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이야기 #Prologue(1)

Ren。2007.06.13
조회185

솔직히.

세상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일이 몇가지나 되겠거니와.

 자다가 일어나서 로또맞고 뒤로넘어져서 코박살나는 경험도 없잖아 있을테고.

 

쉽지 않은 세상.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흘러가는 대로 유순하게 사는게 정답인가봅니다.

 

필자는, 현재 24살에 건장한 예비역 청년입니다.

예비역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 2개월 이내에 전역을 했기 때문에, 사회적응 초년생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대한 막연한 기쁨의 발현으로 생각하신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했고, 군생활이 다들 어렵겠지만 - 객관적으로 쉽지 않은곳에 군복무를 하고 전역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하거나 개념악화로 인해 입대불가 하신분들도 있긴 하다만, 신체건강하고 빽없는 남정네들은 다 갔다오는 곳이기에, 때로는 이악물고 버티기도 했고, 때로는 믿기지 않게 즐겁게 지내는 날도 있었지요.

 

그리고 군대에서 철좀 들어서 나온것 같아 내심 뿌듯하기도 합니다.

 

 군대가기전에는, 시발 개양아치 호로십새끼 같은 삶을 주로 살았는데, 인생을 세등분 하자면, 1/3은 잠이고 1/3은 피씨방, 1/3은 계집질과 싸움으로 보냈습니다.

 

 타인인생에 도움이 되는건, 개무좀만큼도 없고 뭐 하는 일마다 양아치 근성에 - 남의 등쳐먹는데 머리돌아가는건 이건뭐 김전일 범인잡아내는 수준이고, 집에서 돈뜯어 내는건 태어나서부터 시작된 습관이었지요.

 

 아버님은 경찰외길 30년을 넘기셨고, 어머님은 건강이 좋으셨을때는 디자이너로 활동하셨습니다. 어렸을적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이 캐가난해서 18살때까지 외식한 기억은 단한번도 없고, 그나마 별식으로 먹었던 건 날계란이었습니다.

 

 다섯살때부터 부업으로 귀고리 만드는 OEM가내수공업으로 알바를 시작했고, 낮에 끌레아또래, 꼼빠니아등 굴지의 패션업체에서 디자인을 끝내고 돌아오신 어머니와 밤새 부업을 하곤 했습니다.

 

 지나치게 찢어지는 집안 사정과, 12살이 될때까지 반지하 - 지하 - 옥탑방 루트의 무한반복으로 18번을 이사다닌 끝에, 중학교 무렵에 집을 하나 장만 했습니다. 뭐 집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하여간 공무원들에게 제공하는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그당시 기억으로 부모님이 복권 당첨되신줄 알았습니다. 처음 살아보는 18평 아파트는 으리으리 하더군요.

 

 여전히 집은 어려웠고, 박봉의 열혈경찰이셨던 아버님은 원체 성격이 일단 죽빵부터 날리고 보시는 성격이라 상관폭행이 두번, 대민피해가 17번정도 경력이 빛이나셔서 진급이 안되시고 특단의 조치로 진급시험 공부를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꼭 내가 아버지 자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울아버지 사람 죽을만큼 빼는것만 빼면,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순경에서 시작해서 오로지 진급시험으로 현재 무궁화 두개까지 다셨습니다.

 

게다가, 검소하신 어머님 덕분에 제가 군대가기 전까지 우리는 서울 근교에 번듯한 집한채 그리고 2억이 조금 넘어가는 재산과 아버지의 정년퇴직 퇴직금을 바라보며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었더랬지요.

 

 나날이, 발전해 가는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 어렸을적부터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관심을 못받고 자란 저는 개찌질이로 성장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믿기지 않겠지만 중학교시절까지는, 이른바 밥먹으면서도 책을보는 캐범생이었습니다. 일하시느라 다사다난하신 부모님들을 뵙는시간은 하루에 한시간 남짓이었고 나름 정을 못받고 자라난 저는, 오로지 성적표만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이라 믿었습니다.

 

 하여간, 모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기까지, 저는 정말 착하고 순진한 애정결핍의 중학생이었습니다. 문제는 공부는 잘하긴 했는데 7살무렵부터 시작된 도벽과 거짓말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더랬습니다.

