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야근이다. 이렇게 화창한 초여름날, 저렇게 눈부신 태양을 하늘 위에 두고 밤 10시까정 야근을 한다. 사실 이제껏 당직 순서대로 때되면 돌아오던 야근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은 새삼스럽...진 않더라도 야근 서는 마음이 편하진 않을것 같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내 앞자리와 옆자리가 비었다. 내 바로 앞자리에서 나와 얼굴 마주보고 일하던 선배는, 사내연애로 동갑의 신랑을 만나 서른둘의 나이에 지난주 일요일 5월의 신부가 되어 면사포를 썼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서 일하던 또 다른 선배는 어제 부서 사람 모두의 환호성을 뒤로 하고 멋지게 사표를 날리고 회사를 그만뒀다. 결혼해서 그만둔거냐고.... 결혼.... 할거란다, 10월 3일에. 이 선배가 그만둔 것은 다른 직장에 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직 공무원 9급 시험에 합격해서 오늘부터 나오라고 했단다. 이렇게 빨리 임용될줄은 몰랐다는데, 어제 오후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그랬다고, 퇴근길에 책상 정리하고 모두에게 멋지게 안녕을 고했다. 그동안, 이 선배가 출근해서 맨날 시시콜콜한 전화통화로 남자친구와의 수다로 하루를 간간이 수놓을때, 연애한번 요란하게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내 뒤통수를 이렇게 멋지게 후려치고, 보란듯이 국장에게 사표 날리고 뒤도 안돌아다보고 멋지게 그만뒀다. 사표란 저렇게 폼나게 날리는 거구나.... 어제 처음으로 깨달았다. 연애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그 와중에, 언제 그렇게 착실히 공부를 했던건지, 부러움 반, 질투 반이 뒤범벅되어 맘이 심란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작은 신문사의 교열부다. 뭐, 신문사...라고 별스럽게(??)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울나라 모든 신문사의 교열부 기자는 다 계약직이다. 기본급이 정직 기자의 절반수준이고, 임금체계도 근본적으로 틀리고 그야말로 정직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임금을 받고 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입사 4년차인데 기본급이 63만원 정도? 거기다가 야근수당, 식대, 대충 이렇게 붙어서 나온다. 연봉 2천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아차, 적어도 한곳은 아니구나, 헤럴드신문...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 홍정욱씨가 인수해서 유명해진 곳 - 그곳은 얼마 전에 교열부 기자들도 모두 정직으로 전환해줬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물론 임금 수준은 예전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된다.) 암튼 울나라 신문사 사람들의 마인드는, 취재 기자, 편집 기자가 없으면 신문을 못만들어도, 교열기자쯤이야 없어도 신문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막말로, 너네들이 하는게 뭐가 있냐, 너네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야...라고까지 한다면 심한 표현이지만, 사실 울나라 신문사에서 교열부의 위치는 이렇다. 그리고 교열기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데 선봉의 기치에 섰던 언론사가 그 유명한 '조선일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정말 조선일보는 라면먹을때 냄비 받침으로도 쳐다보기가 싫었다. (사실 울집 그전까지 조선일보 10년 애독자였지만 내가 우겨서 조선일보 끊어버렸다.) IMF 때 조선일보는 교열부를 아예 없애버리기까지 했으니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게다가 매일경제의 경우 요즘 교열작업은 아르바이트생을 쓴다고 들었다. 계약직 기자 쓰는 것도 돈이 아깝다고(?)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쓴단다. 울 국장이 걸핏하면 꺼내는 이야기다. 매경에 비하면 너네는 행복한거 아니냐, 이 소리다. 암튼간에,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열부는 거의 다 여자들 뿐이고, (매년 박봉으로 재계약하며 교열 볼 남자가 누가 있겠는가) 결혼해서 임신한 선배들은 출산휴가를 들어갈라치면 누구든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출산휴가 2개월이 지나도 회사에서 나오라는 말이 없으면 시쳇말로 그대로 자연스럽게 짤리는 거니까. 사실 예전에도 사내결혼 후 출산휴가에 들어갔던 선배 하나는 끝내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서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고용불안과 박봉의 임금에 말못하는 고민을 늘 안고 살아간다. 어쩌다 회사 상황이 어렵다치면 제일 먼저 화두에 오르는 것이 교열부 해체다. 그때마다 우리 부서 보스는 회의실에 우리를 몰아넣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너네 짤리고 싶지 않으면 몸사리고 있어, 지금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아냐... 그리고, 여기가 싫으면 아예 여기 때려치고 딴데 알아보든가. 이런식이다. 사실, 근무환경이 좋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울 회사, 종합지가 아니라 전문지라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이 정해져 있고, 평일과 일요일에는 돌아가며 밤 10시까지 당직을 선다. 토요일은 늘 쉬므로, 한달에 일요당직을 두번 정도 한다고 하면, 한달 평균 2주 정도는 말 그대로 주 5일 근무다. 그래,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건 우리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편집도 취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똑같이 야근 서고 똑같이 근무시간 채우는데, 누구는 정직 기자에 누구는 계약직 여.