여 주고 재워 주고 공부까지 시켜 줬으니까 나
도 두 분이 굶어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겁니다.
맥주를 권하면서 운을 떼자 삼촌은 벌컥 화를 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있냐? 누가 굶어 죽는다는 거야? 밑천이 없어서 사업에
좀 곤란을 받고 있을 뿐인데.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말해 봐.
삼촌은 정말 내가 삼촌한테 1억이나 2억을 투자할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온 겁니까?
아니, 그거야 뭐 내 수중에 있는 돈이 아니니까 장담은 못하는 거지만 너한테도 일생일대
의 좋은 기회 아니냐?
삼촌한테 좋은 기회겠죠. 난 그런 데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는데 어떡하죠?
왜 없어? 너 이 삼촌을 못 믿겠다는 거야?
당연히 못 믿죠. 몇 년 동안 소식도 없다가 돈 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불쑥 찾아온 삼촌
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 동안 못 찾아온 건 내가 무심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바빠서 어쩔 수 없었어. 하는 일
마다 되는 게 없고 세상살이가 왜 그렇게 고달픈지 말이다.
그렇게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는 분을 날더러 믿으란 말입니까?
너하고 나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혈육이야. 너한테 아버지가 있니 어머니가 있니. 유일
한 혈육이니까 당연히 믿어야지.
삼촌은 그러면서 다시 열을 올렸다.
니가 시그마 주식 5천 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또 그것이 박사
장 딸을 미대에 합격시켜 주고 받았다는 사실 하며 시세보다 훨씬 좋은 값을 받고 넘겼다
는 사실까지 어떻게 알았겠어?
삼촌이야 원래 정보 전문가잖아요?
너 말 한번 잘했다. 바로 그거야. 증권에 관한 정보에는 나를 따라 올 사람이 없다는 살
아 있는 증거잖아?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꼭 필요할 때 실탄이 없어 가지고 번번히 대박
을 놓친 것뿐이라니까. 증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 싸움이야. 그러니까 날 믿고 일생일
대의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절대 실수는 없을 테니까.
문영은 슬슬 장난기가 생겼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라도 아차 실수를 해 가지고 밑천을 몽땅 날리게 되면 어떡해요?
글쎄,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니까 그러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내가 장담하고 내가 보장한다. 여의도 바닥 최고의 이 정보통께서 말이야.
좋아요. 삼촌이 여의도 증권가의 최고 정보통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죠. 하지만 만에 하나라
도 실수가 생겼을 때 나는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해야 하죠?
아 참 답답하네. 절대로 실수 같은 건 없다니까.
그렇게 절대로 실수 같은 건 안 하는 분이 경찰에서는 왜 퇴직금도 못 받고 쫓겨 났어요?
문영으로서는 장난삼아 무심코 한 말이지만 삼촌의 얼굴이 금방 벌개졌다.
너 하나밖에 없는 삼촌한테 이렇게 막말을 해도 되는 거냐? 거저 달라는 것도 아니고 순수
한 마음으로 좋은 아이템이 있으니까 투자를 하라는 건데 니가 이럴 수 있어? 너한테 삼촌
이 둘만 있어도 내가 이런 소리 안 해.
좋은 말씀입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카한테 삼촌하
고 숙모는 옛날에 어떻게 하셨죠?
하긴 뭘 어떡해?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고 공부까지 시켜 줬으면 할 도리 다 한 거
아니야?
그 옛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고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당당한
지 문영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가 없었다.
삼촌. 벌써 치매가 온 겁니까 아니면 일부러 다 잊어버린 체하는 겁니까? 식구들 먹다 남
은 찬밥에다 반찬 찌꺼기 거두어 먹인 것도 먹여 준 겁니까? 수업료 못 내 가지고 맨날 학
교에서 쫓겨 오고 교과서도 안 사 줘서 수업시간마다 맨날 꿀밤이나 먹게 한 것도 공부시
켜 준 겁니까? 집안청소에다 설거지에다 빨래까지 시켜 먹은 건 또 어떻게 하구요? 사촌
누이동생의 팬티와 양말까지 빨아 주면서 내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지 알아요? 그래 놓
고 뭐가 어째요? 너 5년 동안이나 신세를 졌으니 이제 그 은혜를 갚아라 그 소리를 하고
싶지요? 하지만 나 공짜로 신세진 거 없어요. 소처럼 노예처럼 일하고 거지처럼 얻어 먹었
어요. 그것도 신세진 겁니까?
삼촌과 숙모는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눈만 껌벅거린다. 문영의 입에서 차마 그런
소리까지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숙모. 나한테 수업료 줄 때 돈을 돌돌 말아 가지고 방바닥에다 홱 던지던 거 기억나요? 한
번도 곱게 준 일이 없이 언제나 그랬죠. 또 설거지를 잘못했다고 뺨 때리던 건 생각나요?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를 갈았어요. 나중에 부자가 돼 가지고 이 한
을 꼭 갚아 주고 말리라 하면서 말예요. 그런데 이제야 그 기회가 왔군요.
삼촌과 숙모는 숨도 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문영은 마지막으로 오금을 박았다.
난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진 않지만 화가예요. 깊은 산골에다 오두막이나 한 채 짓고 그림
도 그리고 농사도 지으면서 신선처럼 살다 죽을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 돈 가지고 어디
다 쓰건 신경쓰지 마시고 계좌번호나 적어 놓고 가요. 안 굶어 죽을 만큼 쌀값은 보내 드
릴 테니까요.
그렇게 삼촌 내외를 쫓아 보내고 나자 온몸에서 맥이 빠진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혈
육과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그러나 삼촌한테 매달 쌀값 정도
는 보내 줄 생각이다. 그 돈을 받을 때 삼촌 내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세상
에 이보다 더 통쾌한 복수도 흔치 않을 것이다.

----------------------------------------------------------- 4편에 계속..
사랑은 밀어내김과 당김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