 

 7살때, 처음으로 슈퍼를 크게 털고 수퍼주인에겐 안걸렸지만 산더미 처럼 쌓인 과자를 어머니께 걸려서 대략 8시간동안 아버지께 맞은 사건 이후에, 저는 한달에 한번꼴로 일을 저질렀습니다.

 

작게는 아버님 저금통에서 100원짜리만 골라내어 훔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친구집에 몰래들어가 장난감을 털어오는등 수법은 날로 정교해지고 대담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나이에 하기 힘든 수법들을 이미 저는 마스터 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어 슈퍼를 들어갔다 나오면 소매 안쪽에는 미니쉘이 항상 수북히 들어있었고, 심지어는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따조를 털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두명이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면, 제가 커터칼로 봉지안의 따조만 빼내어 털고 뒤집어 놓는 수법이었지요)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처등학교 6학년때 대담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저는 독고다이 대털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지요. 시발-_-

 

세X컴퓨터랜드에 진입하는 순간 저는 뭐랄까, 일종의 환상같은 예지를 받았습니다.

"이곳은 너의 공간이다"

 

들어가는 순간, 시야의 사각과 알바의 위치, 그리고 근무자 휴게실과 퇴로의 방향까지 모든것이 한순간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위험한 재능이죠.

 

그리고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건물의 3층이 매장, 4층은 평생 무료교육장이었고 저는 3층을 쭉 한번 둘러본뒤 미련없이 4층으로 올라가 무료교육장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매장매니저를 조낸 칭찬하고 귀찮게 굴면서 친분을 쌓았던거죠.

 

그리고 3일을 친분을 쌓는데 소비한 끝에, 어느새 알바와 매니저까지 저와 농담따먹기를 할수 있는 사이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때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었으니 어린나이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치밀함이로군요.

 

그리고 동선의 구조와, 알바 교대시간 밥먹는 시간, 비는시간 매니져 출퇴근 시간을 숙지한 저는 정확히 세X컴퓨터랜드 출근 7일째부터 작업을 시작했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가방은 언제나 무료교육장에서 주었던 검은색 학과백을 들고 다녔고 작업대상은, 항상 크기가 작은 소형시디류를 타겟으로 삼았고, 그래서.

 

두달간 약 패키지 48개, 부수기재 16개를 작업했습니다. 개당 3만원/1만원씩 쳐도 160만원돈이군요. -_- 덜덜덜

 

 

그리고 뭐 말안해도 알시겠지만, 모든 범죄는 뒤끝이 않좋은 법입니다.

 

저도 자랑조로 친한친구녀석에게 이야기했고, 그녀석의 협박반 애원 반에 못이겨 모패키지게임을 작업하는 미션이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대량으로 게임이 도난당하자, 알바수가 늘고, 감시가 심해졌습니다. 문제는 새로온 알바가 20대의 젊은 여자알바였고 때문에 마땅히 친해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붙일만한 적당한 대화거리가 없더군요 게다가, 패키지게임앞에서 항상 서있어서 더 힘들었죠. 교대시간을 노려봤지만 교대시간에는 매니저가 나와있는 빈큼없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저는 불타올랐습니다.

 

 여자알바가 화장실 간사이, 나는 가방에 넣고 매니져 실로 대담하게 들어가서 몇가지 궁금하지도 않은것을 물어보며 15분가량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여자 알바가 도난사실을 알고 사건이 정리되기까지 매니저와 놀고있었습니다. 물론 게임이 들어있는 가방을 매고 말이죠.

 

작업은 성공했지만. 저는 한달여간 잠수했습니다. 너무 해놓은게 많아서 잠시 쉴필요를 느꼈지요

그리고 그 모든일은 그렇게 묻혀진줄 알았습니다.

 소소한 싸움으로 잠시 사이가 멀어진 친구녀석이 선생님께 불기까지 완전범죄였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저는 죽기 직전까지 맞아 실신하고 비참한 끝을 맞이 하였습니다.

정말 죽기직전까지 맞았던 탓에, 도벽은 거짓말처럼 그 이후로 사라졌다는게 유일한 위안일까요.

 

 

제 어릴적의 습관가운데 도벽에 관한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To be continue?

 

덧, 제목이 왜 알바이야기냐구요?

그건 계속 지켜보시면 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