직.원.이다. 막말로 우리는 노조에 가입조차 못한다. 자격이 안되서.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편집해 레이아웃을 짜고 제목을 다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며, 그 기사를 손보고 잘못된 말을 고치고 다듬는 일은 가치가 없는 일일까. 물론 맞춤법같은 경우는 기자입력기에 맞춤범 시스템을 깔아놓으면 된다. 실제로 모 언론사는 그런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는 대신 교열부를 없애버렸다. (이때도 역시 이유는 경비절감, 구조조정이었다. 만만한게 교열부.....) 그러나, 기사를 손본다는 것은 결코 맞춤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열이란, 결코 단어에 국한된 작업이 아닌, 단어와 문장, 단락, 글 전체, 모든것을 아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떨결에 이곳에 입사했을때, 나를 가르치던 여자 부장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교열이란 일은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만 먹는 작업이라고.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기사 뒤치닥꺼리(?!) 하는 일이라 티도 안나고, 어차피 이 직업은 사양산업이라고. 다른 직장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만약 다른 생각 있으면 차근히 준비해서 더 좋은 직장 찾아가라고. 그 말을 들은지도 어언 몇년인지. 아직도 그 알량한 박봉이 아쉬워서 미적미적거리는 사이, 내 나이는 서른이 되었고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제대로 노력도 안했으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비난만 하려드느냐고 한다면, 그렇게 맘에 안들면 때려치고 다른 직장 알아보면 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 다 맞는 말이다. 난 의지가 약하고 용기가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사실.... 여기 다니던 중간에 좋은 남자 만나면 걍 시집가서 이 생활 몇년 더 하다가 애 낳고 살림만 해도 뭐가 어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안나타나서인지 여전히 꿀꿀한 독야청청을 외치고 있고, 집에서는 땡순이요, 방구들로 불린다. 땡하면 출근, 땡하면 퇴근한다고 해서 땡순이, 방구들을 지키다 지키다 못해 이젠 방구들 그 자체가 되었다고 방구들이다. 암튼............ 이렇게 저렇게 심란한 사이 내 앞과 내 옆에 앉은 두 사람은 나름대로 저마다의 큰일을 치른 셈이다. 평생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났고, 평생 할 수 있는 직장을 얻었다. 그래..... 사람들마다의 인생은 다 다를 것이다. 당장 순간의 모습만을 가지고 일희일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가. 그리고, 인생사 새옹지마, 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그건 나조차도 모르는 터, 이렇게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현실을 개탄하기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텐데, 그래도 오늘은 왠지 썰렁하게 비어있는 내 앞과 내 옆의 두자리가 나로 하여금 오만가지 잡생각을 떠올리게 해서, 이렇게 주제도 모르고 한탄하듯 넋두리하듯 키보드를 두들겨본다. 오늘 아침에 부엌에서 엄마께 결혼한 선배와 공무원 시험 붙어서 회사를 그만둔 선배의 이야기를 했다. 그냥 우연찮게 나온 말이었는데, 엄마는 초장부터 역정을 내셨다. 남들 그렇게 다 제갈길 찾을때 넌 대체 뭐했냐고. 나이 들어 제일 서글플 때는, 부모, 그것도 엄마한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을 때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말 한마디 때문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의가 상한다. 오늘 아침 내가 그랬다. 내가 스무살 시절에, 그때, 스무살 어렸던 내가 바라보던 서른은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집에서 아기를 키우고 살림만 하고 있다 치더라도 이렇게 망망대해에서 무인도를 찾는 사람의 심정처럼 막막한 그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른하고도 다섯달을 꽉 채워 넘긴 지금, 내 모습은 여전히 바닷물에 출렁이는 나무조각처럼 불안하기만 한듯 보인다. 그저 그런 삶은 절대 용납조차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뻥뻥치던 그 호기는 다 어디로 가고, 두눈 질끈 감으면 최소한의 무엇은 연명(!)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미적거리는 뻔뻔스러움만 남은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기엔 제대로 태워보지 못한 이 가슴속의 열정이 마냥 억울하기만 하고.... 그래서........ 무언가라도 새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사실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대견(!)한 것이 아니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현실이라는 이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계약직 교열기자란 이름으로 지금 이시간도 남모를 고충울 겪고 계실 모든이들께 고한다. 여러분은 모두 가치있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비록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을 힘들게 할지라도, 저는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신문다운 신문이 나온다고. 전 그렇게 믿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내나이 서른은...
