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습니다. 오늘 늦은저녁에서야 추적60분을 보고 알게되었습니다. 현대화랑대표의 뻔뻔한 통화내용과 사람을 협박하고 죽게했는데, 실형이 선고됐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들었으나, 겨우 1년... 한사람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고인의 작품들을 판 돈으로 기뻐했을, 사람이라는 단어조차 허락되지 않을 존재. 피해자는 떠나버렸지만, 가해자는 일년살고나오면 그뿐, 계속 행복할것이고, 부자일 것입니다. 그림이라는 말만나와도 눈물짓던 김훈화백님의 모습이 자꾸생각나서 잠을 이룰수가없습니다. 지난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화단의 거장 고(故) 오승윤 화백의 유족들이 저작권 문제 등과 관련, 소송을 제기한 50대 화랑 대표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1단독 장경식 판사는 13일 저작권법 위반과 횡령, 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H화랑 대표 전모씨(55)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기록과 관련자 증언, 특히 오 화백이 협박이 있은 지 8일 뒤 자살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전씨의 행위가 순수한 영혼을 간직해온 한 예술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길에 이르게 한 하나의 요인이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전씨는 지난 2003년 ▲이듬해 3월30일까지 화집 발간 ▲오 화백의 작품판권 등으로 제작비 충당 ▲2006년까지 화집 작품의 일반 화랑 판매 금지 ▲예외적으로 판매할 경우 H화랑에 판매가의 10% 지급 등을 골자로 오 화백과 일종의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전씨는 화집 발간은 차일피일 미룬 채 오 화백의 작품을 달력에 무단 게재하는가 하면 '그림을 돌려달라'는 오 화백 가족에게 되레 협박을 일삼았고, 오 화백은 이를 고민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 인상주의회화의 대가 고(故) 오지호 화백(1905~1982)의 차남이자 음양오행 사상을 색으로 표현한 '오방색'으로 널리 알려진 오 화백은 지난해 1월 유서 한 장 남긴 채 광주 서구 풍암동 모 아파트 8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광주 동구 지산동 작업실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판화는 재판 증거물로 놔 둬라' '예술은 나의 목적이지만 사회는 너무 냉정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돈있는 사람만 죽을때까지 행복한 대한민국
몰랐습니다. 오늘 늦은저녁에서야 추적60분을 보고 알게되었습니다.
현대화랑대표의 뻔뻔한 통화내용과 사람을 협박하고 죽게했는데,
실형이 선고됐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들었으나, 겨우 1년...
한사람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고인의 작품들을 판 돈으로 기뻐했을, 사람이라는 단어조차 허락되지 않을 존재.
피해자는 떠나버렸지만, 가해자는 일년살고나오면 그뿐, 계속 행복할것이고, 부자일 것입니다.
그림이라는 말만나와도 눈물짓던 김훈화백님의 모습이 자꾸생각나서 잠을 이룰수가없습니다.
지난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화단의 거장 고(故) 오승윤 화백의 유족들이 저작권 문제 등과 관련, 소송을 제기한 50대 화랑 대표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1단독 장경식 판사는 13일 저작권법 위반과 횡령, 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H화랑 대표 전모씨(55)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기록과 관련자 증언, 특히 오 화백이 협박이 있은 지 8일 뒤 자살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전씨의 행위가 순수한 영혼을 간직해온 한 예술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길에 이르게 한 하나의 요인이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전씨는 지난 2003년 ▲이듬해 3월30일까지 화집 발간 ▲오 화백의 작품판권 등으로 제작비 충당 ▲2006년까지 화집 작품의 일반 화랑 판매 금지 ▲예외적으로 판매할 경우 H화랑에 판매가의 10% 지급 등을 골자로 오 화백과 일종의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전씨는 화집 발간은 차일피일 미룬 채 오 화백의 작품을 달력에 무단 게재하는가 하면 '그림을 돌려달라'는 오 화백 가족에게 되레 협박을 일삼았고, 오 화백은 이를 고민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 인상주의회화의 대가 고(故) 오지호 화백(1905~1982)의 차남이자 음양오행 사상을 색으로 표현한 '오방색'으로 널리 알려진 오 화백은 지난해 1월 유서 한 장 남긴 채 광주 서구 풍암동 모 아파트 8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광주 동구 지산동 작업실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판화는 재판 증거물로 놔 둬라' '예술은 나의 목적이지만 사회는 너무 냉정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