오늘 야근이다.
이렇게 화창한 초여름날, 저렇게 눈부신 태양을 하늘 위에 두고 밤 10시까정 야근을 한다.
사실 이제껏 당직 순서대로 때되면 돌아오던 야근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은 새삼스럽...진 않더라도 야근 서는 마음이 편하진 않을것 같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내 앞자리와 옆자리가 비었다.
내 바로 앞자리에서 나와 얼굴 마주보고 일하던 선배는,
사내연애로 동갑의 신랑을 만나 서른둘의 나이에 지난주 일요일 5월의 신부가 되어 면사포를 썼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서 일하던 또 다른 선배는 어제 부서 사람 모두의 환호성을 뒤로 하고 멋지게 사표를 날리고 회사를 그만뒀다.
결혼해서 그만둔거냐고....
결혼.... 할거란다, 10월 3일에.
이 선배가 그만둔 것은 다른 직장에 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직 공무원 9급 시험에 합격해서 오늘부터 나오라고 했단다.
이렇게 빨리 임용될줄은 몰랐다는데,
어제 오후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그랬다고,
퇴근길에 책상 정리하고 모두에게 멋지게 안녕을 고했다.
그동안, 이 선배가 출근해서 맨날 시시콜콜한 전화통화로 남자친구와의 수다로 하루를 간간이 수놓을때,
연애한번 요란하게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내 뒤통수를 이렇게 멋지게 후려치고,
보란듯이 국장에게 사표 날리고 뒤도 안돌아다보고 멋지게 그만뒀다.
사표란 저렇게 폼나게 날리는 거구나.... 어제 처음으로 깨달았다.
연애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그 와중에,
언제 그렇게 착실히 공부를 했던건지,
부러움 반, 질투 반이 뒤범벅되어 맘이 심란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작은 신문사의 교열부다.
뭐, 신문사...라고 별스럽게(??)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울나라 모든 신문사의 교열부 기자는 다 계약직이다.
기본급이 정직 기자의 절반수준이고,
임금체계도 근본적으로 틀리고 그야말로 정직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임금을 받고 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입사 4년차인데 기본급이 63만원 정도?
거기다가 야근수당, 식대, 대충 이렇게 붙어서 나온다.
연봉 2천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아차, 적어도 한곳은 아니구나, 헤럴드신문...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 홍정욱씨가 인수해서 유명해진 곳 - 그곳은 얼마 전에 교열부 기자들도 모두 정직으로 전환해줬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물론 임금 수준은 예전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된다.)
암튼 울나라 신문사 사람들의 마인드는,
취재 기자, 편집 기자가 없으면 신문을 못만들어도,
교열기자쯤이야 없어도 신문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막말로, 너네들이 하는게 뭐가 있냐, 너네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야...라고까지 한다면 심한 표현이지만,
사실 울나라 신문사에서 교열부의 위치는 이렇다.
그리고 교열기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데 선봉의 기치에 섰던 언론사가 그 유명한 '조선일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정말 조선일보는 라면먹을때 냄비 받침으로도 쳐다보기가 싫었다.
(사실 울집 그전까지 조선일보 10년 애독자였지만 내가 우겨서 조선일보 끊어버렸다.)
IMF 때 조선일보는 교열부를 아예 없애버리기까지 했으니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게다가 매일경제의 경우 요즘 교열작업은 아르바이트생을 쓴다고 들었다.
계약직 기자 쓰는 것도 돈이 아깝다고(?)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쓴단다.
울 국장이 걸핏하면 꺼내는 이야기다.
매경에 비하면 너네는 행복한거 아니냐, 이 소리다.
암튼간에,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열부는 거의 다 여자들 뿐이고, (매년 박봉으로 재계약하며 교열 볼 남자가 누가 있겠는가)
결혼해서 임신한 선배들은 출산휴가를 들어갈라치면 누구든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출산휴가 2개월이 지나도 회사에서 나오라는 말이 없으면 시쳇말로 그대로 자연스럽게 짤리는 거니까.
사실 예전에도 사내결혼 후 출산휴가에 들어갔던 선배 하나는 끝내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서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고용불안과 박봉의 임금에 말못하는 고민을 늘 안고 살아간다.
어쩌다 회사 상황이 어렵다치면 제일 먼저 화두에 오르는 것이 교열부 해체다.
그때마다 우리 부서 보스는 회의실에 우리를 몰아넣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너네 짤리고 싶지 않으면 몸사리고 있어, 지금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아냐...
그리고, 여기가 싫으면 아예 여기 때려치고 딴데 알아보든가.
이런식이다.
사실,
근무환경이 좋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울 회사, 종합지가 아니라 전문지라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이 정해져 있고,
평일과 일요일에는 돌아가며 밤 10시까지 당직을 선다.
토요일은 늘 쉬므로, 한달에 일요당직을 두번 정도 한다고 하면,
한달 평균 2주 정도는 말 그대로 주 5일 근무다.
그래,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건 우리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편집도 취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똑같이 야근 서고 똑같이 근무시간 채우는데,
누구는 정직 기자에 누구는 계약직 여.직.원.이다.
막말로 우리는 노조에 가입조차 못한다.
자격이 안되서.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편집해 레이아웃을 짜고 제목을 다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며,
그 기사를 손보고 잘못된 말을 고치고 다듬는 일은 가치가 없는 일일까.
물론 맞춤법같은 경우는 기자입력기에 맞춤범 시스템을 깔아놓으면 된다.
실제로 모 언론사는 그런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는 대신 교열부를 없애버렸다.
(이때도 역시 이유는 경비절감, 구조조정이었다. 만만한게 교열부.....)
그러나,
기사를 손본다는 것은 결코 맞춤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열이란, 결코 단어에 국한된 작업이 아닌,
단어와 문장, 단락, 글 전체, 모든것을 아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떨결에 이곳에 입사했을때,
나를 가르치던 여자 부장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교열이란 일은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만 먹는 작업이라고.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기사 뒤치닥꺼리(?!) 하는 일이라 티도 안나고,
어차피 이 직업은 사양산업이라고.
다른 직장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만약 다른 생각 있으면 차근히 준비해서 더 좋은 직장 찾아가라고.
그 말을 들은지도 어언 몇년인지.
아직도 그 알량한 박봉이 아쉬워서 미적미적거리는 사이,
내 나이는 서른이 되었고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제대로 노력도 안했으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비난만 하려드느냐고 한다면,
그렇게 맘에 안들면 때려치고 다른 직장 알아보면 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 다 맞는 말이다.
난 의지가 약하고 용기가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사실....
여기 다니던 중간에 좋은 남자 만나면 걍 시집가서 이 생활 몇년 더 하다가 애 낳고 살림만 해도 뭐가 어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안나타나서인지 여전히 꿀꿀한 독야청청을 외치고 있고,
집에서는 땡순이요, 방구들로 불린다.
땡하면 출근, 땡하면 퇴근한다고 해서 땡순이,
방구들을 지키다 지키다 못해 이젠 방구들 그 자체가 되었다고 방구들이다.
암튼............
이렇게 저렇게 심란한 사이 내 앞과 내 옆에 앉은 두 사람은 나름대로 저마다의 큰일을 치른 셈이다.
평생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났고,
평생 할 수 있는 직장을 얻었다.
그래.....
사람들마다의 인생은 다 다를 것이다.
당장 순간의 모습만을 가지고 일희일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가.
그리고,
인생사 새옹지마, 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그건 나조차도 모르는 터,
이렇게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현실을 개탄하기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텐데,
그래도 오늘은 왠지 썰렁하게 비어있는 내 앞과 내 옆의 두자리가 나로 하여금 오만가지 잡생각을 떠올리게 해서,
이렇게 주제도 모르고 한탄하듯 넋두리하듯 키보드를 두들겨본다.
오늘 아침에 부엌에서 엄마께 결혼한 선배와 공무원 시험 붙어서 회사를 그만둔 선배의 이야기를 했다.
그냥 우연찮게 나온 말이었는데,
엄마는 초장부터 역정을 내셨다.
남들 그렇게 다 제갈길 찾을때 넌 대체 뭐했냐고.
나이 들어 제일 서글플 때는,
부모, 그것도 엄마한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을 때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말 한마디 때문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의가 상한다.
오늘 아침 내가 그랬다.
내가 스무살 시절에,
그때, 스무살 어렸던 내가 바라보던 서른은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집에서 아기를 키우고 살림만 하고 있다 치더라도 이렇게 망망대해에서 무인도를 찾는 사람의 심정처럼 막막한 그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른하고도 다섯달을 꽉 채워 넘긴 지금,
내 모습은 여전히 바닷물에 출렁이는 나무조각처럼 불안하기만 한듯 보인다.
그저 그런 삶은 절대 용납조차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뻥뻥치던 그 호기는 다 어디로 가고,
두눈 질끈 감으면 최소한의 무엇은 연명(!)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미적거리는 뻔뻔스러움만 남은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기엔 제대로 태워보지 못한 이 가슴속의 열정이 마냥 억울하기만 하고....
그래서........
무언가라도 새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사실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대견(!)한 것이 아니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현실이라는 이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계약직 교열기자란 이름으로 지금 이시간도 남모를 고충울 겪고 계실 모든이들께 고한다.
여러분은 모두 가치있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비록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을 힘들게 할지라도,
저는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신문다운 신문이 나온다고.
전 그렇게 믿습니다.